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1세기 과학, 낙관과 비관 사이

 

21세기 과학기술의 특징

인터넷, 생명공학, 에너지 기술을 중심으로

 

 

이필렬 李必烈

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 저서로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 등이 있음. prlee@mail.knou.ac.kr

 

 

1. 냉전시대의 과학기술

 

20세기 후반기의 과학기술은 냉전이데올로기의 강한 영향 속에서 중앙집중화·거대화의 길을 걸었다. 이 시기에 세간의 조명을 가장 강하게 받았던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 핵발전, 우주탐사, 거대 입자가속기, 핵융합 등의 과학기술은 모두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고, 국가의 통제하에 거대 규모로 운영되었으며, 군·산·학 복합체에 의해 추진되었다. 핵발전은 핵무기 개발의 부산물로서, 서방세계에서 핵무기의 원료와 핵무기 보조기술을 얻을 목적으로, 또는 냉전 상황에서 핵기술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시작한 기술이다. 핵발전을 처음 시작한 영국·프랑스·소련·미국 등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을 위해서가 아니라, 핵무기 개발과 핵기술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핵발전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초기에 핵발전 연구에 참여한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총과 대포를 녹여 쟁기와 낫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핵기술이 대량살상 무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적인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는, 따라서 핵발전을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과학연구의 결과인 핵분열 기술이 인류에게 큰 혜택을 가져올 수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옛 소련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유인 우주비행은 동구 사회주의권에서 인간능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찬양받았고, 미국에서 성공한 인류 최초의 달착륙은 서방세계에서 인류문명의 위대한 성취로 선전되었다. 실제로 우주의 한 점이나 마찬가지인 지구에 사는 인간이 지구 중력을 극복하고 거대 공간 속의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거의 오차 없이 이동한 것은 놀랄 만한 성취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우주계획은 수많은 연구자들이 막대한 연구비를 사용하면서 수행한 것으로, 모두 냉전시대의 체제경쟁 속에서 자국과 체제의 우월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지녔으며, 또한 미사일 개발이라는 군사적 목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 입자가속기는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입자를 탐구하는 순수물리학 연구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겠지만, 미국과 소련 정부에서 엄청난 돈과 인력이 필요한 입자가속기 계획을 지원해준 이유는 그것이 우주계획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을 통해 자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가속기 실험에서 얻어지는 여러 연구결과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차대전 후 유럽 각국에서 투자하여 제네바 부근에 건설한 유럽핵연구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의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는 전쟁으로 찢기고 상처입은 유럽인들, 그리고 서로 자국의 승리를 위해 군사연구에 투입되었던 과학자들을 화합시킨다는 근사한 목표를 위한 것이지만, 이 계획 또한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의 대치라는 냉전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동유럽에 대항하는 서유럽 국가들의 공동연구를 과시하는, 서유럽의 결속을 위한 성격을 상당히 지닌 것이었기 때문이다.1

20세기에 하나의 거대 연구기관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흩어진 여러 연구기관에서 공동으로 수행한 프로젝트에서도 중앙집중적인 특성은 그대로 드러난다. 군사적인 목적을 지닌 것이기는 하지만 1954년에 시작된 대륙간 탄도미사일 프로젝트(Atlas Project)에는 수십개의 기업체와 대학의 연구기관에서 수만명의 과학기술자가 참여했고 수십개의 하청업체와 수십만개의 부품공급업체가 참여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이들 참여기관의 연구자들은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의 2차대전중 원자탄 개발계획)의 연구자들이 한 장소에서 연구를 한 것과 달리 널리 흩어져서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그 운영방식은 중앙 운영기구의 통제를 받는 중앙집중적인 것이었다. 이때 매우 복잡해진 연구기구를 통할하기 위해 씨스템공학적인 방식이 도입되었는데, 이 방식은 커다란 씨스템 속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효율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운영기술이었다. 그리고 이는 군사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유럽핵연구소 같은 비군사적 연구기관의 운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IBM연구소같이 순수 민간자본에 의해 설립된 연구소에서만 뒤늦게 분산적인 연구의 창조적 힘을 인식하고 연구자들에게 자율적인 연구를 고무했을 뿐이다.2

 

 

2. 중앙집중형 과학기술의 퇴조와 분산형 과학기술의 부상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냉전이 종식되자 과학기술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변화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미국 국방성의 제안과 투자로 만들어진 아르파넷(ARPANET)이 군사용에서 민간용으로 ‘개방’되어 인터넷으로 발전했고, 소형 퍼스널 컴퓨터가 개발되어 각 개인에게 보급되었으며, 전체 개발비용이 8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초전도 충돌형 가속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계획이 1993년 30억 달러가 투입된 후에 폐기되고 인간게놈 계획이 각국의 협력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가 주도의 우주탐사계획 규모가 크게 축소된 반면, 민간용 위성 개발계획이 확대되었다. 핵연구도 점차 쇠퇴해갔고, 대신에 새로운 에너지 기술이 주목받게 되었다.

20세기 말에 과학기술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21세기에 과학기술의 성격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변화의 특징은 과학기술의 거대화, 중앙집중화, 국가 주도가 약화되고 규모의 축소, 분산화, 민간 주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거대 과학기술도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이것들은 과학기술에서 지금까지 지켜온 중심의 자리에서 점차 밀려나고, 대신 규모가 작고 분산적인 과학기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거대 입자가속기 계획이 폐기된 대신 인간게놈 계획이 추진된 것은 과학기술의 중심이 물리학으로부터 생물학으로 넘어가는 한편, 중앙집중적 거대규모 연구가 분산적이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연구에 자리를 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국가-학문의 공고한 결합이 느슨해지거나 무너지는 반면, 민간자본-학문의 결합이 강해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거대기술은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핵발전소는 여전히 상당한 양의 전력을 생산하며, 동아시아에서는 많은 수의 핵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볼 때 전력공급원으로서의 핵발전은 이미 낡은 기술이 되었다. 반면에 핵발전과 같은 중앙집중적이고 거대한 기술보다는 분산적이고 소규모의 에너지 기술이 전력공급원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술은 수십년 안에 기존의 거대 핵발전·화력발전 기술을 밀어내고 에너지 기술의 중심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바이오매스(biomass)발전 등과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소규모의 새로운 발전기술은 10여년 전부터 소리없이 퍼지기 시작해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연료전지나 소형 열병합발전기 등도 발전·수송·난방 등의 부문에 서서히 도입되고 있다. 아직 거대 에너지 생산기술이 강한 기득권을 유지하며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강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이들 소규모 기술이 에너지 생산의 주류기술이 되리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이들 새로운 에너지 기술은 핵발전소의 100만분의 1도 안되는 아주 작은 규모로 실현될 수 있고, 한 가정에서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전기나 열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며, 따라서 기존 전력공급망으로부터의 해방을 가능하게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제 전력 공급은 이들 기술에 힘입어 거대한 화력발전소나 핵발전소 같은 중앙집중형으로부터 벗어나 소규모의 자급자족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분산적인 형태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소형 퍼스널 컴퓨터는 순전히 군사적인 목적의 중앙집중형이었던 최초의 전자 디지털 컴퓨터 에니악(ENIAC)과는 달리, 군사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은 작업장에서 몇 안되는 기술자들의 기발한 착상에 힘입어서 개발되었다. 이들은 그때까지 군사적 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컴퓨터 기술을 그로부터 해방시켜 아무나 소유하고 어떤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퍼스널 컴퓨터 개발에 착수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거대하고 폐쇄적인 컴퓨터 씨스템을 부수는 분산적인 기술을 목표로 했던 것이다.3

