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2016년 6월 15일에 회의를 열고 올해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을 맞아 이 상의 의의를 한층 강화하기 위해 중요한 개편을 단행했다. 상금을 2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올렸으며, 예심 통과작을 대상으로 1차 본심에서는 ‘최종심 대상작’ 목록을 확정하여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하고, 숙고기간을 거친 뒤 2차 본심에서 ‘수상작’을 최종적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만해문학상 특별상(상금 1천만원)을 신설하여 본상과 장르가 다른 작품에 수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김소연 박형준 손택수(이상 시부문) 강경석 김미정 이경재(이상 소설부문)를 예심위원으로, 백낙청 한기욱 황인숙 황현산을 본심위원으로 위촉해 심사진을 구성했다.
예심위원들은 7월 중순까지 시와 소설 각 부문의 문예물뿐 아니라 문학적 성과가 인정되는 비문예물에 대해서도 대상작을 선정하여 심사를 진행했다. 만해문학상 규정에 따라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최근 3년간(2016년 6월 15일까지 출간된 작품)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한 예심에서 시집 6종, 소설 5종, 비문예물 3종(총 14종)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이어서 4인의 본심위원들은 8월 4일 1차 본심을 열고 다음 7권의 작품을 ‘최종심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김경욱 『개와 늑대의 시간』, 이인휘 『폐허를 보다』(이상 소설), 송경동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장철문 『비유의 바깥』(이상 시), 김형수 『소태산 평전』, 416작가기록단 『다시 봄이 올 거예요』(이상 비문예물).
9월 9일 2차 본심(최종심)에서는 송경동과 장철문의 시집이 수작으로 손색없으나 올해 한국문학의 수확이 소설 부문에서 더 풍성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권여선과 이인휘 소설집으로 대상을 좁혀 논의를 이어가면서 두 작품의 개성과 성취를 두루 검토한 결과 후자로 점차 기울어졌고 만해문학상의 취지에도 후자가 더 부합한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신중한 토론 끝에 심사진은 우리 시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내면서도 과거의 노동소설과는 사뭇 다른 면모로 감동을 안기는 이인휘 소설집 『폐허를 보다』를 본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세월호 생존 학생과 유가족 중 형제자매가 상처를 딛고 분투·성장하는 과정을 저마다의 육성으로 여실히 기록한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저자 특유의 활달한 상상력과 유려한 필치로 그려냄으로써 또다른 민중문학의 성취에 도달한 『소태산 평전』을 특별상 공동수상작으로 뽑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심사평
백낙청(白樂晴)_ 문학평론가
최종심 후보 중에 장철문 시집과 권여선 소설집에 애착이 많이 갔다. 하지만 이인휘 소설집 『폐허를 보다』가 특히 뛰어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인휘의 소설은 이야기의 내용이 감동적인 데 비해 형식은 낡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더러 그런 면이 없지는 않을 게다. 그러나 낡은 형식으로는 큰 감동을 주지 못하며 사무치는 이야기를 작가가 온몸으로 써낼 때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기법과 형식이 태어나게 마련이다. 예컨대 「공장의 불빛」은 일견 80년대의 노동소설들이 그리던 현장으로 돌아간 듯한 인상을 준다.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에다 줄곧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악덕 업주에 저항하여 자살하는 노동자 등 옛 풍경 그대로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나고도 이렇게 너무도 안 변했다는 인식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이며 한동안 펜을 놓았던 작가를 창작으로 이끈 동력이다(“공장이 다시 글을 쓰라고 떠밉니다”). 그러나 글 자체는 옛날처럼 목청 높이 노동계급의 승리를 외치는 대신, 경어체를 곁들인 말투가 매우 차분하고 담담하다. 게다가 동료들에게 피해만 줄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가는 화자가 좌절의 술잔을 나누는 동료에게 해주고 싶었지만 입밖에는 내지 않은 말, “인간이 태어나서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답해가며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지난날의 노동문학에서 듣기 힘들었던 고백이며, 「공장의 불빛」이 그러한 다짐을 실행하는 작품이기에 그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변하지 않은 현실’이 새삼 실감된다. 「시인, 강이산」에 이르면 형식상의 새로움이 한층 두드러진다. 주인공은 고 박영근 시인의 시들을 써낸 인물로 등장하고 박영근과 닮은 점도 많지만, 그 죽음의 정황을 포함해서 중요한 사건들이 박영근의 실제 생애와 일치하지 않는다. 화자 역시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적잖게 표현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저자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렇게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박영근의 시에 대한 훌륭한 문학비평이 자연스럽게 배합된 소설은 투박한 열정만으로 쓸 수도 없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