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표명희 表明姬

1965년 대구 출생. 2001년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pyo7788@hanmail.net

 

 

 

3번 출구

 

 

“얘, 또 늦을라. 빨리 가거라.”

엄마는 나를 떠밀어내고는 재빨리 현관문을 닫아버린다. 숨겨놓은 거울을 꺼내놓고 엄마는 분명히 느긋하게 화장을 할 것이다. 며칠 전 내가 의료보험증을 깜빡해서 다시 집에 들렀을 때도 엄마는 무엇을 숨기느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코 주변에 밥풀처럼 묻은 크림자국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빈약한 식탁 앞에서, 아빠의 명퇴로 절반이나 줄어든 수입을 늘상 불평하면서도 엄마 얼굴이 섭취하는 피부 영양식은 그대로다. “내가 이 나이에 뭐, 사치하고 싶어 그러는 줄 알아요? 혼기 찬 딸년을 두고 있는데 멍청하게 우리집 사정을 얼굴에 써붙이고 다녀야겠냐구요.” 갑자기 기운 집안형편 탓에 괜찮은 사윗감을 놓친 여고동창의 예를 들어가며 엄마는 화장에 대해 나를 핑계삼았다. “낼 모레면 너도 서른이야, 서른.” 그러면서 엄마는 번번이 화살을 내게 돌리며 닦달한다.

골목을 나서자 늦가을 햇살이 언덕길 위로 쏟아진다. 모퉁이 전봇대에 기대어 있는 쓰레기더미 주위를 개 한마리가 어슬렁거린다. 며칠 전부터 동네 골목을 배회하던 놈이다. 내가 가까이 가자 놈은 나를 한번 쓰윽 훑고는 다시 쓰레기봉투에 코를 들이박으며 먹을 걸 뒤지기 시작한다. 나라는 존재를 싹 무시하는 품새가 꼭 의사 장을 연상시킨다. 장은 나랑 한참 승강이를 하다 말이 막힌다 싶으면 간호사를 불러서는 딴 얘기를 꺼내거나 다른 차트를 뒤적거렸다. 수술 이후 내가 양쪽 윤곽선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다른 부위와 달리 얼굴 뼈는 다시 손댈 경우 치명적이에요.” 그는 무심하게 재수술이 불가능한 이유만 되풀이했다. 십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접고 퇴직금을 몽땅 챙겨서 병원으로 달려온 사람의 심정이 얼마나 절박한지 그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성형수술에다 퇴직금을 고스란히 쏟아붓고 온 그날, 딸을 보고 엄마는 아연실색했다. “아아니, 너 정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애니? 지금 우리가 어떤 형편인지 아냐구! 네 아버지는 명퇴자야, 명예퇴직자. 배고픈 거 잘 참으라고 달아주는 그 명예 말야.” 엄마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불만을 나한테 왕창 뒤집어씌울 기세였다. 스물다섯번째 내 생일을 앞두고 나를 들볶던 일 따윈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그날 얇게 썬 오이를 얼굴에 잔뜩 붙이고 있던 엄마가 건넨 말은 뜻밖이었다. “이번 생일선물로……” 반투명의 오이는 얌전히 붙어 있었다. “쌍꺼풀 수술 어떠니?” 너무 크게 말한 탓인지 인중에 붙어 있던 반쪽짜리 오이가 떨어졌다. 그 제안은 유전자로 물려주지 못한 걸 의술로라도 보상하겠다는, 딸의 혼기까지 계산에 넣은 투자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춘기 때부터 외모는 나의 유일한 콤플렉스이긴 했지만 엄마의 그런 제안과 맞닥뜨리면 언제나 나는 완강해졌다. 엄마는 아직도 자신이 막내이모 정도의 외모만 타고났어도 명퇴당하는 남편 때문에 노후 걱정하는 삶에 처해지진 않았을 거라는, 허황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엄마의 제의에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나 ‘신데렐라’처럼 타고난 외모로 운명이 한순간에 바뀌어버리는, 소위 ‘한탕주의’ 환상에 젖게 만드는 동화를 무척이나 혐오했다. “네가 의대만 들어갔어도 내가 이러겠니?” 엄마의 흥분한 목소리에 얌전히 붙어 있던 오이 비늘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엄마에게는 좌절된 꿈의 앙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였다. 그랬던 엄마가 성형수술로 사라진 퇴직금 앞에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목에 파란 핏줄을 세우는 것이었다. “난데없이 직장을 때려치우더니, 그것도 부족해 그래, 피 같은 퇴직금을 그 잘난 의사들 아가리에다 고스란히 처넣고 와?” 내가 의대 진학을 포기했을 때처럼 엄마는 좀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 같은 의사에 대한 골 깊은 적대감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성형이란 미와 과학이 어우러진 절묘한 예술이지요.” 포토샵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의사 장의 자부심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물감이나 붓 한자루 없이 클릭 몇번으로 모나리자의 미소를 자유자재로 변화시켜 제2, 제3의 모나리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킨토시 앞에서 탄성을 연발했던 나처럼, 장 역시 사람들의 눈썹을 짙고 선명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자신의 창조력에 번번이 감탄했을 것이다. 상담을 마친 장은 내게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파인더로 옮겨가는 그의 눈에서 나는 얼핏 박실장을 떠올렸다. 그윽한 목소리에 침착한 말투, 뼛속 깊이 밴 예의와 안경 너머로 비치는 날카로운 눈빛이 박실장을 꼭 빼닮았다. 그는 우리 부서의 우두머리이자 사내(社內) 디자이너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광고 디자인이란 생선회 같은 거야.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구.” 내가 실직자를 소재로 한 광고시안을 제출했을 때였다. 명퇴 후 곧잘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계획을 들먹이며 독재시절의 향수에 젖어 나날이 퇴행하고 있는 아빠에게서 얻은 모티프였다. ‘고달픈 오늘로 혹 당신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는 내 카피의 진지함과 시의성은 인정하면서도 공익광고 특유의 경직된 어조를 문제삼았다. 그는 내게 좀더 유연하고 세련된 감각의 카피로 바꿔볼 것을 권한 다음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말했다. “진정한 디자이너란 물고기 중에서도 연어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지. 물의 흐름을 거슬러오를 줄 알아야 한다구.” 스쿠버 다이빙이 취미인 그는 무엇이든 물과 물고기에 비유하는 버릇이 있었다.