1946년에 에니악이 개발되고 1970년대말 퍼스널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제작된 컴퓨터는 민간용이라 하더라도 이용자들을 그것이 위치한 연구소나 대학으로 불러모으는 중앙집중형이었다. 인터넷이 성립하기 전에 이들 컴퓨터를 수평적 방식으로 연결해준 아르파넷에 의해 대형 컴퓨터들도 부분적으로 분산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기는 하지만, 아르파넷은 대학이나 연구기관 또는 미국 정부 소유의 대형 컴퓨터들만을 연결했고 그 구성원만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중앙집중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산적인 소형 컴퓨터가 등장하고, 이것들과 대형 컴퓨터들이 서로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터넷이 성립하면서 컴퓨터는 분산적인 기술로 변모했다. 현재 소형 컴퓨터의 성능은 컴퓨터칩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예견한 대로 1970년대의 대형 컴퓨터 이상의 성능을 지니게 되었지만,4 이들 수억대가 넘는 컴퓨터들은 고정된 위치에서 폐쇄적으로 운영된 1980년대 이전의 컴퓨터와 달리 사방으로의 이동과 서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분산적·개방적인 기술로서 작동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여러 나라의 협력연구였고 수십억 달러 이상의 연구비가 들어간 거대 프로젝트였지만, 연구 자체가 핵기술이나 소립자 연구의 경우와 달리 거대 연구기관 한 곳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크고작은 여러 연구기관에서 수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정도는 분산적인 연구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거대 프로젝트가 쎌러라 지노믹스(Celara Genomics)라는 일개 벤처기업에 추월당할 상황에 처했고, 결국 2001년 2월에 게놈프로젝트의 최종 연구결과를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프랜씨스 콜린즈(Francis Collins)와 쎌러라 지노믹스의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가 공동으로 발표했다는 사실은 인간게놈 연구가 처음부터 분산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성질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게놈 연구는 우주탐사계획이나 거대 입자가속기 연구와 달리 작은 연구기관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분산적인 성격의 것이었고, 쎌러라 지노믹스는 바로 이 점을 실증한 것이다.

게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는 후속 연구들─예를 들어 염기서열 분석결과를 이용해서 수명, 암, 특정 질병을 지배하는 유전자를 밝혀내는 작업─은 작은 연구소에서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는데, 이는 게놈 연구나 유전자 연구가 분산적인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 수정란의 유전자조작 연구, 초기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떼어내어 배양하는 연구, 동물이나 인간의 복제 연구, 유전자조작 동식물을 만들어내는 연구 등 생명공학의 첨단연구들도 모두 작은 연구소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분산적인 성격의 것이다. 복제양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Roslin Institute) 이언 윌머트(Ian Wilmut)의 연구실이나 한국에서 최초로 복제소를 출산시킨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 모두 기존의 거대 연구기관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의 것이다. 이딸리아의 안띠노리(Severino Antinori) 같은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개별적으로 복제인간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이로부터 세계가 충격을 받는 것도 복제기술이 많은 인력과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분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탐사나 우주여행의 경우는 아직도 여전히 강한 중앙집중형으로 수행되고 있고, 이러한 형태가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미항공우주국(NASA)의 거대 우주탐사계획들이 축소되고, 민간업자들이 뛰어들어 일반인의 우주관광을 계획하고 관광객을 모집하는 것은, 냉전이 끝난 후 우주 분야의 과학기술에서도 거대화·중앙집중화가 점차 약화되어감을 보여준다. 우주기술에서는 에너지 기술이나 생명공학 기술에 비견할 만한 분산성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겠지만, 프리먼 다이슨이 주장하듯이 연구개발 규모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그의 상상과 희망대로 무게가 수톤밖에 안되는 어느정도 분산적인 성격의 소형 우주선들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5

 

 

3. 네트워크형 과학기술의 등장과 위력

 

21세기 과학기술의 또 한가지 중요한 특징은 이들 기술이 분산적으로 작동하면서도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로써 형성되는 네트워크의 지배를 강하게 받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의 컴퓨터는 대부분 인터넷이라는 정보통신망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커다란 기술 씨스템을 만들어낸다. 유전공학 연구도 분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터넷을 통해서 게놈 정보와 유전자 연구결과가 소통되지 않으면 거의 수행되기 힘들기 때문에 네트워크형 기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유전공학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서 존재하는 유전공학 데이터베이스로 들어가서 그곳에 널려 있는 게놈 정보와 유전자 정보 속에서 새로운 유전공학 정보를 캐낸다. 이제 유전공학의 중심은 세포를 파괴해서 염색체를 녹여내고 염색체 속의 DNA 염기서열을 각종 기기를 이용해서 확정하며 유전자의 작용을 경험적으로 찾아내는 습식(wet) 기술이 아니다. 유전공학자들은 새로운 유전자나 그것의 작용을 대부분 습식 조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명정보공학(bioinformatics)의 기법에 따라 게놈 데이터베이스를 뒤져서 찾아낸다.6 물론 이 경우 인간게놈 속의 유전자 수는 3만개로 추정되거나, 그것보다 2배 이상 많은 6만 5천개로 추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같이 오차가 크다고 해서 유전공학자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에 복속되기를 거부하고 재래의 방식으로 돌아가서 습식 분석만을 고집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7

분산적으로 보이는 과학기술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형성하거나 그에 복속되는 현상은 21세기 과학기술에 깃들인 복잡한 성격을 암시한다. 이들 기술은 국지적으로는 분산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때는 거대 입자가속기 같은 20세기의 대표적인 과학기술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21세기 과학기술의 우려할 만한 점은 바로 분산적으로 작동하는 것들이 모두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매우 복합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거대한 무엇으로 화한다는 점이다.

