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심사평

 

 

응모된 작품을 읽는 내내 어느 외딴 성당의 고해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저 가림막 뒤에, 분명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지는 마음들. 때론 유약해서 아름답고 때론 서늘해서 서글퍼지는 마음들. 그 마음의 색과 모양을 헤아리는 일은 아픈 이의 진맥을 짚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정성을 요하는 일이었다. 이 말은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오랫동안 붙잡아두는 수작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심사과정에서 그리 난항을 겪지는 않았는데, ‘생생한 육성’과 ‘만들어진 고백’을 구별하는 일이 의외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시편들이 자신의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혹은 토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간결하고 담백한 언어를 만나기가 어려웠다고 할까. 물론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이 나은지를 가릴 수는 없지만, 한쪽으로 너무 기우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최종심에서 논의된 5명의 시는 적어도 그런 우려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만의 ‘육성’으로 발화할 줄 아는 작품들이었다. 먼저 「곡예사의 일」 외 6편에서는 오랜 습작의 시간을 가늠케 하는 단단함이 엿보였다. “그네에 앉아/빛나는 것을 주워 담”거나 “청량하게 분열하는 중”인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은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어를 선택하고 운용해나가는 과정이 얼마쯤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기성시인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 등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단정함과 세련됨은 분명 미덕이지만 유려하게 다듬어진 불안은 매력이 없다. 좀더 불완전하고 가파른 곳으로 자신의 시를 밀어붙이기를 응원한다.

「공생」 외 8편도 미덕이 많은 시편들이었다. 시인이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서 길어 올린, 육화된 언어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한동안 명맥이 끊긴 듯 보였던 기존의 시적 전통, ‘에코페미니즘’의 흐름을 받아안으면서도 자연스럽고 활달한 상상력이 가미된 시편이었기에, 가로수처럼 정련된 시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다만 보내온 여러편의 시들이 고르지 못했고, 이따금 생목으로 부르는 노래처럼 나이브한 육성이 그대로 노출될 때가 있어 선택을 주저하게 했다. 자신의 작품을 좀더 객관적으로 살피는 눈을 기른다면 머잖은 시일에 뵙게 될 것이 분명하다.

「스탈린」 외 5편은 가독성이 좋았다. 최종심에서 논의된 작품 중 가장 패기 넘치는 작품이었고, 눈치 보지 않고 시를 밀고 나가는 힘이 느껴졌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적확하면서도 감상적이지 않게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의 시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블랙유머는 분명 귀한 것이다. 다만 그 농담이 지나치게 단순한 수준에 그치거나 패턴화되어 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인의 경우라면 이 정도 단점은 매력적인 장점에 충분히 묻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시적 개성을 더 밀고 나가기를, 더 비릿하고 서늘한 농담으로 깜짝 놀라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심사자들의 손에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그래도 네가 있다」 외 5편과 「조랑말 속달 우편」 외 4편이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어 결정을 더디게 했다. 「그래도 네가 있다」 외 5편은 인위적이지 않은 호흡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리듬감이 장점으로 꼽혔다. 억지로 시를 만들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야기 속에 이미 시가 스며 있다는 것은, 그가 생래적인 시인임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응모한 작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을 때 마치 한편의 장시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긴장이 풀어져 느슨해지는 부분이 없지 않고, 이런 호흡으로만 이루어진 시집을 통째로 읽으면 지루할 것 같다는 인상도 남았다. 매 시편의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장점인 리듬감은 유지하되 어떻게 시를 변주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나아간다면 머잖아 좋은 시인으로 만나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저런 아쉬움들로 인해 하나둘 작품을 내려놓다보니 「조랑말 속달 우편」 외 4편이 남았다.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심사위원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무엇보다 이 시인의 시에는 과잉이나 엄살이 없다. 정념이 언어를 앞지르지도 않는다. 일관된 정서를 뒷받침하는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 오래 마음에 담고 궁굴린 뒤에 최소한으로 내려놓는 언어가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잔디와 잡초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몰라서 의심이 가는 풀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는 세심함이 있고 “숨소리도 메아리가 되었”(「미래의 자리」)음을 발견하는 시선의 투명함이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좋은 문장은 수사가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정확한 문장임을 새삼 확인했다.

