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저작권법 시대의 예술작품

 

 

스벤 뤼티켄 Sven Lütticken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예술사와 예술비평 강의 중. 저서 Secret Publicity (2006), Idols of the Market: Modern Iconoclasm and the Fundamentalist Spectacle (2009) 등이 있음.

 

*이 글의 원제는 “The Art of Theft”이며, 필자가 『뉴레프트리뷰』(New Left Review) 2002년 1-2월호에 발표한 글이다. ⓒ Sven Lütticken, 2002 / 한국어판 ⓒ 창비 2016

 

 

영화각본과 미술작품,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저작권 침해에 관한 최근의 소송과 논쟁의 숫자만 보더라도 ‘지적 재산권’과 그에 따르는 이익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이클 잭슨 같은 스타들은, 어쩌면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을 예술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고소에 맞서 정기적으로 자신을 변호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사건인 경우도 종종 있으나 걸린 금액은 엄청나다. 많은 진지한 예술가들이 소송 절차에 파묻히지 않고 작업에 전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기존 자료를 전유하는 것은 현대의 다양한 문화적 행위에 필수불가결한 일이지만, 이러한 문화적 행위는 점점 더 법률가 군단의 압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음악 분야에서 샘플을 둘러싼 논쟁은 법률 전담 부서를 둔 대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 밴드나 예술가들에게 특히 숨 막히는 일이다. 이러한 사태 진전의 문화적 함의는 광범위하다. 샘플링(sampling)과 저작권에 관한 당면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밴드인 네거티브랜드(Negativland)는 “더는 저작권법 이전 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문화적 진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예컨대 진정한 포크 뮤직은 더는 가능하지 않”은데, 포크 뮤직은 멜로디와 가사를 자유롭게 재사용함으로써 번성할 수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1) 비디오 아티스트와 영화 제작자들장뤼끄 고다르(JeanLuc Godard)의 「영화의 역사」(Histoire(s) du Cinéma)의 경우 상당 부분 역사에 남을 만한 영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도 비슷한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시청각자료를 쓸 때마다 움찔할 만큼의 액수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개인적, 과학적, 혹은 예술적 목적을 위해 ‘공정하게 이용’(fair use)한다는 개념은 위협받고 있다. 저작권은 사실상 상표와 특허를 포함한 ‘지적 재산권’이라 불리는 더 넓고 점차 통합되고 있는 분야의 일부일 뿐이다. 더구나 지금 컴퓨터 소프트웨어 및 웹사이트 부문에서는 지적 재산권이 엄중한 사용자 계약으로 보호받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빌보드닷컴(Billboard.com) 웹사이트 유료 가입자들은 그들이 사용료를 지불하는 기사나 데이터로부터 얻은 정보를 결코 재전송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된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2) 그럼에도 저작권법은 여전히 음악이나 그림, 혹은 텍스트의 사용권과 관련해 위세를 떨치고 있다. 1997년 마텔(Mattel)사는 인터넷 아티스트 마크 내피어(Mark Napier)의 프로젝트 「일그러진 바비」(Distorted Barbie)를 상대로 그가 만들어낸 변형된 바비 인형의 이미지가 저작권 침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더 기상천외한 경우로, 워너브라더스의 법무팀은 인터넷에 해리 포터 팬페이지를 만든 아이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사용자들은 어디서나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3) 심지어 MP3 파일을 개인 용도로 복제하거나 상업적 목적 없이 배포하는 행위조차 대규모 소송 사건으로 이어져왔다.

저작권법은 이렇게 예술가나 일반 대중에게 봉사하기보다 멀티미디어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이 법은 지적 재산이라는 새로운 통치제도에 전적으로 참여해 저작권이 있는 자료에 대한 비판이나 패러디, 창의적인 재사용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현재의 풍토에서는 사실상 모든 형태의 인용이나 전유가 도둑질로 간주되거나, 최소한 도둑질이 아님이 입증될 때까지는 그 혐의를 받게 된다. 우리는 기이하게 고풍스러운 상태의 문명에 도달했는데, 이 상태에서 모방(emulation)의 이상은 저작권의 금기에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다. 마치 바비 인형과 해리 포터가 승려계급의 수호를 받는 신의 형상인지라 이를 신성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불경스럽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현대 예술과 이론은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의 독창성 숭배(cult of originality)를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그것은 법으로 복구되었다.

