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중혁

김중혁 金重赫

1971년 경북 김천 출생.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이 있음. penguinnews.net@gmail.com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폭발음을 들으면서 2021394200은 우주를 생각했다. 그가 설치한 폭탄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건물의 한 층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후 그 파편을 우주 저 멀리 보낼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는 파편이 우주로 날아가지 않기를 바랐다. 우주는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해져 있으니 더이상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폭약을 조금 덜 쓸걸 그랬나 싶은 마음이 뒤늦게 들었다.

그는 자동차 안의 거울을 보았다. 두 블록 뒤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로가 긴 사각형 거울이었기 때문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2021394200은 거울을 시계방향으로 90도 회전시켜보았다. 그래도 연기의 꼭대기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파편이 이미 우주에 닿았는지도 몰랐다. 우주에 도착했다면 되돌아오긴 글러먹은 것이다. 행성의 룰은 되돌아오는 것이지만 우주의 룰은 떠도는 것이니까. 그는 내비게이션을 켜서 두번째 목표물의 주소를 입력했다. 한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2021394200은 거울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시속 200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달리던 도중 오후 5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2021394200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2021394199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소리 내어 발음해보았다.

 

삼십구만 사천백구십구.

 

단번에 세개의 숫자가 바뀐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숫자로 된 자신의 이름이 좋았다. 한시간에 1씩 숫자가 줄어드는 게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은 이유 때문에 숫자로 된 이름을 싫어하지만 2021394199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신체 어딘가가 지워지는 듯한, 옅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얼음을 가득 채운 위스키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자신이 좀더 부드러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특별한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그는 앞으로 삼십구만 사천백구십구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깜빡거렸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라는 신호였다. 2021394199는 고속도로의 표지판을 확인한 후 오른쪽 길로 빠져나갔다. 도로 위는 안개로 가득했다. 뿌연 안개 속에는 붉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뿐이었다. 나선형으로 휘어진 도로를 따라가는 게 힘겨울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의 안개등이 비치는 3미터 정도밖에는 볼 수 없었다. 허공에서 희뿌연 안개가 구름처럼 펄럭였다. 2021394199는 잠깐 눈을 감아보았다.

 

모든 곡선은 직선이야.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돼.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안개가 더욱 짙어져 있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오늘밤 안으로만, 아침이 되기 전까지만 모든 작업을 끝내면 됐다. 작업을 하는 데는 안개가 짙은 편이 나을지 몰랐다. 2021394199는 길가에서 식당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안개 속에서도‘커피’라는 네온싸인 글자는 또렷하게 보였다.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파는 식당이었다. 불빛의 크기를 보고 작은 식당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내는 아주 넓었다. 30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는 술을 팔기도 했다. 손님은 20명 정도. 모두 안개를 피해 온 사람들이었다. 2021394199는 치킨 쌘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는 어디까지 가세요?”

열여덟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그에게 물었다. 머리에는 낡은 야구모자를 쓰고 얇은 긴팔 후드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어찌나 몸이 말랐는지 옷걸이에다 옷을 걸어둔 것처럼 보였다. 2021394199는 감추어진 여자아이의 몸을 상상해보았다. 어깨와 쇄골 부분은 옷걸이가 대신하고 있고 척추와 갈비뼈 대신에 두꺼운 철사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몸을 상상했다. 그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뼈만 남은 시체의 몸이었다. 야구모자 아래로 보이는 얼굴 역시 기괴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마에서 턱까지 수십개의 흉터가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작은 촌충들이 스멀거리며 얼굴을 기어다니고 있는 듯했다. 아니면 그림 실력이 형편없는 누군가가 송곳으로 낙서를 해놓았든가. 왼쪽 뺨에는 10쎈티미터 정도의 두꺼운 흉터가 세로로 패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모든 흉터의 우두머리 같았다. 여자아이는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넌 어디까지 가는데?”

“제가 먼저 물어봤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디까지 가는데?”

“몰라요. 다 처음 들어보는 장소뿐이에요.”

“네가 원하는 곳이 어디야?”

“아저씨가 먼저 얘기하세요. 내가 먼저 얘기하면 아저씨가 아무렇게나 다른 이름을 댈 수도 있잖아요.”

“내가 왜 다른 이름을 대지?”

“저를 자동차에 태워주지 않기 위해서요.”

“그럼 내가 왜 널 자동차에 태워야 하는데?”

“태워달라는 얘긴 하지 않았어요. 목적지가 같은 방향이라면 그때 태워달라고 말하겠죠.”

“우린 아마 다른 방향일 거야.”

“어째서요?”

식당의 여직원이 치킨 쌘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왔다. 치킨 쌘드위치는 보기만 해도 입맛이 떨어질 정도였다. 식빵은 누렇게 변질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낀 양상추는 녹색이 아니라 노란색에 가까웠다. 2021394199는 커피를 마셨다. 커피 맛도 형편없었다. 2021394199는 막대봉지에 든 설탕을 커피에 부었다. 설탕이 새까만 커피 속으로 유성처럼 쏟아졌다. 그사이 여자아이는 2021394199의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어째서 다른 방향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2021394199는 찻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다. 검은 수면에 동그란 파문이 일었다. 까만색 커피 한가운데 있던 하얀 거품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너 혹시 블랙홀 체험관에 가본 적 있니?”

“아뇨.”

“모두들 블랙홀 체험관을 싫어하지만 난 한달에 한번 꼭 거길 가. 가보면 알겠지만 거긴 무시무시한 곳이야. 한번 가본 사람은 다신 안 가.”

“왜요?”

“겁나니까. 겁나게 무서우니까. 아마 오줌이 찔끔 나올걸.”

“아저씬 거길 왜 좋아하는데요?”

“거기엔 모든 게 있거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내 눈엔 별의별 것들이 다 보여. 죽음, 우주, 별, 탄생, 혼돈, 살인, 심지어 쎅스하는 사람들까지 보여. 아니, 쎅스하고 있는 내가 보여.”

“오르가슴 같은 걸 느끼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고.”

“나한테 그 얘길 왜 하는 거예요?”

2021394199는 여자아이의 손목을 가리켰다. 뼈밖에 남지 않은 손목에 커다란 시계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너한텐 시간이 별로 없구나. 너도 그걸 알고 있고…… 얼굴의 흉터도 그 때문에 생긴 건지도 모르지. 억울해서, 화가 나서, 웃고 있는 네 얼굴을 지워버리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멍청했어. 너는 거울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겠지.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 나는 이제 곧 죽는다.”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마세요.”

“블랙홀 체험관에 가보면 도움이 될 거야. 인생을 압축해서 체험할 수 있으니까. 구질구질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그편이 훨씬 나을 수도 있지.”

“누가 죽는다고 그래요.”

“난 시력이 좋은 편이야. 앞으로 100시간 남았구나. 그 정도 시간이면 뭐라도 할 수 있어. 이상한 아저씨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남자친구랑 쎅스라도 한번 더 하는 게 낫지 않겠냐.”

“웃기고 있네. 뭔가 잘못돼서 그러는 거야.”

“잘못된 건 없어. 그냥 네가 운이 없는 것뿐이야. 카드를 잘못 받은 거지. 혹시 쎅스할 만한 상대가 없는 거냐? 남자친구가 없으면 내가 소개해줄까?”

“난 안 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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