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심사평

 

 

17회 창비신인시인상에 작품을 보낸 인원은 850여명이었다. ‘시’의 아름다움과 점점 거리가 멀어져가는 사회현실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다행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말도 덧붙이고자 한다. 응모자들의 대부분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치중하고 있었다. 시의 새로움은 화법에서 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말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발견하고 사유하는 사람이다. 새 입이 아니라 새 눈과 새 사유에서 진정한 새로움이 오는 것이라 믿는다.

4명의 심사위원들은 응모자들 중에서 11명을 꼽았고 얼마간의 논의 끝에 5명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려두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 중 누가 당선되어도 무방할 정도로 하나같이 높은 시적 수준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신인상 심사라는 것이 현재의 작품을 견주어봄은 물론 그 시를 쓴 자신조차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미래를 당겨보는 일이 되어야 하는 까닭에 이후 논의는 더없이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싸락눈이 내리면 심야 열차는 수목한계선을 지난다」 외 4편은 표현의 활달함이 돋보였다. 이 활달함의 힘으로 시인은 호젓한 서정의 장면들을 넓게 펼쳐 보인다. 응모작들의 수준이 고르다는 것도 장점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시에 드러난 미감이나 사유가 매번 비슷한 지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아쉬웠다.

「생물학 강의실」 외 9편에는 시상을 전개하는 능숙함이 큰 장점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시인이 지나치게 언술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 들었다. “알려지지 않은 생태학” “문양들이 울고 있는 저녁” “접시의 물자국 표정” 같은 표현들은 시를 세련되게 만들기도 하지만 자주 반복될 경우 본질이 결여된 공허감을 주기도 한다.

「자비와 함께, 액자 속에서」 외 4편은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른 작품들이었다. “내게는 형도 없고 그 집에는 담벼락도 없지만/그 집만큼은 아주 명확하게 있는 것이어서”라는 문장처럼 범상치 않은 언어들을 서로 연결하며 시의 미감을 획득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비대한 언어가 작품의 의미가 드러나는 통로를 막는 듯했다. 어떤 장점은 그 자체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논의 대상으로 남은 작품은 「시청」 외 6편과 「가정」 외 4편이었다. 두 응모작은 서로 지니고 있는 매력이 다른 탓에 결정을 더 어렵게 했다. 먼저 「시청」 외 6편은 현실에 착근한 주제의식이 미더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끝없이 갈등하고 의심하는 화자를 작품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부지런하고도 세밀하게 세계의 이면을 발견하고 있었다. 다만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이 다소 경직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인식이든 세상이든 그 틀에 균열을 내거나 부수는 방식이 아닌 틀의 내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다듬는 듯한 형국이었다. 그래서인지 시의 표면은 더없이 매끄러웠지만 시의 첫 문장을 읽을 때 들었던 어떤 예감이 시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응모된 모든 작품에서 시인에 대한 믿음과 좋은 시를 읽을 때의 즐거움이 느껴졌지만 어느 한 작품에서도 큰 놀라움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부디 새로운 걸음을 다시 내디뎌주시길 부탁드린다.

「가정」 외 4편은 사유의 넓이와 감각의 깊이에서 길어 올린 시편들이었다. 간혹 서툰 표현들이 있었지만 이 시인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방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응모작들에서 다소 편차가 느껴졌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이 편차는 시인 자신의 시 쓰기가 어떻게 변모해왔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 쓰기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지는 어떤 과도한 포즈 없이 자기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이 변모 과정 또한 반갑게 느껴졌다.

“이불을 덧댄 자리에 서로 눕겠다며 조그맣게 같이 웃고. 이제 자야지. 그래 자야지 그만 자야지. 미루고 미루는 잠. 먼저 잠드는 사람이 있고 잠이 들려 하는 사람이 있고. 잠들기 위해 먼 길을 온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깨어 있기로 한다.”라는 문장에서처럼 신산한 생활의 풍경을 담담하게 늘어놓는 진술들이 돋보였다. 아울러 시인은 순간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이내 감추는 삶의 불길함들을 곧잘 포착해내는 뛰어난 동체시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시 시로 재현해낼 때에는 자신만이 보고 느낀 특수한 미감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타인의 정서에도 곱게 가닿을 수 있는 보편적 아름다움을 획득해낸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생각되었다. 앞으로 이 시인의 마음자리가 더 넓어질 것을 기대한다. 다시 한번 당선자에게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문태준 박준 신미나 이영광

 

 

 

시 | 수상소감

 

177_489최지은

1986년생. 세종대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과 졸업.

