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소연 金素延
시인.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이 있음. catjuice@empas.com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장이지 張怡志
시인. 시집 『안국동울음상점』 『연꽃의 입술』 『라플란드 우체국』, 평론집 『환대의 공간』 등이 있음. poem-k@hanmail.net
백지연 이번호 문학초점에서는 시와 비평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장이지 시인을 모셨습니다. 장르서사 및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이 깊으신 걸로 아는데요. 오늘 다양하고 흥미로운 대화가 기대됩니다.
장이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동업자들의 작품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어려운 일이지만, 오늘은 좀 극성스러운 독자가 되어, 읽은 느낌을 솔직히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김소연 반갑습니다. 장이지 시인의 적극적인 태도에 값하는 자리가 되기 위해 더더욱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나 오늘은 두분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귀한 자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있습니다. 이제 시작해볼까요.
은희경 『중국식 룰렛』(창비)
백지연 『중국식 룰렛』은 은희경(殷熙耕)의 여섯번째 소설집입니다. 이번 책도 도시공간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내밀한 고독과 감수성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은희경 소설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어요. 우선 술, 옷, 가방, 책과 사진, 음악 등 표제로 내세운 사물들이 눈에 띄는데요, 이 사물들은 단순한 소재를 넘어서 소설 깊숙이 스며들어 작동하는 모티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기점으로 돌아보니 그동안 은희경 소설이 고유의 색채를 간직하면서도 시대적 흐름을 민감하게 반영하며 변화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환멸과 냉소, 나르시시즘, 자기연기술 등 은희경 소설을 두고 다양한 비평적 명명이 있어왔지요. 최근 장편 『태연한 인생』(창비 2012) 이후에는 지식인소설이나 메타소설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합니다.
장이지 사물과 이야기를 봉합하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면서도 또 성실하다고나 할까,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은희경 소설은 인물 유형이나 이야기 구조가 매우 전통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공들이 모두 자기를 상실한 사람들이고요. 이들은 불치의 병을 앓거나 큰 수술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자살에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내와 파경 위기에 놓인데다 의료사고로 인해 직장인 병원에서도 곤경에 처해 있다든지(「중국식 룰렛」), “나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라고 선언한다든지(「장미의 왕자」), 그도 아니면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가장 오래된 대용품”이라고 고백하는 식입니다(「대용품」). 인물들이 삶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내 모습의 원형은 무엇인지,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지 탐색하는 이야기 구조인데요.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진실이나 진상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세계는 모호한 상태로 반쯤은 열려 있고 반쯤은 닫혀 있습니다. 이처럼 진실을 탐색하는 과정이나 결말에 이르는 전개방식이 매우 고전적인 소설같이 다가와요.

왼쪽부터 김소연, 장이지, 백지연. Ⓒ 신나라
김소연 언제부턴가 새 은희경 소설 앞에서, 무엇을 이야기했을까보다는 이번에는 어떻게 썼을까에 더 관심이 가는 편입니다. 은희경 소설에서 제가 특히 매혹적으로 느끼는 지점은 플롯을 짜내는 힘입니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작은 모티프들이 확장되고 심화되는 흐름에 감탄을 많이 했습니다. 은희경 소설의 설득력은 이야기를 가장 잘 짜내는 방식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지연 다양한 이야기 구조와 대화방식, 논평의 삽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죠. 클래식한 소설 같지만 자세히 보면 치밀하게 고안된 다양하고 실험적인 서술방식을 품고 있어요. 「중국식 룰렛」이 좋은 예인데요, 묘사와 대화, 독백, 논평 등 단편 하나에 많은 형식이 녹아 있어요. 상충할 것 같은 서술형식들이 정교하게 한편의 소설로 꿰어지는 과정 자체가 놀랍죠. 물론 이렇듯 섬세하게 교차하는 이야기들의 구조가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극적인 사건이나 주제의 직접성은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에요. 읽는 사람에 따라 뭔가 이야기가 불투명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장이지
장이지 이 작품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실과 거짓이 고정되지 않으면서, 1에서 9까지의 숫자 중에 자꾸 흔들리는 거죠. 그런 불안 속에서 독자들 역시 ‘확률적인 세계’가 주는 불안감을 함께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은희경 소설을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인 것으로 느끼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이 과정을 소설 쓰기의 알레고리처럼 만들어놓았다는 겁니다. 「중국식 룰렛」에서 진실과 거짓 어느 쪽이든 선택하게 되면 K가 상처를 받든지 ‘나’가 상처를 받잖아요. 선택을 안 할 수도 있는데 게임에 다 참여해 판돈을 건단 말이에요. 어쩌면 이 소설은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상처를 받더라도 결국에는 뭔가를 선택해가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백지연 말씀대로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이 대체로 넓은 범주의 메타소설로 읽히죠. 가령 「중국식 룰렛」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1965)이 보여준 익명적 개인들의 만남을 소설 쓰기의 플롯으로 다시 가공하고 있습니다. 그런 메타소설적 구조를 관장하는 인물로 K가 설정되고요. 나름대로 미학적 감각을 갖춘 공간에서 게임을 고안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 자체가 ‘자기연기술’의 진화된 형태인데요. 물론 이렇듯 원하는 삶을 허구 속에서 디자인하는 방식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며 삶의 민낯을 보여주게 되죠.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별의 동굴」은 그 과정을 가장 압축적으로 아름답게 드러내는 듯합니다.
김소연 저는 「대용품」을 읽으면서, 아까 장이지 시인이 언급하신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가장 오래된 대용품”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특히나 강렬한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작가의 말’에는 이 작품을 쓰는 중에 “2014년 4월 16일의 날벼락이 닥쳤다. 어쩌면 내가 조금쯤 변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이 작가의 말 때문에 더더욱 「대용품」은 다른 작품들과 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작가가 인물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더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진달까요. 확률적인 세계를 조심스럽게 가늠하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문장들이 강렬한 소설적 자의식과 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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