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중편 특집
박민규 朴玟奎
1968년 출생.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등이 있음. kazuyajun@hanmail.net
홀리랜드
예수야…
너 언제 인간 될래?
고개를 떨군 채 예수는 답이 없다. 그는 20분이나 늦었다. 정확하게는 17분 55초 74지만 리허설까지 고려하면 펑크라고 봐야겠지. 투구를 벗고 나는 잠시 머리의 열을 식힌다. 서늘한 바람에 17분 55초 74는 식혀야 컨디션이 돌아올 것 같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진정하자고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 우선은 이유를 아는 게 중요하다. 투구의 장식물을 건성으로 손질하며 온화한 얼굴로 괜찮다고, 나한테만 살짝 털어놓으라고 나는 말한다. 땜빵으로 올려보낸 성가단의 노랫소리에 묻혀 다른 스태프들은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한다. 예수가 입을 연다. 다시 말해, 가라사대.
장자(莊子)랑 같이 컵라면 먹었습니다.
컵…라면?
예, 5게이트 쪽 휴게실에서요.
혹시… 국물까지 다 마셨니?
그럴 리가요… 국물은 남겼습니다.
왜? 악착같이 다 비우고 내년 봄에 오지 그랬냐?
장자가 또 무슨 퀴즈를 풀어보라고 해서…
차라리 똥 싸다 늦었다 그래라.
죄송합니다.
누가 먼저 먹자고 했는데?
장자가요.
장자랑 친하니?
아니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는 웃는다. 한소리 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우리 회개하자. 예수의 손을 잡고 짧게 기도를 끝낸 후 나는 말〔馬〕에 오른다. 봐서 알겠지만 예수가… 착하다, 거짓말도 못하고… 또… 착한데 귀가 얇아… 아니, 그보다는 맘이 여려… 그러니까 내 말은… 장자 이 새끼가 까져가지고… 씹새끼. 언덕 위를 향해 나는 큐 사인을 보낸다. 분주히 스태프들이 행렬을 정비한다. 노래를 마친 합창단이 내려오면 바로 우리가 이 길을 올라야 한다. 면류관을 쓰고, 구레네 사람 시몬과 십자가를 나눠 지고 예수도 스탠바이에 돌입했다. 잘하자는 의미로 나는 예수에게 윙크를 보낸다. 잔뜩 쫄아 있던 스태프들의 표정이 풀어지고 예수의 얼굴도 어린아이처럼 환해진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예수와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지 않는다. 존중해주고 포용해주고 보호해준다… 그러니까 거의… 친부모지 뭐. 이제 골고다에 오를 시간이다. 이랴, 하고 나는 앞장서서 언덕을 오른다. 도중에 마주친, 급히 땜빵을 해준 티모(성가대장)에게도 나는 윙크를 잊지 않는다.
탕.
이윽고 망치질이 시작된다. 메시아를… 유대인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는 순간이다. 흠칫 놀라는 말의 고삐를 당겨주며 나는 자연스레 말이 십자가의 둘레를 따각따각 돌도록 유도한다. 언덕을 올라선 바람이 망토라도 펄럭여주면 그림이 더 살겠지… 이래저래 40분이 딜레이되었지만 사실 그런 건 중요치 않다. 핵심이 아니란 얘기지. 보라, 은혜에 찬 저 눈길들을… 흐느낌과 탄식을… 울먹이며 기도문을 읊조리는 신도들의 비통함을… 예수를 보기 위해 1.3AU1)를 건너온 저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살아 숨쉬는 예수를 만나는 것…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의 최후를 목도하는 것… 그러니까 예수만 보여주면 만사 오케이다 이 얘기지. 지금이 그 마지막 프로그램이다. 흔히 말하는 클라이맥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보름 남짓한 체류를 끝내고 이제 곧 신도들은 이 성스러운 땅을 떠나야 한다. 우리야 늘상, 일년 열두달 되풀이하는 짓이지만 신도들에겐 일생 단 한번의 기회이다. 그래서 이 짓이 힘들다. 끝까지 저들을 홀라당 속여야 한다는 압박감… 남은 인생에 있어서도 길 잃은 어린양이 되지 않게끔 결속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부담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 짓 아무나 못한다. 어지간한 애국심으론 하루도 못 버틸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한다.