 

 

 

 

아버지였다, 이름 모를 식물을 손에 쥐고서. 몇장의 푸른 잎이 달린 식물이었다. 네 것이다, 뜯어 건넨 이파리는 한쪽 귀퉁이가 거뭇하게 시들어 있었다. 멀쩡한 잎을 두고도 상한 잎을 건네는 아버지가 있었다. 꿈이었다.

그 밤 아버지가 건넨 한장의 상한 잎. 그것이 시를 쓰게 했다. 거뭇한 귀퉁이를 안고서 남은 몸은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살아서. 살아 있어서 아픈 구석이 있고 빛을 받아 반짝일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어둠 속에서 더 어두워질 수 없을 만큼 어두워져서 상한 잎조차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때 시를 만났다. 그런 채로 시를 썼다. 시를 쓰면서 더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꾸 검은 벽에 기대어 검은 문을 그렸으니까. 그러나 검은 벽을 스치는 한줄기 빛, 그런 것을 상상하는 것도 나의 일이었다. 내 안의 것을 다 고백하고 나서야 오는 빛, 어쩌면 그런 게 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상한 이파리 한장으로 숲을 이룩하는 상상. 이런 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고 끝내 나의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방식으로 말했으면 좋겠다. 말없이 말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여기는 검은 방이고 검은빛으로 가득하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다릴 것이다. 내가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를,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나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빛을 기다릴 것이다. 그 시간이 나의 시가 되리라고 믿는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제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아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시를 붙들고 읽어주신 여러분들의 두 손을 상상하며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고 싶은 할머니. 저를 아프게 바라보시지 않았으면 해요. 할머니가 남기고 간 아름다운 것 중에 제 것이 된 것도 있다고 믿으니까요. 할머니가 가르쳐준 말로 시를 쓰다니, 옹알이가 시가 되다니, 저는 기쁩니다. 다시 아버지. 미워하고 사랑하는 그 사이를 오가며 끝까지 아버지를 그리워할 거예요. 부디 평안하세요. 언니, 나는 언니가 언니라서 좋다. 시를 써보라고 말해준 언니에게 가장 고맙다. 나는 언니의 다른 몸 같다. 고맙고 고맙다. 정현, 늘 충분합니다. 친구들,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쓰는 것이라는 걸 압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김언 선생님. 깊이가 넓이를 보장한다는 말씀을 새깁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나의 검은 개, 흰 개야. 너희는 내 마음 알 거라 믿는다. 말 한마디 없이 사랑을 하고 단 한번의 눈빛으로 가족이 된 우리들. 글을 쓰는 새벽 내내, 발밑에서 나를 지키는 너희에게 기대어 산다. 고맙다. 너희는 내 마음 알 거라 믿는다, 멍 멍멍.

 

 

 

소설 | 심사평

 

 

올해 20회를 맞은 창비신인소설상에는 모두 941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실감한 것은 소셜미디어의 글쓰기적 특징이 소설 내부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허구적인 사건의 직조보다는 개인적 삶의 진솔한 토로를 내세우며 사회의 이슈들을 가감없이 논평하는 방식의 글쓰기가 이전보다 많이 증가했다. 이국적인 공간을 떠도는 존재들의 모험을 다룬 소설들도 많았는데 특정한 장소성을 문제 삼거나 실존적 고민을 드러내기보다는 일상의 연장으로서 무심하게 포착되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본심에서는 네편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박이언의 「구르는 사람」은 사회적인 부조리, 가족 간의 갈등, 소수자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이 한 개인의 삶 속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포착하려는 의욕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다양한 사건들 각각이 예사롭지 않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사건들이 밀도있게 얽히지 못한 채 소재적으로만 나열되는 점이 아쉬웠다. 방관자로 보였던 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의 상징이 강렬했지만 작위적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이러한 서사적 약점과 연관된다.

정수안의 「윗스」는 이국적인 공간에서 떠도는 존재들의 실존적 불안을 매력적인 감각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경계인, 이방인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최근 소설들의 경향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각자의 사연과 비밀을 지닌 인물들이 낯선 공간에서 기억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섬세한 감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려는 듯한 극적 사건의 구도가 인물들의 사연과 어우러지지 못한 채 표피적으로 흩어지면서 주제 역시 모호하게 다가왔다.

