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4·13총선, 그리고 그 이후

 

 

권기홍

영남대 경제학부 교수

 

박원순

변호사, 총선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권기홍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명숙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사회 및 정리: 편집부

때: 2000년 4월 25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108-92

 

사회  선거 뒤끝에 다 바쁘신 분들이 총선 이후의 정국을 진단하는 창비의 좌담에 참석해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먼저 선생님들이 각자 이번 총선 때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고, 거기에서 우리 민의를 어떻게 느꼈는지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번에 가장 각광을 받으신 박변호사님이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이 어떨까요.

 

열기와 냉소의 민의

박원순  글쎄요.(웃음) 총선시민연대(총선연대)에서 전국 투어를 했는데, 청주에서 참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사과 박스 하나를 연단으로 삼아서 얘기를 하는데, 청중들이 아주 조용하게 듣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다 듣고 나서 어느 할머니가 “야, 정말 말 시원하게 잘한다. 기호가 몇 번이냐?” 하는 거예요.(일동 웃음) 사실 총선기간 내내 우리가 하는 말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선 연설회를 하면 사람들이 거의 안 오는데 골목길에 들어가서 악수를 해보면 분명히 반응들이 있고요. 그래서 이것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굉장히 걱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우리 유권자들이 낙선운동의 취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국민들이 분명히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15대 국회가 보여준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적 절망이 있었고, 그리고 사실 낙선운동이 문제점도 많고 대안도 없는 제한적인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낙선율을 높여준 걸 보면 2000년대를 시작하는 이 선거에서라도 뭔가 바꿔내야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광영  저는 이번 선거가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정당들은 당선을 위해서 유세도 하고 선거운동도 하는데, 사람들은 당선운동이 아니라 낙선운동에 관심이 있어요.(웃음) 그러니 전체적인 흐름이 이상했죠. 유권자들이 당선운동에 관심이 없으니까 과거의 관행인 금품살포 등이 상당히 심각해지고, 그럴수록 일반 유권자들은 기존의 정당 중심의 선거활동에 대해서 더 염증을 느끼는,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상한 선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많은 국민들이 뭔가 바뀌기를 바랐는데 사실 대안세력이 부각되지는 못했죠. 대안을 바라는데 대안은 없고, 대안이 아닌 정당들은 광분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으려는 형태로 선거가 진행되다보니까 축제도 아니고, 과거처럼 폭력이 난무한 건 아니지만 열기와 냉소, 그런 것들이 혼합된 이상한 선거였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權奇洪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하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정당명부제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에요.

權奇洪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하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정당명부제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에요.

 

권기홍  저는 구경 삼아 경북의 몇몇 선거구에 가보았는데, 열기와 냉소라는 지적은 대단히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층민중들의 허무주의랄까 냉소주의, 정치학 용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표를 행사해도 내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결국은 금권선거를 부추긴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금권선거가 문화화했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그리고 박변호사님 고생 많았지만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이 실질적인 효과도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상당부분 역작용까지 일으켰다는 평가도 많이 합니다.

한명숙  영향을 못 미친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거죠?

 역영향을 미쳤다는 거죠. 조직폭력배들이 감옥 한번 갔다 와야 별을 달듯이, 낙선운동이 벌어진다면 오히려 거기에 한번은 이름이 올라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유일하게 정당인으로 참석한 것 같은데요. 저는 평생 처음으로 한 당에 소속되어서, 그것도 선거대책위원회의 여성위원장이라는 직책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어서 선거 한복판에서 우리 당으로 유권자들을 오게 하는 역할을 했는데요. 유세를 하거나 조직활동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변화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고요. 특히 총선시민연대가 그 싹을 틔워 80% 정도가 이에 찬성하는 대단한 수준으로 국민들의 의식을 끌어올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젊은 층은 물론이고 전체적으로도 유례없이 투표율이 저조했던 것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과도기적인 이중성, 이런 것을 굉장히 실감했어요. 그러니까 개혁을 상당히 원하면서도 개혁에다 자기 발을 담그지는 못하는 거지요. 그 다음에 민주당에 속해서 전국적으로 유세를 다니면서 부유층 지역에도 갔었고 서민 지역에도 다녔는데요. 새롭게 느낀 것이 뭐냐면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이나 서민층 동네, 아파트도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 이런 지역에 갔을 때의 반응은 대단했어요. 하지만 고층아파트나 깨끗한 백화점 같은 데를 돌 때는 반응이 굉장히 냉담하고 쌀쌀하다는 것을 피부로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까 서민층이 투표에 많이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가 됐어요. 변화에 대한 요구, 그리고 개혁에 대한 요구는 있음에도 자기가 그것을 실천하고 행해야 할 때 아직까지 행동화하지 못하는 측면, 이중성이라면 이중성 같은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朴元淳 총선연대 활동이 투표라는 단순한 행동으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참여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것은 소중한 성과지요.