사실 20세기 과학기술은 실체를 분명히 조망할 수 있는 중앙집중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통제할 수 있었고, 중앙권력만 움직일 수 있으면─물론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지만─그 방향도 바꿀 수 있었으며, 국민의 힘만 결집되면 폐기할 수도 있었다. 핵무기나 핵발전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핵무기나 핵발전은 거대 규모의 연구개발을 통해서 탄생했고 대단히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강력한 통제를 받았고 또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핵기술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중앙집중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위험은 있지만, 사회적인 장치를 통해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간혹 플루토늄이 새어나가거나 밀매되기도 했지만, 이는 핵관련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싸보따주의 결과였지 핵기술 통제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핵무기는 냉전상황에서 가장 위력있는 군사무기였지만 냉전이 끝난 후 미국과 러시아에서 점차 폐기하기로 합의했고, 핵발전도 상당수의 나라에서 국민들의 요구로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0세기의 중앙집중적인 과학기술과 달리 21세기의 생명조작 기술이나 정보통신 기술은 분산적으로 작동하고 더욱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때문에, 통제나 폐기 또는 방향전환이 불가능하게 된 측면이 있다. 물론 분산적인 전력기술의 경우는 다르다. 외딴곳에서 어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에너지 자립을 위해 태양광발전을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수십 가구의 마을에서 풍력발전기를 한두 개 세워 전력 자립을 이루는 것도 사회 전체적으로 문제될 만한 사태를 가져오지 않는다. 대규모의 원자력발전이나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할 경우 발전소의 사고나 전선망의 과부하는 정전사태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거대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해 넓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씨스템은 중앙집중형 네트워크를 낳고, 이는 중심부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에 분산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경우에는 이들 전기생산시설이 전선망에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대규모 정전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전선망에 연결되지 않은 분산적 고립형 발전시설에서 고장이 나면 한 가정이나 한 건물에서 정전이 발생할 수 있지만 다른 가정이나 건물에서는 정전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2001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사회적 혼란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이들 분산적 발전시설들이 전선망에 연결되었다면 몇개의 발전시설이 고장났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생산된 남는 전기가 공급될 수 있기 때문에 정전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성격이 크게 다른 두 가지 형태의 네트워크를 구분할 필요가 생긴다. 하나는 중앙집중형으로 소수의 대형 공급자와 다수의 소형 소비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이다. 여기서는 전기가 대형 공급자로부터 소비자에게 한쪽으로만 흘러가게 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전선망 자체의 형태만은 중앙집중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다수의 소비자 겸 생산자를 다수의 소비자 겸 생산자에 연결해주는 방식이고, 전기는 전선의 양방향으로 흘러간다. 소형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전기가 자급하기에 모자랄 경우에는 전기가 흘러들어오고, 자급하고 남을 경우에는 전기가 흘러나가는 것이다. 21세기의 네트워크형 기술이란 이와같이 분산적인 기술들이 서로 연결되어 양방향으로 소통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술이다.

전기 네트워크에 연결된 분산적 발전시설은 네트워크로부터 떨어져서 고립형으로 된다고 해도 그 작동능력이 거의 손상받지 않는다. 이 경우 네트워크는 발전시설에서 단지 조금씩 남는 전기를 모자라는 곳에 전달해주는 일을 할 뿐, 네트워크 전체가 획기적인 독립 기술로 변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립형 발전시설에서는 축전지만 갖추면 전기가 남을 때 저장했다가 모자랄 때 쓸 수 있으므로, 네트워크에 연결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 수억개의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는 인터넷은 개별 컴퓨터의 기술적 성능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능력을 지닌 기술로 변모한다. 이 경우 네트워크는 거기에 연결된 개별 구성체와 완전히 다른 독자적 기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 네크워크가 현재의 인터넷과 달리 중앙집중형 전선망과 유사한 형태로 형성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컴퓨터들이 모두 수평적이지 않고 성능이 뛰어난 여러 개의 중대용량 컴퓨터와 수많은 소형 퍼스널 컴퓨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 컴퓨터 중앙에 컨트롤 포인트가 존재하고 이것으로부터 여러 연결마디(node)로 연결이 이루어지는 형태는 위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네트워크가 된다. 이 경우 정보전달은 모두 중앙의 대용량 컴퓨터로 된 컨트롤 포인트를 거치게 되므로, 중앙컴퓨터에 이상이 생기면 중앙공급 전기 네트워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전체가 마비되고, 중앙컴퓨터와 연결시켜주는 어느 한 연결마디에서 고장이 발생하면 우회선로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많은 컴퓨터가 네트워크로부터 분리되어 고립된다.

반면에 분산적인 네트워크는 위계적이고 집중적인 씨스템이 아니라, 정보를 주고받고 중개하는 연결마디들이 모두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작동한다. 여기서는 연결마디들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심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정보의 송신선로에 고장이 발생하거나 과부하가 걸리면 정보는 우회선로를 통해서 전달된다.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은 군사적 목적을 지녔지만 분산적인 네트워크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르파넷을 이어받은 인터넷도 완전히 분산적인 네트워크가 될 수 있었다.8

인터넷에는 중앙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컴퓨터는 서로 성능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등한 수준에서 연결된다. 그리고 거미줄 같은 망을 통해서 서로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통신선로가 고장나도 한꺼번에 많은 컴퓨터가 네트워크로부터 분리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우회로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연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분산적 네트워크인 인터넷에서는 영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해저 광케이블이 끊어져도 두 나라 사이의 정보소통이 차단되지 않는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전해져야 하는 정보는 예를 들어 먼저 영국과 유럽을 이어주는 케이블을 통해서 유럽으로 간 다음,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통신선로를 거쳐 최종 목적지에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로를 통과하는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국─오스트레일리아─미국을 연결하는 광케이블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회로를 통과할 경우에는 전달속도가 조금 느려질 뿐 다른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9

전지구적 디지털 네트워크인 인터넷은 하나하나의 컴퓨터와는 완전히 다른 지구 전체에 걸친 독립적 기술이기 때문에, 21세기 인류사회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버릴 것이다. 그것은 산업혁명기에 매뉴팩처의 증기기관이 가져온 것과 같은 종류의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매뉴팩처의 중심기술이었던 증기기관이라는 동력생산 장치가 생산관계와 사회관계를 급속히 변화시키고 기존의 질서를 해체했듯이, 21세기에는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형 기술과 이 네트워크에 복속된 기술이 변화의 동력이 되어 생산관계와 사회관계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내밀한 부분까지도 바꿀 것이다. 맑스(K. Marx)는 공장의 ‘중앙’에서 동력을 생산하고 이것을 공장 안의 모든 개별 기계에 전달해줌으로써 기계와 노동자를 복속시키는 증기기관을 어마어마한 기계적 괴물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소규모의 중앙집중적 기술이었다. 이것들이 전체로서 ‘원격작용’을 하며 “수많은 백성을 불러모으”고 당시의 사회를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듯이,10 네트워크형 기술은 어떠한 것도 촘촘한 기술의 그물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기술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받아들이게 한다.

산업혁명 시대에 맑스가 증기기관에서 느꼈던 악마적 힘은 ‘원격통신’을 하며 거대한 힘을 발휘했지만, 당시에는 이들의 ‘원격통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바깥’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11 맑스 자신도 ‘바깥’이 존재하고 이 ‘바깥’으로 나가면 괴물을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형 기술에서 ‘바깥’은 없다. 인터넷은 모든 것을 그 속에 흡수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연결이라는 형태로 흡수된 사람이 자발적으로 또는 (쏘프트웨어를 통해) 반강제적으로 자신의 은밀한 정보를 그곳에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들은 자신이 인터넷 속 여기저기에서 ‘발가벗겨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인터넷으로부터 자기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인터넷은 ‘바깥’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전기 네트워크와 달리 네트워크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온 사방의 정보를 순식간에 전달하는 통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정보로 환원되는 현 시기에 온갖 정보들이 끊임없이 오고가고 들끓는 인터넷은 전자들만 흘러가는 전기 네트워크와는 그 사회문화적 성격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분산적인 전기 네트워크도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일어나는 변화는 네트워크보다는 분산성에 더 크게 기인한다. 반면에 인터넷이 초래하는 변화는 소형 컴퓨터라는 분산적 기술이 아니라 그것들의 연결망인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4. 분산성의 위험, 네트워크의 불안정성

 

