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장욱 李章旭
1968년 서울 출생.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으로 등단. 소설집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장편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등이 있음. oblako@hanmail.net
스텔라를 타는 구남과 여
1
썅.
구남씨가 그렇게 뇌까렸을 때 나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시선을 두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구남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낮게 코를 골다가,
니미,
다시 욕을 했다. 잠꼬대였다. 구남씨는 두어번 더 그런 말을 내뱉다가 새근새근 숨을 내쉬었다. 밤이니까 천장 쪽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거기 뭐가 있는 것 같았다. 어둠은 늘 이런 식으로 사람을 유혹하지, 재수 없어.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인가. 자꾸 캄캄해져서 손을 넣어보게 되잖아. 거기서 뭐가 잡히나.
구남씨의 잠꼬대가 처음은 아니었다. 익숙하다고 해도 좋았다.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구남씨의 잠꼬대 때문에 깨곤 했으니까. 잠꼬대라는 건 구남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나는 별다른 불만이 없다. 잠깐 갸우뚱해지거나 잠을 좀 설치는 것 외에는 문제 될 것도 없었고.
게다가…라고 말하면 이상하지만 구남씨에게는 구남씨의 버릇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버릇이 있다. 나의 버릇으로 말하자면 구남씨처럼 자면서 욕을 한다든가 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 기묘하다면 기묘하달 수 있는데, 나는 눈을 뜨고 잔다. 그런 걸 버릇이라고 하기에는 좀 뭣하지 않을까. 버릇이라는 건 안 하려고 하면 잠시라도 안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안 되는걸.
일단 눈을 감는다. 자려고 한다. 잠이란 건 역시 편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안하다고 생각하니 정말 편안한 느낌이 든다. 양 한마리도 지나가고 양 두마리도 지나가고 양 세마리도 지나가고… 양들이 오백마리쯤 지나가면… 잠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지. 잠이 들면 스르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원래 크기보다도 더 크게, 눈을 부릅뜨게 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눈을 뜬다고 한다. 나야 잠이 들었으니 알 턱이 없지.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다고 엄마가 그랬으니 그런가 할 뿐이다.
처음에는 나도 믿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엄마는 잠든 나를 캠코더로 찍어서 보여주었다. 이것 봐. 눈을 뜨고 자잖아. 엄마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작은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 속의 나는 확실히 눈을 뜬 채 잠들어 있었다.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는다거나 실눈을 뜬 정도가 아니었다. 내 눈이 이렇게 클 리가 하고 깜짝 놀랄 만큼이었다. 그것도 캠코더 쪽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초점이 애매했기 때문에 그걸 ‘바라본다’고 해야 하는지는 좀 헷갈렸지만.
도리 없이 병원에를 갔다. 무슨 병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들 말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목에서 쇳소리가 나는 할아버지였는데, 에, 눈 뜨고 자는 건 두가지 경우가 있어요. 하나는 눈꺼풀이 너무 짧은 경우. 안구를 충분히 덮어주지 못하는 거지. 또 하나는 안구가 지나치게 돌출된 경우. 눈꺼풀은 정상인데 튀어나온 눈알 면적이 넓은 거야. 엎어치나 메치나 비슷한 얘기 같지만 치료 방법이 달라요. 근데… 아가씨는 이상하네? 눈꺼풀 길이가 정상인데? 눈두덩도 움푹 들어가 있고. 그런데 눈을 뜨고 잔다?
의사는 왠지 화가 난다는 표정을 짓더니 결론을 내리듯 덧붙였다.
이런 경우는 드문데. 일단 대학병원을 가보세요. 수면검사도 해보고. 무엇보다 일단 신경정신과 진료를…
그래서 대학병원에를 갔다. 수면검사란 것도 받았다. 진단은 같았는데, 아주 드문 케이스로 아마도 스트레스 탓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게 틀림없구나 생각하고는 우울해졌다. 어쨌든 눈을 뜨고 자면 안구건조증이라든가 각막염증 같은 게 있을 수 있다고 해서 눈에 안약을 넣은 게 치료의 전부.
열심히 안약을 넣은 덕분에 안구건조증이라든가 각막염증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다. 생활에도 별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을 턱이 없는 게,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잤고 친구네서 외박 같은 걸 하지도 않았으며 버스나 지하철 같은 데서 잠이 들지도 않았으니까. 중학교 때인가 수업 중에 졸았던 적이 있긴 한데 수학선생에게서 ‘너, 수업시간에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지적을 들은 뒤로는 자동으로 졸지 않게 되었다. 수학선생이 말한 이상한 표정이라는 것을 상상해보았는데, 고개를 외로 꼬고… 두 눈을 부릅뜬 채… 깜빡이지도 않고… 조금씩 흔들흔들… 입가에 침이 고이고… 그런 모습이 그려졌다. 확실히 남에게 보여줄 만한 표정은 아니니까 그후로는 수업시간마다 말짱하게 깨어 있었다. 수학여행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머리 뒤로 띠를 빙 둘러서 착용하는 안대를 지참했다. 숙소에서도 구석자리를 잡아서 재빨리 자고 재빨리 일어난 건 물론이고.
그럭저럭 학창시절은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른이 되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연애를 하고 동거를 시작하면서 뭔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인생이 원래 이런 건가.
2
구남씨와 나는 이십대의 끝물이었고 반년째 함께 살고 있었다. 결혼식은 하지 않았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 나도 구남씨도 특별히 그런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남씨는 ‘예식이라는 거, 매우 귀찮다’는 게 이유였고 나로 말하자면 ‘미쳤냐 결혼 따위를 하게. 하녀 될 일 있냐’라고 반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굳이 왜?’라고는 확실히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식은 안 했지만 친구 몇을 모아 동거를 알리는 모임은 조촐하게 했다. 아무래도 결혼식을 대신하는 모임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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