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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소용돌이 속의 동아시아
구조조정기의 한국경제
정운찬 鄭雲燦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저서로 『금융개혁론』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 『중앙은행론』 등이 있음. ucchung@snu.ac.kr
1. 한국경제의 수수께끼
한국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청천벽력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해온 전문가들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주로 거시경제지표를 통해 한국경제를 관찰해온 많은 사람들은 1997년 말의 위기에 적지 않은 당혹감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한국경제는 거시경제지표상으로 상당한 성과를 보여왔다.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은 부실기업 문제로 몸살을 앓던 1972년(4.9%)과 광주사태가 일어났던 1980년(-2.1%) 그리고 환란 이듬해인 1998년(-6.7%)을 제외하면 모든 해에 5% 이상이었고,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거의 10%에 가까웠다. 한편 물가상승률은, 1980년대 이후 모두 한자리 숫자이다. 그러나 구조적으로는 취약했는데 실물부문에서 중복과잉투자가 많았고, 그 결과 현금흐름이 나빠 금융부문에서 부실채권이 양산·누적되었다. 그것은 결국 거품붕괴로 귀결되었다.
많은 이들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경제가 어떻게 오랫동안 만족스런 거시적 성과를 보일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고 한국경제의 수수께끼로 여긴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50년대 중반까지의 구소련이나 1978년 개혁 이후의 중국의 경우처럼, 산업화 초기단계에 미시적 효율성은 낮으면서도 외연적 성장을 상당기간 지속한 예는 많이 있다.
그러면 한국경제의 미시적 효율성은 어떤 상태였는가? 첫째, 한국경제의 실물부문에서 제조업체의 총자산수익률은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60년대의 8.5%에서 90년대에는 1.4%로 떨어졌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현저히 낮았다. 또한 금융부문에서 은행의 무수익여신 비중이 한때 10%에 육박하였고, 금융자율화와 자본시장 개방이 어느정도 진전되던 90년대 중반에는 일부 금융회사의 외화자산·부채관련 위험성이 극에 달해 있었다.
둘째,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이 기술진보를 수반한 내연적 성장이 아니라 요소축적에 의한 외연적 성장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성장에 관한 최근의 실증연구에서 보듯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금기’에 이루어진 유럽과 일본의 따라잡기(catching-up) 성장과 달리 아시아 신흥시장의 고도성장은 요소축적, 특히 자본축적에 기인한 면이 많다.
이와 같은 한국경제의 수수께끼를 설명해주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이제 더이상 구조적 취약성을 해결하지 않고는 과거와 같은 총량적인 거시지표상의 성과를 기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경제는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외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이 용이했고, 단순하나마 양질의 노동력도 풍부했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이 단순했기 때문에 구조적인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또한 국제적인 환경도 좋았다. 1960년대에는 유엔이 설정한 ‘개발의 10년대’와 월남전 특수, 70년대에는 중동 건설붐과 오일달러 환류, 80년대 중반에는 3저현상이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냉전질서 속의 지정학적 요인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제질서에서 한국경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이 거품붕괴를 계속 뒤로 미룰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들어 선진국들의 기술보호정책으로 첨단기술 도입이 어려워졌고, 노동력 특히 고도의 숙련노동력이 부족해졌으며, 임금은 큰 폭으로 상승했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 역시 복잡해졌다. 크루그만(P. Krugma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요소투입에 의한 고속성장은 둔화되기 마련이다. 이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자원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경제는 구조조정을 애타게 기다리다 위기를 맞고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것이다.
2. 1997년 위기 이후의 구조조정
(1) 구조조정의 현황
그렇다면 구제금융 이후 한국경제는 이 문제를 잘 해결했는가? 한국경제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구조조정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구조조정의 핵심은 실물부문에서는 부실기업의 퇴출이, 그리고 금융부문에서는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의 해소가 관건이었다.