朴元淳
총선연대 활동이 투표라는 단순한 행동으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참여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것은 소중한 성과지요.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생활정치

 이중성의 문제, 한편으로는 개혁을 바라면서 또 한편으로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단지 유권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강의시간에는 계속해서 학생들에게 참정권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고 시민권적인 주체로서의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막상 저 자신은 누구를 찍을지 참 결정하기 힘들었어요. 내가 저런 사람에게 표를 주어야 하나? 제가 개인적으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정당의 후보는 없더라고요.(웃음) 마지막 순간에 투표를 하기는 했지만,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 가운데 서민층은 물론이고 많은 도시 중산층의 경우도 마땅히 표를 던질 후보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부분 기존의 낡은 인물들이 나왔고 새로운 후보들도 정당을 통해서 나왔는데 대체로 정당을 통해서 나오면 일단 의심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지요. 그래서 이번 총선의 당선자들이 어떤 식으로 의정활동을 하는가에 따라서 40〜50% 가까이 되는 광범위한 유동층이 어느 쪽으론가 쏠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것은 지역 변수를 제외한 이야기입니다. 지역표는 상당히 고정표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변화의 욕구도 있고 가능성도 있는데 문제는 정당에 있다고 생각해요.

 

申光榮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선거풍토를 깨는 유일한 방법은 진보정당이 출현해서 기존 정당들과 정책대결^이념경쟁을 벌이는 겁니다.

申光榮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선거풍토를 깨는 유일한 방법은 진보정당이 출현해서 기존 정당들과 정책대결·이념경쟁을 벌이는 겁니다.

 

 국민들이 개혁을 열망하긴 했지만 그것을 위해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변화와 개혁을 정치권이 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컨대 공천과정에서도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공천결과도 그렇고, 공천과정을 통해서 보여준 비민주적 행태도 그렇고요. 유권자들에게 그래도 희망을 줄 수 있는 후보들을 선택하기보다는 그냥 다선이라든가 이 정도 조직력과 자금이 있는 사람이면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공천이 이루어진 거죠. 결과적으로 유권자를 우습게 본 건데,  정당이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투표율이 올라가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였어요. 그리고 그것이 낙선율로만 볼 때 낙선운동이 성공한 요인이죠. 정당에서 충분히 걸러줬다면 낙선율이 이렇게 높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낙선대상자말고는 도대체 누구를 찍으란 말이냐? 거기에 대해선 우리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는 거죠. 그건 저희들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고 보고요. 그래서 저희들이 ‘깐깐한 유권자에 꼼꼼한 선택’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韓明淑 여성비례대표 30%의 허구성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현재의 선거법으로는 여성을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의회진출은 어려워요.

韓明淑
여성비례대표 30%의 허구성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현재의 선거법으로는 여성을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의회진출은 어려워요.

 

 거기다 ‘엉성한 후보자’……(일동 웃음)

 예. 깐깐하고 꼼꼼하게 생각해볼수록 더 찍어줄 사람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낮은 투표율을 유권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오만이고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한림대 학생들이 하도 교수님이나 사회단체들이 투표하라고 하니까 ‘우리는 투표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고 해요. 그건 분명히 정치적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상당한 절망감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제가 유세를 하러 다니면서, 특히 386세대라든지 개혁적인 인사를 지원하러 다니면서 “잘 부탁합니다. 2번은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하고 얘기하면 “다 똑같애. 다 똑같애” 하는 거예요. 들어가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똑같아진다는 거죠. 지식인이거나 경제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숫제 말을 안 하는데 서민들의 경우는 그런 식의 표현을 해요. 불신의 늪이라는 것이 굉장히 깊고, 그것이 일차적으로 정치인의 잘못이기 때문에, 정치계로 들어가는 저 같은 사람들의 부담은 매우 큽니다.

 불신도 불신이지만 유권자들도 정치라는 것이 자기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추상적으로는 알아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점에서는 시민운동이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이는데요. 중앙무대의 정당정치와 삶의 현장의 구체적인 정치, 이것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정치, 그걸 생활정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치가 직접적으로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주고 잘못하면 무언가를 앗아가는 것이라는 점이 체득되지 않고 과연 민주정치라는 것이 구체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놈들 저희가 돈 안 주면 그만이지 다른 놈 돈 주는 것도 못 먹게 한다. 나쁜 놈들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분을 본 적이 있는데, 돈을 뿌릴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후보의 경우 다른 후보가 돈 뿌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감시단을 조직한 모양이지만, 심한 경우는 감시단의 활동 자체가 감표 요인이 된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왜 이렇게까지 금권선거가 문화화했느냐 하면 결국 정치라는 것을 그들만의 축제로, 우리의 실질적인 삶에 영향을 안 주는 것으로 생각되니까 그 와중에서 돈 얼마라도 챙기는 것이 남는 장사다 하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 아닌가, 생활정치의 부재가 결국은 이런 정치적 허무주의와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당(私黨)과 실종된 입법기능

 그 문제는 아마 우리나라의 정당제도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정당은 서구적 의미에서는 사회계급이라든가 사회집단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정치조직인데, 우리는 그런 공조직으로서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죠. 왜냐하면 우리는 전부 사당(私黨)이니까요. 보스 정치인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합집산을 통해 정당을 만들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해서 우리나라 정당의 평균 수명이 3.8년이에요. 강아지 수명만도 못한 것이죠. 공조직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서구적인 정당의 개념으로는 우리나라 정치를 분석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정치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안에서 이루어질 뿐,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적인 정치활동은 존재하지 않고 전부 밀실정치죠. 그러다 보니까 일반 유권자에게 정치는, 전에 어떤 분이 청문회에서 말한 것처럼 ‘외계인’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는 듯해요.

 국민·유권자·당원 들이 끝없이 소외되는, 그야말로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선거과정이라는 것이 정말 누구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선거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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