MIT의 컴퓨터공학자 바이~바움은 전세계를 연결하는 컴퓨터 씨스템은 조망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컴퓨터 (네트워크─인용자) 씨스템과 같이 복합적인 씨스템은 인간이 역사의 산물이듯이 개발의 역사를 지닌 것이기 때문에, 이 역사가 없어지면 더이상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12 조망 불가능성은 21세기에 인터넷이 더욱 널리 퍼짐에 따라, 그리고 컴퓨터나 씰리콘 칩을 내장한 주택·가전기기·의복 등이 모두 인터넷에 연결됨에 따라 더 강화될 것이다. 분산적이면서 양방향으로의 소통과 조종이 가능할 뿐 아니라 전체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어느 한 사람이 씨스템의 한쪽 구석에서 나쁜 의도로 장난치는 것이 씨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용자가 해킹을 하거나 바이러스를 유포시키면 네트워크를 거의 마비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상에는 통과 가능한 경로가 수없이 많기 때문에, 해커가 조금만 복잡한 경로를 택해서 공격하면 그를 추적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바이러스 경우에도 그 유포자를 추적해서 밝혀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설령 유포자가 드러난다 해도 바이러스가 이미 널리 퍼진 상태라면 손을 쓰기가 어렵다. 중앙통제기구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작업단위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인터넷은 전체적인 조종과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대신 크고작은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현재 이러한 조작은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에서 해커의 교란활동은 이제 더이상 유난히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해킹기술도 간단하고 적발되기 쉬운 것부터 발견되기 어려운 고도의 기술까지 매우 다양하다. 수많은 컴퓨터가 이미 해킹당했고, 해킹당한 것을 컴퓨터 이용자가 모르고 지나가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인터넷의 통제 불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철저한 보안장치를 갖춘 펜타곤(Pentagon, 미국 국방부)의 컴퓨터까지도 자주 해커의 공격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최근에 펜타곤을 고도의 경계상태로 몰고 간 것은 1998년 2월 이라크의 싸이버 공격으로 오인된 해킹이었다. 당시에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킹은 국방차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듯이 “이라크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전자적 진주만 폭격’의 첫번째 공격”으로 간주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과 FBI의 특수 수사팀이 투입되었고, 이들은 침입자를 찾아내기 위한 작전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과 펜타곤 보안전문가들의 공격차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커들은 2월 한달 내내 방호벽을 뚫고 펜타곤 컴퓨터를 뒤지며 데이터를 빼내갔다. 물론 NSA와 FBI는 침입자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국방차관은 결국 2월 25일에 지금까지 펜타곤 컴퓨터에 대한 공격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는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다.13

침입자를 찾아내는 일이 국가기관에서 가장 유능한 수사팀의 힘으로도 불가능해지자 펜타곤은 스물한살의 민간인 해커관찰자 브라네쎄비치(John Vranesevich)에게 수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었고, 해커들은 결국 그의 손에 의해 밝혀졌다. 해커는 모두 셋이었는데, 두 사람은 미국의 고등학생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18세의 이스라엘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해킹은 이라크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단지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브라네쎄비치가 해커를 찾아내기는 했지만, 그의 수색작업이 완벽한 인터넷 추적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미국 고등학생들은 자기들이 한 일이 국가적인 사건으로 확대되자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에 더이상 찾을 필요가 없었고, 해킹을 지휘한 이스라엘인은 인터넷으로 며칠을 추적한 뒤에 약간의 술수를 써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세 명의 애송이가 저지른 싸이버 공격을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 전문가들이 저지하지도 못했고 이들의 신원을 밝히는 데도 실패했다는 것은 네트워크형 기술의 분산성과 통제 불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또한 전문가팀이 한달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의 민간인이 며칠 만에 해결했다는 것도 인터넷이 얼마나 분산적인가를 드러낸다.14

2000년 2월에 세계적인 온라인 서적판매업체인 아마존이나 포털써비스 업체인 야후가 해커의 공격으로 꽤 오랜 시간 기능이 마비되고, 컴퓨터의 일부를 네트워크로부터 분리하는 수모를 겪은 사건도 전세계적으로 연결된 거대 네트워크가 분산적인 작업에 의해서 얼마나 크게 변형될 수 있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15 분산적 네트워크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극적인 예는 2000년 5월의 ‘아이 러브 유’ 바이러스 사건이다. 필리핀의 한 대학생이 만든 간단한 구조의 바이러스가 유포되어 전세계의 수많은 컴퓨터를 작동불능 상태로 만들고 1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힌 이 사건은 네트워크형 기술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구형 586컴퓨터로 특별한 생각 없이 자신이 고안한 프로그램을 전자우편으로 보낸 것이 몇시간 안에 전세계 수백만대의 컴퓨터로 번져나가 이들 컴퓨터의 중요한 데이터를 파괴하고, 주요 기업체, 대학, 정부기관 등의 컴퓨터와 메일 씨스템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16

더욱 극적인 예는 1999년 코소보전쟁에서 수행되었던 싸이버전쟁이 보여준다. 이 전쟁에서 유고군과 유고 시민들이 나토의 컴퓨터 씨스템을 공격해서 피해를 입히기도 했지만, 싸이버 공격을 훨씬 조직적으로 수행한 쪽은 미국이었다. 미국에서는 유고의 군사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상대방의 통신망 속으로 침투하여 군사용 컴퓨터를 정교하게 조작해서 유고군의 레이다망에 나토 전투기가 출몰한 것으로 보이게 했고, 그럼으로써 유고군이 이들 가상 전투기를 향해 방어미사일을 쏘도록 유도했다. 레이더망 위에서 나토 전투기는 모두 명중되었고 유고군은 자신들이 상당수의 나토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두 대의 전투기만이 격추되었을 뿐이다.17

미군의 싸이버전쟁 담당자들은 이러한 통신망 조작을 통해서 유고의 전화와 전기공급 씨스템까지 교란해 사회 전체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민간부문에 대한 공격은 피했다고 한다. 그런데 네트워크형 기술의 특성은 바로 이와같이 막강한 정보통신망 조작기술을 지닌 미국조차도 분산적으로 수행되는 작은 싸이버 공격에 의해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싸이버 공격으로 인해 미국 정부나 펜타곤이 입은 피해는 정보가 유출되는 정도에 한정되었지만, 싸이버 테러는 미국의 주요 기간시설을 마비시킬 수 있다. 실제로 1997년 여름 미국에서 행해진 실험에서는 펜타곤의 중앙컴퓨터를 비롯한 통신망이 현재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모든 군사적 명령이 컴퓨터를 통해서 내려지는 현 명령체계에서 이는 큰 혼란과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해커가 중앙컴퓨터에 침투해서 네바다 사막에서 텍사스로 이동하여 그곳의 군사폭격 훈련장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임무가 주어진 전투기의 명령을 조작해서 어느 도시 위에다 포탄을 떨어뜨리도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분산적으로 작업하는 해커들은 도시의 전기공급 씨스템을 관리하는 컴퓨터에 침투해서 송전선을 교란해 정전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고, 전화망을 교란해서 통신 두절을 가져올 수 있다. 싸이버 테러리스트들이 병원의 컴퓨터에 침투해서 환자들의 처방 데이터를 교란하면 부적절한 처방으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사망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네트워크형 기술이다.18

