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오늘의 한국, 변모하는 사회운동

 

n세대와 사회운동

 

 

박영선 朴映宣

참여연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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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보았다. 영화 보는 내내 눈에 힘을 주고 호흡을 고르면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 걸은 후에 같이 본 사람에게 겨우 한마디 할 수 있었다. 너무 슬픈 영화라고. 내 말을 듣고 그 사람은 영화보다 더 슬픈 게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사람은 「박하사탕」의 감동을 젊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는 것이 더 가슴아프다고 했다.

「박하사탕」이 세간에는 첫사랑의 실패가 낳은 비극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알려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광주’에 관한 영화이고, ‘광주’는 내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기호이다. 여기서 그들은 서태지로부터 시작된 신세대의 계보를 잇고 있는 X세대, n세대, i세대를 지칭한다. 우리들은 ‘광주’를 마음에 담고 있지 않은, 그래서 「박하사탕」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뜨는 그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때론 분노한다. 연령의 차이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두고 언제나 계몽주의자들처럼 교훈적인 잔소리를 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우리는 그들과 기본적으로 불신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그들에게 화해를 청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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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총선이 끝났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으로 ‘바꿔’의 열풍이 강했지만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무관심까지는 바꾸지 못했다. 57.2%라는 역대 어떤 선거보다 낮은 투표율에 대한 책임은 n세대에 돌아갔다. 총선개표방송 20대 시청률이 50대의 1/3 수준인 8.7%에 불과했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와 낡은 정치를 개혁할 주체인 젊은 사람들이 정작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미래가 어둡다는 사회적 통념이 더욱 굳어졌다. 2000년도 총학생회장선거 때 학생들의 투표율이 낮아 15개 대학이나 재선거를 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n세대가 이번 총선을 통해 R(revolution)세대가 되기를 바란 일각의 기대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가 되새기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갖가지 구호를 내걸고 젊은 층의 기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총선시민연대도 샤크라·이지훈·구피 등 n세대에 인기있는 연예인들을 동원하여 투표참가 캠페인을 열성적으로 벌였지만, 그들은 ‘꼭 투표하세요’라는 연예인들의 말에 마지못해 대답할 뿐이었다. 또한 차 없는 대학로 거리에서 난장을 벌여 선거에 대한 중요성을 얘기하고 선거참여를 유도했지만, 정작 마로니에 거리에서 활개를 친 것은 투표권이 없는 중·고등학생들이었다.

그렇다면 n세대는 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투표 기권을 정치적 무관심과 바로 등치시킬 수 있는 것일까? 먼저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자.

 

방송에서는 날마다 투표에 참가하라고 성화다. 그런데 누구를 찍어야 하나. 심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쓸 만한 사람이 하나 없다. 개중 나은 사람을 찍으라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그렇게 말씀하는 분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뽑은 사람들이 함량 미달의 국회의원 노릇을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가. 배신당했다고 전화 한 통이라도 했는가. 국회의원을 차선으로 뽑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국회의원이 잘못하면 본전은커녕 우리를 해코지까지 하기 때문이다. 나도 늘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다. 그러니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하나 더 만들자는 것이다. 일정 비율을 얻지 못하면 최고 득표를 했더라도 당선자가 없는 것으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만들어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1

 

며칠을 생각해봤지만 지역구 출마자 중 밀어줄 인물과 정당을 찾을 수 없었다. 당리당략을 위해 이리저리 옮겨다니거나 개인의 이권을 위해 치부한 사람을 찍느니 기권하는 게 참다운 참정권의 행사라고 본다.2

 

그들은 어찌됐든 투표하는 것이 최선의 참정권 행사는 아니라고 판단하며, 투표기권을 조직적으로 주장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정책적으로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신설하고, 일정 투표율을 넘지 못하면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기권도 참정권의 한 형태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언론과 국민은 “그들의 위선에 침을 뱉고 싶다. 그렇게 말 많고 목소리 높이던 그들은 선거날 어디로 갔는가. 앉아서 욕만 한다고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3며 n세대들의 무책임성에 목청을 드높였지만, “투표 안한 사람을 ‘의무를 안했다, 민주시민의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4거나 “다수 유권자의 투표 불참은 어떤 문화적 현상으로서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의 결과라기보다는, 현재와 같은 정치현실에서는 투표행위에 참여해야 할 의미가 크지 않다는 유권자의 평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무관심은 강요된 것이라 할

  1. 김종선 「따져봅시다」, 『한겨레』 2000.4.12.
  2. 박효인, 같은 곳
  3. ‘OhmyNews’(www.ohmynews.co.kr) 2000.4.17.
  4. 「박원순 변호사 열린 인터뷰 1」, ‘OhmyNews’ 20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