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소연

박소연 朴昭娟

1964년 대구 출생.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눈부처』가 있음. budnamuale@hanmail.net

 

 

 

9월 9일

 

 

오솔길을 올라가다 인혜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산을 오르다 함박눈을 만났을 때처럼, 눈송이가 소리 없이 뒤에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인혜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해는 이미 지고, 저녁놀도 사그라졌다. 그런데 어둔 하늘에 점점이 작은 빛들이 돋아오르고 있었다.

천문대 사람들은 이선생과 막역한 사이인지 반갑게 그들을 맞아주었다. 사무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이선생을 따라 돔으로 올라갔다. 인혜는 그토록 검은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길을 올라올 때 본 작은 점들은 어느새 형형색색 꽃송이가 되어 밤하늘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별빛은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기 때문에 눈부시다. 바람이 불자 화르르 별에 불이 옮겨 붙으며 불꽃이 번졌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운명 위에도 별은 얼마나 찬란한가.

칠이 벗겨진 낡은 망원경이 밤하늘 한 지점을 향해 멈췄다. 망원경 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선생이 조절손잡이를 돌리며 말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북두칠성을 찾아요.”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북두칠성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아프리카 촌부나 뉴욕 히피 들의 공통점 하나는 북두칠성을 찾는다는 거예요.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찾는 길잡이 별자리거든요. 옛 폴리네시아사람들은 나침반도 없이 수천킬로를 항해했다고 해요. 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인간만이 별자리로 방향을 잡는 건 아니에요. 유리무당새처럼 밤에 이동하는 철새들도 밤하늘 별빛으로 길을 찾아요. 자, 이리 와서 봐요.”

이선생이 망원경 앞자리를 내주었다. 인혜는 조심스럽게 렌즈 안을 들여다보았다.

“북두칠성의 손잡이 두번째 별, 미자르를 봐요. 그 옆에 작은 별 하나가 붙어 있죠? 알코르예요. 로마에서는 이 별을 식별할 수 있는지로 시력검사를 했어요.”

두개의 별이 나란히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있어 하나로 보였지만, 그것은 두개의 별이었다. 그들은 동행하고 있었다.

인혜가 중학교 과학교사인 이선생을 만난 것은, 한 지역잡지에 그달의 화제인물을 취재하는‘인물스케치’란 꼭지를 맡아 글을 쓰게 되면서였다. 그날은 마지막 취재가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병우가 과학실을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몇번이나 이야기가 끊어지면서 인혜는 평소 같은 긴장감있는 질문들을 놓치고 있었다. 병우를 데려온 속사정을 말하지 못했지만, 이선생은 안전한 교구들을 꺼내 아이가 놀 수 있게 해주었다.

인터뷰는 해가 질 무렵에야 끝났다.

“이제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낯선 행인에게 털어놓는 것 같았어요.”

인혜가 녹음기 전원을 끄고 가방을 싸는데 이선생이 말했다.

전철역까지 바래다주겠다는 호의를 받아들였다가 이선생과 친분이 있는 인근의 사설 천문대에까지 들렀고, 인혜는 난생처음 천체망원경으로 별구경까지 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인혜는 늦게까지 문을 연 단골 피씨방에 들렀다. 잠든 병우를 안고 전자우편을 확인했다. 남편에게서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수십통의 메일을 보냈지만 그는 하나도 읽지 않았다. 병우가 급성위염으로 입원했다는 제목으로 구조 요청을 했을 때조차 남편은 우편함을 열어보지 않았다. 인혜는 때때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답장을 쓰진 않더라도 메일을 확인하고 있다면 어딘가에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실마리조차 주지 않았다.

그날도 인혜는 남편의 이메일 주소로 편지를 썼다. 천문대에서 미자르와 알코르를 본 이야기를 썼다. 보이지 않지만 함께 가고 있는 두 별 이야기를 했다.