미국 정부에서는 싸이버전쟁과 해커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인프라방어쎈터(National Infrastructure Protection Center, NIPC)를 설립하고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지만, 현재의 인터넷을 이용하는 한 완전한 방어체제를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방호벽이나 침투경보 씨스템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싸이버 공격으로부터 정말 안전해지려면(…)인터넷으로부터 분리되고 마이크로쏘프트 윈도우즈보다 더 안전한 유닉스/리눅스 운영체계를 장착한 컴퓨터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만 할 것이다.19 펜타곤이나 인프라의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쏘프트웨어들이 편리하지만 불안정한 마이크로쏘프트 윈도우즈에 맞도록 되어 있고, 이들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한은 외부로부터의 침투를 막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눅스나 유닉스도 완벽하게 안전한 운영체계가 아니고, 새로운 네트워크가 인터넷의 ‘바깥’으로 완전히 떨어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연결마디에서 인터넷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면 해커를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분산적인 네트워크형 기술은 감시에 이용될 때도 중앙집중적인 감시와는 다른 성격, 다른 위험을 보여준다. 오웰(George Orwell)의 『1984년』이나 자먀찐(Evgenii Zamyatin)의 『우리』에 나오는 감시사회는 중앙집중적·전체주의적인 것이었다. 정보사회의 감시사회적인 측면을 표현하는 데 종종 인용되는 벤섬(Jeremy Bentham)의 파놉티콘(panopticon)도 중앙집중적인 것이다. 『1984년』에서는 사방에 존재하는 감시관과 감시장비를 통해서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한다. 파놉티콘에서는 중앙의 감시탑으로부터 모든 죄수의 움직임이 감시당한다. 이처럼 중앙집중적인 감시망에서 개개인은 감시를 당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분산적인 네트워크형 기술의 지배하에서는 국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감시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감시는 인터넷을 통해서, 은밀한 곳이나 공개적인 장소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서, 군사용 또는 민간용 위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정보사회를 파놉티콘에 비유하는 것은 낡은 개념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전자우편은 약간의 해킹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간단하게 열어볼 수 있고, 메일써버 운영자의 경우에는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들여다볼 수 있다. 해커들은 컴퓨터가 켜져 있을 때 거기에 부착된 마이크나 카메라를 조작해서 컴퓨터 사용자의 대화를 엿듣거나 행동을 엿볼 수도 있다. 카메라가 재택 근무자들의 컴퓨터에 부착되면 이것은 고용주의 근무감시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 백화점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고객의 일거수 일투족이 촬영되어 컴퓨터로 전달되고, 컴퓨터의 고객분석 프로그램에서는 카메라로부터 전달된 자료가 고객별로 분류되어 분석된다. 여기서 고객의 구매특성은 낱낱이 벗겨지고, 고객의 구미에 꼭 맞는 상품판매 전략이 세워진다. 그리고 개인별 광고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일은 물론 인터넷 쇼핑이나 써핑에서도 일어난다. 인터넷 상점들은 고객이 쇼핑 싸이트의 어떤 곳을 가장 자주 들르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종류의 상품을 구입하는지를 모두 저장하고 분석해두었다가, 그가 다음에 방문할 때 싸이트 전면에 그의 마음에 들 만한 상품을 내놓는 것이다. 위성 위치추적 씨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 GPS)은 감시 칩을 지닌 대상인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바로바로 알려준다. 이 씨스템은 군대나 감옥 같은 국가기구에서 가장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고 치매 노인의 위치를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기업체에서 영업직원을 감시하거나 부모가 아이들을 감시하는 도구로도 이용될 수 있다.20

전체주의적인 감시사회에서는 감시의 이유가 분명하다. 전체주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감시체계는 중앙권력의 철저한 통제를 받고 있고, 전체적으로 조망될 수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형 기술에 의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감시가 가능해진 사회에서는 누가 누구를 언제 왜 감시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방에서 수많은 감시 주체에 의해서 감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통제와 조망도 불가능하다. 감시는 사업을 위해서, 원한관계 때문에, 사랑 때문에, 범죄예방을 위해서,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재미삼아 등 아주 다양한 이유로 이루어질 수 있고, 실제로 그와같이 감시가 행해지고 있다. 국가는 감시의 독점력을 상실했고, 기업·갱집단·테러리스트·개인 등과 감시의 경쟁상태에 들어갔다. 현재 세계에는 수백만, 수천만 개의 눈이 지상과 공중에서 개인이나 집단을 감시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어떤 사람을 감시하지 않더라도 그에 관한 정보나 그가 남긴 정보는 인터넷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어느 누군가가 그의 정보를 뒤져서 그의 모든 것을 발가벗길 수 있는 가능성도 상존한다. 뉴스그룹에서의 토론, 채팅방에서 나눈 대화, 병원 진료기록, 전자우편 내용 등은 나중에 모두 감시자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 네트워크형 기술은 이미 감시를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인터넷 속에서 고용주가 입사지원자의 과거를 캐내거나, 집주인이 세입자의 과거 이력을 알아내거나, 경쟁관계에 있는 직장동료의 행적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은 자신이 몇년 전에 채팅방에서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 갑자기 면접시험관의 입으로부터 튀어나오게 하고, 전자우편으로 여자친구와 나눈 사장에 대한 험담이 사장의 입으로 직접 되풀이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인터넷에서 이러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생겨나서 성업중인데, 1000달러 정도면 어떤 전자우편주소 사용자의 이름과 거주지 주소, 그리고 그가 채팅방과 뉴스그룹에 남긴 모든 발언을 넘겨받을 수 있다.21 병원의 진료기록도 비밀이 될 수 없다. 진단·처방·수술기록이 모두 병원의 컴퓨터에 저장되고 의료보험회사로 넘겨지기 때문에, 이를 필요한 때에 뽑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는 입사지원자와 승진대상자를 평가하거나 선거 경쟁자를 비방하는 데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다.22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주도의 개인정보 보호나 프라이버시 보호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처지에 놓인다. 네트워크형 기술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트워크형 기술의 또다른 불안정성은 그곳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생성되고 빠르게 유통되고 빠르게 사라진다는 데 기인한다.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엄청난 양의 정보와 지식은 순식간에 생겨났다가 순식간에 없어지고, 어디에 남아 있다 해도 개별 써버에 분산된 상태로 존재한다. 책에 담긴 지식은 모든 책이 한 나라의 국립도서관이나 이에 준하는 기관에 보관되기 때문에, 한곳에 중앙집중적인 형태로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 속의 정보의 경우는 국가나 어느 누가 한곳에 보관하려 해도 생성과 소멸이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보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쌘프란씨스코의 민간 인터넷 정보보관소에서 전세계 10억개에 달하는 웹싸이트의 정보를 저장하고 있지만, 텍스트만 복사하는 데 12개월이 걸리고 그동안 전체 웹싸이트의 90%가 새로 생겨난다면 저장 쏘프트웨어를 매일 새롭게 가동한다 해도 빠뜨리는 정보가 생길 수밖에 없다.23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는 인터넷 속의 정보를 보관할 수 있다 해도 그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디지털로 된 정보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CD롬, 플로피디스크, 자기테이프 등에 완벽하게 저장되기는 하지만, 이것들이 10년 후에도 저장 초기와 똑같은 상태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값싼 CD롬은 웬만큼 잘 보관하지 않으면 10년 안에 망가져버리고, 하드디스크와 자기테이프도 10년만 지나면 군데군데 읽기 불능한 부분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것들은 아날로그 테이프와 달리 그 파손된 자리의 정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비트 하나가 생기면 그것에 뒤이은 모든 정보가 못 쓰게 된다. 이미 1985년에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탐사선 바이킹에 관한 정보를 담은 9년밖에 안된 자기테이프가 못 쓰게 되었고, 모두 120만개 이상의 자기테이프가 부분적으로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일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기상연구소같이 반드시 저장해두어야 할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곳에서는 정기적으로 낡은 자기테이프에 담긴 정보를 새로운 자기테이프에 복사한다. 그러나 이것도 엄청난 시간과 돈이 투여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한다고 수십, 수백만개의 자기테이프 속의 정보를 모두 빠뜨리지 않고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더 절박한 문제는 컴퓨터 하드웨어, 쏘프트웨어, 정보저장 재료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몇년만 지나면 자기테이프와 그것을 읽는 드라이브, 그리고 쏘프트웨어가 새로운 것으로 바뀌고, 그때는 낡은 정보를 읽어내는 일 자체가 중대한 작업으로 변한다. 그렇다고 몇년마다 새로운 기기를 갖추면서 동시에, 폐기시킨 구형 기기와 그에 맞는 쏘프트웨어를 전부 보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24

