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
대화
87년체제의 극복과 변혁적 중도주의
조효제 趙孝濟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저서로 『인권의 문법』, 역서로 『직접행동』 『세계인권사상사』 등이 있음.
백낙청 白樂晴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최근 저서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백낙청 회화록』(전5권) 등이 있음.

ⓒ이영균
조효제 안녕하십니까. 이번호 『창작과비평』부터 새롭게 ‘대화’로 제목이 바뀐 꼭지에 백낙청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늘상 비판하시는, 분단체제 극복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없는 전형적인 사회과학도입니다.(웃음) 어쩌다 보니 제가 엉겁결에 인터뷰어의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창비』 편집진에서 계속해서 여러가지 자료를 보내주고 읽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을 공부시키는 아주 교묘한 방법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선생님이 논쟁을 좋아하시니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라고 자꾸 부추기더군요. 그래서 아, 이 양반들이 나를 총알받이로 쓰겠구나 생각했습니다.(웃음) 어쨌든 제가 소질은 없지만 신랄하되 유쾌한 대화로 끌고 나가보려고 합니다.
이번호가 독자들과 만나는 시점은 봄이겠지만 아무래도 지난 대선의 결과를 먼저 짚어보는 게 온당한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보수진영에서 보면 자신들이 승리한 것이고, 또 반대편에서 보면 개혁진보진영이 크게 진 건데요. 패배의 이유가 참여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참여정부의 실정이 대선 패배에 큰 원인이 됐다는 진단에는 동의하시나요?
백낙청 크게는 동의합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 큰 표차로 이겼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심판이라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다른 걸 잘했다 하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거니까, 그것도 실정인 건 틀림없고요. 그밖에 뭘 잘하고 뭘 잘못했느냐를 따진다면 얘기가 길어지겠지요.
한반도 평화가 양극화 해소보다 중요한 쟁점이었나
조효제 선생님은 전부터 참여정부에 대한 정교한 인식과 평가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이번 대선 직후에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양극화나 신자유주의에 대처하는 문제에 대해서 선생님이 전에 비판하셨던, 예컨대 최장집(崔章集) 교수 등의 통찰이 유권자들에게 더 많이 수용된 측면이 있지 않느냐고 볼 수 있는데요.
백낙청 신자유주의를 더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후보가 당선됐는데,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학자들의 통찰이 더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나요? 그분들의 비판이 통찰에 미달하는 구호에 그쳤든가 아니면 다소 통찰은 있었지만 어쨌든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 아니겠어요?
조효제 그와 관련해서 대선 후에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나 여론조사를 보면 참여정부가 잘한 것과 못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데, 잘한 게 뭐냐는 질문에 국민들의 1/3이 잘한 게 없다고까지 대답하고 있어요. 나머지 2/3 중에서도 과거청산, 부정부패나 권위주의 타파, 사회복지 등을 잘했다고 하면서 반면에 못한 것은 양극화나 부동산문제, 경기침체, 민생문제 등을 많이 꼽았어요. 제가 아까 왜 그런 말씀을 드렸냐면, 『한겨레』 여론조사(2008.1.2)에 따르면 한반도 평화정착을 참여정부의 잘한 점으로 꼽은 국민은 고작 4.9%밖에 안된다는 거죠. 잘한 것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예요. 선생님은 누차 DJ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해 적어도 이런 문제에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하셨기 때문에 여쭤본 겁니다.