나는
은하계 최고의
애국자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은하계에 살고 있다면, 일생에 부디 한번쯤은 나 같은 애국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주기 바란다. 이름을 감춘 희생과 헌신… 거룩한 발자취에 대해 말이다. 아틀라스의 고단한 어깨 위에서 니미 평생 잠만 디비 자지 말고, 말이다. 하기야 말해 뭐하겠는가. 나 같은 거인에겐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하소연이다. 따각따각. 말을 움직여 나는 자리를 이동한다. 무의미한 동작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실은 계산된 행동이다. 한마디로 킬각 선사… 예수의 손에서 솟구친 피가 십자가와 땅을 적시는 장면을 신도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함이다.
물론 진짜 피는 아니다. 저 거룩한 피로 말할 것 같으면… 소품으로 준비한 못에서 방사되는 것이다. 놀라 뒈질까봐 단가는 차마 공개를 못하겠다. 그거 알아? 저 칙칙한 고대 로마의 쇠못 속에 23세기에 개발된 초정밀 중입자가속기술과 부속장치들… 25세기의 과학이 응축된 의료용 펌핑캡슐과 고농도 인공혈액… 피코폭약이며 잉곳분사노즐…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복잡한 메커니즘이 내재된 사실을… 이 말은 안 할까 했는데 잔뜩 찌푸린 저 하늘도 돈이다. 알랑가 몰라. 멀쩡한 하늘 찌푸리는 데 돈이 워~얼매나 드는지… 좀 전에 우두둑 예수의 팔을 뽑았지만 TAS 인공고관절이며 NM308 연골튜브… 또 거기 부속한 복잡한 인공신경조직망이 예수의 어깨에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할 거다. 예수? 예수는 하나도 안 아프다. 지금 저 손바닥은 어쩌냐구요? 걱정도 마시게 이 사람아. 수술로 마련해놓은 못구멍이 있지 말입니다. 발등도 마찬가지. 무식하게 그냥 뚫은 구멍이 아니라… 다~ 우리가 알아서… 또 뭐, 옆구리는 맨입으로 쑤시나? 창날이 들어갈 길고 좁은… 뭐였더라? 하여간에 무슨 수축터널이 있는데 다 말하자니 입이 아파 다 돈이란 말로 설명을 대신한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예수가 외친다. 낄낄대며 병사들이 예수의 오른손마저 못 박아버리자 해풍에 실린 신도들의 절규가 에코가 되어 돌아온다. 다가설 수 없기에… 그저 지켜봐야만 하기에 더 피 끓는 절규다. 오천명의 신도들이 지금 요나(Jonah)에 올라 있다. 요나는 배〔船〕다. 골고다는 야트막한 언덕이고 언덕 한쪽은 가파른 절벽으로 바다에 접해 있다. 요나는 무지 큰 배여서 갑판에 선 신도들은 어느 누구라도 한눈에 언덕을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선상을 에워싼 줌 뷰 투명막은 눈앞의 일처럼 현장을 목도케 하며… 하나만 더 말하자, 절벽을 이룬 바위들이 실은 웅장한 음향시스템임을… 때문에 예수의 숨소리, 언덕을 올라서며 당하는 채찍질 소리까지 생생하게 그들에게 전달됨을… 즉 이 언덕은 잘 설계된 무대, 신도들은 관객인 셈이다. 그렇다. 이것은 극(劇)이다. 하지만 이곳을 다녀간 어느 누구도 이것이 극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보라,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예수의 고난을… 사실 그 자체인 피와 살의 실존적 희생을… 그러니까 누구라도… 오오 주여, 내가 다 눈물이 날라하네… 물론 맘만 먹으면 5초 만에 눈물 뚝뚝 할 수 있지만… 오천명의 신도들 앞에선 언제나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나 역시 이 장엄한 극의 일부이며 사건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배우들에게 말한다.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라고. 의식의 흐름이 마르지 않는 강줄기가 되도록 유지하고… 자연스레 다른 강들과 만나 바다를 이루는 물결이 되라고… 물살이 섞이듯 대사를 나누고… 자연스런 내면의 흐름을 동작으로 확장하라고… 사건이라는 파도는 그렇게 발생하며… 이는 다름 아닌, 각자의 내면에 담긴 작은 출렁임의 합산이라고… 그러니 자연을 통해 연기를 배우라고… 아무리 작은 파도에도 우연과 필연 모두가 존재하듯… 자신의 연기 속에 즉흥과 설계가 유기적으로 공존해야 한다고… 좋은 연기란 무엇인가? 