인혜에겐 몇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대학 동기인 원영의 편지도 있었다. 원영은 그날 진선네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있었다. 과외비를 곧바로 은행계좌로 돌려줬다는 얘길 전해 듣고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전날 오후에 인혜 집 앞에서 그대로 돌아간 섭섭함도 잊고 원영은 편지 끝에 생일을 축하하는 짧은 글을 덧붙였다.

인혜는 원영에게 상의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일을 사과하는 답신을 썼다.

‘좋은 친구에게 신용을 잃고 싶진 않아. 만회할 수 있게 다른 자리가 있으면 소개해줘.’

병우를 업고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고 습관처럼 스위치를 눌렀다.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전기요금이 밀려 전기가 끊긴 지 이레째였다. 양초와 일회용 건전지가, 끊어진 전선들을 대신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이부자리를 깔고 병우를 눕혔다.

아이가 잠들자 인혜는 부엌으로 나와 씽크대 옆에 상을 끼고 앉았다. 전날 태우다 만 초에 심지를 돋우고 불을 켰다. 촛불이 켜지자 부엌은 의외로 아늑했다. 촛불 한자루에 위로받는 것은 그날 천문대에서 본 별빛의 여운일 거라고 인혜는 생각했다. 취재노트에 얼룩진 망원경 윤활유 냄새마저도 천문대의 상큼한 밤공기를 환기시켰다.

언뜻 낯선 그림자가 벽에 어른거렸다. 돌아보니 나리꽃이었다.

전날 시어머니와 경황없이 헤어지고 돌아오니 뜻밖에 원영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도, 휴대폰도 없으니 연락할 길이 없잖아. 잘 갔다 왔어?”

진선의 집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주선해준 건 원영이었다. 자기가 수학을 가르치는 집에 인혜를 영어선생으로 소개해줬다.

“안하게 됐어.”

“왜?”

“………”

만일 시어머니와 함께 왔다면 집 앞에서 원영과 마주쳤을 것이다. 진선의 집에서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쳐온 원영을 시어머니가 모를 리 없었다. 진선의 집에서 원영과 마주칠 때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집 앞에서 기다리던 청년을 불편해할 것이다.

원영이 돌아간 뒤에야 문고리에 끼어 있는 꽃다발과 카드를 보았다. 인혜는 비로소 자신의 귀빠진 날인 것을 알았다. 인혜는 꽃을 병에 꽂아 씽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하루가 지난 사이 나리꽃 봉오리가 활짝 열렸다. 촉촉한 꽃잎 안쪽에 수술 가루가 떨어져 붉게 번져 있었다. 인혜의 시선은 씽크대의 나리꽃에서 다시 앉은뱅이책상으로 돌아왔다. 녹음기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이선생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옆에서 조용히 자박자박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빠르게 써내려가던 인혜의 볼펜 소리가 천천히 멈췄다.

“아버지가 실종됐을 때 어머닌 스물일곱이었어요. 처음에 어머니는 한동안 서울을 오가며 아버지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내가 열살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일하러 갔지요. 방학이 되면 설레는 마음에 어머니 집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인혜는 인터뷰 도중에 여기서 녹음기를 껐다. 그러나 녹음되지 않은 이선생의 이야기는 흔들리는 촛불을 따라 길게 타올랐다.

“어머니가 시골집을 다녀가실 때마다 어머니 사진이 하나둘 없어졌어요. 그런 사실은 나 혼자만 알았어요. 어머니가 서울로 돌아가시고 나면 몰래 사진첩을 열어봤어요. 어머니가 다시 사진을 넣어두었길 바라는 마음과, 또다른 사진을 꺼내갔는지 확인하고 싶은 의심이 함께 있었어요. 사진이 없어진 걸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실까 앨범을 치웠다가 어머니가 오시면 제자리에 갖다뒀어요. 말없이 사진을 꺼내가는 어머니의 태도는 나를 시험에 들게 했어요…… 어머니는 얼마 뒤 재가하셨어요……”