종이책은 산을 포함하지 않은 종이를 사용하면 오백년 이상 보관할 수 있다. 한두 군데 찢겨진 곳이나 삭은 곳이 생겨도 그 속에 담긴 지식은 거의 변함이 없다. 이들 종이책을 한군데로 모아서 적당한 조건에서 보관하면 거의 모든 지식을 저장할 수 있다. 종이책을 이용한 정보 보관과 관리가 디지털 정보에 비해서 훨씬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군데에 모든 지식을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꺼내서 사용하는 종이책의 전성기는 지났다. 물론 뛰어난 보존성과 읽기 쉬운 장점 때문에 종이책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정보가 네트워크 속에서 유통되는 21세기에 종이책은 지식 보관도구로서의 중심 위치를 잃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그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가 종이책처럼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분류되어 도서관이 제공하는 일목요연한 지식의 씨스템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정보는 어디에나 수없이 많고 아무나 이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정작 필요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트워크형 기술인 인터넷은 조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5. 과학(이론)의 주변화(종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나 펜로즈(Roger Penrose) 같은 물리학자는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대통일이론이 완성되면 진정한 의미의 과학은 더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 통하는 이 이론이 그들의 희망대로 지구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낸다면 과학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되는 셈이다.25 사회생물학을 종합한 윌슨(Edward O. Wilson)은 이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사회과학계나 철학계에 미친 영향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지식을 통합하고 연결함으로써(concilience) 궁극의 지식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가 희망하듯이 이 지식이 우리는 누구이고 왜 지구상에 존재하는가를 설명해주면 그 이상의 근본적인 지식추구는 불필요해질지 모른다.26

21세기에도 과학자들 중에는 모든 것의 이론이나 궁극의 지식에 도달하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과학의 종말’을 가져오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꿈이 실현되어 ‘과학의 종말’이 올지,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연구작업 자체가 과학기술 연구망 속에서 중요성을 잃고 주변으로 밀려나 결국 ‘종말’을 맞을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이루어진 수많은 과학기술적 발견들의 특성과 21세기에 과학기술을 주도할 분야의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궁극적 이론을 찾는 작업은 점차 의미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 이론뿐만 아니라 이론 자체가 과학기술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나 주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예측의 신빙성은 20세기 말에 과학계에서 이루어진 두드러진 발견이나 세간의 커다란 관심을 끈 성취들이 대부분 이론과는 거리가 멀었고, 21세기 과학기술을 뒤바꿀 디지털혁명과 유전자혁명이 이론적 작업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뒷받침해준다.

20세기 말에 과학계뿐만 아니라 세상에 굉장한 충격을 준 과학적 사건은 복제양 돌리의 탄생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20세기 초에 확립된 양자론의 영향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개개인의 피부에 와닿는 충격만을 놓고 보면 돌리가 훨씬 더 강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돌리는 양자론과 달리 거대이론이 아니라 수의학 연구자가 만들어낸 하나의 동물에 불과했고, 정치한 계산과 논리에 근거한 이론의 결과가 아니라 수백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기술적 노력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 기술적 ‘발명’이 체세포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생물학의 정설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생식공학과 생식유전학에 커다란 전기를 가져왔다.

20세기 후반기에 물리학에서 이루어진 발견 중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꼽히고 있고, 1987년 미국 초전도체 학회를 물리학의 ‘우드스탁’으로 만든 베드노르쯔(J.G. Bednorz)와 뮐러(K.A. Müller)의 초전도체 합성도 이론의 뒷받침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27 이들은 초전도체 금속산화물 속의 금속원자를 여러 차례 바꾸어가면서 실험하던 중에 절대영도보다 35도나 높은 섭씨 마이너스 238도에서 초전도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얻게 된 것이다. 이들의 발견은 절대영도에서 23도 높은 온도가 초전도 현상의 한계라고 하는 그때까지의 물리학 이론을 무너뜨렸다. 과학자들의 광대극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만일 사실로 판명이 났다면 돌리 탄생과 맞먹는 대사건이 되었을 화학자 폰즈(Stanley Pons)와 플라이시먼(Martin Fleischmann)의 상온핵융합 실험도 이론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영구운동기관과 같이 물리 이론가들이 보면 터무니없는 것이 실험실에서 시도되었고, 1억도 이상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온 핵융합이 섭씨 수십도에서 이루어졌다는 보도가 한동안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이다.

게놈 해독이라는 바탕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혁명은 그야말로 기술적인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게놈 해독 연구는 유전자나 유전자 조각의 증식, 절단, 절단부위 맞추어보기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작업이 대부분 컴퓨터와 자동분석기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만 다를 뿐 기술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공업생산품을 조립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작업의 최종결과가 중요한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염색체를 구성하는 DNA 가닥의 염기서열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특정 유전자가 위치한 부분을 분명하게 해줄 뿐이다. 게놈 해독과 이에 근거한 유전자나 단백질 해독에 힘입어서 얻어질 수 있는 많은 생물학적 성취들도 이론적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유전병의 치료, 암 치료, 수명 연장, 배아나 수정란의 유전자조작, 줄기세포를 이용한 장기생산, 유전자변형 생물체 개발 같은 모든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시행착오라는 기술적인 학습과 성취 작업이다.