이토록 극악한 세상에서 정신의 세심함과 투명함을 유지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길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매일 죽음도 불사하는 숙련된 기수”(「조랑말 속달 우편」)가 아닌가. 앞으로 그대의 편지가 더 먼 곳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배달될 수 있기를. 당선을 축하한다.

김현 손택수 안희연 유병록

 

 

 

시 | 수상소감

 

181_491곽문영 1985년생.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다자이 오사무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시에 이런 서문을 써 붙인 적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 사귈 수 있고

다자이 오사무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내일 결혼할 것이다

우리 둘은 각자의 몸속에서 솜방망이를 찾아 꺼내

상대를 죽기 직전까지 지루하게 패줄 것이고

흩날리는 서로의 깃털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요하게 추적할 것이다

 

시의 제목은 당연히 ‘만년(晩年)’이다.

 

부서질수록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이 길가에 흘리고 간 가루를 쫓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잘게 부서질 수 있을까, 얼마나 아름다운 파편으로 조각날 수 있을까. 오래 빛나기보다 그들처럼 영원히 저물고 싶다.

 

축하와 갈채가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욱 함부로 망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부러뜨리고, 다시 그 조각들을 소중히 그러모아 시를 쓰고 싶다. 그 신기루로 몇몇쯤 완벽하게 홀려버리고 싶다.

 

엄경희 교수님, 함께 울어주신 게 제일 고맙습니다. 처음 좋아한 시인 김관민, 무엇보다 형은 내 하나 남은 친구예요. 김언 선생님, ‘발 없는 새’로 제가 너무 멀리 날아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목소리로 오래 안부 전하겠습니다. 지돈 선배, 앞으로도 반기에 한번씩은 같이 커피 마셔요. 서대경 선생님과 박소란 선생님, 그리고 여러 시 창작수업에서 만난 친구들, 시가 착한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통영의 숙영과 김해의 효진, 당선 소식을 듣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차표를 예매한 것입니다. 우리 대외협력부 식구들, 자취생인 제게 여러분은 진짜 식구입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오픈 채팅방 ‘안 고독한 장국영’의 일흔두 회원분들, 우리의 방에는 출구가 없다는 것을 아시지요?

 

넷 모두가 따로 사는 내 가족, 함께는 아니지만 각자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시를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끝으로 내가 아는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개체, 최승자 시인께 남은 모든 감사를 바칩니다.

 

 

 

소설 | 심사평

 

 

창비신인소설상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유례없는 폭염 속을 통과하고 있었다. 원고뭉치를 만지면 미지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당연히 여름 태양이 달궈놓은 것이지만 한편으로 쓰는 이의 온기가 종이에서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탓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그만큼 공들여 쓴 수작이 많았다.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잘 직조된 이야기가 흔하지는 않았지만, 드물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기만의 발성법을 가진 작품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페미니즘, 퀴어 소재의 강세가 다소 두드러졌지만 가족, 간병, 죽음충동, 우울증, 동물화자를 내세운 이야기 등 다양한 작품이 쏟아졌기 때문에 소재의 쏠림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올해 창비신인소설상에는 총 1128편이 응모되었다. 세명의 문학평론가와 두명의 소설가가 나누어 예심을 보았고, 각자 2편 내외로 작품을 추린 후 합쳐서 다시 본심을 보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본심을 통과한 아홉명 중 네 사람의 작품이 주요하게 논의되었다.

