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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정란 金正蘭
1953년 서울 출생.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다시 시작하는 나비』 『매혹, 혹은 겹침』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 『스.타.카.토. 내 영혼』 『용연향』 등이 있음. jrkim@sangji.ac.kr
Be just this world
눈물이 막 쏟아졌는데요,
눈물이 시간을 막 불렀는데요,
그런데 눈물은 흐르지 않아요
나는 어느새 눈물과 강물을
분별하지 않게 되었어요
천년 전에 벌써 이곳에 왔었어요
천년 후에 아직도 이곳에 있을 거예요
모든 것은 낯익고 낯설어요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을 알아요
모든 건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요
이미 다 보았고 이미 다 알고 있는걸요
그래도 왔다가 가는 시간을 바라보지요
누가 그렇게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선택인지 명령인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슬픈 눈물 늘 세계를 향해 쏟아져요
Be with this world.
Be just this world.
떠나간 어린 왕 하나
상룡에게
어떤 바람이 불었을까. 어떤 조용한 나뭇잎 사이로.
계절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시간은 화를 내며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다.
나는 어린 왕들을, 보이지 않는 순결한 그들을 따라갔다.
때로 그들의 그림자가 우주의 어떤 작은 집을 떠나
내 늙고 지친 어깨 위에 내려앉았었다.
그리고 울음소리,
멀리에서 가까이로 가까이에서 멀리로
순간이동을 하는
고요한 고요한 울음소리.
시간이요? 엄마,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내가 세상에 없는 것만큼이나요.
나는 어린 왕들 중 하나가 문득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사라짐.
강압적인 잔인한 설명되지 않는 부재.
나는 혀를 안으로 말아넣는다.
어린 왕 하나 늙은 내가 따라갔던 순결한 그림자 하나
내 어깨에 슬프게 놓였다가 떠난 어린 왕 하나
내 무력한 혀는 네 떠남을 설명하지 못한다
문득 내 지친 발끝에서 파도가 들이치는
천길 낭떠러지가 일어선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무서운 고요 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설명되지 않는 거대한 얼굴 슬픔이며 위안인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