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 장르문학과 한국문학

 

21세기 일본소설의 경계와 탈경계

‘나’의 말이 자리하는 곳

 

김항 金杭

문학평론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역서로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 2000』 『근대초극론』 등이 있음. ssanai73@hotmail.com

 

 

1. 시부야를 거닐다

 

시부야(澁谷)의 넓은 역앞 광장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도로 쪽으로 눈을 돌리면 유명한‘스크램블 교차로’가 보이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번갈아가며 도로를 점거한다. 광장에서 이 교차로를 건너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토오꾜오 풍경이 나올 때 단골로 등장하는 몽환적인 디스플레이가 밤을 밝히고 있는데, 화면을 보며 길을 걷다 보면 클랙슨 소리에 놀라거나 앞사람 신발을 밟기 십상이다. 이렇게 길을 건너면‘쎈터거리’라 불리는 젊은이들의 유흥가로 이어진다. 이 요란한 거리를 지나 길을 하나 건너면 거기서부터는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조금 전에 지나온 현란하고 소란스러운 유흥가는 온데간데 없고, 거리는 차분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다. 그곳은 빠리의 까페‘되 마고’(Les Deux Magots) 토오꾜오 분점이 있는‘분까무라(文化村)’가 자리한, 토오꾜오에서도 유수의 부자동네인‘쇼오또오(松濤)’의 초입인 까닭이다.

시부야를 거닐다 보면, 이렇듯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지러운 공간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묘사하는 것은 진부한 도시론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가설 혹은 직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이 공간이 바로 현대 일본문학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부야거리가 현대 일본문학이 마주하고 있는 경험적 기반이라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현주소라 함은 시부야라는 여러 의미에서 혼성적인 공간이 현대 일본문학판 자체의 알레고리로 드러나고 있다는 뜻이다. 역앞 광장에는 다양한 계층, 세대, 인종이 뒤섞여 있다. 이들은 각각 쎈터거리로, 분까무라로 혹은 약간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도오겐자까(道玄坂)의 뒷골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역으로 돌아온다. 이 뒤섞임과 나뉨의 동시적 공존이야말로 현대 일본문학판을 특징짓는 형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부야와 문학판의 겹침은 단순한 형상의 겹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뒤섞임과 나뉨이라는 이 알레고리적 형상의 진정한 중요성은 바로 두번의 전쟁에서 패한 후 일본문학이 돌아온 곳이 언제나 시부야였다는 역사성 때문이다.

