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 새로운 25년을 향하여 | IT 기술
AI 시대? 결국 정치가 관건이다
박여선 朴麗仙
영문학자,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논문 「종말적 정동의 서사를 비틀기」 「기억과 서사,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역서 『바다와 사르디니아』 등이 있음.
kirillo7@snu.ac.kr
인도적 기술주의를 주장하는 실리콘밸리 출신의 운동가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기술 산업이 현대사회에 불러온 문제들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을 인용해 오늘날 지구상 인간이 마주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다름 아닌 구석기 시대에 머문 인간 감정과 중세 시대에 머문 제도, 신의 경지에 도달한 기술 간의 불일치라고 말한다. 기술은 이미 신의 경지에 달해 원시적인 인간 감정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를 중재할 정치적 역량과 속도는 느려도 너무나 느리다. 그 와중에 기술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삶의 모든 국면에 스며들어 신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진단하고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일지 고민해보고자 인문·사회와 기술 분야를 두루 아우르며 실무 경험을 갖춘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박태웅을 만났다. 가장 먼저 1990년대에는 한겨레 신문기자로, 2000년 이후로는 IT업계의 전문경영인으로 복무하며 기술 발달의 사회적 영향과 민주주의를 고민해온 그의 남다른 이력에 특별한 동기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한겨레에 들어갈 때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싶었고 거기서 뼈를 묻을 생각이었어요. 그러다가 1995년 『한겨레21』에서 아마도 국내 언론매체 최초로 인터넷을 조명한 특집기사를 썼는데, 저한테는 인터넷이 너무 멋있고 좋아 보이더라고요. 2000년을 앞뒀을 무렵 이제 우리 사회도 어느정도 ‘민주화’됐고 올드미디어가 아닌 뉴미디어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IT업계로 옮겼습니다. 창업을 할 거냐, 전문경영인이 될 거냐 하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당시에 저는 전문경영인이라는 장르를 만들고 싶었어요. 미국처럼 전문경영인이 하나의 직업군을 이루고 있으면 자본주의가 더 성숙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해서, 1999년에 전문경영인 지위를 갖고 ‘인티즌’을 만들게 됐습니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 허브포털사이트를 표방했던 인티즌은 출범 9개월 만에 100만명의 가입자를 모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후 거듭된 기술 혁신과 이용자의 폭발적 증가로 인터넷이 ‘광장’의 역할을 하는 지금, 언론계와 IT업계에 모두 몸담아본 그는 우리의 인터넷 환경과 언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박태웅 의장은 언론이 비판적 사고 혹은 사회에 대한 메타적 성찰이라는 본령을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한국사회를 어떻게 더욱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희망의 기준도 현저히 낮아졌다고 지적하며, 지금 한국 언론은 포털이라는 가두리 양식장에 갇혀버렸다고 진단했다.
언론 환경이 심각하게 황폐해져버린 이유로 포털이 독점적인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령 기술적 측면을 보더라도 네이버에 올리는 기사는 외부 링크를 걸 수 없어요. 인터넷이 하이퍼텍스트(링크를 통해 다른 문서로 이동할 수 있는 글)인데, 링크를 누른 사용자들이 네이버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는 이유로 링크를 못 걸게 합니다.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에요. 게다가 다수 언론사가 건설사 소유라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포털은 클릭수 기준으로 광고 수익을 나눠주니 그걸 받느라 기자 한명이 하루에 스물몇개씩 기사를 씁니다. ‘기사를 쓰느라 취재를 못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만큼 이 상황이 몹시 이상하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포털이 언론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인데, 영세한 언론사 대부분이 독자 서버를 가질 수 없어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언론사가 사실상 ‘공공기관’이라는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정부가 일정 과도기 동안 세금으로 지원한다든가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해지고 지금 같은 왜곡을 확대·강화하게 될 겁니다.
포털의 공고한 독점체제를 깨뜨리고 틈을 내는 데 있어, 최근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형시킬 것이라 평가되는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될 여지는 없을까. 그러나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에 대한 박태웅 의장의 전망은 암울하다.
인류는 이미 소셜미디어에서 그런 견제에 실패한 전례가 있습니다. 2021년 페이스북의 연구자가 내부 기밀문서를 월스트리트저널에 폭로했는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여러 일들을 페이스북이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타임라인에 어떤 게시물이 보이게 할 건지를 결정하는 알고리듬(특정한 문제 해결 및 목적 달성을 위한 규칙의 집합인 알고리듬algorithm은 한국에서 ‘알고리즘’으로 통용되나, 박태웅 의장은 원래의 발음이 리듬[riðəm]과 같다고 짚으며 알고리듬으로 말하고 표기하는 것을 선호한다)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원래 ‘좋아요’ 버튼밖에 없었는데 ‘싫어요’ ‘슬퍼요’ ‘화나요’ 등을 만들고는 ‘좋아요’를 받은 게시물에는 1점만 주는 대신 ‘화나요’를 받은 게시물에는 5점을 주고, 공유가 되면 30점을 줬어요. 그러고 나니 유럽 정당들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트래픽이 뚝 떨어져요. 공격적·적대적인 내용의 비중을 전체 게시물의 80%까지 올리고 나서야 트래픽이 예전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