먼저 실물부문을 살펴보면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분류되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금융비용)이 1 미만인 기업이 1999년 5월 말 현재 전체의 33%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수많은 기업이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부실기업 청산이 부진하다는 산 증거다. 그 이전인 1994, 95, 96, 97 그리고 98년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지금까지 호전되지 않고 있다. 2001년 상반기에도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제조업체의 수는 30% 수준에 이른다. 또한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제조업체의 수가 2000년 말 기준으로 전체 제조업체 수의 약 4%에 달하는 것도 실물부문의 구조조정이 매우 부진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물부문의 구조조정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자 정부는 2000년 11월에 52개 정리대상 부실기업의 명단발표를 통해 이른바 실물부문 2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형 부실기업의 정리를 유보함으로써 시장 내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못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한국경제 재도약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금융부문은 어떠한가? 1998년 6월 29일 5개 부실은행 퇴출조치를 시작으로 정부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동원하여 금융부문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 그후 대형은행간 합병을 추진하는 한편 부실 제거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자유치·증자 등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실물부문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금융시장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쳐 104조원을 조달하여 회수자금까지 15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음에도 금융권의 부실채권 비율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던 것이다. 1998년 하반기부터 1차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은행권을 중심으로 부실비율이 감소하다가 2000년에 다시 악화되었다. 다만 2차 공적자금 투입, 소매금융에 치중한 일반은행들의 영업실적 호전, 예대(預貸) 마진의 대폭 확대, 그리고 은행들의 과감한 대손상각 등에 힘입어 2001년에는 다소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2) 구조조정의 목표와 문제점
실물부문에서나 금융부문에서 구조조정의 성과가 만족스럽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원인이 무엇이며 부진한 구조조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먼저 구조조정의 목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는 ‘적자생존 원칙의 확립’과 ‘투명성의 확보’였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퇴출되어야 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의 가능성을 줄인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상태와 거래행위,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구조조정의 관건이다. 투명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고서는 기업과 금융부문의 부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조차 없다. 또 정확한 사태파악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의 퇴출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많은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차입에 기초한 심각한 과잉투자의 문제를 일시적 유동성의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부실을 더욱 키우고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았던 1999년의 대우사태가 단적인 예다. 또한 투명성 확보 없이는 대출심사기능의 정상화와 부실채권의 감소란 불가능하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여 자본시장의 발전도 어렵다. 그리고 불투명성은 경쟁을 저해하고 가격의 신호기능을 저하시켜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함으로써 과잉투자와 거품경제의 토양을 제공한다.
IMF 구제금융 이후, 투명성 제고를 위하여 다방면으로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한국경제의 투명성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투명성 확보는 단기적인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내연적 경제성장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작업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조정의 목표에 비추어볼 때 이번 정권에서 추진했던 구조조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먼저 기업구조조정부터 살펴보자. IMF 구제금융 도입과 긴축정책을 통해 일단 외환위기가 진정되자, 정부는 1998년 하반기부터 저금리정책과 공공지출 프로그램을 통해 경기부양을 추진했다. 이것은 신용경색의 악순환을 방지하여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실업과 하청업체 연쇄도산과 같은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기가 호전되면서 구조개혁의 속도는 더뎌졌다. 1998년 초 흑자 도산과 실업자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추진되었던 1차 구조조정은 경기부양에 밀려 주춤거렸다. 대출금 만기연장과 금리우대 같은 인위적인 기업구제정책이 실시되어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부실기업들이 기사회생했다. 이러한 조치는 기업부실을 금융부문에 떠맡기고,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대출을 통해 잠재부실이 현재화하는 것을 억제하는 임시방편적 처방일 뿐이었다.
