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손원평 孫元平
1979년 서울 출생. 2017년 『아몬드』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 등이 있음. mussaurus@nate.com
4월의 눈
눈이 쏟아질 것 같은 수상한 날씨였다. 우리는 까페에 앉아 있었다. 그건 아내가 “집에서 얘기하면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 여행하기 위해서 휴가를 낸 상태였지만 결국 우린 아무 데도 가지 못했고 휴가는 여전히 며칠이나 남아 있었다.
종업원들이 우리를 이따금씩 훔쳐보곤 자기들끼리 속닥였다. 우리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 집에서처럼 밖에서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마침내 내가 “그렇게 하자”라고 말하자 아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5년 4개월의 결혼생활을 끝내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흘러 있었고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집으로 향한 우리는 현관 앞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마리를 발견했다. 마리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덩치가 크고 나이가 들어 보였다. “아녕하쎄여.” 어색한 발음으로 인사하며 활짝 웃는 얼굴 위로 깊고 굵은 주름이 고랑처럼 파여 그 안으로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순간적으로 고였다.
여행자를 위한 홈스테이 교환 사이트에 글을 올린 건 수개월 전의 일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우리 집에 머물도록 한 후 우리도 그들의 집에 가서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집 안팎의 사진을 몇장 찍어 사이트와 어플에 올렸다.
서울 중심부. 전철역에서 7분 거리의 깔끔한 아파트.
날마다 깨끗한 수건과 정갈한 한국식 아침식사를 제공해드리며,
서울 여행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립니다.
한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말 그대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메일을 보내왔는데, 일본과 중국에서 온 문의가 가장 많았고 동남아나 유럽,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우리 집에 머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어떤 의미에서 참으로 현실감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매일같이 메일을 확인하며 각국 여행자들의 프로필을 라디오 디제이가 된 듯 읽어주었다. 그 일은 그녀에게 머릿속의 다른 생각들을 잊게 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잠깐 사이가 좋았었고 새로운 미래를 꿈꿔보기도 했었다.
마리 크라우제.
53세, 여성, 핀란드 로바니에미 거주.
한국에 관심이 많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할 기회를 가지고 싶습니다.
마리의 자기소개는 평범했다. 사진으로 본 마리는 빛바랜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북유럽 여성이었다. 아내는 마리가 핀란드, 그것도 로바니에미에 살고 있다는 게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핀란드 같은 곳에서 한국에 오려고 한다는 게 신기해. 게다가 로바니에미라면 산타마을로 유명한 곳이잖아. 그런 곳에 살다가 서울에 오면 시시하지 않을까?”
“그곳 사람들은 거기가 더 시시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
나는 몇년 전에 텔레비전 토크쇼의 패널로 출연해 한국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뽐냈던 핀란드 여자를 언급하며, 핀란드에도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이 더러 있을 거라고 했다. 아내는 마리가 혼자 여행하려 한다는 걸 알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50대가 됐을 때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산타마을 같은 곳으로 말이야.”
“이 마리라는 여자네 집에 가면 되겠네. 그때쯤이면 이 여자는 일흔이 넘었겠지만.”
우리는 마리에게 답장을 보냈다. 마리는 1월 중순에 서울에 일주일가량 머물러도 좋겠느냐고 물었고 우리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녀의 방문을 앞두고 아내와 나는 마리와 나눌 화제의 목록을 꼽아봤다. 그래봤자 우리가 핀란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자일리톨 껌이나 피니시 사우나 따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1월에 마리를 만나지 못했다. 오기로 예정된 당일, 그녀는 개인적인 이유로 돌연 여행을 취소하게 됐다며 미안하다는 짤막한 이메일을 보내왔다. 전날 우리는 대청소를 하고 장을 잔뜩 봐둔 상태였고 이메일을 확인했을 때 아내는 마리에게 대접할 첫번째 한국음식인 김치볶음밥을 하기 위해 김치를 썰던 중이었다. 우리는 언짢아졌고 아내는 하던 칼질을 멈췄다. 그날 저녁 우리는 김치볶음밥이 될 뻔했던 김치찌개를 먹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잘린 김치와 맵기만 한 국물은 별로 맛이 없었다.
나는 마리의 예의 없는 행동을 비난하고 우리가 겪은 고충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타국의 언어로는 화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생 끝에 완성한 메일에 쓰인 건, 마리가 방문하지 못해 유감이며 다음번에 한국에 오게 되거든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찾아와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몇번을 고쳐봐도 호의로 가득 찬 뉘앙스는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진심과는 거리가 먼 메일을 전송했다.
그후로도 우리 집에 머물고 싶다는 세계 각지로부터의 팬레터는 계속해서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사이는 또다시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고 얼마 후 아내는 사이트에 올린 글을 지웠다.
다시 마리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그녀가 도착하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사이트의 글을 지운 지도 오래됐고 그뒤로 마리와는 전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몹시 뜻밖이었다. 마리는 내일모레인 월요일에 한국에 도착하며, 공항에 마중 나올 필요는 없고 알아서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스마일 이모티콘을 곁들여 보내왔다. 거듭 반복된 마리의 일방적 통보에 나와 아내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내가 보낸 메일을 다시 확인한 결과 우리는, 정말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찾아와도 좋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데에 간신히 동의했다. 그건 마치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라는 은행 직원의 말에, 새벽 세시에 그의 집 앞으로 찾아가 미결제 타점권이 무슨 뜻이냐며 문을 두드려대는 것과 비슷한 경우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 했고 마리의 도착 예정시간은 밤이었다. 아내와 나는 마리를 딱 하룻밤만 머물게 할 생각이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만 연락도 너무 갑작스러웠던데다 저희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다른 숙소를 찾는 편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가 ‘진짜로’ 나타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내가 마리를 방으로 인도하는 동안 나는 계획된 말을 꺼낼 시점을 노렸다. 그러나 밤은 깊었고, 우리는 마리가 밖에서 두시간이나 기다렸다는 사실에 조금 미안해졌다. 그리고 불과 삼십분 전에 까페에서 내린 결론으로 인해 무척 피곤하기도 했다.
“내일 아침밥을 먹으면서 말하면 돼. 한국식 아침식사를 제공한다고 했으니까 한끼는 차려주지 뭐.”
“이 여자 때문에 음식을 새로 만들겠다고?”
“해놓은 카레가 있어, 한국식은 아니지만. 대신 내일 나가달라는 얘기는 당신이 해.”
마리에게 집의 구조와 화장실의 위치를 영어로 설명하고 수건을 내주면서 우리는 전혀 다른 얘기인 것처럼 이런 대화를 태연히 주고받았다.
우리가 각방을 쓴 지는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그날밤만큼은 같은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고작 하룻밤을 묵고 떠날 여행자에게 굳이 따로 자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궁금증 어린 시선을 감내하는 게 더 귀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마주 댄 등의 온기를 느끼며 우리는 각자 어둠 속의 다른 지점을 바라봤다. 아내는 계속해서 깊고 고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