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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28회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지연이 물은 적이 있었다. 연인 사이에 주고받을 법한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 앞에서 민규는 언제나 그냥,이라고 답하곤 했다. 그렇게 답하고 나서야 민규는 그런데 왜일까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 답은 민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연은 도미를 닮았다.

도미는 그의 첫사랑이었다. 처음으로 사랑했던 타인. 도미는 열아홉살이었고, 그는 스무살이었다. 그녀는 그의 동네 후배였고, 여동생의 친구였다. 동네에서 또래들끼리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안면을 익히게 되었다. 도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소리가 돌아 돌아 민규 귀에 들어왔을 때는 마침 민규도 그녀를 특별한 눈으로 보고 있던 즈음이었다. 모든 게 순조롭고 평범하게 시작되는 것 같았다.

도미를 한번 만났다. 남들 하는 대로 시내의 큰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고, 밥을 먹었다. 가까이서 보는 도미는 발랄하고 귀여웠다. 그는 그 밝음이 좋았다. 그러나 계속 만나도 좋을지 자신이 없었다. 도미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 때문이었다.

그는 군 입대를 앞두고 동네의 작은 자동차정비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었다. 전문학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규모가 큰 업체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원래는 민규도 제대로 된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고3 때는 전문대의 자동차공학과에 합격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가 무언가를 해보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부모가 사고를 쳤다.

어머니가 일으키는 문제는 ‘돈’에 집중되어 있었고, 아버지가 일으키는 문제는 ‘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주로 사기를 쳤다. 건강보조식품이나 방문판매전용화장품 같은 것을 팔며 지역에서 인맥을 넓혀가다가 친분이 생겼다 싶으면 슬슬 특별한 척 가공된 정보를 흘리는 식이었다. 물론 백퍼센트 거짓 정보였다.

사실 우리 사촌형부가 건설교통부의 고위직 공무원인데 곧 재개발이 시작될 지역을 그들끼리만 따로 알고 있다더라, 생각해봐라, 사람끼리 하는 일인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나한테만 몰래 투자하라고 했는데 우리 사이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등의 이야기들.

많은 이들이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목돈을 건넸다. 결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당벌이, 영세한 노점상, 어려운 형편의 자식들이 건넨 용돈을 한푼 두푼 아껴 모은 사람들이었다. 돈의 무게는 다 다르다. 어머니는 왜 하필 그런 이들의 한없이 무거운 돈을 빼앗으려 했을까, 세치 혀를 굴려서. 민규는 그 점을 가장 끔찍하게 생각했다. 민규는 자신의 어머니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이 다른 사람의 지갑에 있는 꼴에 비뚤어진 심술이 나서 자꾸만 일을 벌이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그녀는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에 홀린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로, 다른 사람 지갑의 돈이 자신의 지갑으로 건너온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것 같았다.

반면 그의 아버지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일을 쳤다. 술김이라는 핑계로, 괜한 남의 집 창문을 손으로 깨부수거나, 옆자리 취객과 시비를 벌이거나 해서 경범죄로 붙들려간 일이 부지기수였다. 왜 그랬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내가 화가 좀 나서 그랬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아버지를 데려오기 위해 민규가 직접 파출소에 다녀온 일도 여러차례였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횟수는 줄었으나 강도는 세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술집 외상값을 놓고 주인과 다툼을 벌이다가 주먹을 휘둘러 상대의 치아를 네개나 부러뜨렸다. 법정구속을 면하기 위해 합의금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대놓고 모르는 척했고, 형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민규에게는 그래도 우리가 자식 도리를 해야 하지 않느냐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가 알바로 모은 돈을 뜻하는 거였다. 결국 그는 모은 돈 전혀 없이, 입대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비자발적 선택의 결과였다. 이런 자신에게 도미처럼 밝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어울릴까, 그래도 될까, 그는 혼자 오랫동안 고심하느라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열흘 만에 마음을 굳게 먹고 연락했는데, 도미는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이성문제에 대해서 잘은 몰랐지만 도미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민규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도미에게 계속 전화를 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또 보냈다.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네가 그동안 화가 났다면 풀라고, 그동안 나는 너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알았다고 고백했다.

―오빠가 연락 안 했다고 제가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냥 우리는 서로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거예요.

그 문자를 끝으로 도미는 답이 없었다. 그의 전화번호를 차단한 것 같았다.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했던 것은 모두 애가 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자신의 친구를 통해 메시지를 전해왔다.

―도미가 더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대요. 둘이 사귀었던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민규는 그러나 도미의 의도와 달리 그 메시지를 어떤 희망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마침내 도미가 다니는 미용학원 앞에서 여러 시간 기다리다 만났을 때 자신을 보던 도미의 얼굴을 민규는 잊지 못했다. 그녀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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