물론 정답은 없지만 끝내 이를 추구하는 자만이 정답의 근처에 다다를 수 있다고… 나는 말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흐느끼는 오천명의 시선 앞에서… 숨소리조차 섣불리 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모든 긴장감을 이겨내고 자신의 내면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배우는 아니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메소드 연기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 정답을 쓱싹, 제일 먼저 답지에 적을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다. 예컨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즉흥과 설계가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내면의 울림을… 자연스런 흐름, 내지는 하나의 물결로 승화시켜… 극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소리 없이 합류 중이다. 뭔 소리냐고? 그래, 백문이불여일견이지. 만약 당신이 연기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부터 내가 행할 연기를 똑똑히 눈여겨보면 좋을 것이다. 교과서를 보는 마음으로… 하지만 내게 말을 걸면 안 돼, 예컨대 휘슬을 불거나 박수 짝짝 같은 거 말이야. 그러니까 나 모르게 몰래 보란 말이지. 왜냐구? 우선 그러면… 내가 부끄럽자나. 또 누구라도, 누군가를 의식하는 순간 내면 속 우연과 필연의 비율이 흐트러지며 장이루2)가 얘기한 ‘인위적인 연기’로 전락하기 때문이지. 자, 잘 봐봐. 마음의준비마음의준비 5, 4, 3, 2, 1… 지금 나는 고삐를 거머쥔 채 고개를 떨궜는데—고뇌에 찬 지도자의 모습보다 지금 이 순간을 대변해주는 게 또 있을까—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 때문이지. 어때? 이 속에 담긴 우연과 필연의 황금비율… 즉흥과 설계의 유기적 공존을 알아챘다면 자네에겐 좋은 배우가 될 자질이 있는 셈이지.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 자, 잘 보라구. 나는 이미 당신을 의식하지 않아.
잊는다 잊는다 잊는다 잊었다…
모든 걸 잊고 나는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한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메시아의 형(刑)을 집도해야만 하는 지도자의 내면을… 카타콤처럼, 또 크레타의 미궁처럼 얽혀 있는 그 심연을…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강의 가장 밑바닥을 흐르는 물과 같이… 무거우면서도 심도있게… 절제되고 치밀하며… 완성도 높은 연기의 물결을… 극이라는 바다에 고요히 보태는… 지극히 헌신적인 5번 경추의 움직임을 통해… 나는 고개를 치켜든다. 그리고 햄릿의 광기… 맥베스의 엄격함… 리어왕의 권위… 오셀로의 번민… 게다가 이들을 창안한 셰익스피어의 전지적 작가시점까지를 모두 담은 시선으로… 나는 예수를 본다, 응시한다. 짜릿하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나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가 매료되는… 이봐, 빌!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정말 자네라는 남자… 그 끝이 보이지 않는군. 별말씀을, 하고 나는 또 스스로에게 화답한다. 난들 어쩌란 말인가. 타고났는데.
애국자로서
내게 단점이 있다면 한가지다.
그 내면이
너무 깊다는 것이다.
세상이 눈여겨보는 것은
나처럼 깊이를 지닌 애국자가 아니다.
애국자인 척하는 내시들
예컨대 딱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말 궁둥이만 살짝 돌리고
여전히 자기가 중심에 선 채
자, 잘 보시오 여러분~ 이것이 메시아의 피요, 피!