백낙청 여론조사의 구체적인 방식이나 설문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지난 대선에서 평화문제는 주요 이슈가 아니었습니다. 가령 이회창 대 정동영 구도로 갔다면 중요한 쟁점이 됐겠지만요. 그래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면이 있고요. 참여정부가 평화정착을 위해서 한 노력을 평가하느냐 안하느냐 이렇게 물었다면, 평가한다는 답변이 압도적 다수가 나왔을 거라고 봐요. 그렇다고 평화정착을 온전히 이루었느냐고 하면 아직은 안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테고요. 그러니까 다분히 질문하는 방식에 달린 것이에요. 더구나 참여정부의 평화정착 노력을 지지한 논객과 양극화에 반대하는 논객으로 가르는 건 잘못된 이분법이라고 봅니다. 내가 최장집 교수를 비판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한반도나 한국사회의 문제가 남북관계 그리고 남북간의 통합과정과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그것을 너무 단순화한다, 평화문제도 분단현실과 분리해 단순하게 파악하고, 양극화 극복에 대해서도 남북간의 재통합과정과 결부된 구상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말하는 신자유주의 비판 이외에 구체적인 답이 안 나온다 하는 요지였어요. 그런데 그런 비판을 할 때마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백아무개는 NL을 대변하고 최아무개는 PD를 대변한다는 식으로 엉뚱한 이분법의 틀을 갖다 씌우면서 내 입장을 단순논리로 환원하는 식으로 나왔어요. 지금 조효제 교수도 다분히 한반도 평화정착을 지지하는 쪽이 양극화에 대해서 관심을 덜 갖는다든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부족한 것처럼 설정해놓고 질문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국내개혁의 문제를 등한시하면서 평화통일 문제만 강조하는 세력도 비판했고, 동시에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인식 없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해봤자 답이 안 나온다는 주장이었거든요.
조효제 제가 말씀드린 취지는 유권자의 표로 연결되는 현실적 담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것이 언론에서 왜곡됐든 어쨌든 담론의 쏠림현상 같은 것이 생길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예컨대 평화가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90% 이상이 중요하다고 대답하겠죠. 그런데 그게 표라는 형식으로 연결될 때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백낙청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가 큰 이슈였잖아요. 그것이 결정적인 이슈가 된 저변에는 양극화 현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나온 대답은,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기는 정책들을 지지해왔고 노무현정부가 그나마 부동산정책 등으로 양극화에 대응하려 할 때 발목잡는 일을 해온 세력이 집권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양극화 문제나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토론하고, 그것과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하면 그건 맞는 말이죠. 하지만 마치 우리가 양극화만 무턱대고 비판해온 단순논리에 더 치중했다면 선거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 거라는 식의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도, 그런 단순논리를 더 힘차게 밀고 나가는 것이 해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후보단일화는 실패한 전술이었나
조효제 지금 해법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해법을 듣기 위한 전제의 하나로서, 지나간 얘기지만 몇가지 역사적 가정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선국면과 연관해서 네가지 가정을 해봤는데요. 첫째, BBK사건을 비롯해서 각종 의혹이 사실로 판명됐다면 이명박 후보가 패했을까 하는 가정, 둘째, 선생님이 취하신 입장이기도 한데 범여권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졌다면 선거결과가 달라졌을까 하는 가정, 셋째, 권영길 후보가 아니라 다른 후보가 나왔다면 민주노동당의 결과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하는 가정, 마지막으로 범개혁진보진영이 2007년 12월 19일에 진 것이냐 아니면 그전부터 계속 져온 것이냐에 관한 가정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언제부터 돌이킬 수 없는 패배의 길로 간 것인지 하는 거고요.
