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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촛점 | 팔레스타인 노트
말〔言語〕의 학살
크리스띠앙 쌀몽 Christian Salmon
프랑스 문필가. 국제작가회의 사무총장. 에쎄이집 『허구의 무덤』(Tombeau de la fiction) 등이 있음. 7개 언어로 동시에 출판되는 잡지 『오토다페』(AUTODAFE)의 책임자. 1994년에 5대륙의 많은 작가들의 후원에 힘입어 국제작가회의를 세우고 난민촌들의 연결조직을 구성함. 이 글의 원제는 “Verbicide”이며 프랑스 신문 Libération 2002년 4월 15일자에 실림.
ⓒ IPW 2002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2,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IPW
* 이 글은 크리스띠앙 쌀몽이 요르단강 서안 재점령 일주일 후 예닌에서 벌어진 학살을 직접 접하고 나서 발표한 기고문이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에서 관건이 되는 문제가 영토의 분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원에 대한 서사의 진실성에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원문의 도입글
예닌(Jenin)에서 벌어진 사태를 뭐라 해야 할까?
여러 날 동안 탱크에 포격당한 1평방킬로미터 정도 크기의 난민촌이었다. 헬리콥터에서 400개 이상의 미사일들이 폭우처럼 쏟아졌다고 한다. 수백명의 사망자들. 주민들, 그들은 불도저가 부숴버린 집들의 잔해 아래 매몰되어 있었다. 수천명의 부상자들, 그들은 아무런 구호도 받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었다. 거리에 떠도는 아이들, 그들은 탱크의 포화에 내맡겨져 있었고. 또한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혹독한 시련에 시달렸을까? 민간인들을 죽여야 했을 뿐 아니라 이 죽은 사람들을 국제언론의 눈길을 피해 멀리 감추어야만 했으니까. 그들은 예전에 시체에 매여졌던 사형수들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영혼이 예닌에서 죽어나갔을까?
2주일 전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우리 열두 명의 작가와 예술가들은 국제작가회의1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에 갔다. 국제연합 평화유지군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라말라에 묶여 있던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들 중 몇몇과 뉴욕에서 만나려 했다가 두 번이나 저지당했다. 우리는 이 소란한 전쟁 속에서 다른 목소리들을 듣고 세상에 전하고자 했다. 작가들, 예술가들, 대학교수들, 당파를 넘어서 미래를 준비하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 말이다. 그것은 전쟁의 논리에 맞서되 어떤 ‘간(間)입장’(inter-position)의 힘이 아니라 ‘간(間)해석’(inter-prétation)의 힘으로 맞서고자 하는 것이었다. 어떤 분쟁이라 해도 이토록 작가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적은 없었다. 물론 작가들이 언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언어사용에 있어 조심스러워할 줄도 알아야겠다. 물론 대중매체에 일정한 거리를 둘 줄도 알아야겠고. 모든 논쟁을 떠나서 나는 일단 이 점부터 분명히하고 지나가고 싶다. 우리 단원 전체는 이 여행중에 발설된 모든 과장된 발언들을 단호히 배격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라말라를 아우슈비츠에 비교했던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에게서 나왔든 또는 군 바리케이드 앞으로 걸어나가 앰뷸런스가 지나갈 길을 마련하고 생명들을 구할 수 있도록 했던 유럽의 평화주의자들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한 주불 이스라엘 대사에게서 나왔든 상관없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머무는 동안 나는 어느 정도까지 말[言語]이 다른 말에 의해 침공당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어설픈 추리들이 가져온 고난들을 보았으며, 이러한 고난들을 원하는 대중매체의 탐욕을 보았다. 고통, 그것은 붕괴된 언어에서 나온다. 팔레스타인의 아우슈비츠! 수정의 밤(Kristallnacht, 1938년 11월 9,10일 사이에 있었던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뜻하는 말---옮긴이). 아라파트-히틀러. 폐허가 된 수용소들의 벽에 그린 卍자형 나찌 마크와 그 위에 붙인 다비드의 별. 얼빠진 차량충돌. 죽은 자들의 침묵. 유령들의 무도(舞蹈). 모든 것을 영원히 읽지 못하게 만들려는 어리석은 광란. 도처의 막무가내.
