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새로운 현실, 다른 리얼리즘

 

SF와 새로운 리얼리티를 찾아서

김초엽과 박문영의 소설을 중심으로

 

 

복도훈 卜道勳

문학평론가,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평론집 『눈먼 자의 초상』 『묵시록의 네 기사』 『SF는 공상하지 않는다』 등이 있음. nomadman@hanmail.net

 

* 이 글은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과 단편 「혼자인 사람들」(웹진 크로스로드 2019.10); 박문영의 장편 『지상의 여자들』(그래비티북스 2018)과 중편 『사마귀의 나라』(에픽로그 2014); 윤이형의 단편 「수아」(『작은마음동호회』, 문학동네 2019); 정세랑의 단편 「나는 동쪽으로 걸어갔다」(웹진 크로스로드 2019.3)를 다룬다. 이후 인용 시 작품명과 면수만 명기한다.

 

 

1. 2019, 한국 SF의 새로움

 

한국의 SF가 독자적이고도 고유한 장르로 적극 향유되고 다양한 비평적인 평가를 기다리는 문학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워졌다. 2019년에 한정하더라도 한국의 SF가 그 어느때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강한 실감은 SF작가와 독자뿐만 아니라 본격문학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SF를 본격문학의 수준에 미달하는 장르문학이나 대중문학, 나아가 본격문학의 활성화를 위한 자양분을 공급하는 준문학적 원료 정도로 취급하던 일부 비평적 관행은 더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본격문학의 영토와 자장에서 출발한 작가들(김희선 박민규 백민석 윤이형 조하형 등)의 슬립스트림(slipstream)적인 시도가 만들어낸 SF의 중요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SF의 뚜렷한 성취는 분명 문단시스템의 공모전이나 등단 형태를 거치지 않은 SF작가와 팬덤, 독자, 출판 공동체가 수행한 오랜 협업의 뜻있는 결과라고 하겠다.

한국 SF의 일견 새로운 부상은 물론 이전보다 대거 등장한 작가와 작품, 팬덤의 활약, 독자층의 확대, 활발해진 SF 해외번역과 국내외 출판 등이 만든 스펙트럼의 한 효과다. 하지만 문학비평은 빛의 파장과 굴절의 광학을 엄밀히 조사해 한국 SF의 스펙트럼을 이루는 빛과 색채의 특이성, 즉 작품의 새로움(novum)을 측정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겠다. 한국의 SF 장르가 직관적으로 무언가 새로운 문학인 것처럼 보이는 이때, SF의 무엇이 새로운가. SF는 어떻게 다른 스펙트럼으로 현실을 조명하는가. 그리고 SF의 리얼리티는 무엇인가.

서구에서 SF는 오랫동안 장치, 관습, 기능으로 문학적 잠재력을 확보한 장르다. SF의 시학적 특징을 도드라지게 하는 핵심은 SF를 구성하는 두 단어(과학, 소설)의 재정의를 통해 도출된 바 있다.1 첫째, 과학(science). ‘과학’은 하드 사이언스(hard science)를 포함해 인류학, 페미니즘, 미래통계학, 인구론, 맑시즘 등을 포괄하는 인지(cognition)로 대체 가능하다는 비평적 제안은 여전히 효력이 있다. 둘째, 소설(fiction). 이때 ‘픽션’은 시끌롭스끼(V. Shklovsky)와 브레히트(B. Brecht)가 말한 낯설게하기(estrangement)로 대체·확장됨으로써 현실의 규범을 상이한 관점에서, 새로운 시각과 기준으로 평가하고 재활성화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SF에서 새로움이란 인지와 낯설게하기를 매개하는 것으로, “작가와 (내포) 독자의 현실 규범에서 이탈하는 총체적인 현상 또는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는 SF의 의미장(場)은 텍스트 안팎을 넘나들면서 우리의 경험적 현재, 이데올로기, 규범 등에 맞서 대안적 미래, 대항 헤게모니, 혁신 등을 상상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SF의 새로움은 인지적 낯설게하기만으로 성취되지는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세계 전체 또는 국면의 중요한 변화를 수반”해 “독자의 경험적 규범”을 흔들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SF의 서사를 새롭다고 말할 수 있다.2