이거 우짜지? 예수님 디지겠네? 꽥꽥 생색을 내는
극을 망치는 내시들이다.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 이런 기분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사실 요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다. 뭔가 흐트러진 듯한 이 느낌… 완벽하지 못하고… 자꾸만 뭔가가 어긋난다는 불안감…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가… 지각을 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래, 어쩌면 극과는 상관없이… 여기저기 불거지고 있는 작금의 정치적 현안이 원인일지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결국 나 같은 애국자는 그런 일들로 인해 깊은 내상을 입는 거니까…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답답한 현실이다. 상부를 향해 나는 외치고 싶다. 진짜 거인이 누군지… 누가 진정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으며… 책임이란 걸 질 줄 아는 진짜 애국자인지… 가려보는 눈을 제발 키우라고 말이다. 맘 같아선 당장 지구로 날아가 저 여깄습니다, 여깄어요 손들어 출세한 내시 몇놈…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두둑, 해버리고 싶지만 나는 참는다. 늘… 참아왔다. 내가 떠나는 순간 무너지는, 그래서 한순간도 손을 뗄 수 없는… 나만의 십자가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거인의 운명이라 생각하게나 빌. 나는 결국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면이 깊은 것이 어찌 죄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도 한다. 이런다고 내가
잡념에 빠졌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몸께서는 말이다… 다~ 보고 계시다. 예컨대 좀 전에 이코(로마 병사) 녀석이 보인 연기의 미숙함이란… 그러니까 십자가의 구멍에 예수의 손과 못을 포개고—주저 없이—망치를 치켜들 때였다. 70점, 하고 나는 속으로 점수를 매겼는데 사실 이렇다 할 실수는 아니었다. 도리어 할 만큼 했다고도 할 수 있는 연기였지. 암, 그렇고말고. 병사 역할은 대개 2류 배우들에게 주어지는데 사실 별다른 연기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이 끝나면 나는 이코를 불러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네의 문제점이 뭔지 아나? 주저함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거라네. 말하자면 인간과 기계의 차이랄까? 묻겠는데 로마 병사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그렇지 인간! 어떤 상황에서도 존재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훌륭한 연기의 기본이라네… 덜덜 떨며 감사의 눈물을 흘릴 이코의 표정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므흣해진다. 나는 늘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조언이란, 보드라운 깃털에 둘러싸인 예리한 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조언 없이 배우는 성장할 수 없고 배우들의 성장 없이 극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당신은 지나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한다고. 지극히 옳은 말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으면 똥이 안 나오는 사람이다. 매사에 그렇다. 물론 또다른 이유가 있긴 하지. 모두에게, 그러니까 저분은 모든 걸 보고 계신다—라는 느낌을 줄 때의 그 기분이
나는 좋은 것이다. 어떤 극에도 옥에 티는 존재한다. 신께서 만드신 이 세계에도 티끌이 태산이듯이, 말이다. 거기 비한다면 지금의 이 무대야말로 40분 늦긴 했지만 완벽에 가까운 세계가 아닌가, 나는 자부한다. 보라! 먼발치에 선 제사장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바리새인들… 흥분한 군중들… 어린 요한과 마리아… 구레네 사람 시몬… 돌 뒤에 몸을 숨긴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발치에 디딤목을 설치 중인 로마의 병사들을… 오오, 주여! 야리(막달라 마리아)의 연기는 진짜 물이 올랐다. 18세기 바로크 오페라학의 권위자이자 수석배우인 카를(제사장)의 눈빛엔 그 깊이가 더해졌으며… 뭐, 물론 이 몸과 비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바리새인 역을 맡은 중견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리고 저… 우매한 유대인 군중을 보라. 스따니슬랍스끼3)가 환생한다 해도 백여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들에게 이처럼 총체적인 ‘역할의 구현’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글쎄,올시다요. 그리고 무엇보다 오오, 베네치아(마리아) 여사의 저 표정을 보라! 당장 나라도 말에서 뛰어내려… 질질 짜며 달려가 엄마 맘마 찌찌 주세요 품에 안겨 우쭈쭈쭈 찌찌를 물고픈 어머니… 그 자체가 아닌가. 나는 감탄해 마지않는다. 도대체
이 놀라운 극을 관장하는 게 누구란 말인가?
그건 나.
