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50주기에 새로 보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이영철 李榮哲

부산대 철학과 교수. 저서로 『진리와 해석』이 있고,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철학적 탐구』 등을 번역.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20세기 철학계의 ‘슈퍼스타’로까지 불릴 만큼 탁월한 철학자로 간주되어왔다. 지난 세기를 마감하면서 『타임』(Time)지가 선정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에 철학자로서는 유일하게 들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무엇이 위대한가? 또 우리는 그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철학자의 위대성이 정확히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이야기될 수 있느냐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시기에 어떤 철학사상이 사람들에게 어필한다는 점 자체는 어쨌든 의미가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나름대로 시대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꼽히는 인물을 둘러싼 이러저러한─당연히 허실이 있을 수 있는─점들에 대해 우리가 비판적으로 살펴본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이루는 현실의 중요한 일부를 음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50주기를 맞아 이 글은 그의 철학을 재정리해보고 그것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 의의를 살펴보려 한다. 필자는 그의 철학의 세세한 점들과 관련된 문제들보다는 가급적 그의 철학 전체의 핵심과 관련된 문제들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1.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 스타일

 

비트겐슈타인을 현대 철학의 ‘스타’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단순히 그의 철학만이 아니라 동시에 철학자로서의 그의 삶과 스타일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관한 전기들은 물론,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영화·소설·시·음악 등이 존재한다─최근에는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그의 이름을 딴 록그룹까지 등장했다─는 점이 이미 이를 증거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삶은 철학자로서는 드물게 극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가령 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의 당시 최고 부호 가운데 하나였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귀족적이고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보냈다든지, 실업고등학교를 나와 공학을 공부하다 철학자가 된 것, 또 1차대전 때 자원 입대하여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서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한 것이나, 부친의 죽음으로 받은 막대한 유산을 포기하고 전후에 시골 초등학교 교사, 수도원 정원사, 건축가 등으로 전전한 일, 그리고 그렇게 철학으로부터 10여년의 공백기를 가지다가 다시 철학에 복귀하여 매우 새로운 방향의 철학을 한 일(그 가장 큰 결실이 그의 사후에야 출판된 『철학적 탐구』1이다), 그러나 강단생활이 싫어 소련에 노동자로 취직하러 가기도 한 일이나 그의 독특한 강의스타일에 관한 일화 등등은 이제 전설처럼 된 것들이다. 그외에도 그의 동성애 관계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최근에는  히틀러의 반유태주의의 동기가 그와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했던 유태계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었으며, 또 비트겐슈타인은 소련 방문 후 제3인터내셔널의 첩자로 히틀러에 대항하여 활동했다는 알 수 없는 주장까지, 그의 삶과 관련된 문제 자체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2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삶이 이채로운만큼, 그의 철학 스타일도 역시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글들은 우리가 다른 철학자의 저서나 논문에서 흔히 보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사유들을 논변 형식으로 단선적으로 표현하지를 않고, 그가 ‘소견들’이라 부른 대체로 짤막한 고찰들을 통해 마치 입체파 화가처럼 (또는 몽따주 기법을 사용하는 영화감독처럼) 중첩적으로 담았다. 그는 이러한 스타일이 문제들을 여러 방향에서 가로질러 고찰하는 자신의 탐구 본성에 어울린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종종 읽기가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은 우리가 입체파의 그림을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낯섦 또는 난해함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주어진 것을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주어진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단편적 장면들의 이상해 보이는 집합에 불과하고, 온전한 모습은 우리 스스로가 그것들로부터 유기적으로 구성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도 사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마치 어떤 수수께끼를 풀듯 사유하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의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한마디로 그의 글은 우리 스스로도 철학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의 글을 읽기가 쉽지 않은 것은 그러므로 그의 글에서의 어떤 논리의 비약이나 명료성의 결여, 또는 난해한 전문용어들의 사용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글은 독일어 철학 문장으로서는 거의 예외적이라고 할 만큼 매우 간결하고 투명한 명료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소견들’은 종종 경구처럼 함축적인 게, 니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후기의 글들에서 보이는 비전문적인 일상어의 사용에 의한 (내면적) 대화 구조는 플라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 자신은 자신의 문체가 프레게로부터 강하게 영향받았다고 말한다(Z §712).

