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명호 『환재 박규수 연구』 창비 2008

19세기의 총체적 진실에 한발 다가서기

 

 

노대환 盧大煥

동양대 문화재학과 교수 hwan@dyu.ac.kr

 

 

말하는입-표지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연구의 출발이었던 김명호(金明昊) 교수의 「환재 박규수 연구(1)」라는 논문을 본 것이 1993년이었다. 해박한 한학 실력으로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박규수의 삶을 치밀하게 조명한 그의 연구에 큰 감명을 받았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후 박규수에 대한 저자의 후속 논문을 계속 구해 보았고 그때마다 연구의 폭과 깊이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번에 출간된 『환재 박규수 연구』는 『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역사비평사)에 이은 박규수 연구의 두번째 결산물이다. 2005년에 나온 『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이 거의 미발표 원고로 구성되었던 데 반해 이번 저작은 그간 발표했던 논문을 엮은 것이다. 1993년에 연구의 첫 삽을 떴으니 무려 15년 만에 한권의 책으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각고의 노력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은 출생부터 철종(哲宗)대까지 박규수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박규수는 새삼스러운 언급이 필요없을 정도로 한국근대사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했던 인물이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손자 박규수는 조부에게서 내려오는 실학사상을 이어받아 개화사상을 태동시켰으며, 근대 전환기에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 역사적 비중이 절대적이었던만큼 박규수에 대해서는 그간 적지 않은 연구가 축적되어왔다. 기존의 연구로 박규수의 대체적인 모습은 파악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었는데, 이 책은 박규수에 관한 그간의 연구가 얼마나 불충분한 것이었던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개별 인물을 통해 시대적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인물사 연구의 목적이라면, 이 책은 그런 목적을 거의 완벽하게 달성한 모범적인 인물사 연구서라 평할 만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고자료의 방대함과 분석의 치밀함이다. 저자는 기존 자료를 빠짐없이 섭렵한 것은 물론이고,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자료를 직접 발굴했으며, 그것들을 행간까지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 결과, 기존의 박규수 연구와는 몇가지 차별성을 갖는다. 우선 철종 때 암행어사로 활동한 일, 열하문안사(熱河問安使)로 청에 파견되었던 사실, 진주농민항쟁 당시 안핵사로서의 활동 등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행적이 상당부분 밝혀졌다. 또 막연한 추측 정도로 이야기되던 박지원의 실학사상 계승 문제를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규명함으로써, 실학사상에서 개화사상으로 연결되는 조선후기 사상사의 맥락을 좀더 분명히 드러냈다는 점도 상당한 수확이다.

박규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었던 주변 인물들을 폭넓게 살핀 것도 다른 연구와 구별되는 점이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던 박규수의 교유관계가 밝혀짐으로써 그의 삶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됨은 물론이며, 세도정치기 지식계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박규수의 문학활동 부분이 조명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전통 지식인의 면모를 확인하기 위해 문학은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박규수의 경우 그 역사적 비중에 압도당해서인지 한문학계에서조차 그의 문학성에 대한 조명이 미진했다. 정치가로서의 모습만 부각되었을 뿐 학인(學人)으로서의 실체는 묻혀 있었던 셈이다. 이번 연구로 비로소 그의 온전한 모습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서두에서 밝힌 대로, 저자는 서술방식에서 서사(敍事)와 의론(議論)의 교직(交織)을 추구하는 전통적 산문 작법을 구사하는데, 이는 매우 새로운 시도이다. 전통적 산문 작법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현되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글을 읽는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문 연구서인 이번 저작에서 아쉬운 점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두가지 문제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박규수의 개혁성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암행어사나 안핵사 활동을 들어 박규수를 상당히 개혁적인 관료로 부각하는데, 개혁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당대 삼정개혁론(三政改革論)과 비교해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당대 삼정개혁론과 비교할 때 박규수의 개혁책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둘째는 박규수의 대외인식 문제이다. 책에 따르면 1840년대 말 1850년대 초에 박규수는 동양의 문화적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 위에서 서양과의 교섭에 진취적으로 대처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박규수가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적 면모를 보였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박규수가 서양과의 진취적 교섭을 구상했다고까지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가지 모두 박규수에 대한 평가 문제인데, 다양한 비교를 통해 인물사 연구에서 범하기 쉬운 우호적 평가의 위험성을 줄여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의 800면에 달하는 연구서를 원고지 15매의 글로 논평한다는 것이 대단한 결례가 아닐 수 없다. 15년에 걸쳐 박규수에 대한 두권의 연구서를 출간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연구작업이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저자의 집념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마지막 세번째 결과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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