김연재의 「풀업」은 당선작과 더불어 가장 많이 논의된 작품이다. 비행기 안이라는 제한된 서사적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일상의 규율 속에서 실감하는 불안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어보는 방식 역시 색다르게 다가왔다. 함께 어우러지는 생활세계와 일상적 노동의 형상화도 실감나고 자연스러우며, 낯선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과 공감이 소설세계를 따뜻하게 받치고 있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렇듯 세부적으로 여러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말 부분의 우연성과 상투성, 주제의 응집성, 문장의 세공 등에서 갖고 있는 약점을 끝내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여러모로 아쉽지만 갖추어진 소설적 역량을 본다면 좋은 기회에 곧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임국영의 「볼셰비키가 왔다」를 당선작으로 뽑기까지 많은 토론과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 장례식이라는 제한된 시공간에 낯선 인물들이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활극이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경쾌한 입담과 풍자의 발화 역시 일회적인 소재로 제한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렇듯 익숙한 소재를 단편소설이라는 양식 속에서 개성적인 자기만의 호흡으로 변주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이 소설은 장례식장과 무대, 죽음과 삶이라는 이미지를 대비시키면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후에야 실감하는 생의 이면들을 보여준다. 낯선 조문객들이 벌이는 이런저런 기행들은 그동안 소통되지 못했던 가족들 사이의 기억을 조금씩 열어나간다. 누구나 지니고 있을 ‘빛나는 삶’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초라하고 누추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가라앉아 있었는가를 들여다보는 소설의 시선은 되새겨볼수록 가볍지 않다. 그런 점에서 소설에서 강조되는 구토의 행위는 일상이 마모시키고 있던 생생한 감각의 귀환이나 다름없다. 웃음과 슬픔의 기묘한 교차가 황폐한 삶의 한복판에서 자각하는 강렬한 구토로 이어지는 그 과정은 주목할 만한 흡인력과 속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고유한 서사적 리듬과 속도가 펼쳐갈 앞으로의 다양한 소설적 가능성이 여러모로 기대된다. 부푼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게 될 신인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강경석 강영숙 백지연 전성태 정용준

 

 

 

소설 | 수상소감

 

177_495임국영

1989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무시무시한 계획이 있었다. 당선 연락을 받으면 세리머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상정이 대략 열몇가지는 됐다. 프레디 머큐리의 뒷모습 같은 파이팅 포즈를 한다거나 지인들을 불러모아놓고 연어 생살을 백곰처럼 씹어 먹어 보인 뒤 사케를 가득 채운 20L짜리 분무기를 짊어지고 농약처럼 살포하겠다는, 뭐 그런 농담 같은 공약들. 막상 현실로 맞닥뜨리고 나니 혈중의 포도당을 모조리 도둑맞은 사람처럼 손발을 떨며 말을 더듬었을 뿐이다. 평정심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며칠이 지난 뒤였다. 운이 따라서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 그때는 잘해보렴 국영아.

 

뒹굴 자리를 찾아 꾸준히 헤맸다. 비로소 멍석이 깔렸다고 생각하니 겁부터 나는 것이 솔직한 속내다. 나는 다만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다. 그것과 작가가 되는 일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일은 물론 낯부끄럽다. 지극히 속물적인 발상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기회를 얻었음에 기꺼이 자부심을 가지려 한다. 놓치지 않겠다.

 

멋진 어른들과 좋은 친구들이 너무도 많다. ‘나’라는 그들의 불운은 차치하고 차근차근 고마움을 전하려 한다. 소설을 얕보던 태도를 고쳐주셨던 신수정 선생님과 편혜영 선생님. 은혜로운 수업으로 문화적 토대를 일궈주신 이재명 선생님과 남진우 선생님, 박상수 선생님. 문학으로의 첫길을 열어주신 김학수 선생님과 10대 때의 스승님이신 정우영 선생님, 이문영 선생님. 한걸음 더 나아가도록 떠밀어주신 김성중 선생님. 천금 같은 기회를 내려주신 다섯분의 심사위원 선생님들. 미처 적지 못한 선생님들까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설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 동료들이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열소스’ 멤버들 중에서 최근까지 함께했던 보람, 유선, 태희, 유수, 원석. 그리고 또다른 나의 리썰웨폰 ‘조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주군 박종석 사장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의 자랑 장윤혜. 더 좋아질 겁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어머니. 잘할게요. 형. 잘하고 있어. 그리고 무수한 형 누나 동생 친구들. 페르마의 심정으로 직접 만나서 감사함을 전하겠다. 이렇게 적어놓아야 내가 친구가 많아 보인다. 이해해주길.