그때 교실 한쪽에 잠들어 있던 병우가 선잠을 깨서 울었다. 인혜는 병우를 안고 한쪽에 가서 젖을 물렸다. 창문에 언뜻 이선생 옆모습이 비쳤다. 그는 운동장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주름이 지기 시작하면서 윤곽이 뚜렷해져 오히려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지는 사십대 후반의 얼굴이었다. 인혜는 그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열다섯살 이후로 인혜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사십대였다. 어머니는 허리 굽은 할머니로 늙어가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잘생긴 사십대였다. 인혜는 늙은 아버지를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시계는 그날에 멈춰 있었다.

녹음기 속 이선생의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내일이 아버지 제삽니다. 기일을 모르는 조상은 예로부터 9월 9일에 제사 지내는 유풍이 있습니다. 오히려 정통 유교에서는 민간의 9월 9일 제사를 인정하지 않지요. 몇몇 사찰에서 이날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한 천도제를 지내고 있지만, 대부분 일반 가정에서는 밖에 알리는 것을 꺼리고 가족 단위로 조용히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조사나 통계 자료가 없는 실정이에요. 그러나 지금도 음력 9월 9일이면 농협 식품매장에 제사떡이 일찍 동나는 걸 보면, 이날 제사 지내는 집이 적지 않은 걸로 추정돼요. 일제 때 징용됐다 객사했거나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사람, 납북 어부의 가족들이 이날 제사를 지낸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으로 소식이 끊기거나 생사를 모르는 이산가족이 많다 보니 민간에 이런 풍속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어요.”

인혜는 아버지를 닮아 속필이었지만, 그날은 좀처럼 글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아이가 실종되면 길을 잃었거나 납치됐다고 보고 주위에서 도와주려 애쓰지요. 그러나 어른이 실종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동기를 의심하며 추궁하는 경찰과, 사회의 냉정한 시선에 부딪치며 가족들은 상실감에 더해 존엄성에 상처를 입……”

갑자기 이선생의 말이 뚝 끊겼다. 잡음 속에 튀어나오는 말소리를 들어보니 그곳은 과학실이 아니었다. 천문대였다. 인혜가 천체망원경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병우가 녹음기를 만진 모양이었다.

도막초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어렵게 녹음한 내용이 지워진 것을 알고 인혜는 허탈해 상을 밀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녹음기에서 다시 이선생 목소리가 들렸다. 애써 녹음했던 인터뷰는 지워지고, 엉뚱하게도 천문대에서 이선생이 들려준 별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과학실과는 달리 천문대에서의 이선생 목소리에는 흥분이 숨어 있었다.

“북극성은 가장 밝은 별은 아닙니다. 마흔아홉번째로 밝은 2등성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모든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지요. 언젠가 저 별을 보면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아버지뿐 아니라 내 삶도 미완에 불과하다는 절박한 생각을 했어요.”

이선생의 이야기는 귓가에 흩어졌다. 인혜의 하늘엔 북극성이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삶의 중심축을 잃은 지 오래였다.

초는 심지가 다해 파드득거리더니 마침내 빛을 잃었다. 촛불이 꺼지자 아늑했던 작은 서재는 사라졌다.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방과 달리, 부엌은 빛이 들어오지 않아 촛불이 꺼지자 칠흑처럼 깜깜해졌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이상하게도 녹음 소리는 더 잘 들렸다. 이선생의 별 이야기는 북극성에서 북두칠성 주위로 흐르는 은하수의 성단들로 옮겨갔다. 이선생의 이야기를 따라 인혜는 찬란한 은하수 물결에 감겨들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남편과 연애시절 지리산에서 본 밤하늘이 떠올랐다.

그날 산에서 감기약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전날부터 몸살기운이 있던 인혜는 어둡기 전에 세석산장에 닿지 못할까 조바심이 나서 점심식사 후 출발하기 전에 감기약을 먹어두었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