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4대강, 길이 있다
김석철 金錫澈
건축가, 도시설계가.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 명지대 석좌교수. 저서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 『지방정부의 세계화정책』 등이 있음. archiban@archiban.co.kr
머리말
돌이켜보건대 내 건축과 도시설계의 삶 40년 중 절반 이상은 한반도 하드웨어에 대한 것이었다. 1969년에 한강과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담당한 이후 지금까지 국가 하드웨어 개조가 있을 때마다 참여했다. 어떤 때는 주역으로 어떤 때는 반대 제안자로 또 어떤 때는 비판자로 개입했다. 관악산 서울대학교 마스터플랜을 할 때는 과천까지 이어지는 산업화 대학도시를 주장하다가 물러났지만, 최초의 국가관광단지인 보문단지는 내가 입안한 안이 성사되었고 쿠웨이트 신도시 국제현상에 당선하여 도시수출을 처음 시작했다. 예술의전당도 나의 계획과 설계를 세계와 경쟁하여 이룬 것이며, 베네찌아대학에 있을 때는 새만금 국제회의를 통해 지금의 정부가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 바다도시 안을 제시했다. 신행정수도가 정부 안으로 나왔을 때는 있을 수도 없고 될 수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하여 금강·새만금·행정도시 연합안을 제시했다. 영종도 공항이 시작될 때인 1999년에는 공항만이 아닌 동북아 게이트웨이가 될 국제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베네찌아·뻬이징·밀라노 등 국내외에서 세차례 국제회의와 전시회를 한 끝에 밀라노디자인씨티를 제안했고, 부산신항 건설 때는 부산비전플랜을 만들고 대구와 부산신항을 잇는 낙동강운하를 제안했다.
40년 전 한강 마스터플랜 이후 한반도의 강을 생각지 않은 적이 없다. 올해 4월 4대강과 새만금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와 생각을 한승수 당시 총리에게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혼자 듣기 아깝다 하여 관계 장·차관과 관련자들을 모아 국무총리실에서 설명했다. 한총리가 대통령에게 함께 보고하자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정국에 밀려 흐지부지됐다.
40년 전에 한강 마스터플랜을 했고 낙동강에서 20년 가까이 자랐으며 영산강, 섬진강과 다도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4대강에 대해서 무언가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최근에는 밀라노디자인씨티에 깊이 관여하고 남예멘 수도의 아단 신도시와 아제르바이잔의 바꾸 신도시 등을 하느라고 4대강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는 침묵한 셈이 되었다. 「꿈꾸는 한강」 「금강·새만금 신백제」 「영산강·다도해·섬진강 바다도시」 「낙동강 운하도시」 등 네 글을 정리하는 일에 착수했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잡지에 이렇게라도 정리해서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것이 이 글을 집필하게 된 동기이다.
4대강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지난 7년 넘게 한반도의 하드웨어에 관해 인문학자 백낙청(白樂晴) 교수와 이야기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고 집필과정에서도 조언을 구했다. 이 글의 「1. 한강 마스터플랜 1969·2009」는 중국 도시계획학회장이며 칭화대 교수인 우 량륭(吳良鏞) 교수의 도움을 받았고 「2. 낙동강과 서낙동강 운하도시 연합」은 한국토지공사장과 서울특별시 균형발전본부장을 지낸 이종상 사장이 많은 연구원을 파견하여 근 반년에 걸쳐 타당성을 조사해주었다. 「3. 금강·새만금·세종시」에 관해서는 리니오 브루또메쏘(RinioBruttomesso) 교수와 브루노 돌체따(BrunoDolcetta) 교수 등 베네찌아대학 교수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이 현장을 두번에 걸쳐 방문하고 국제회의도 함께했다. 「4. 영산강·다도해·섬진강 바다도시」는 낙동강 하구언(河口堰)과 영산강 하구언 및 댐을 설계하고 개성공단과 케도(KEDO) 단장을 지낸 심재원 사장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리고 추가령구조곡과 서울을 잇는 남북관통운하에 대해서는 원산에서 서울로 시집와 경원선과 추가령구조곡 육로와 임진강을 넘어다닌 필자 모친으로부터 들은 곳곳의 지리와 역사 이야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4대강사업을 제대로 진행하는 데는 적어도 다음 세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일관된 한반도 공간전략의 틀 속에서 남한의 4대강을 보아야 하며, 둘째는 강과 운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고, 셋째는 한반도의 강은 모두 다른 강이므로 4대강을 하나의 해법으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는‘4대강 살리기’에는 한반도 하드웨어에 대한 일관된 비전이 없다. 한반도 하드웨어의 핵심은 강인데, 한반도의 강과 운하를 말하려면 먼저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 하드웨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근대화를 이룰 때 먼저 강을 정비하고 운하를 건설한 다음 국도와 철도와 고속도로를 놓고 그뒤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한반도는 외국세력 주도로 식민지시대에 근대화가 이루어지다보니 철도와 신작로가 먼저 만들어졌고, 그후 우리 정부가 국도와 고속도로를 닦고 고속철도를 놓을 때까지 강과 운하를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4대강사업은 하구언을 만들어 홍수를 제어하고 상류에 댐을 건설해서 수자원을 확보한 정도이다. 강은 한반도 인프라의 변방이 되었다.