실물부문에서 부실기업이 퇴출되는 씨스템은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 그것은 구조조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정부가 개혁의 방향과 원칙에 대한 소신과 의지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적자생존의 원칙을 확립하기보다는 기업구제정책을 고수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0년 12월에 정부가 내놓은 회사채 신속인수방안이다. 이것은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에 따라 산업은행 주도로 회사채 차환(借換)발행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신속한 채권인수방식은 부실기업이 퇴출되어야 한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회사채 만기가 다시 돌아왔을 때 부실문제가 재발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부작용을 안고 있다.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들이 퇴출되지 않고 계속 시장에 남아 부실을 누적시키는 상황에서 기업구조조정은 요원하다. 부실기업 퇴출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잠재부실 규모가 커지고, 이에 따라 채권은행도 더욱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계속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금융구조조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살펴보자.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은 금융부문 부실정리에 상당히 기여했다. 1998년 당시 불안한 국내 금융상황에서 공적자금 투입 없이는 금융위기 극복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자체 정리했음에도 금융부문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이는 실물부문의 부실 외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사후관리가 미흡했던 데도 원인이 있다. 2001년 10월 감사원의 발표에서도 나타났듯이, 부실기업주와 파산 금융기관 관계자의 횡령과 배임행위로 결국 7조원이 넘는 부담을 정부가 떠안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의 금융구조조정에서 부실 금융기관의 경영진에게 엄격한 책임추궁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각종 법령을 정비한 것이나 일본에서도 감독기관에 특별조사권을 부여하여 엄격한 사후관리를 시도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안이한 대응을 하였다.
한편 금융구조조정이 미진한 데에는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할 정부가 부실은행을 처리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지 못한 탓도 있다. 2000년 하반기부터 정부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2차 금융구조조정의 큰 틀은, 상대적으로 덜 불량한 은행들은 합병을 유도하여 대형화하고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부실금융기관들은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여 하나로 묶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지주회사로 편입된 금융기관들은 모두 부실정도가 매우 심하다. 원래 금융지주회사제도는 미국에서 우량한 지주회사에 대해 비은행 금융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일종의 특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출발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금융지주회사는 부실은행 합병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무마하는 장치로 전락한 측면이 많다.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은행들이 지주회사 아래에 묶인다고 해서 경영상태가 자동적으로 개선될 리 없다. 불량+불량에서 우량이 나올 수 없듯이, 지주회사 내의 불량은행들은 대규모 공적자금만 계속 집어삼키는 골칫덩어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3. 앞으로의 과제―단기
최근까지의 구조조정은 외형만 요란할 뿐 실질적인 성과는 크지 않다. 그러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정부는 그동안의 구조조정을 총괄적으로 점검하되 개혁추진세력의 재정비와 이들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이데올로기의 정립에 힘써야 한다.
광범위한 개혁 연대세력의 구축을 통해 개혁 추진세력의 양적·질적 확충을 달성하여야 구조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 뚜렷한 방향감각, 날카로운 현실인식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을 겸비하면서도 재벌이나 금융기관에게 발목 잡히지 않을 인물들을 대거 등용해 정부의 개혁의지를 다시 한번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강조하고 개혁주체세력간의 원활한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개혁주체의 정비는 개혁적 인사들을 등용하는 것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개혁의 본질이 적자생존의 원칙과 투명성의 확보라고 할 때, 개혁은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제구조와 사회질서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과거의 체제에서 이득을 누린 경제주체들의 저항도 거셀 것이고 이들을 축으로 형성되는 이데올로기의 영향력도 만만찮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용두사미로 귀결되거나 본질적인 목표와 거리가 먼 형태로 왜곡되어버린 개혁의 시도는 수없이 많다. 이러한 사례의 대부분은 개혁에 대해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들간의 정치적인 역학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개혁주체를 튼튼히 확립하는 일보다 개혁의 구호에 더 열심히 매달리거나 개혁을 입법이나 행정적인 절차쯤으로 이해한 경우들이다.
대공황기 미국의 경험은 좋은 교훈을 제공한다. 그 심도에서나 지속성에서 역사상 전무후무하였던 1930년대의 대공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 뉴딜 정책(New Deal Policy)은 과감한 금융개혁을 골자로 한다. 이 시기의 금융개혁은, 19세기 후반 이후 수십년간에 걸친 중화학공업화와 대기업화 그리고 그에 기초한 급속한 경제성장과정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온 은행가들 및 대기업 지배주주들의 이해와 마찰을 일으키면서도 끈질기게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것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빈번한 금융위기에 시달렸던 미국에서는 수차례의 금융제도개선이 시도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에서 경쟁질서를 제대로 확립하고 금융위기의 재발을 종식한 것은 로즈벨트(F.D. Roosevelt) 행정부의 뉴딜 개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뉴딜 100일 동안 입법된 14개의 법안 가운데 8개가 금융관련법이었고 다양한 금융개혁이 1941년까지 일관되고 꾸준하게 지속되었다. 물론, 다양한 정책들로 구성된 뉴딜 기의 노력들이 전적으로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햇빛은 가장 훌륭한 살균제이고 전등은 가장 효율적인 경찰관”이라는 철학을 금융개혁의 기본정신으로 삼아 공시를 통한 투명성 제고와 수익성 위주의 자금배분원칙이 금융시장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일관되게 개혁을 추진하였다는 점에서 뉴딜 개혁은 성공적인 교훈을 제시해준다.