“전쟁은 끝났다. 특공대의 용사는 이미 암상인이 되었고, 전쟁 미망인은 어느새 새로운 그이로 인해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으로 되돌아온 것뿐이다. 인간은 타락한다. 의인(義人)도 성녀도 타락한다. 그것은 막을 수 없을뿐더러, 막는다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살고, 인간은 떨어진다. 그것 외에 인간을 구하는 편리한 길은 없다.”(사까구찌 안고坂口安吾 「타락론」, 1946) 안고는 패전 직후 토오꾜오 곳곳에 우후죽순으로 난립하는 암시장을 보며 이렇게 적었다. 그곳은 추락할 데까지 추락해야 비로소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장소였다. 일본 전후문학계의 거장 이시까와 준(石川淳)이 자신의 소설세계를 구축한 곳도 바로 이 암시장이었는데, 시부야는 우에노(上野)에 버금가는 암시장이 형성된 곳이었다. 원래 시부야는 고급관료와 장교들이 주로 사는, 도시 중산층의 조용한 거주지였다. 그런 곳에 암시장이 형성된 것은 이곳이 요꼬하마로 이어지는 중산층 교외주택지의 종착역이었기 때문인데, 현재 시부야 쎈터거리의 상가구획은 새끼줄로 표시된 암시장의 임시구획과 거의 일치한다. 아마 현재의 소란스러움은 암시장 이래의 것으로, 전후문학은 이 소란 속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이미 전후 일본문학은 수많은 정체 모를 사람들이 모여드는 암시장에서 탄생했고, 위험함과 음험함으로 가득 찬, 하지만 그곳 없이는 삶이 불가능한 이 장소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혼성적 공간이야말로 전후 일본소설의 숨은 기원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편 1994년 아베 카즈시게(阿部和重)라는 소설가가 데뷔하면서 일본 문학계에서는‘J문학’또는‘시부야계 문학’이라 불리는 장르가 등장한다. 평론가 아즈마 히로끼(東浩紀)가 말하듯이 “90년대 시부야를 거니는 일은 이곳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는 장소를 헤매는 일이었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일”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이 장소를 피해간 반면, 아베 카즈시게는 “이 혼란과 분열 한가운데서 살기 위해 소설을 썼다.”1 시부야가 일본문학에서 중요한 장소로 부각된 것은 이 시기부터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은 이른바 버블경제의 호황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토오꾜오 전체가 주연(酒宴)의 뒷자락을 붙잡고 어찌할 줄 모를 때였다.‘J문학’은 이때 등장했다. 버블경제가 한창일 때 주연이 끊이지 않았던 시부야는, 그때까지 뒷거리에 숨어 있던 폭력과 약물만이 남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아베 카즈시게는 이 장소에서 현대 일본의 리얼리즘을 발견했고, 눈을 돌리기는커녕 이 폐허에서 소설의 언어를 주조해냈다. 그런데 이 언어는 그때까지 일본소설을 규정해왔던‘나’의 목소리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이 소설의 언어는J-POP, 게임, 휴대폰을 매개로 한 혼성적인 언어였으며, 고도성장기 이후 처음으로‘폭력’과‘빈곤’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90년대 이후 일본 현대문학과 시부야는 이렇게 조우했다. 즉 고도성장기부터 버블경제의 호황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이른바‘경제전쟁’에서 승리한 듯했는데, 이 전쟁에서 패배한 후 문학의 언어는 다시금 시부야로 돌아온 것이다.

2차대전에서의 패배와 경제전쟁에서의 패배, 이 두가지 패전 이후 문학의 언어는 언제나 시부야로 돌아왔다. 이때 시부야란 암시장의 구역 분할에 쓰인 새끼줄로 상징되듯, 어떤 경계가 그곳에서 지워짐과 동시에 비롯되는 혼성적 장소라 할 수 있다. 특히 일본 근대문학의 역사에서 보자면, 이 경계의 (재)분할은 언제나‘나’와 관련되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사까구찌 안고가 철저하게 떨어지는 것만이 인간이 구원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을 때, 이는 타이쇼오(大正)시대부터 일본 순수소설의 본령이던‘사소설(私小說)’의 전통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사소설의 작가이자 주인공‘나’는 하나의 독립된 개인으로서, 스스로에게 충실한 도덕적인 태도로 시적 정신에 기초한 자기고백을 이루어내는 주체였는데, 사까구찌 안고는 이러한 투명하고 도덕적인 인간이 아니라 타락할 데까지 타락한 인간을 문학의 주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시까와 준과 더불어‘육체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고, 일본 순수문학은 이 새로운 장르 앞에서 스스로의 경계선을 재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나’의 말은 자기도덕과 시적 정신이 아니라,‘육체’와‘욕망’위에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아베 카즈시게도 이‘나’를 문제삼았다. 요시모또 바나나(吉本ばなな) 등으로 대표되는 80년대 후반의 작가들은 세상이 나와 관계없이 잘 돌아간다는 전제하에, 자신의 투정과 행복만을 고백해왔다. 그러나 아베는 이러한 세대들이 애써 외면한 외부세계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아베의 방식은 기존 소설과는 달랐는데, 그는 외부세계나 타인을 철저히 컴퓨터게임, 특히 액션게임 속의 배경과 캐릭터로 해석했고, 이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소설을 쓰는 자신마저도 하나의 롤플레잉게임 속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시부야에 둥지를 튼 이유는 이곳이 바로 이 게임적 공간에 다름아니었기 때문이다.

  1. 阿部和重 『インディヴィジュアル·プロジェクション』, 新潮文庫 2000, 2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