따라서 한반도 인프라를 완성하기 위해 강을 제대로 살리는 일이 남았다는 주장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한반도의 강은 운하를 갖지 못하여 강의 현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강을 효율적으로 도시공간화하기 위해서 운하를 개입시켰다. 운하는 강과 강, 강과 바다를 연결한다. 강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강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강과 운하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강은 강이고 운하는 운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대운하를 주창한 것은 그 규모와 의욕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사업과 중화학공단 건설에 버금갈 만한 것이었으나 치밀한 내용이 따르지 못했다. 더구나 한강과 낙동강에 5천톤 화물선을 띄우고 역사·지리적으로 아무 연관 없는 두 강을 연결한다는 억지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가능한 조운(漕運)은 바다에서부터 하구를 통해 내륙의 도시로 들어오는 소규모의 것이다. 강과 강이 연결되는 조운은 있을 수도 없고 의미도 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낙동강이 문경새재를 넘어 한강으로 가게 하려는 것은 섬나라 영국에서 템즈강을 맨체스터나 스코틀랜드로 끌고 가려는 것과 같은 망상일 따름이다.
다행히 정부는 경부대운하 포기를 선언했고 이제‘4대강 살리기’를 대신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운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관료와 관변학자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대운하건 4대강사업이건 그 취지는 한반도 인프라의 축을 강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 원대한 꿈은 확실하고 포괄적인 안목과 공익에 대한 헌신으로 실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정부의‘4대강 살리기’사업은 홍수방지와 수자원 확보, 수변공간 확보를 통해 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천준설은 중장비로 하는 일이지 고용을 창출하는 일도 아닐뿐더러 하천준설이 수자원 확보와 수질개선의 방법이 되리라는 것도 잘못된 판단이다. 더구나 홍수방지를 위해 건설된 영산강, 금강, 낙동강의 하구언은 주운(舟運)을 막을 뿐 아니라 홍수방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강은 하구가 이북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았으나 한강에서보다 다른 3대강에 홍수가 더 많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 템즈강에는 밀물 때는 막혔다가 썰물 때는 열 수 있는 템즈 배리어(Thames Barrier)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주운과 효과적인 수위조절을 겸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4대강 살리기’가 근본적으로 한반도의 어떤 공간전략을 목표로 하는 사업인지를 분명히하는 것이다.
한반도 남녘의 강은 모두 서남해안으로 흘러간다. 수천 샛강의 물이 모여서 바다로 흐르는 큰 흐름이 4대강이다. 4대강에 운하가 건설되지 않은 이유는 물줄기가 바다로 쉽게 흘러들어가고 그 하구가 거대한 생명과 수자원의 보고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하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고, 한반도의 강은 주운·조운의 역할을 했으나 육로와 느슨한 보완관계에 있었다.
근대화·산업화되면서는 물류의 대종이 철도로 바뀌었다. 대한제국과 일제하에 서울과 부산, 인천, 원산, 신의주를 잇는 네개의 철도가 생겼고 철도와 철도역을 중심으로 신작로를 만들었다. 한반도 인프라의 근간이 강이 아닌 철도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철도 역사(驛舍)를 중심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고려-조선조 때까지 강을 중심으로 했던 한반도의 인프라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철도역과 신작로 중심으로 옮겨졌고, 고속도로 건설 이후에는 고속도로 나들목 중심으로 도시가 확대되었다. 예로부터 한반도의 주요도시들은 강변에 있었으나 현대 한국 도시는 철도역·고속도로·고속철이 중심이 되어 한반도 삶의 근원인 강과 차단된 것이다. 류우익(柳佑益) 교수의 한반도대운하 구상은 그런 뜻에서 큰 비전이 있었다.
4대강사업의 핵심은 수자원과 도시화토지 확보 그리고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 유역의 창출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녹색성장은 강 없이는 말할 수 없다. 4대강 주변은 놀이공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