사실 명료성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추구하는 주요 목표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글이 명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명료성이 우리를 괴롭히는 혼란스런 철학적 수수께끼들과의 지루한 씨름의 장에서 발견될 때, 그것은 특별한 느낌으로 와닿는다. 우리에게 그것은 끝없는 철학적 물음들의 절망적 미로에서 마주치는 한줄기 밝은 빛과 같을 수 있다. 그것은 오랜 철학적 번뇌의 매듭들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마술 같아 보이고, 그리하여 그의 ‘소견들’은 마치 깨달은 자의 법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그의 글을 거의 예술적인 것으로 만든다. 언젠가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은 본래 오직 시(詩)로 지어져야 하리라”고 쓴 바 있다(『문화』 60면). 물론 (시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에 비추어볼 때) 그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글의 특출한 투명성과 함축성은 그의 글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예와 비유의 참신함 내지는 기발함과 함께, 그의 글에 어떤 독특한 매력, 아마도 예술성을 부여한다고 할 수도 있다.3

요컨대, 비트겐슈타인의 독창성과 천재성은 그의 스타일에 이미 드러난다. 그의 글은 공학도적 치밀성과 명료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예술가적 개성을 지니고 있다. 비트겐슈타인 자신도 자신의 특출한 독창적 재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닌 독창적 재능의 본성을 “토양의 독창성이지 씨앗의 독창성은 아니”(『문화』 84면)라고 보았다. 즉 그는 자신의 재능이 스스로 사유노선을 창안해내는 데 있다고 보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을 받아들여 명료화하는 ‘재생산적’ 작업에 있다고 보았다(같은 곳).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는 이러한 재능을 유태인의 본성과 결부시켜 본다.) 자신이 창안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비유들이라고 그는 말한다(같은 곳).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받아들인 씨앗들로, 볼츠만, 헤르츠, 쇼펜하우어, 프레게, 러쎌, 크라우스, 로오스, 바이닝거, 슈펭글러, 스라파와 같은 사람들을 꼽았다(같은 곳).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가 받아들인 이 씨앗들의 구체적인 성분과 그것을 자라게 한 그의 토양 성분을 일일이 구별해보는 작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우리의 주 관심사인 바 거기서 ‘재생산된’ 열매들의 맛과 효능을 보는 가운데, 그 일부의 흔적들은 언급될 것이다.

 

 

2.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크게 두 번에 걸쳐 열매를 맺었다. 그것은 『논고』와 『탐구』로 각각 대표되는 전기와 후기의 사상이다. 이 두 열매는 서로 맛이 매우 다르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같은 나무에서 열렸다고 해야 한다. 이 기묘해 보일 수 있는 상황은,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원용하자면, 마치 가지치기가 이루어진 나무에서 더욱 튼튼한 나무가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첫번째 나무의 열매는 빈약한 열매, 또는 심지어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의 풍성한 열매는 어쨌든 같은 뿌리의 나무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고, 그런 한─『탐구』의 머리말에서 암시되고 있듯이─비트겐슈타인의 후기사상은 그의 전기사상과의 연관과 대조 속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논고』는 극도로 절제되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저자가 지은 건물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건물은 마치 가로·세로·높이의 세 직선이 건물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논고』는, 유의미한 것은 모두 세 낱말로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퀴른베르거(Kürnberger)의 말을 모토로 삼고 있다. 이 간결하면서도 까다롭기로 이름난 책의 요점은 무엇인가?

그 머리말에 따르면, 『논고』는 사고의 표현(즉 언어)에 한계를 그으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논고』는 사유의 한계를 분명히하려 한 칸트의 ‘이성비판’과 비슷하면서도 구별되게, ‘언어비판’이다. 이 ‘언어비판’은 무엇이 의미있는 말이 되고 무엇이 의미있는 말이 될 수 없는가를, 언어의 본질을 제시함으로써 명백히 보이려고 한다.

  1. 이하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저술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약호들을 사용한다. 『논고』=『논리-철학 논고』, 천지 1998; 『탐구』=『철학적 탐구』, 서광사 1994; 『문화』=『문화와 가치』, 천지 1998; 『확실성』=『확실성에 관하여』, 서광사 1991; 『수학 기초』=『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 서광사 1997; TB=Tagebücher 1914〜1916 (Wekausgabe 1), Suhrkamp 1984; Z=Zettel (Werkausgabe 8), Suhrkamp 1984; BPP=Bemerk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Psychologie (Werkausgabe 7), Suhrkamp 1984; LS2=Letzte Schriften über die Philosophie der Psychologie Bd. 2, Blackwell 1992.
  2.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로는 R. Monk, Ludwig Wittgenstein (Jonathan Cape 1990)이 훌륭하다(이 책은 최근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동성애 문제는 W.W. Bartley III, Wittgenstein (Century Hutchinson, 1986; 초판 1973)에서, 그리고 그의 히틀러 반유태주의 동기와의 연관설 및 그의 소련 첩자설은 K. Cornish, The Jew of Linz (Random House 1999)에서 제기되었다.
  3. 데렉 자만(Derek Jarman) 감독의 영화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을 위한 대본(BFI 1993)의 서론에서 T. 이글턴은 비트겐슈타인을 “시인들과 작곡가들, 극작가들과 소설가들의 철학자”(5면)로 기술한다. 펄로프(M. Perloff)는 비트겐슈타인의 글에 깃들여 있는 시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현대시와 그 해석에 대해 가지는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Wittgenstein’s Ladder, Chicago U.P.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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