예수의 발등에 못질이 가해진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시여… 저들은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행하는지 모르고 있나이다… 예수가 절규하자 어느 여신도가 내지른 날카로운 비명이 갑판에서 뛰어내린 사람처럼 골고다를 향해 추락해온다. 깜짝이야. 포텐을 꼭 저런 식으로 터트려야 하나? 안타깝기도 하지만 극이 제대로 흐르고 있다는 좋은 징조기도 하다. 이는 또… 모니터 기능을 하는 투명막이 선상을 에워싼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저 막을 걷어낸다면 당장이라도 차디찬 바다에 몸을 던질 신도들이 한둘이 아니다. 오천명이 타고 있고… 쥐떼처럼 우르르… 그거 알아? 인간이 휩쓸리는 건 한순간이란 거… 차단과 통제가 그래서 반드시 이 세계에 필요하다는 거… 하여간에… 으이그, 모지리들… 거듭되는 못질에 예수가 경련을 일으킨다. 예수의 연기는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저들이 지금 무슨 일을 행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는 나조차도… 차마 가슴이 아파 시선을 거두고픈 심정이로다 아아, 나의 아들아… 메소드 연기의 전수자로서 나는 순간 숙연해진다. 내가 저 아이를 업어 키웠다. 지난했던 그 과정을 어찌 일일이 열거할 수 있겠는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이아몬드 원석을 맨손으로 깎는 심정이었다. 설사 욥4)이라 해도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애초 예수의 발연기를 봤다면 욥조차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겠지.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셨나니 그가 나를 단련시킨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마음속으로 「욥기」 23장 10절을 되뇌며 나는 광휘로운, 내 손으로 제련해낸 눈앞의 순금을 지긋이 감상한다. 보시기에 어찌 이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이 이 땅에 있겠는가. 아멘.
미친
이때 사고가 터졌다.
이코 저 등신이
그만 망치로 못이 아닌, 예수의 발목을 때리고 만 것이다.
심지어 예수는
뚜오오오~ 하고 비명을 질렀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정신이 다 몽롱했다. 하지만 분명, 뚜오오오… 내지는 잘 봐줘도 꾸오오오… 둘 중 하나였다. 뚜오오오~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비극의 가치는 보편적인 인간행위의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잠시… 인간이 아닌 바다코끼리를 모방해도 가치있는 비극이 성립될 수 있는지 그 여부를 고민했고… 아니야, 이건 아냐… 비극과 희극은 서로 다른 우주와 같으나 그 사이엔 아주 드물게 서로를 잇는 웜홀이 존재한다는 킬리아처5)의 희비극론도 떠올렸으나… 그렇군, 그 웜홀의 정체가 뚜오오오~였군… 학문적 성취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고… 아니, 냉정히 상황을 정리해보자. 그러니까 아버지, 나의 아버지시여… 저들은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행하는지 모르고 있나이다… 뚜오오오~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무엇보다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기에 참 거시기한… 네버, 에버 예수의 입에서 나와선 안 될 소리가 아닌가… 주마등처럼 스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니 결론은 하나였다.
좆됐다.
밀랍인형처럼 굳어버린 카를과 눈이 마주쳤다. 베네치아 여사와 야리도 황망한 얼굴로 나를, 아니 나만 바라보았다. 안다, 이 난관에 대처할 유일한 인물이 나란 걸 안다. 하지만 답은 없다. 시간도 없다. 누군가 피식 쪼개기 전에… 이 장엄한 비극이 웜홀을 통해 방구 뽕~ 희극으로 전환되기 전에… 이봐, 빌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외친다. 신도들의 눈부터 돌려야지! 오키도키, 나는 일단 칼을 뽑아 들고 고삐를 한껏 잡아당긴다. 앞다리를 치켜든 말과 펄럭였을 망토… 그리고 막~ 절벽 끝으로 말을 몰기 시작한다. 아이디어는 없다. 그러나 일단 신도들의 눈길을 돌리는 데 성공한다. 나도 모르게 나는, 참으로 ‘예외적으로’ 신도들을 향해 칼을 겨누며 외친다.
이자에겐 죄가 없다.
그럼에도 정녕 십자가에 매달기를 원하느냐!
놀란 이목들이 나에게 집중된 걸 느끼며 나는 다시 한번 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참, 칼이 예수를 가리켜야지 싶어 칼의 방향만 십자가를 향해 틀었을 뿐이다. 저자에겐 죄가 없단 말이다, 그럼에도 응? 십자가에 매달기를 원하느냐고~오! 이제야 슬며시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나의 이 무의식적 행위가 브레히트와 모레노6)에 그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음을… 대체 이 급박한 순간에… 오오, 빌. 정말이지 자네라는 남자는… 무슨 뭐, 거, 천재 아냐? 하여 더 화가 난 얼굴로, 나는 우위에 선 인간처럼—사실이 그렇지 뭐—신도들을 노려본다. 수석배우는 역시 수석배우였다. 바로 눈치를 깐 카를이 매다시오! 하고 외치자 이내 처형하라! 십자가에 매달아라! 엑스트라들의 함성이 언덕을 가득 메운다. 여전히 요나의 갑판을 응시하며
이 의로운 자의 피의 댓가를 누가 받겠느냐?