쾨스틀러(Köstler)는 “전쟁은 의미론의 영토 위에서 말들을 놓고 벌어진다”고 했다. 이번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으깨어진 말들의 잡음이 거의 또박또박 들릴 정도이다. 말의 학살. 이 전쟁이 말의 학살인 것은 단지 선전집단에 의한 언어파괴 때문만은 아니다. 사악한 짓을 하는 것은 기의(signifié)만이 아니다. 그냥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족히 알 수 있다. 주민들의 수난은 두터운 기억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 수난은 상상력에 영향을 미친다. 라말라 문화쎈터에서 한 팔레스타인 시인은 전쟁이 문법에 끼친 해악을 지적했다. “우리 언어는 경화증에 걸렸습니다. 시는 거리 못지않게 박살이 났지요. 우리는 시를 극화(劇化)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과제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군대의 운율법에 저항해야만 하고, 북소리의 박자가 아닌 다른 박자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의 결론은 피곤한 반어법으로 끝난다. “별들을 보면서 우리는 헬리콥터들을 봅니다. 여기에 있는 단 하나의 포스트모던한 사태……그것은 이스라엘 군대입니다!” 또한 나는 몇달 전 다르위시가 말한 용기 있는 구절을 생각했다. “오로지 내 나라의 민중들이 자유로울 때만 나는 시인으로서 정말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때에만 나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전쟁 중에도 이런 자유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들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언어에 대한 진정한 관계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언어의 저항이 있다! 그것은 저항의 언어 이상의 것이다. 며칠 후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철학자 암논 라즈(Amnon Raz)의 입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 “캠프 데이비드의 중재 실패 이후 우리에게는 더이상 어휘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협상을 하고 평화를 찾으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합니다.” 왜 그럴까? 이 전쟁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정당성을 요구하는 권리와 이익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는 무엇보다 역사적 기원에 대한 서사의 진실성이 문제이다. 금세기 초부터 시작된 싸움의 관건, 그것은 영토에 대한 요구들과 권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신화들 그리고 서사에 있다. 이 전쟁은 허구를 둘러싼 전쟁인 것이다.
우리가 떠난 이틀 후 이스라엘 군대는 라말라에 진입했다. 이 군대는 다시 모든 공공건물들을 점령했고, 사라예보에서처럼 행인들을 쏠 수 있도록 건물들 꼭대기에 저격시설을 배치했다. 민간인들이 피신해 있던 건물들을 폭격했고, 중세 때부터 피난처로 쓰이던 성소(聖所)를 침범했다. 그러나 최악의 것은 따로 있다. 이스라엘 군대는 한 민영 텔레비전방송을 장악하여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고, 시청자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쉬지 않고 포르노 영화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과연 이것이 샤론이 구현한다고 공언하는 ‘자유로운 세계’의 이미지일까? 이런 짓을 자행하는 군대는 모든 정당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군대는 치욕적인 권력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게다가 식민지의 역사는 수없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런 군대는 이미 전쟁에서 진 것이다.
양쪽 편에서 반복하는 말이지만, 평화의 걸림돌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요구사항에 있는 것이 아니다. 수차례에 걸친 다양한 협상들에 이어 가망성이 있고 실천 가능한 타협안들이 나왔다. 여러 번 합의의 목전에 도달했다. 그러나 다만 무기들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 무기에 대한 공포를 무장해제해야 한다. 심리적 표상의 진지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 자기방어의 실천이라고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있다! 미래의 팔레스타인 국가의 모든 토대를 파괴하는 것이 테러에 방어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신성한 영토에 대한 침입은 점령이 아니란다! 미래에 침을 뱉는 것, 그것은 영토의 봉쇄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수사학적 봉쇄이다.
우리가 떠난 직후 이스라엘 군대가 라말라에 진입하여 카사바 극장을 파괴했다. 그 극장에는 우리가 중국어, 아랍어, 아프리칸스어, 영어, 요루바어, 포르투갈어, 이딸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9개 언어로 읽었던 텍스트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었다. 또한 거기서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그의 시 「계엄령」을 수천의 관객들 앞에서 낭독했다. 그 관객들 중의 상당수는 군대의 통제 때문에 여러 시간 동안 헤매야 했지만 모두 일어나 갈채를 보냈다. 증오에 가득 찬 광적인 종교인들이 아니라 작가들, 시인들에게 갈채를 보낸 것이다. 이 극장이 파괴됐을 때 나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이스라엘 민중이 구별되는 이유는, 팔레스타인 민중은 국가도 영토도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어떤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이스라엘 국가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서사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샤론이나 부시가 탱크와 포탄을 앞세워 얼마간 존중받고자 희망할 수 있었던 권위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다만 이야기된 사물의 권위이며, 끝끝내 이어지는 서사의 저항이다. 어떤 민족은 땅도 없을 수 있고 국가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서사가 없다면 어떠한 민족도 오래도록 존속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단 한마디의 말에 담을 수 있다. 사브린(Sabreen). 그것은 언어의 학살을 자행하는 이 전쟁에서 탈출한 말, 난민촌에서 살아남은 말이다. 내가 그 말을 발견한 것은 책에서도 아니고 하물며 사전에서도 아니다. 나는 그 말을 라말라의 난민촌 거리에서, 검문소 주변에 모여 있던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그리고 막 파괴된 집 앞에 서 있던 여인네들의 얼굴에서 발견했다. 사브린. 그것은 성경의 욥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고, ‘참을성이 있는 사람들’이란 뜻을 지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라말라 극장에서, 이제는 폐허가 되어 침묵과 어둠속에 가라앉은 그 극장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당신들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들이 참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朴俊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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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작가회의의 싸이트(www.autodafe.org)에서 러쎌 뱅크스, 브러이턴 브러이턴바흐, 빈첸쪼 꼰쏠로, 후안 고이띠쏠로 그리고 월레 소잉카의 여정기록을 살펴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