백낙청 네가지 질문 중에서 민주노동당과 관련해서는, 지난 대선에서 몇가지 이유로 민노당이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권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나왔을 때 득표를 더 했을 수도 있죠. 그러나 얼마를 더 했을까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요. 나머지 세가지에 대해서 조교수 나름대로 어떤 답을 갖고 계시리라 믿는데, 첫번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효제 제가 볼 때 의혹이 사실로 판명났다 하더라도, 막판에 공개된 동영상사건만 놓고 봐도, 표차에 조금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백낙청 그런데 막판에 동영상이 공개되는 형태가 아니라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서, 혐의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가 확실히는 모르지만, 의혹들이 상당부분 사실로 파헤쳐졌다면 이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 전혀 다른 게임이 되는 겁니다. 첫째는 법률적으로 후보등록 원인무효 사안이고요. 또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도곡동 땅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명박 후보의 지지가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때는 상대가 박근혜 후보였고 정동영 후보가 아니었으니까 똑같이 볼 수는 없지만요. 검찰 같은 기관이 국가기관의 공신력을 걸고 사태를 파헤치고 적절한 검증을 했을 때 그게 대선에 별다른 영향을 안 줬을 거라는 단정도 나는 굉장히 용감한 주장이라고 봐요. 그랬으면 대선이 뒤집혔을 거라는 단정도 쉽게 내릴 수는 없지만, 어차피 진 게임이었다는 단정도 마찬가지 같아요. 이건 조교수의 마지막 질문과도 관련됩니다. 12월 19일이 아니고 검찰의 수사발표보다 훨씬 더 앞선 어느날에 이미 결과가 정해졌다면, 검찰수사가 어떻게 나오든 변하지 않았을 거라는 답이 나올 테고, 이러저러한 여러가지 패배원인이 축적되어왔지만 또 거기에 대처할 수 있는 혹은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여러가지 변수도 함께 존재했다고 본다면 다른 답변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물론 네번째 질문에 대해서 조교수가 갖고 있는 생각이 충분한 분석에 의해 뒷받침돼서 검찰수사 이전에 이미 패배는 확정되었다는 판단이 성립한다면 그야 수긍해야겠지요. 12월 19일의 패배가 당일에 가서 결정된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인정할 겁니다. 큰 표차의 패배가 하루이틀 사이에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데 동의해요. 하지만 철저한 검찰수사로 인해서 이명박 후보의 중대한 범법행위, 선거법 위반이나 공직자윤리법 위반을 포함한 중대한 범법행위가 밝혀졌더라도 뒤집어지지 않을 만큼의 패배요인이 언제 결정됐다고 생각하시는지 되묻고 싶네요.
조효제 사실은 선생님 논법대로 검찰에서 법적인 기소 상황까지 갔더라면 대선출마 자체가 봉쇄되니까 이 질문은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는 건 아니고요. 물론 선거결과는 뚜껑 열어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는 원론으로 치자면 누구도 예견할 수 없겠지만, 추세라든지 여론조사의 흐름이 계속 하향곡선을 그려온 건 사실 같아요. 저는 2006년 지방선거 이후부터 계속 완만한 후퇴의 길을 걸어왔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드린 겁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패배주의적인 자세로 손놓고 있자는 건 아니지만, 이번 선거가 끝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식의 일종의 허구적 인식이 개혁진보진영 내에 있었다고 봅니다. 투표 당일까지도 말이죠.
백낙청 그건 그래요. 그런 인식이 상당히 있었던 건 사실인데, 그것과 관련해서 나하고 직접 관련된 두번째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후보단일화가 됐으면 선거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면서 그게 나의 입장이라고 규정하셨는데, 후보단일화를 위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일화가 되면 승리한다는 전제로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이번 과정에서 아시다시피 재야원로라는 사람들이 매번 조금씩 다른 명단이었지만 세번의 단일화촉구 성명을 냈는데-
조효제 마지막 게 12월 17일인가에 나왔죠?
백낙청 예. 그런데 세번 다 초점이 달랐어요. 단일화를 정면으로 내세운 것은 11월 19일인가 후보등록 전이었습니다. 단일화가 충분한 효과를 내려면 후보등록 전에 돼서 양보한 쪽은 후보등록을 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방법이니까요. 기자회견문을 나 혼자 쓴 건 아닙니다만, 세 문건 모두 나로서는 책임질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첫번째 기자회견은 우선 초점이 패배주의 극복에 있었습니다. 물론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사람들이 그동안 참여정부의 실정 등에 대해서 아무런 반성의식도 없이 정치공학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선거를 앞두고 어차피 진 선거다 해서 완전히 패배주의에 젖어서 할 수 있는 노력조차 안하는 것은 본인들을 위해서 나쁜 건 물론이고 승자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논리였지요. 또한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이 패배주의 극복과 단일화는 맞물려 있는 문제지요. 단일화가 안되기 때문에 패배주의가 더 만연하고, 패배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에 후보단일화도 잘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깨기 위해서 발언한 건데, 단일화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당시의 분위기를 조금 쇄신하는 데는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조효제 제가 가르치는 제자 중에 그 문건을 복사해 와서 저에게 보여준 학생도 있었습니다.