유전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유전자와 유전병의 상관관계를 실험적으로 밝히는 작업이고, 그 다음에는 ‘정상’유전자가 이식된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결함’유전자를 ‘정상’유전자로 대체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론이나 계산은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직 정교한 조작만이 중요할 뿐이다. 인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수명 연장도 어떤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명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실험을 통해서 찾아내고 이들 유전자와 텔로미어(telomere, 염색체 말단에 존재하면서 세포가 영구히 분열하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하는 유전자)를 정교하게 조작하는 것이다. 수십년 후면 인간의 수명을 수백년 늘리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생명공학자들이 신봉하는 ‘이론’이란, 과학적 이론의 지위에는 도달하기 어려운 ‘인간의 수명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은 아무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28 수정란이나 초기 배아의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그 핵 속에 유전자 팩이 담긴 24번째 염색체쌍을 주입해서 디자인된 아기를 만들려는 것도 모두 정교한 기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생물학을 뒤흔들 새로운 이론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다윈의 진화이론, 멘델의 유전법칙, 진화이론과 유전법칙을 종합한 새로운 종합이론, 그리고 20세기 중반에 확립된 분자생물학으로 유전자혁명의 이론적 작업은 거의 마무리된 셈이다.

디지털혁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양자론도 20세기 중엽에 거의 완결된 것이다. 컴퓨터칩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해서 2020년경이면 컴퓨터가 인간 두뇌와 맞먹는 기억능력이나 계산능력을 갖게 된다는 예측은 특별한 이론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기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29 그즈음이면 작아질 대로 작아진 칩 부품 하나에 담길 수 있는 전자의 수가 줄어들어서 극소화가 더이상 진행될 수 없는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할 터인데, 이를 해결하고 컴퓨터의 성능을 더 높이기 위해서 획기적인 이론이 출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존 컴퓨터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엄청난 용량을 지닐 것으로 예측되는 양자컴퓨터의 이론적 바탕을 이루는 양자론은 20세기 초에 나온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원자가 회전하고 있고 그 축의 방향이 동시에 위와 아래를 향할 수 있다는 양자론의 기본적인 발견을 계산에 응용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양자컴퓨터가 성공적으로 개발될 수 있는 관건은 어떤 특별히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계산에 이용되는 원자를 외부로부터의 간섭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 속에 집어넣고 조작하는 극도로 정교한 기술이다.30

나노기술이나 나노로봇의 경우에도 그것의 가능함을 증명한 파인먼(Richard Feynman)이 기본이론을 제공한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파인먼의 증명이란 원자를 한 개씩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물리학 원리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노기술의 성공 여부도 인간이 원자 수준의 작업을 볼 수 있고 실제 작업할 수 있는 능력, 즉 기술개발에 달려 있다.31 또한 빌 조이(Bill Joy)가 염려하는, 인간보다 지능이 훨씬 높은 로봇이 인간을 밀어내버리는 상황도 대단한 이론이 제시되어야만 올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한 세계를 열어주는 열쇠는 성능이 굉장히 뛰어난 컴퓨터 하드웨어와 그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쏘프트웨어 기술이다. 이러한 세계의 도래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이론에 근거해서 자신의 견해를 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란 단지 현재 하드웨어와 쏘프트웨어가 모두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기에는 미흡하고, 앞으로 양자컴퓨터같이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가 나오더라도 그것에 맞는 쏘프트웨어를 만들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2 여기서도 이론이 아니라 기술적인 한계가 문제이다.

정보통신기술·유전공학과 더불어 우리 삶을 뒤흔들 것으로 여겨지는 신경과학의 발달도 거의 기술적인 조작의 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신경과학의 주된 연구대상인 두뇌는 정신이 깃들여 있는 과학 저편의 영역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두뇌 연구자들은 모든 정신현상을 두뇌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작용의 결과로 생각한다. 두뇌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인간의 행복과 슬픔, 즐거움과 아픔, 그리고 의식과 관련된 두뇌작용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두뇌 연구자들은 염색체 속의 DNA 염기서열을 자동화기계로 분석하듯이 두뇌 또한 영역을 잘게 나누어서 분석하여 지도를 만들고, 이 지도 속의 부분들이 어떤 정신작용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밝혀내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은 특정한 이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두뇌를 수많은 영역으로 나누어서 샅샅이 스캔할 수 있는 장치, 스캔된 정보를 코드화해서 저장하는 대용량 컴퓨터, 그것을 3차원 이미지화해서 판독하는 기술 등이다.33 이러한 작업을 거쳐 두뇌의 작용이 해명된 후, 그 다음 단계로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작업이나 싸이보그적 인간을 만드는 것도 모두 기술의 영역에 속하지 여기에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지는 않다. 물론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작용과 인간의 정신적·감정적 행위를 연결해주는 설명은 정신작용의 이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 설명이 두뇌에 관한 거대이론으로 정립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과학기술에서 이론의 역할이 아주 주변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여전히 거대이론을 꿈꾸는 연구자들은 존재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론으로써 다시 한번 양자론이나 상대성이론 또는 유전이론이 가져온 것 같은 사회적·정신적 충격을 불러일으킬 것을 희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른바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 완결되어 대통일이론으로 자리잡는다 해도 그것은 물리학의 한 분야인 입자물리학 연구자 중에서도 소수 이론가들의 지적 유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에 등장한 표준이론이 통일이론에 대한 환상을 되살려놓았지만, 그것의 가장 큰 성과는 거대 입자가속기 붐을 일으켜 입자물리학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입자 사냥에 나서도록 한 것뿐이다. 여러 물리학자들이 표준이론에서 예측하는 입자들을 발견해서 노벨상을 받기는 했지만, 이들의 연구에 대해서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조차 무의미하다는 평가가 있다는 사실은 거대이론의 추구가 21세기 기술혁명의 시대에는 과학기술에서 미미한 역할밖에 못하는 주변적인 것으로 추락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정보통신기술·유전공학·신경과학·나노기술 같은 혁명적인 과학기술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이미 모두 발견되었다. 21세기에 인간사회의 물질적·정신적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은 바로 이들 기술이지 새롭고 획기적인 이론은 아니다. 21세기 과학기술로 초래될 혁명적 변화는 끊임없는 기술개발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6. 맺음말

 

과학기술이 현실세계의 주도원리로 떠오른 이 시대에 인류가 좀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전체를 조망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따라서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21세기 과학기술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분산적 네트워크형 기술로서 전세계에서 누구나 끼여들어 조작할 수 있는 인터넷을 적절하게 조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생명공학의 경우에는 시민들의 합의나 법 제정을 통해서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의 강한 분산적 성격 때문에 제대로 통제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 같다.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형 기술이 분산적인 조작이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터넷 속에서의 해커나 싸이버 테러리스트의 활동으로 인해 국가체제가 무너지거나 인터넷이 전면 마비되는 전복적인 사태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인터넷의 조망 불가능성과 중앙 컨트롤 포인트의 부재 때문에 교란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전체적인 전복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네트워크의 개별 구성분자는 자유롭고, 유연하며, 신속하게 변신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여서 만드는 네트워크는 해커 등의 공격으로 약간 흔들리기는 해도 전체가 흔들리는 일은 없다. 전체의 중심, 감시와 통제의 중심이 없는 씨스템에서는 공격을 통해 권력 전체를 빼앗을 중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34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지혜로운 활용이란 성취될 수 없는 것인가? 21세기 과학기술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서 과학기술 전체를 전일적이고 생태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카프라(Fritjof Capra) 식의 시도는 성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할 것 같은데, 이때 필요한 지혜는 원칙적으로 “기술과 사람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달라”질 때35 얻어지겠지만, 구체적인 실천의 차원에서는 과학기술 전체와 개별 과학기술의 성격을 규명해가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개별 과학기술 중에는 본래부터 민중의 해방에 기여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것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닌 것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에너지 기술 중에서 핵발전 기술은 민중이 활용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면을 가지고 있지만, 태양광 발전기술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은 민중에게 아주 친근하고 해방적인 것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 기술에 대한 접근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기술을 선택하고 부적절한 기술을 배제하는 것이다.