수업이 파하지 않은 시간이라 학교 정문 앞으로 길게 펼쳐진 골목길은 정물처럼 고요하다. 길 따라 죽 늘어선 가게의 주인들도 학생들이 교실에 붙박여 있는 시간에는 도무지 꼼짝을 않는다. 백여 미터를 걸어가도록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다. 무심코 교회 앞을 지나치다 사람 모습이 언뜻 잡혀 자세히 보니, 트럭의 싸이드미러에 비친 내 모습이다. 짙은 은색의 거울이 선명하게 내 얼굴을 되비추고 있다. “또 거울타령이냐? 젊은게, 하루종일 거울만 들여다보고 뭘 하겠다는 거야!” 엄마는 집안의 거울을 모두 치워버렸다. 아빠는 사뭇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관상이라는 건 말이다. 옛날 노예시장의 거간꾼들한테서 시작된 게야.” 지난 세기의 어느 한 시절에 온통 마음이 묶여 있는 아빠는, 세상이 이미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 차의 싸이드미러를 바깥쪽으로 움직여 각도를 조절한다. 역시 집안에서 보던 거울과는 확연히 다르다. 귀 뒤로 넘긴 머리를 다시 앞으로 내려본다. 왼쪽 얼굴선이 자연스레 가려진다. 수술 후 내 가르마는 오른쪽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29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던 머리카락이 하루아침에 반대방향으로 바뀌자 수만개의 모근이 반항이라도 하듯 머리 밑이 쑤시며 아팠다. 가느다란 머리카락과 모근, 미미해 보이던 그것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내게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다. 수술 후 안면 윤곽선은 분명 부드럽게 둥글어졌다. “아주 성공적인 수술입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달걀 모양의 곡선’ 운운하던 의사 장의 말투는 꼭 파마를 하고 났을 때의 동네 미용사 같았다. “자격증 따기가 힘들어 그렇지 의사나 미용사나 장사치인 건 매한가지 아니냐.” 엄마는 의사와 미용사의 차이와 공통점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물론 나도 그 일이 파마 정도였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을 것이다.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데요……”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던 내가 미심쩍게 말했다. 전신마취 대신 굳이 부분마취를 하겠다고 우겼던 만만치 않은 환자여서 의사 장도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다. “한달쯤 지나야 제대로 된 얼굴을 볼 수 있어요. 부기가 완전히 가라앉은 다음에요.”

양쪽 귀에서 뻗은 턱선을 따라가며 왼쪽과 오른쪽을 비교해본다. 역시 왼쪽 선이 문제다. 자동차 거울이라 약간 과장돼 보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왼쪽이 확실히 더 튀어나와 보인다. 한번만 더 손본다면 거의 완벽하게 균형이 맞을 것이다. 완벽한 대칭, 그것은 인체 비례의 기본 아닌가.

치르르, 소리와 함께 갑자기 거울이 심하게 떨린다.

“뭐요?”

불쑥 거친 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작업모를 삐딱하게 쓴 운전기사가 차창으로 나를 빼꼼히 내다보고 있다. 빈 차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가씨, 이 거울 세냈어요?”

트럭기사는 별 이상한 여자 다 보겠다는 듯 느물거리는 웃음을 띠고는 내가 돌려놓은 싸이드미러를 큼지막하고 거친 손으로 다시 조절한다. 그가 계속 차창으로 내 모습을 구경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꼭 오이꼭지를 씹은 기분이다.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작업모를 뒤로 젖혀쓴 탓에 광대뼈가 더 심하게 튀어나와 보인다. 턱선도 좌우 균형이 영 맞지 않는다.

“광대뼈야 동양인 얼굴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지. 오히려 얼굴에 입체감을 준다구.” 유학파답게 박실장은 얼굴의 인종별 특성에 관심이 많았다. “와아, 이건 정말 예술이다!” 스물여섯번째 내 생일날, 부서 사람들은 모니터 앞에 모여서 탄성을 연발했다. 생일선물로 박실장이 광대뼈를 과장한 내 얼굴 캐릭터를 만들어 매킨토시 화면에 띄워놓은 것이었다. 그는 내 얼굴의 약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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