 

마지막으로 한마디. 악당들이 몽땅 망했으면 좋겠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다.

 

 

 

평론 |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평론상 부문에는 총 25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응모작들을 대강 파악하면서 심사위원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품었다. 우선 응모작들이 다루는 텍스트가 거의 겹치지 않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만큼 비평의 욕망을 자극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한국문단에서 생산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투고작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다. 뛰어난 작품들이 다양하게 생산되는 데 반해 그 작품들을 따라 읽는 응모작들의 시선은 정체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몇몇 유형 가운데는 거창한 생각을 담아내려고 시도하고는 있으나 그것을 문장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니 글도 생각도 어지럽게 느껴졌다. 작가의 개성을 턱없이 과장하거나 작품보다 사회비판적 담론이나 특정한 미학적 이론을 앞세우고 거기에다 작품을 무리하게 끼워맞추는 글도 비평적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사위원들은 작품들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분석하는 과정 속에서 현실과의 연관성을 진단하고 작품의 의미를 확장하는 글을 기대했지만 그런 글은 드물었다. 작품이 열어놓은 길을 외면한 채 작품의 언저리에만 머무는 시선들이 적잖았다는 것도 아쉬웠다.

심사위원들은 네명의 응모작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박민규의 「거리두기를 통해 살아나는 타자의 삶: 증언문학의 관점에서 본 조해진의 소설들」은 증언문학의 관점에서 조해진 소설을 꼼꼼하게 읽은 평문이었다. 조해진 소설의 전반을 대상으로 타자의 삶을 형상화하는 소설의 윤리에 대해 또박또박 묻고 진지하게 논의를 이끄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서두와 결말의 논리가 좀 아쉬웠다. 역사적 사실과 대별되는 문학적 가공을 거론하며 그것이 문학의 핵심적 요소라는 주장이 미덥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말부에서 타자들의 ‘곁’을 지키는 문학의 역할에 대한 강조는 다소 당위론적으로 흘러간 측면이 없지 않다. 이지원의 「진정한 발화, ‘침묵’의 목소리: 임승유, 안희연, 백은선의 시세계」는 부제에서 언급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해서 세월호참사 이후 한국시들이 보여준 적극적인 현실 대응력에 주목한 글이었다. 대상 작품들을 아우르며 조망하는 시선이 분명하고 힘있는 데 반해, 작품을 꼼꼼히 읽는 역량은 부족해 보였다. 작품 분석의 말미에 특정 이론가들의 개념에 기대어 마무리하는 서술은 작품의 의미를 서둘러 봉합하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신승민의 「한 잎의 모색: 억압의 민낯과 실존적 저항」은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시인들의 실존적 저항을 이수명과 김행숙 그리고 송승언의 시를 통해 해석한 글이었다. 피로사회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한국의 부정적인 현실을 눈에 띄게 조명하는 효과는 분명 있지만, 그 개념 자체를 반성적으로 접근하거나 개념과 실제 현실과의 연관성을 짚어주는 대목들이 없다보니 현실에 대한 서술들이 미덥지 못했다. 더욱이 시작품들을 소재적 차원에서 접근하다보니 작품에 대한 해석에 설득력이 떨어질 때가 많았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고민하게 했던 글은 이현욱의 「소설, 지금-여기의 기록: 은폐된 폭력의 구조와 저항의 목소리」였다. 이현욱의 글은 강영숙, 김탁환, 조남주, 강화길, 정이현의 소설을 다루면서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소설적 상상에 대한 논의를 펼쳤다. 논리는 차분했고 생각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는 데 주저했다. 글은 비교적 유연하게 전개되었지만 힘이 맺힌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달리 말하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붙들고 비평적으로 대결한 흔적 없이 이미 어느 정도 답이 정해진 문제들을 건드리고만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이번에는 수상작을 뽑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에도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주저보다는 확신을 가지고 뽑을 글을 한해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내년에는 좀더 많은 응모작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송종원 한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