백낙청 두번째 기자회견은 검찰의 수사발표 직후였어요. 그때는 엄정하게 수사하고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국가기관이 어떻게 이렇게 허술한 수사를 할 수 있느냐는 걸 주로 문제삼았어요. 정확한 사실은 검찰이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모르지만, 당연히 수사해야 할 대목들을 수사하지 않고 발표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도곡동 땅에 대해서도 이미 발표했던 내용에서조차 후퇴한 발표를 했어요. 이처럼 국가기관의 공신력이 훼손되고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이런 판국에 단일화조차 못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말을 덧붙였던 거예요.
12월 17일 또 한번의 기자회견을 했는데, 회견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광운대 동영상이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비디오가 공개되기 전에도 이명박 후보의 혐의를 방증하는 자료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정치인들이 성인군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계속 거짓말을 하는 후보에 대해서 그냥 넘길 수 있겠느냐, 선거에 이기든 지든 이 대목에서 우리가 문제제기를 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훗날 지도자의 도덕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계제가 생기더라도 뒷북이나 치는 형국이 되어서는 면목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월요일 기자회견을 하기 직전인 일요일에 동영상사건이 터졌어요. 그랬는데도 이명박 후보는 한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단일화만 되면 이긴다는 판단을 한 건 아니고 더구나 그 시점에서 단일화는 이미 물 건너간 상태였어요. 하지만 더 일찍 단일화가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건 역시 열려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2006년 지방선거 이후로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려왔다는 진단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정동영 후보의 26% 득표는 선거전 초기에 비해서도 상당한 결집을 이룬 거예요. 그러나 검찰수사라든가 후보단일화 등 몇번의 계기가 있었는데 어느 하나도 실현 못한 것은 확실히 실력부족이지요. 아무튼 저와 뜻을 함께한 분들 대다수는 지든 이기든 최선을 다하자는 심정에서 그런 노력을 했고, 우리가 표명한 원칙들은 두고두고 우리 사회의 중요 쟁점으로 살아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명박 특검과 대통령 취임의 상관관계
조효제 이 대담이 지면으로 발표될 때쯤이면 당선자가 정식 취임하기 직전일 텐데요. 저는 이런 가정도 해봅니다. 지금 특검이 진행중이니까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만에 하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명되더라도, 동영상에서 자신이 직접 BBK를 설립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이 공개되니까 나중에 그건 이른바 ‘실체적 진실’과 다르다고 발뺌했단 말이죠. 저는 오히려 그게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실체적 진실을 운운한다는 것은 자신이 법적으로 실제 소유자는 아니지만 거짓으로 그렇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거 아니에요?
백낙청 맞아요. 따지자면 법리적인 문제보다 도의적·정치적 문제가 더 심각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에요. 도곡동 땅 문제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땅이 아니라 형님의 땅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서울시장이 포스코 회장을 찾아가서 “우리 형님 땅 좀 사주쇼” 하고 부탁했다면 그건 말이 됩니까? 포스코 회장이 그 청탁을 들어줬을 때는 회장도 다음에 서울시에 어떤 반대급부를 요청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에요? 이게 바로 정경유착인데, 우리가 법리적 문제에만 너무 매달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건전한 민주시민의 양식으로써 판단하고 토론할 기회가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나는 설혹 특검이 수사를 제대로 해서 당선자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밝혀내고 심지어는 용감하게 기소까지 한다 하더라도, 이걸로 취임을 막는다거나 취임 후에 선거무효 또는 당선무효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고 봐요. 법리상 그게 가능하냐 안하냐의 문제와 별도로, 법리에 기대서 새 정권의 조기퇴진을 이끌어내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