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 ④
한국의 재벌, 재벌의 한국?
송원근 宋元根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 『재벌개혁의 현실과 대안 찾기』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공저) 『사회경제민주주의의 경제학』(공저) 등이 있음.
신학림 申鶴林
언론인. 미디어오늘 대표이사.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이원재 李源宰
여시재 기획이사. 전 희망제작소 소장,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역임. 저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등이 있음.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저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 『혁신가 경제학』 등이 있음.
이일영(사회) 『창작과비평』은 올 한해 동안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라는 기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종교, 군대, 사회단체 문제에 이어 이번호에서는 ‘재벌’을 중심으로 경제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재벌 그 자체에 대한 진단을 포함해 그들이 경제력을 어떻게 다른 분야로 확장해 ‘힘’을 확보하는가, 이러한 가운데 우리 사회가 대항력 내지 대안적 시스템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등으로 논의를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세분을 모셨는데, 오늘의 주제와 관련해서도 각자 최근의 관심사가 조금씩 다를 것도 같습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왼쪽부터 이일영, 이원재, 신학림, 송원근. © 이영균
신학림 저는 경제를 깊이있게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관심사가 재벌에 맞닿아 있긴 합니다. 대한민국 5천만 인구의 0.02퍼센트인 만명 정도가 한국사회의 이른바 실질적인 지배세력입니다. 저는 이들 사이의 관계, 특히 혈연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연이나 학연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언론에 보도가 되는데 혈연은 그렇지 않거든요. 공인이든 아니든, 분야가 어느 쪽이든 간에 이들이 어떻게 가문과 가문으로 연결돼 대한민국에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독과점하는지를 십년 정도 쫓고 있습니다. 물론 이 안에는 재벌이 많이 포함되지요.
송원근 저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재벌을 주제로 했고 이후에도 계속 이 문제를 연구해왔습니다. 예전에는 30대 재벌이라는 얘기가 흔했습니다만, 2000년대 초반 지나면서부터 그 안에서 격차가 커지면서 10대 재벌, 5대 재벌 같은 식의 호명이 더 흔해졌죠.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삼성 하나만 연구하는 것도 큰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기존에 해왔던 연구를 더 발전시키려는 중입니다. 지역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관련 강의도 하고요.
이원재 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서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공유경제, 협동조합, 소셜벤쳐까지 점차 대안에 해당되는 영역을 파고들게 됐습니다. 이런 것들이 잘되기 위해서 어떤 정책 환경, 생태가 필요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과는 조금 별개로 민간 싱크탱크를 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왔는데요, 그러면서 삼성경제연구소, 한겨레경제연구소, 희망제작소를 거쳐 최근에는 새로 출범한 ‘여시재’라는 민간 싱크탱크에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재벌

이 일 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저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혁신가 경제학』 등이 있음.
이일영 창비가 애초에 이 기획을 이어나가게 된 문제의식은 박근혜정부가 ‘점진쿠데타’라고까지 부를 만한 행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른바 ‘보수세력’의 속살을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밀한 개념은 아니고, 흔히 수구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들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렇게 이번 대화를 미리 기획해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였습니다만, 사실 요즘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국에서 오는 충격이 다른 무엇보다 큽니다. 지난호에서 보수사회단체를 다룰 때도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의 돈이 이들 단체로 흘러들어가는 이슈가 있었습니다만, 미르, K스포츠 재단 설립에도 전경련이 결정적으로 개입되었지요. 얼마 전에 경제·경영학자들이 “권력에 기생하며 정경유착과 부조리한 행위를 반복하는 전경련은 자유시장경제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라면서 전경련 해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전경련은 조연도 아니고 아예 엑스트라처럼 보여요. 앞으로 무슨 얘기가 더 쏟아져나올지 모르겠는데,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삼성, 현대자동차, LG, 롯데, SK 등 재벌 총수 및 최고위층 일곱명을 독대하고 직접 이 재단들 설립에 필요한 모금을 독려했다는 거예요. 이런 말이 국회에서 먼저 이야기되더니 뒤이어 검찰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삼성의 승마 지원도 말이 무성합니다. 인기 종목에 대한 지원을 줄이면서 유독 승마에만 전폭적인 지원을 했는데, 권력의 비선실세 냄새를 맡는 삼성의 능력이 워낙 탁월한 것 아닌가 하는 감탄(?)도 나오는가봅니다. 최근 시국과 관련해서 나타난 재벌과 전경련의 행각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잠시 짚고 이어나가보겠습니다.

이 원 재 (李源宰)
여시재 기획이사. 전 희망제작소 소장,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역임. 저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등이 있음.
이원재 일단 전경련은 해체되어야 하고, 해체될 것 같습니다. 전경련이 회원사들의 이익조차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한다기보다 사실 청와대의 요구사항을 기업들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 즉 관치경제의 전달체계로 전락했다는 이야기지요. 이와 별개로 삼성의 승마 지원은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합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제3자 뇌물공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미르재단과 승마 지원 등을 통해 최고권력자의 관심사에 자금을 댄 기업은 부정청탁을 위해 뇌물을 공여한 행위를 한 것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신학림 저도 전경련은 해체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할 일이 별로 없어요. 있다 해도 경총이나 무역협회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뒷구멍으로 관변단체 도와주는 거 말고 사실 이렇다 할 정책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 내는 걸 못 봤습니다. 회원사들끼리도 이해관계가 분화된 만큼 공통의 이익을 추출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1961년에 설립됐는데 그때 취지하고 많이 달라졌습니다. 수명을 다했다고 봐요.
송원근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볼 수 있겠지만, 재벌들의 상납은 단순히 재벌이 권력에 기생하는 것을 넘어 정치권력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정부가 강요하고 기업들이 따라준 것 같지만 비선실세를 이용해 재벌들이 권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전경련은 십여년 전에 발전적 해체 얘기가 나오다가 다시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때 얘기가 보수진영의 싱크탱크로 남는 거였다는데, 제대로만 일한다면 저는 그런 단체가 존재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
이일영 지금 재벌경제의 실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근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사태와 현대자동차 리콜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경제가 큰일나게 생겼다는 거지요. 아까 송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재벌이라 하면 삼성하고 현대기아차만 주로 거론하지 않습니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통계도 그래요. 찾아보니까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국내총생산, 즉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나 되고, 법인세 세수에서 21%, 증권시장 시가총액에서 37%, 순이익에서도 35%나 차지했다는 기사가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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