이 지배적인 법률적 시각에 반격을 가하려면 법이 사용하는 어휘를 반어적으로 전유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유리할지도 모른다. 역동적이고자 하는 모든 문화에 도둑질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하면 어떨까? 발전적이고 자기비판적인 문화치고 훔치는 기술을 구성요소로 갖지 않은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인용하고 전유하는 것은 자료를 조작해 또다른 의미를 도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술에서의 도둑질이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사유화된 단자들을 돌파해버린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에 불안을 초래한다. 마텔사로부터 프로젝트를 인터넷에서 내리라는 법적 압력을 받고 난 뒤, 내피어는 “그들의 공격은 이윤 때문이라기보다는 바비라는 픽션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미가 왜곡된다면 바비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다소 낙관적으로말했는데 그 지적은 타당한 것이었는지 모른다.4)

 

 

모방의 시대

 

낭만주의가 현대문화에 물려준 유산 하나는 진정한 예술가는 ‘대자연’처럼 완벽한 자율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창작한다는 관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술에서 고전주의 전통르네상스에서 18세기를 거쳐 19세기 초에 이르는은 모방 혹은 모조의 한 요소로서 훔치는 일의 중요성을 인정했으며, 이 자체가 (후기) 르네상스 예술이론의 초석을 이룬다. 고전주의 말기에 이 신조에 관해 제시된 가장 중요한 옹호로 조슈아 레놀즈(Joshua Reynolds)의 여섯번째 ‘미술론’ 강연(1774)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 그는 청중들에게 “화가나 시인이 정신을 쏟아부어 작업할 자료, 만들어내는 일의 출발점이 되는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려 애쓰는 것은 헛되다.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5)

레놀즈가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모방, 즉 ‘옛 거장’을 주의 깊게 연구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물론 좀더 구체적인 방식의 모방이 있고,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 태도, 혹은 인물”을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직접 따오면 표절 혐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레놀즈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조차 결과가 좋거나, 심지어 원작보다 우월하기까지 하다면 정당화될 것이다. 또한 “근대의 작품들은 작가의 재산에 가깝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고전 예술에 대해서만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도, 레놀즈는 여전히 왕립미술원 학생들에게 훔친 것으로 새로운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만 있다면 ‘근대 작품’에서도 약탈하라고 충고한다.

 

이와 같은 모방은 표절의 노예근성 같은 게 전혀 아니며, 정신의 끊임없는 훈련이자 지속적인 창조이다. 뛰어난 기술과 주의력으로 빌리고 훔친다면 스파르타인들에게 있었던 것 같은 관대함을 누릴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스파르타인들은 도둑질은 처벌하지 않았고, 도둑질을 숨기는 솜씨가 부족하면 처벌하였다.6)

 

레놀즈의 말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재의 신념이나 관행과는 반대로, 그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술을 위한 도둑질을 반드시 재산을 훔치는 것같이 취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간곡한 권유로 강연을 마친다.

 

그러므로 거장들의 위대한 작품을 끝없이 연구하라. 그들이 연구한 순서에, 방식에, 원리에 가능한 가깝게 연구하라. 주의 깊게 자연을 살피되, 항상 거장들을 벗 삼아 연구하라. 거장들을 베껴야 할 본보기로 생각하는 동시에 맞서 겨루어야 할 경쟁상대로 여겨라.7)

 

레놀즈는 이미 점증하는 초기 낭만주의의 독창성 숭배의 압력 아래 놓여 있었다. 그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과는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일로서 진정한 창조를 격찬하는 사람들을 공격한 것만 봐도 그 점이 명백해진다. 그는 수세기 동안 위대한 대가든 그에 못 미치는 대가든 정전화된예컨대 다빈치나 라파엘로의 작품 같은작품들을 베끼던 전통의 끝자락(혹은 그 근처)에 서 있었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모방은 전시될 목적이라기보다는 미래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 쓰려고 갖고 있던 (부분적) 스케치였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새 작품에는 존경하는 거장에게서 의식적으로 따온 부분들이 포함되곤 했다. 미술가들은 회화와 조소, 조각상 등을 연구하기 위해 종종 이딸리아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나, 인쇄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전과는 달리 어떤 작품들은 훨씬 더 광범위한 유포가 가능해졌다. 일례로 16세기 초 마르깐또니오 라이몬디(Marcantonio Raimondi)가 동판으로 찍어낸 라파엘로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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