뉴딜 정책이 경쟁을 촉진하는 개혁을 주도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시장지상주의를 채택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뉴딜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화학공업화와 대기업화 과정에서 누적된 갈등을 해결하려는 개혁적 이데올로기와 함께 다양한 계층이 개혁에 동참하도록 한 로즈벨트 행정부의 정치적 노력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임금 및 농산물가격 지지정책과 진보적인 노사관계의 도입 등은 국민대중 다수가 개혁을 지지하도록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뉴딜 정책은 시장질서의 확립과 정부의 역할을 조화시키려 했던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한국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경제는 시장이 자율적인 조절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투명성 제고를 위한 회계 및 공시제도의 확립과 계약이행을 보장하는 법제의 정비, 소비자 보호와 공정경쟁의 제도화, 기업 및 금융기관 의사결정권자들의 과도한 위험추구로부터 외부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내실있는 제도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시장 인프라의 구축은 개별 경제주체들의 활동에 의해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 인프라의 구축과 보호는 정부의 고유한 역할이다. 장기간의 외형위주 성장과정에서 정부의 경쟁제한정책으로 말미암아 공정한 경쟁이 자리잡지 못한 한국에서 개별 경제주체들의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 적자생존의 원칙과 투명성 확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직 시장의 인프라조차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경제에서 정부는 미시적·구조적 개입을 통해 시장의 인프라를 우선 구축해야 한다. 물론 시장의 틀과 게임의 룰이 갖추어지면 정부는 시장제도의 유지와 안정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과거 한국정부는 무능과 부도덕으로 지탄받아왔다. 그러나 과거의 정부가 아무리 무능했다고 할지라도, 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과 그것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정부는 더이상 수세적 자세만 취하지 말고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하여 경제구조 건전화에 앞장서야 한다.
4. 앞으로의 과제―장기
한 경제의 지속적 성장가능성은 시장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적자생존의 원칙, 즉 부실기업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된다는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규모만 크면 망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관행이 중복과잉투자를 초래했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시장에서 기업의 투자계획이 수익성에 따라 평가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부실한 투자계획이 기업 내부에서 검증되어 스스로 조정을 거칠 수 있도록 하는 건전한 기업구조가 구축되어야 한다. 잘못된 투자계획과 비효율적 경영방식이 아무런 제약 없이 지속될 수 있는 기업구조에서는, 기업부실을 자체적으로 통제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부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은행이 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를 엄격히 하고 기타 금융기관이 금융시장에서 기업평가작업을 투명하게 해야 실물부문에서 적자생존의 원칙이 확보될 수 있다. 금융부문 구조조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부문 구조조정도 수익성에 근거한 적자생존의 원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규모가 크더라도 불량한 정도가 심한 은행은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경험을 학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효율적·안정적인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물부문이든 금융부문이든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회계기준 강화를 통한 금융의 투명성 제고가 요구된다. 한국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부실채권규모·당기순이익 등 핵심적 재무상태에 대한 통계치는 아직도 신뢰하기 어렵다. 부실한 자료에 근거한 금융감독도 무의미하다. 게다가 불투명성이 잘못된 금융관행과 연결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분명한 책임소재 규명이 어렵다. 따라서 투명성 확보는 적자생존 원칙의 확립과 함께 지속적 성장을 위한 구조조정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요소이다.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을 별다른 고통 없이 한순간에 건전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한정된 자금을 회생이 불투명한 부실부문에 투입하는 것은 그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건전한 기업과 금융기관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불건전한 기업에 대한 과감한 퇴출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