강이나의 「무자서」는 보험약관을 경전처럼 외우는 퇴직한 남편과 자원봉사차 알게 된 공씨를 지켜보는 아내가 교차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주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어 이야기 그릇이 덜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백운호의 「블롭피쉬 인 글로리홀」은 수수께끼를 품은 인물들의 대화가 체스처럼 오가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진실이 담긴 거짓말을 서로에게 던지는 세 인물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서스펜스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이 비밀은 덜 말하고 덜 듣는 식의 단순한 구조이고, 상황의 작위성이 걸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집중적으로 토론해나간 작품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과 홍삼득의 「에드먼드와 리어」였다. 두 작품의 개성이 뚜렷하게 달랐고, 장점과 단점의 위치 또한 대조적이어서 논의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에드먼드와 리어」는 터프한 헤비급 복서의 작품이다. 과적을 무릅쓰고 비 오는 날 덤프트럭을 몰고 가는 주인공의 현재 상황과 극단에서 밀려나 트럭운전수가 된 동호형의 과거가 오가는 가운데 주인공의 내면이 리어왕의 대사로 응결되면서 잊기 힘든 묵직함을 선사한다. 무대와 도로가 교차하는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길과 현실의 길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주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었고, 큰 주제에 도전하는 패기에도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만 도로 장면의 핍진성에 비해 극단에서의 일들은 선악구도가 분명한 전형적 상황이어서 아쉬움이 남았고, 현재와 과거가 단순히 물리적 사슬로만 연결되어 있는 구성이 마음에 걸렸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짧고 기민하게 잽을 날리는 가벼운 스텝의 복서를 연상케 한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까지 겹쳐 읽으니 세태를 포착하고 자기만의 감수성으로 다루는 이 작가의 특장을 알 수 있었다. 회장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월급을 전액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 ‘거북이알’이 다시 포인트를 돈으로 전환하기 위해 중고거래에 나선다는 설정은 한숨이 나올 만큼 ‘웃픈’ 이야기지만 재벌총수가의 물의가 연일 보도되는 현실의 거울에 비추어보면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다. 인물들이 나란히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 너머로 네모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보이듯 작품에 묘한 청량감이 있다고 할까. 꽉 짜인 로직을 뚫고 한줄기 바람이 통과하는 듯한, 세상은 만만치 않고 어이없는 일투성이지만 그 안에서 ‘소확행’이든 무엇이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적응해나가는 청년세대의 기쁨과 슬픔이 생생하다. 즉흥연주처럼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이야기에 탄력감을 불어넣고 주연을 비롯한 조연들의 성격까지도 구축해나간 점도 눈길을 끌었다. 반면 전체적으로 가볍다는 인상이 들었지만 무거운 현실의 중력에 대응하는 기민함 자체를 다루고 있기에 스토리와 문체가 일치했다고 볼 수 있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장류진의 작품을 한발 앞으로 세웠다. 자기만의 인장이 확실하고 다음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은 작가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기대감을 품은 심사위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첫번째 종이배가 앞으로 더 큰 돛을 달고 먼 바다로 항해하기를 기원한다. 홍삼득씨를 비롯해 본심에 오른 다른 분들에게도, 이름을 다 적지 못했으나 좋은 작품을 보내주신 많은 응모자들에게도 각자의 바다가 펼쳐지기를. 읽고 쓰는 인연은 짧지 않으니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기준영 김성중 박인성 한영인 황정아

 

 

 

소설 | 수상소감

 

181_497장류진 1986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수료.

 

 

 

 

작년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며 대학원에 갔다. 그리고 「프로듀스 101 시즌2」의 국민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평소의 나는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일이 없었고 어딘가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매일 투표하고 금요일마다 본방을 손꼽아 기다리는 스스로가 한동안 낯설었지만 여하간 나는 그 프로그램의 흥행 공식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연습생들이 탈락하는 장면에선 매번 눈물이 났다. 꼭 이런 방식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춤추고 노래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꼭 이런 그림으로 솎아져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을 그 자리로 이끈 것이 춤추고 노래하고 싶은 바로 그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내가 봐도 더 잘하고 더 빨리 느는 연습생이 보였다. 똑같이 배워도 여전히 못하고, 제자리걸음인 연습생도 있었다. 저들 중 누군가는 평생 데뷔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먹먹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고, 그래서 무언가가 되고 싶은 마음의 무게야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하고 싶고 되고 싶은 마음은 어느 누구의 것이라도 비웃을 수 없어야 해, 그렇게 정해둬야 해,라고 여러번 생각했다.

