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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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姜聖恩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mongsangs@hanmail.net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잠든 사이 붉은 가로등이 켜졌다

붉은 가로등이 켜지는 사이 달에 눈이 내렸다

달에 눈이 내리는 사이 까마귀가 울었다

까마귀가 우는 사이 내 몸의 가지들은 몸속으로만 뻗어갔다

몸속에 가지들이 자라는 사이 말(言)들은 썩어 버려졌다

말들이 썩어 버려지는 사이 나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었다

구두를 신는 사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여름이 오는 사이 도시의 모든 지붕들이 날아갔다

도시의 지붕들이 날아가는 사이 길들도 사라졌다

길들이 사라지는 사이 지붕을 찾으러 떠났던 사람들은 집을 잃었다

그사이 빛나던 여름이 죽었다

여름이 죽는 사이 내 몸속에선 검은 꽃들이 피어났다

검은 꽃이 피는 사이 나는 흰 구름을 읽었다

흰 구름을 읽는 사이 투명한 얼음의 냄새가 번져갔다

얼음 냄새가 번지는 사이 나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었다

열두 켤레의 구두를 더 신는 사이 계절은 바뀌지 않았다

구두의 계절이 계속되는 사이

나는 구두의 수를 세지 않았다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1

 

 

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

자줏빛 스카프가

내가 아름다운 두 팔로

그녀를 목 졸랐네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가 죽는 것을 보았지?

마룻바닥이

내 커다란 눈으로

떨어지는 핏방울들을 보았네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의 피를 가져갔지?

양탄자가

내 고운 실들이

그녀의 피를 먹었지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를 운반하지?

쓰레기통이

그녀를 토막내준다면

내가 운반하지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를 토막내지?

가위가

그녀가 종이처럼 얇게 마른다면

내가 자르지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를 말리지?

먼지가

그녀가 기억마저 잃었다면

내가 그녀를 감싸안고 까맣게 말리지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의 기억을 가져가지?

그림자가

그녀가 쓴 노트들을 태운다면

내가 모든 기억을 데리고 달의 뒤편으로 가지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의 노트들을 태우지?

태양이

그녀의 눈알들을 준다면

내가 노트들을 불살라버리지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의 감은 눈꺼풀을 열고 눈알을 뽑지?

음악이

그녀의 목소리를 준다면

내가 그녀를 눈뜨게 하지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를 깨워 노래 부르게 하지?

고통이

그녀가 지금도 나를 기억한다면

내가 그녀를 일으켜세워 노래 부르게 하지라고 말했네

 

그레텔 부인은 하루 온종일 노래 부르네

 

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

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

누가 내 사랑스런 그녀를 죽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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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더구스(Mother Goose)의 노래 「누가 울새를 죽였나」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