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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희성 鄭喜成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詩를 찾아서』 등이 있음. jhs3491@hanmir.com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
큰 전쟁이 날 거라고들 했다
세상 참 더럽게 돌아간다 생각하며
간디 박물관에 들어섰다
내가 태어날 무렵에 죽었을
간디의 벗은 몸을 보았다
소금을 만들기 위해 행진하던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
세상을 선사시대로 돌려놓기 위해
미국의 야만주의자들이
사막의 모래를 더 잘게 부수고 있는 이 순간
바스러진 모래알 틈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고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날씨 탓만은 아니다
나는 너무 많은 옷을 입고 있다
늙은 릭샤꾼
딱히 어디로 가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늙은 릭샤꾼은 힘에 겨운 듯 야무나 강변에 나를 내려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강 건너편으로 죽은 자를 위한 화려한 집 타지마할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 이쪽은 눈길을 주기가 민망할 빈민들의 거처였다. 이 묘한 지점에 나를 세워두고 어쩌자는 것일까. 나는 늙은 릭샤꾼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나를 향해 서 있었지만 나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눈길은 나를 지나 내 뒤의 무엇을 향해 있었는데 퀭한 눈으로 그가 건너다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깨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을 뿐이었다.
태백산행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