특집 | 리얼리티 탐구의 문학적 형식들

 

분열하는 감각 너머의 리얼리티

 

 

송종원 宋鐘元

문학평론가. 평론 「텅 빈 자리의 주위에서」 「21세기 오감도(烏瞰圖),  21세기 소년 탄생기(誕生記)」 등이 있음. renton13@daum.net

 

 

1. 시라는 형식과 리얼리티

 

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일은 왜 쉽지 않을까. 시에는 늘 예상보다 복잡한 것이 들어 있고, 그것들은 쉽게 말이 되기를 거부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도 그리고 시를 읽는 입장에서도 시의 저와 같은 성향은 난감한 상황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는 종종 독자가 시인에게 작품을 개념적이고 설명적인 언어로 풀어 말해주기를 요구하는 상황을 목격하는데, 이러한 요구에 딱 떨어지게 응답해주는 시인의 언어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설명보다 침묵이 시의 고유성을 지키는 방법임을 직관적으로 아는 시인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듣기란 어렵다. 더욱이 시에는 분명 시인이 쓰는 몫 이상의 것이 자리하기도 한다. 시인의 의도까지도 용해하는 거대한 용광로가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

시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현상의 바탕에는 시의 언어가 일상의 언어와 달리 지시적 기능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시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데 무심하다. 현대시의 형성과정 자체가 상징적 언어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걸었다는 점, 또 현대로 올수록 시의 언어가 언어의 매개성을 반성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의 언어가 두터워지고 복잡해진 이유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의 활동은 여전히 쉽게 시 외부의 사실과 시 내부의 언어를 등치시키려고 애쓴다. 시를 역사주의적 방식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구체적 사료의 하나로 취급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를 여타의 문건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자료로 취급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이 발명되지 않는 한, 그러한 방식은 시 외부의 담론들에 시를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그렇다면 시 내부에는 무엇이 있고 그것을 시의 외부와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인가. 너무 큰 질문 같지만 그동안 축적된 시에 관한 연구들은 이에 대한 답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시는 비유를 통해 경험적 세계와 연관하는 사실들을 압축하거나 전이된 형태로 담고 있으며, 율동하는 언어1)들을 통해 현실에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관계성과 그것의 유동성을 표출한다. 시는 경화된 언어들이 압축과 전이, 반복과 변주의 과정을 거쳐 현실 속에 잠재된 공속(共屬)되고 연루된 관계들의 관계항들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이끈다. 비유든 율동이든 시의 이같은 형식적 특질들은 단지 시의 내용을 세련되게 담아내는 방법의 차원이라기보다 현실세계의 사실과 관계들을 변형하고 변화시키는 시의 내재적 힘인 셈이다. 달리 말하면 이 둘의 양상을 살피는 일이 바로 현실과 연관하는 시의 리얼리티를 발견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권의 시집2)을 읽으려 한다. 두 시집의 저자들은 일찍부터 형식상의 독특함으로 주목받아왔다. 김수영문학상을 받으며 첫 시집을 낸 황인찬(黃仁燦) 시의 미적 형식은 타자를 수용하는 윤리적 방법으로 자주 평가받았다. 또한 김정환(正煥)의 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장르와 내용을 포괄하는 독특한 시적 형식으로 알려졌다. 두 시인의 최근 시집에서 이들이 어떤 형식을 통해 어떤 전망 내지 리얼리티에 도달했는가를 살펴보자.

 

 

2. 비유할 수 없는 생, “희지는 혼자 산다”

 

『희지의 세계』는 메아리처럼 울리는 누군가의 말에 관한 시집이다. 거의 모든 시편에서 ‘~말한다’라는 표현으로 누군가의 말을 간접인용할 뿐 아니라, 큰따옴표 안에 직접 인용된 구절도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이 인용이 좀 특이하다. 인용하는 자가 자신의 의도에 맞게 인용구절을 끌어다 쓰는 것이 보통의 인용방식이라면 황인찬 시에서는 끌어다 쓰는 자가 그 말의 울림에 끌려가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힘이 센 것은 인용한 자가 아니라 인용한 구절이고, 그 구절은 작품 속에서 처음 발화된 맥락의 내용을 반복한다기보다 의미를 확정하기 힘든 상황을 빚어 시 전체를 이상한 의구심으로 둘러싸이게 만든다. 아마도 이와 같은 느낌은 인용한 말들이 시 속에 용해되어 있기보다는 독립성을 유지한 상태로 남아서 발생하는 듯하다.3) 『구관조 씻기기』(민음사 2012)에서 주목받던 사물 또는 타자의 고유성을 보존하는 방식이 두번째 시집에 와서는 타인의 말에까지 확장된 것일까.

 

“미안, 늦을 것 같아 어디 따뜻한 데 들어가 있어”(「새로운 경험」)

“이곳은 누가 선이라도 그어 놓은 것처럼/캄캄한 것과 환한 것이 나뉘어 있구나”(「서정」)

“상황이 좀 나아지면 깨워 주세요”(「비의 나라」)

“마음에 병이 나서 잎이 나서 나무가 되었습니다”(「번성」)

 

이외에도 인용 가능한 구절은 많다. 그리고 그 말들의 성향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한쪽에는 황폐한 세계를 환기하는 말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의 말들이 자리한다. 이 말들이 시를 촉발했던 순간의 비밀과 관련이 있으리라 추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마도 시인은 저 말들을 뚜렷한 의미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떤 충격처럼 받아들였을 것이고, 그것에 포획되었기 때문에 발화된 맥락에서 저 말들을 도려내 시로 올렸을 것이다.4) 말들을 맥락에서 도려내고 재배치하는 과정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말들을 일순간 특별한 시적 느낌을 자아내는 상황으로 이끈다. 황폐한 세계와 따뜻한 시선을 환기하는 파편적 구절들에 남다른 무게가 형성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