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jajsld논단

 

커먼즈와 새로운 체제: 대안을 찾아서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저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 『혁신가 경제학』 등이 있음. ilee@hs.ac.kr

 

 

1. 들어가며: 촛불혁명 제2라운드

 

지난 1년 한국사회는 격변의 골짜기를 건너왔다. 2016년 가을에 들어서면서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10월 말 최초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국회에서 탄핵이 발의된 12월 3일의 6차 집회에 주최 측 추산 232만명이 집결하는 등 가을부터 봄까지 연인원 1700만명이 참가한 시민항쟁이 전개되었다. 세대·지역·계층을 넘어선 엄청난 규모의 국민적 압력이 가해지는 속에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 일정이 진행되었고,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2016년 가을~2017년 봄의 진행 과정을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 ‘촛불혁명의 정신’을 언급한 바 있다. 또 87년 헌법체제의 퇴행을 막고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2008년 촛불집회와는 뚜렷이 대비되는 가시적 성과가 있다. ‘4·19혁명’이라고 부르는 전례도 있다. 따라서 2016~17년의 시민항쟁은 촛불혁명으로 지칭할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2016~17년의 항쟁은 관료적 권위주의 타도에 목표를 집중했다. 시민들은 현 체제를 전복하려 하기보다는 현 체제의 제도적 절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압박했다. 이때의 촛불집회는 정권교체로 이어지면서 87년체제를 수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촛불혁명의 제1라운드가 마감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그 이름에 값하려면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체제 건설은 아직 출발선에 머물러 있다. 지금은 촛불혁명 제2라운드를 시작하는 시점이다.1

87년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의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강조한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성장, 4차산업혁명 등을 정책의제로 거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체제 구성의 요소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체제에서는 흔히 자원의 배분 방식, 소유 형태를 문제로 삼는다. 주요한 자원배분의 원리나 기구를 따져서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를 따질 수 있고,2 경제체제의 근간이 되는 생산수단이나 주요 재화의 소유 형태를 사유(私有)제도와 공유(公有)제도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체적인 체제 작동의 메커니즘에 접근하려면,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을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87년체제에서는 형식적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시장제도와 사유제도를 강화했다. 그러나 1987년 이전에 형성된 국가 주도의 발전방식 역시 87년체제를 구성하는 요소로 잔존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자원배분에 개입하는 행태가 노골화되었다. 촛불혁명에는 그에 대응해 87년 헌정체제를 지키려는 목표와 87년 경제체제를 넘어서려는 목표가 함께 존재했다.

촛불혁명 제1라운드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로 시장 및 사유제에 관한 법치의 질서를 훼손한 데 대한 저항과 응징의 과정이었다.3 그러나 87년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촛불혁명 제2라운드의 핵심 과제는 국가·시장·사유제도 이외에 어떤 체제 요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4

마침 『창작과비평』 지난호(2017년 가을호)에서는 ‘커먼즈와 공공성: 공동의 삶을 위하여’라는 특집을 기획한 바 있다. 커먼즈(commons)에 대한 논의는 이제 출발 단계에 있지만, 시장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체제의 운영원리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지역경제와 산업경제에서 커먼즈를 확보하면 이것이 경제체제를 새롭게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커먼즈는 촛불혁명 제1라운드 체제혁신의 동력이다.

 

 

2. 돌봄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커먼즈 해법

 

커먼즈는 중세 유럽 농촌에 존재했던 숲, 황무지, 늪지, 하천 등과 같은 공유지(共有地)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는 또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1968년 미국 생물학자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제기한 이 개념은 공유지가 사용에 제한이 없어서 과다 소비되어 결국은 고갈되고 마는 비극적 결과를 묘사한다. 따라서 공유지는 자기지속성이 없으니 사유재산권을 확립하거나 국가의 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함축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대해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사유제나 국가규제 이외에도 다양한 공유지 관리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례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창작과비평』 특집에서는 최근 등장한 돌봄의 위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등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커먼즈를 논의했다.

그중 백영경(白英瓊)이 주목한 것은 기존의 사회적 관계망이 붕괴하면서 돌봄은 더 어려워지고 이것이 다시 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가속화하는 복지 시스템의 위기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사회재생산의 위기는 자본주의체제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공적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5 이는 지금까지 확립된 복지국가 해법만으로 돌봄의 결핍 문제에 대응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포착한 것이다. 돌봄의 위기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기본소득 해법에서도 신중하게 고려되지 않은 문제다. 이에 돌봄 문제에 대한 커먼즈 해법이 높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공적인 현물 지원이나 현금 지원과는 다른 복지 시스템에 대한 시야 또한 열어준다.

그에 이어 전은호(田恩浩)는 낙후지역에서 지역의 활성화와 둥지 내몰림이 함께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공간가치의 독점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자본주의체제와 연관된 문제로 인식하는 논의보다는 그에 대한 기술적 해법을 제시하는 데 논의를 집중했다.6 그런데 여러가지 공유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과연 공유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축적과 훨씬 더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돌봄이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에 있는 문제라면, 젠트리피케이션은 경제적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 걸쳐 있는 문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축적의 ‘공간적 해결’(spatial fix)이 도시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시공간은 과잉축적에 대응하는 시장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심각한 소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7. 데이비드 하비가 말하는 ‘공간적 해결’은 만성적 과잉생산을 세계적 공간 차원에서 해결하는 방편이다. 특정 영토 안에서 시장이 포화되었

  1. ‘촛불혁명’이라는 명명에 대해서는 김종엽 「촛불혁명에 대한 몇개의 단상」,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창비 2017, 427~30면 참조. ‘촛불혁명 제2라운드’라는 표현은 같은 글 470면에서 가져왔다.
  2. 제도 또는 조직의 측면에서는 시장 또는 위계(hierarchy)로 구분할 수 있다. 전형적인 자본주의체제의 핵심 요소는 사유제와 시장경제이다. 러시아혁명 이후의 국가사회주의는 국유제와 국가기구에 의한 위계적·명령적·계획적 자원배분 메커니즘의 체제였다.
  3.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헌법재판소는 파면의 주요 이유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과 함께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의 자유를 언급했다. 이는 시장제도, 사유제도 운영에서의 법치를 강조한 것이다.
  4. 2016~17년 촛불집회에는 두가지 요소가 함께 존재했다. 당면 목표는 관료적 권위주의를 물리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구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정병기 「68혁명운동과 비교한 2016/2017 촛불 집회의 비판 대상과 참가자 의식」, 『동향과전망』 2017년 가을호.
  5. 백영경 「복지와 커먼즈: 돌봄의 위기와 공공성의 재구성」,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21면.
  6. 전은호 「젠트리피케이션 넘어서기: 사유에서 공유로」, 같은 책 39면, 45~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