이쯤에서 최근 주목받는 한국 SF의 신예 김초엽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의 SF적인 유추(analogy)라 할 수 있는 박문영의 장편소설 『지상의 여자들』 등을 살펴보려 한다. 김초엽의 단편은 과학적 외삽을 문학적 은유로 재서술하면서 존재자의 불완전한 지표와 결핍 그리고 그로부터 환기되는 여러 ‘감정의 물성’을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박문영의 장편은 ‘만일 남자가 사라진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2016년 전후 전개된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에서 분출된 성적 적대(antagonism)의 면면을 집약적으로 유추해 독자에게 인상적으로 환기시킨다. 차이를 약술하자면, 김초엽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과 외계존재의 교류는 대체로 텍스트 바깥 우리 현실의 적대를 다소 평면적으로 거울 반사하는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이에 비해 박문영의 장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에는 작가가 텍스트 바깥 현실의 적대를 텍스트 내부로 어지러이 투영하는 데서 비롯되는 강렬함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2. 우리 자신에게 가장 낯선 외계존재

 

한국 SF의 주요 작가인 듀나의 소설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SF는 기본적으로 메가텍스트적 특징, 즉 이미지·배경·모티프·코드의 백과사전을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그것들을 상호텍스트적으로 반영하는 문학 장르다.3 예컨대 인간이 만든 인공적 피조물은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프랑켄슈타인』(1818)에서 비롯된 변종을,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존재는 웰스(H. G. Wells)의 『우주전쟁』(1898)의 이미지와 모티프 등을 광범위하게 상호 참조한다. SF를 읽는 어려움과 즐거움, 독해의 친숙함과 낯섦은 개별 SF 작품에서 발견하거나 학습하고 그것을 더 넓은 SF 역사의 맥락에서 고려하도록 요구하는 메가텍스트적인 특징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물론 상호텍스트적이고 자기반영적인 글쓰기라는 이유로 SF에서 발견하고 싶은 즐거움과 새로움이 독자에게 절로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우선 눈에 띄는 SF의 메가텍스트적 요소와 특징을 일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외계존재와의 조우(first contact), 인간을 숙주 삼는 외계존재의 정신기생(mind parasite), 생명의 외계기원설인 정향 범종설(pangenesis), 융합과 분열을 거듭하는 생명체의 공생 진화, 마인드 업로딩 등등. 김초엽의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적 가설 또는 SF의 메가텍스트적인 요소들은 그 자체로 다양하고 흥미롭지만, 중요한 것은 소설의 묘사와 서술의 화학작용에 의해 소설에 외삽된 과학적 코드 또는 메가텍스트가 상상과학(imaginary science)의 문학적 은유로 어떻게 참신하게 재활성화되는가다. 우선 김초엽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서술적 장처(長處) 하나를 말해보겠다. 「관내분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등의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주인공은 오래전에 사라졌거나 죽은 자들이 남긴 유품들, 책과 기록으로 남은 타자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주인공의 서사는 그가 추적하거나 조우하는 타자의 서사와 결합하거나 타자의 서사(유품)를 계승한다. 서사는 죽음과 이별의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기록하고 후대에 유산으로 전승된다. 이야기는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되는 설화를 닮게 되며, 주인공은 우주에 홀로 남겨진 단독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전수받거나 전하면서 앞세대의 인물들(할머니, 어머니, 이모, 자매 등의 여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마치 분열과 융합을 반복하면서 공생 진화해나가는 세포와 기관들처럼. 이러한 서술적 특징은 작가가 고안한 과학적 장치들과 결합하면서 꽤 색다른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탄생한다.

「관내분실」은 “고인들의 기억과 행동 패턴을 마인드 업로딩”(232면)해 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은하는 생전에 애증병발의 존재였던 엄마를 찾아 마인드 도서관에 가지만 ‘관내분실’, 곧 그녀를 식별할 인덱스가 지워진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의 데이터는 마치 도서관에 잘못 꽂힌 책처럼 반(半)영구분실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관내분실」의 서사에 외삽된 마인드 업로딩은 그 자체로 영혼과 자아에 관한 오래된 철학적 질문을 서사적으로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소설에서 적고 있듯이, 자아가 유동적이고 가소적(可塑的)이라면 스캐닝된 시냅스 패턴의 결과물로 컴퓨터에 업로드된 마인드는 자아만큼이나 가소적인가, 아니면 마인드는 그저 “고정되어버린 일종의 박제된 정신”(255면)에 불과한가. 그런데 김초엽은 마인드 업로딩에 대해 파고들기보다는 주인공이 엄마 생전의 삶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서사를 위해 그것을 활용한다. 은하는 여러 경로로 엄마가 생전에 종이책을 출간하는 출판사에 근무했음을 알게 되고 그녀가 만든 책들을 구한다. 은하는 책에 남은 엄마의 흔적을 시냅스 스캐닝하고 그녀의 특정한 마인드를 찾아내 보안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