 

처음으로 소설을 써보라는 말을 해주신 해이수 선생님,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신 동국대 대학원의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함께 고민하던 문우들에게도.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마음만 넘치는 수강생의 눈빛을 받아주신 여러 문화센터의 작가님들께도 많은 빚을 졌다. 뭘 한다고 해도 응원해줄 엄마, 아빠,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내 안의 어떤 열망은, 학부모 백일장 장원 출신인 우리 엄마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또렷하게 의식하고 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남편은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창작과비평』을 구글링하며 “유서가 장난 아닌 곳”이라고 감탄했다. 그리고 ‘발롱도르’나 다름없는 상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발롱도르가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그 순간 내가 이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출판된 소설보다 A4용지에 인쇄된 내 소설을 더 자주 읽는 사람. 내 소설이 제일 재미있는 줄 아는 사람. 내 최초의 독자. 이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을 썼던 일이 내 인생의 해프닝으로 남을까봐 두려웠다. 이제는 ‘썼던’이 아닌 ‘쓰는’ 일로 늘 두고 살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앞으로 갈 길이 무섭고 떨리지만, 그 사이로 설레는 마음이 자꾸 비집고 나오는 걸 어쩌면 좋을까.

 

제 소설과 그 안의 가능성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의 선택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제가 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늘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평론 | 심사평

 

 

서른편의 응모작을 읽으면서 솔직히 조금 놀랐다. 촛불광장의 빛이 우리 비평의 미래를 이토록 힘차게 밝혀놓았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글들이 직간접적으로 촛불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우선 최근 몇년 사이 기승했던 파국론이 종적을 감추다시피 했다. 온갖 사회적 재난들 가운데서는 다른 미래를 전망하고 상상하는 기운보다 우울과 무력을 말하고 삶을 ‘끝’으로 내모는 부정한 힘에 항의하는 데서 자족하는 습성에 빠지기 쉽다. 파국론은 바로 거기에 둥지를 튼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너져가는 삶을 속수무책으로 방관할 수만은 없는 일이고 남 탓만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일수록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돌보고 일어서는 힘을 길러야 할 텐데, 이 필수적인 자력양성의 일을 비평계를 포함한 소위 지식인들은 등한해왔던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당대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책임을 말하기 시작한 적지 않은 수의 평문들을 받아 들고 이제는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궤도 위에 올라서 있음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번 심사과정을 어느 때보다 귀한 시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지난해에 비해 정연한 논리와 개성적 시각을 갖춘 읽을 만한 글이 많았다. 두차례에 걸친 토론을 통해 심사위원들은 네편의 글을 가려내고 이들 중에서 당선작을 뽑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소설 분야의 작가·작품론이어서 주제론이나 시론의 상대적 약세가 아쉽긴 했지만 이들 네편의 장단점을 가지고 토론하는 과정은 그런 아쉬움을 상쇄하기에 충분할 만큼 흥미진진했다.

먼저 최가은의 「스크린 밖으로 빛을 부르는 사람들」은 조해진론이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진정성은 조해진 소설의 잘 알려진 장점들이다. 최가은은 그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소설적 글쓰기에 육박하는 문체와 ‘스크린의 안과 밖’이라는 독특한 구도로 조해진의 “비(非)존재” 또는 “흔들리는 주체”들이 삶의 재건을 향해 가까스로 나아가는 과정을 힘있게 지지한다. 그러나 이 글은 거의 똑같은 이유로 힘을 잃기도 한다. 요컨대 비평의 대상이 된 작품들과 평자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운 나머지 평자 자신의 시야가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 너머로 나아가지 못한 듯 보였다.