나는 묻는다.
신도들을 향해 묻는다.
누구도 답하지 않는 질문의 답을
노련하고 잔뼈 굵은 유대인 군중들이 대신 외쳐준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받겠소!
옳거니! 물론 엉뚱한 대목7)의 대사지만 다행히 손발이 척척 맞았다. 포텐은 한 박자 늦게 터졌다. 울고불고… 짜고, 하여간에… 거 참 시끄럽네… 그래, 울어라 울어… 우는 거 말고 뭐… 니들이 할 줄 아는 게 있나… 따각따각 나는 다시 무대를 향해 말을 돌린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사이 ‘알아서’ 십자가를 뒤집어준 병사들이 나는 장하다. 입술을 꽉 다물고 다시 망치를 잡은 이코가 십자가를 밟고 서서 망치질을 시작한다. 나무를 관통한 못을 내리쳐 그 끝을 구부리는 일인데… 못을 단단히 고정시킨다기보다는 추가신청 예산액을 팍팍 올리기 위함이다. 그렇다. 겁나 비싼 저 소품은 한번 쓰고 버려진다. 내 돈도 아닌데 뭐 어때… 세금은 신도들의 몫이다. 땅바닥에 코를 처박고 십자가에 깔려 있는 지금이 예수에겐 가장 힘든 시간이다. 살 좀 빼라 이코 이 새꺄… 속으로 푸념을 터트리며 나는 비로소 이마의 땀을 닦는다. 좀 전까지 열려 있던 웜홀의 입구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뚜오오오~ 어디 갔지? 누구 본 사람? 너스레도 떨어본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 늘어지게 누워 시가 한모금 빨고 싶다. 사실 나도… 긴장했었다. 오줌 한두 방울 지린 것도 같다. 멀찌감치 선 카를이 고개를 끄덕인다. 야리도 살짝 입술 끝을 올렸는데 수고하셨어요의 의미가 담긴 일종의 미소다. 아는구나, 알면 함… 대주든가.
이 몸의 활약상(活躍相)8) 덕분에
순조로이 극은 진행되었다. 언덕에 세개의 십자가를 나란히 세우고… 죄수들이 씨부렁대고… 예컨대 주님 원하옵건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하소서, 같은 대사를 쳐주고… 끊임없이 십자가를 타고 내리는 피… 반전을 위해 도중 쨍하게 광도(光度)를 높였던 하늘을… 이거 진짜 돈 많이 드는 건데… 꽈광, 소리와 함께 먹구름으로 뒤덮고… 풍속을 확~ 올리고… 니미 눈에 모래 들어갔네… 성서에 쓰인 그대로… 골고다에 합당한 골고다의 풍경… 폭풍이 휘몰아치는 비극의 우주… 그 중심에 선 예수가 아버지, 나의 아버지시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극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대사를 쳐주고… 신도들… 진정한 포텐이 이때 터지고… 이제 다 이루었도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예수 눈을 감고 저물듯 고개 떨구고 후둑 비 쏟아지고… 지진, 이어지는 지진이 언덕과 십자가를 흔들고… 막 혼비백산 놀라는 척, 아니 놀라서 퇴각 나팔을 불고… 서둘러 죄수들의 죽음을 확인코자 해머로 무릎을 까고… 아멘, 무사히 극을 끝맺었다. 완벽한 극이었다. 이견이 없을 거란 내 생각에 당신도 분명 동의하겠지… 행여 의심 많은 도마9) 같은 자가 있어 내 손가락으로 직접 확인해보겠노라 예수의 손과 옆구리를 찔러보겠다면 그 새끼에게 내가 해줄 말은 딱 하나다. 손가락 마 주빠삘라마.
고증을 벗어난 씬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