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21세기에 ‘동아시아 공동체’가 갖는 의미

 

 

사까모또 요시까즈 坂本義和

토오꾜오대 명예교수.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이자 평화이론가로, 1970년대부터 일본 전쟁책임과 과거사 청산, 미일안보조약 개정, 대북관계 개선 등에 대해 발언과 연구를 해왔다. 저서로 『地球時代の國際政治』 『地球時代に生きる日本』 『相對化の時代』 등이 있다.

 

*이 글은 2009년 9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서남 이양구 회장 20주기 추모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의 재발견’의 기조발표문 「21世紀に‘東アジア共同體’ガもつ意味はなにか」를 본지의 요청에 따라 필자가 수정 보완하고 덧글을 붙인 것이다. 원고 게재를 수락해준 필자와 서남재단에 감사드린다-편집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21세기’라고 부르는 데는 적어도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더이상‘20세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의 시대, 다시 말해‘세계전쟁’의 시대가 끝나고‘미국의 세기’혹은‘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불리던 일극(一極)지배도 막을 내리고 있다는 의미에서 세기의 전환이다. 둘째로, 그렇다면‘21세기’란 어떤 시대인가. 전쟁이 국지화됨에 따라 세계는‘전쟁지역’과‘평화지역’으로 분리된다. 국한된 내전은‘평화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방치된 채 망각되기 일쑤이고, 그곳에서 흘러나온 난민들은 각지에서 차별과 냉대를 받고 있다. 반면 원래는‘극소전쟁’(micro-war)인 테러리즘이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연결되면서 최악의 사태로 번질 위험이 세계 각지에, 언뜻‘평화지역’으로 보이는 사회를 포함하여 잠재해 있다. 이러한 사태를 맞아 이미‘일극지배’가 아닌 다각적(multilateral) 국제관계에 입각한‘다극화’체제가 나타나고 있으나, 그것이 국제협조를 강화해갈지 아니면 세계의 무질서(anarchy)화 경향이 재현될지, 21세기는 불투명한 새로운 도전과 더불어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21세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도대체 어떠한 세계를 만들어갈까를 생각해야 하는, 당면 문제에 대해서도‘세기’즉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의 시야를 갖고 대응해야 하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레토릭으로서가 아닌‘21세기’가 갖는 의미이다.

 

21세기의 도전

이같이 21세기를 생각할 때 한가지 분명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글로벌화’라는 비가역적(非可逆的)인 동력이다.‘글로벌화’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으며,‘반(反)글로벌리즘’의 움직임도 생활세계의 많은 차원에서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반글로벌리즘’이나‘로컬리즘’자체가 글로벌한 정보네트워크와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화의 일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글로벌한 관계와 영향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경향을, 좋든 싫든 촉진하든 저항하든지에 관계없이 강화해가고 있음은 확실한 듯하다.

문제는 그것을 비인간적인 글로벌화(dehumanized globalization)가 아니라 인간성을 제고하는 글로벌화(humanized globalization)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이다.

제1의 조건은 평화의 글로벌화이다.‘평화’라 하면, 보통은 정온(靜穩) 또는 안온(安穩)한 상태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내가 다른 곳에서도 썼듯이,‘평화’란 실은 무서운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예언자 무함마드도 석가도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지만, 그것은 그때까지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유혈이 반복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남겨왔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평화’의 배후에는 산더미 같은 시체의 무수한 묘비가 서 있는 것이다.‘평화’란 이 비참한 역사를 가진 세계를 인간성 가득한 세계(humane world)로 다시 만들어가는 싸움의 과정과 다름없다.

제2의 조건은 모든 인간이 기아나 빈곤에서 해방되어 격차 없는 공정한 자원배분을 달성하는 것이다. 절대적·상대적 빈곤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인간은 〔연약한〕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빠스깔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인간은 동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동물이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동물이다.’이는 근본적으로 공정과 정의 실현의 추구를 말한 것이다.

제3의 조건은 20세기에 문제의식이 생겨났지만 그 해결은 21세기로 넘겨진, 자연과의 환경친화적(ecological) 공생을 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환경친화적 공생이라는 이 과제가 인간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소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연환경의 지배가 불가결하며 또한 당연하다는 사상이 자유주의나 맑스주의 모두의 전제였다. 환경과 공생할 필요성은 자연이 전지구적으로 인간에게 저항하고 복수함으로써 처음으로 의식화된 것이다. 따라서 환경과의 공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근대적 가치로서 자명하게 여겨온 인간의‘자유’, 경제의‘성장·발전’이라는 관념을 근본부터 재고하고 생활양식을 변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제4의 조건은 타자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사상, 종교, 습속, 편견 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평등하고 존엄한 주체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행위, 이것이 바로 보편적인‘휴머니티’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문화적인 다양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근본적으로 평등하고 존엄한 주체이기 때문에 인간 생활방식의 다양성을 상호 존중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나는 21세기 글로벌한 도전에의 대응에 관해 언급했다. 그것이 이 회의의 주제인‘21세기 동아시아의 탐구와 창조’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아래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조건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이념이나 정책제언은 지금까지 많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한·중·일을 축으로 한‘동북아시아’의 협력조직과, ASEAN으로 대표되는‘동남아시아’의 지역조직화를 연결한 구상인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 한·중·일을 주축으로 하는‘동북아시아’의 협조에 역점을 두는 생각은, 그 자체로는 매우 건설적인 구상이지만, 의식적으로 혹은 사실상 북한의 참가를 뒤로 미룸으로써 현실에서는 종종 북한을 포위하는 체제를 만드는 기능이나 목적을 갖기 십상이다.

여기서 나는 역으로 북한문제를 중심에 두고 이를 어떻게 해결함으로써 21세기 동아시아를 만들 것인가라는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반도의 남북분단은 20세기의 냉전이 21세기까지 이어진 유일한 사례이다. 미·소의‘차가운 전쟁’이자, 존 개디스(John Gaddis) 같은 이가 초강국 중심의 시점에서‘긴 평화’(long peace)라고 했던 대립이 이 땅에서는 피투성이 전투와 동족상잔에 의해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런만큼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곤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 북한의 핵무장이다. 이는 분단 독일에도 분단 베트남에도 없었던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를 둘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비핵 공동체

첫째는, 핵무기 그 자체의 반(反)인간성이다.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