두 가지 에너지 기술은 어느 하나를 배제하더라도 전기생산이 크게 교란되지 않기 때문에 둘 사이의 선택과 배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인터넷과 같이 대단히 복잡하고 지구 전체에 걸쳐 있는 기술은 대안적인 기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선택과 배제가 불가능하다. 이 경우 기술의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이 대단히 중요해지는데, 이러한 성격 규명이 선행되어야만 이를 활용해서 최대한의 해방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은 인터넷보다 분산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고 그러면서도 파괴적일 수 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활용하기가 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격을 규명하고, 대안적 기술을 모색하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적의 활용방법을 찾아나가는 작업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 Robert Jungk, Die Große Maschine, München: Heyne 1991 참조.
  2. Thomas P. Hughes, Rescuing Prometheus, New York: Vintage Books 2000, 69〜139면; 프리먼 다이슨 『상상의 세계』, 신중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0, 53〜57면 (원제 Imagined Worlds, Havard University Press 1997); Michael Riodan & Lillian Hoddeson, Crystal Fire, New York: Norton 1997 참조.
  3.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와 같은 퍼스널 컴퓨터가 등장하게 되는 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대해서는 Steven Levy, Hackers, Penguin 2001 참조.
  4. 1972년 인텔의 컴퓨터칩 속에는 트랜지스터가 3500개 들어갔지만, 1997년에는 750만개가 들어갔다. Ray Kurzweil, The Age of Spiritual Machines, New York: Viking Penguin 1999, 21면.
  5. Freeman J. Dyson, The Sun, The Genome, The Interne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92〜93면.
  6. Hooman H. Rashidi & Lukas K. Bühler, Grundriss der Bioinformatik, Heidelberg 2001 참조.
  7. 컴퓨터로 찾아낸 유전자가 실제 유전자인지는 실험을 통해서만 증명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실험만으로 유전자를 찾아내고 확정하는 작업은 대단히 느리기 때문에 현재의 유전공학 발달수준에 비추어볼 때 별 의미가 없다. 인간 유전자의 개수에 관한 유전공학자들의 논쟁에 관해서는 Spiegel Online(www.spiegel.de) 2001년 6월 9일자를 참조할 것.
  8. Thomas P. Hughes, 앞의 책 273면.
  9. Klaus Bachmann, “Järger im Datendschungel,” Geo Wissen 2001년 27호, 51〜59면; Dirk Asendorpf, “Neue Kabel und viel Meer,” Die Zeit 2001년 27호 참조.
  10. 김상환 「테크놀로지 시대의 동도서기론」, 『창작과비평』 2001년 봄호 72면.
  11. 같은 글 73〜74면. 김상환은 이 글에서 원격통신과 ‘바깥’이라는 말을 은유적으로 사용한다.
  12. Joseph Weizenbaum, Wer erfindet die Computermythen?, Freiburg: Herder 1993, 123면.
  13. Bryan Burrough, “Der Hacker des FBI,” Spiegelreporter 2000년 12월호.
  14. 같은 글
  15. Hennig Engeln, “Angriff aus Datennetz,” Geo Wissen 2001년 27호, 63〜64면. FBI 등의 미국 수사팀은 마피아보이라는 별명의 캐나다 소년 혼자 모든 공격을 계획하고 수행했다고 발표했지만, 브라네쎄비치 등의 보안전문가들은 세 명의 해커가 팀을 이루지 않고는 그러한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Bryan Burrough, 앞의 글 참조.
  16. Klaus-Peter Kerbusk, Michaela Schiessl, Hilmar Schmundt, “Die Stille war ohrenbetöubend,” Der Spiegel 2000년 19호; Dinah Deckstein u.a., “@ttentöter im Netz,” Der Spiegel 2001년 20호; Jürgen Kremb, “Ein stiller Schüler,” Der Spiegel 2001년 20호 참조; Hennig Engeln, 앞의 글 64면.
  17. Rainer Paul, Jürgen Scriba, “Die Fronten sind überall,” Der Spiegel 1999년 37호. 그러나 보안전문가 중에는 이 보도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Spiegel Online(www.spiegel.de) 2001년 6월 29일자 참조.
  18. John Arquilla, “The Great Cyberwar of 2002,” Wired 1998년 2월호; Rainer Paul, Jürgen Scriba, 앞의 글.
  19. Spiegel Online(www.spiegel.de) 2001년 6월 29일자.
  20. Reg Whitaker, The End of Privacy, New York: New Press 1999, 80〜95면; Bert Beyers, Die Zukunftsmacher, Frankfurt: Campus Verlag 1999, 127〜32면; Hennig Engeln, 앞의 글 63〜67면; Simson Garfinkel, Database Nation, Sebastopol: O’Reilly 2000 참조.
  21. Heinz Horeis, “Der Hintergangene User,” bild der wissenschaft 2001년 4월호 72〜78면; Rainer Paul, “Schnüffler im Datenschatten,” Der Spiegel 2000년 26호.
  22. Simson Garfinkel, 앞의 책 125〜53면.
  23. “Die Website der frühen Jahre,” Geo Wissen 2001년 27호 165〜66면.
  24. Hilmar Schmundt, “Im Dschungel der Formate,” Der Spiegel 2000년 26호.
  25. 존 호건 『과학의 종말』, 까치 1997, 7〜9, 107〜109면.
  26. E.O. Wilson, Die Einheit des Wissens, München: Goldmann 2000 참조. 원본은 Conc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New York: Knopf 1998.
  27. Gerald Holton, Hasok Chang & Edward Jurkowitz, “How a Scientific Discovery Is Made: A Case History,” American Scientist 1996년 7/8월호.
  28. Tom Kirkwood, Time of Our Lives,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52〜62면 참조.
  29. Ray Kurzweil, 앞의 책 3면.
  30. 같은 책 110〜14면; Jürgen Scriba, “Rechnen mit Atomen─Der Computer der Zukunft,” Der Spiegel 2000년 25호; 미치오 카쿠 『비전 2003』, 작가정신 2000, 196〜202면.
  31. 미치오 카쿠, 앞의 책 460면.
  32. Jaron Lanier, “Aus den Ruinen unserer Zeit wächst ein zweiter Kapitalismus,” Frank Schirrmacher(hrsg.), Die Darwin AG, Köln: Kiepenheuer & Witsch 2001, 90〜97면.
  33. Stefan Klein, “Die Zukunft des Hirns,” Spiegelreporter 2000년 12월호.
  34. 전체 사회에 대해서도 그 하위 씨스템이 아무리 들끓고 자유롭다 해도 이들이 엮여서 만들어내는 질서는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유사한 진단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Zygmunt Bauman, Liquid Modernity, Cambridge: Polity Press 2000, 4〜6면 참조.
  35. 백낙청 「다시 지혜의 시대를 위하여」, 『창작과비평』 2001년 봄호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