진기환의 「속물과 ‘악녀’ 이후의 삶」은 정이현 소설의 변화과정을 속물성 비판에서 책임윤리로의 이동으로 명쾌하게 정리한 글이다. 무엇보다도 이 글은 잘 읽힌다. 이론 언저리를 무잡하게 배회하는 대신 줏대있게 작품과의 대결에 충실한 점도 미덕이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자신의 구도 아래 작품을 단순화한다는 느낌을 떨치긴 어려웠다. ‘악녀’ 이후의 삶을 논한 글치고 정이현의 최근작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점도 걸렸다.

심사위원들을 더 오랫동안 고심하게 만든 글은 최선영의 「지금, 여기에 있다」이다. 광주항쟁을 다룬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를 치밀하게 분석한 글이다. 재현과 증언의 가능성/불가능성을 타진하는 평자의 구도가 낯익은 것이기는 하지만 2인칭 주어 ‘너’의 위상분석을 통해 “사실주의의 규율” 너머에서 “가장 날것의 형태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의 진면목이 충분히 드러났다. 뛰어난 작품일수록 재현의 가능성/불가능성 따위의 상투적 물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글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현의 의미를 과거 또는 역사적 사건에 매어놓고 그것을 “현대”라는 어색하고 함의가 분명치 않은 개념과 마주 세운 것은 창안이라기보다 자의(恣意)처럼 보였다. 과정의 밀도에 비해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수준에서 머문 듯한 결론도 아쉬움을 더했다.

결국 전기화의 「황정은 다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올라서고, 떨어지고, 처박히고, 부여잡고, 왔던 길을 다시 가면서” 세상과 새롭게 연결되곤 하는 황정은 소설의 운동성을 명료하게 포착한 이 글은 이미 있어왔던 수많은 황정은론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고 있다. 황정은 소설세계의 전반적 흐름을 개관하는 망원경과 개별 작품에 밀착하는 현미경을 동시에 지닌 글이라는 점에서도 신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평자가 포착한 새로운 ‘나’들에게 심사위원들도 함께 희망을 걸면서 아쉽게 떨어진 응모자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강경석 한기욱

 

 

 

평론 | 수상소감

 

181_503전기화 1990년생.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왜 한국문학을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백명 넘는 동기들 가운데 이 전공을 선택한 사람이 나 하나였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라는 답을 십년 내내 정교화하고 변주해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텍스트를 대하던 한 자세에 입각해 말을 이어가보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아니 감당하려고 애쓰는 존재가 인간이고, 문학도 그 노력의 일환이라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노력들 가운데 어떤 것을 대할 때면 존경과 부끄러움, 사랑이 뒤섞였습니다. 가능한 방식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응답하고 싶었습니다.

 

황정은 작가님께 감사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한국어로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님들께 감사합니다. 문우들께, 한국문학 장의 구체적인 독자들께 감사합니다. 지금 여기 이 장의 변화를 성실히 좇으면서도, 그 변화를 좀더 넓은 맥락에 위치시키며 역사화하는 작업을 놓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께 감사합니다.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신 학부와 대학원의 은사님들께,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나의 스승님, 정병설 선생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부끄러움을 안고서도 정진하겠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가능하기에.

2009년의 학사정연 선배들에게, d에게 감사합니다. 2011년 미친 듯이 읽으라고 조언해주신 황조교님께 감사합니다. 2015년 질문을 던져준 우석에게 감사합니다. 나의 용기 그리고 영감—하나씩 부르지 못해 미안한 마음마저 이미 알고 있을 벗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글을 읽어준 아영, 진하, 혜경 언니에게 특히 감사합니다. 이들과 쓴 글입니다.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함께 읽고 말하고 쓰고 싶습니다. 그 속에서 비평의 내용과 형식은 점점 갱신되거나, 발명될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