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유용태·박진우·박태균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창비 2011
동아시아사의 새 단계를 보여주는 획기적 성과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miyajimah@skku.edu
이번에 창비에서 출간한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전2권)는 동아시아사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한단계 높였다는 의미에서 한국 사학계의 큰 성과라고 하겠다. 평소 동아시아사에 관심을 가져온 한편 실제로 동아시아사 집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나도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논의하고 싶은 문제도 풍부한 것 같아 기쁘게 읽었다. 두권으로 묶인 이 책을 한정된 지면에서 다 검토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책에서 제기된 동아시아사의 필요성, 그리고 그 구체적 구상 등의 문제에 한정해 논하기로 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동아시아사를 ‘지역사’로 규정하면서 그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아시아 각국은 자국사와 세계사의 이분법 속에서 역사교육을 통해 국민의 역사기억을 재생산해왔다. 그런데 세계사의 유럽중심주의도, 자국사의 자국중심주의도 유럽 모델의 국민국가 수립을 역사의 도달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유럽중심주의의 핵심인 진화론에 입각한 문명사관을 수용한 결과) 우리 동아시아인이 스스로 동아시아 이웃을 무시하고 깔보는 자기소외 현상에 빠지게 되었다.”(1권 18~19면) 이러한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국사와 세계사를 종래와는 다른 원리에 입각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진일보의 작업으로서 동아시아사라는 지역사를 서술하는 일이 필요하며 의미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판단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이 국가가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화이(華夷)의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자국중심주의의 역사가 오래되어 그만큼 역사인식에 관한 대립도 심각하다는 판단이 이 책을 집필하게 한 이유라고 밝혀져 있다.
이러한 저자들의 입장은 획기적인 것으로서, 앞으로 동아시아사를 구상할 때 반드시 참조할 만한 문제제기라고 생각된다. 즉 지금까지의 역사학을 지배해온 유럽적인 문명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원리에 입각한 역사서술을 찾기 위해서 동아시아사가 구상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종래의 틀 자체에 대한 비판의식 없이 일국사를 단순히 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하는 식의 서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으로서 정곡을 찌른 지적이다. 물론 저자들의 이러한 입장이 이 책에서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는 별도로 평가해야 하는 문제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이 책의 내용적 특색으로 다음 세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를 균등하게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을 신축성있게 파악함으로써 비교와 연관성 면에서 깊이있는 내용을 갖추었다. 각국 내부의 소수민족 등 소수자에 대한 주목도 저자들의 안목을 잘 보여주는 부분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둘째, 근현대사를 주된 내용으로 하면서도 그 이전 시기를 단순한 전제로서가 아니라 근현대사와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두터운’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전통사회에서의 ‘문(文)’과 ‘무(武)’의 대비라든가 지역내 교역망의 존재 같은 근현대와 직결되는 문제를 세세히 서술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셋째, 제목의 ‘함께 읽는’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전체 구상의 특색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함께’라는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 하나는 “각 장의 주제를 지역・국가・민중의 세 차원에서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이 책만의 특징을 드러내려는” 뜻이고, 또 하나는 “한국인이 쓴 동아시아사가 국경을 넘어서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뜻이다(1권 8면). 특히 이 책은 시대에 따라 각 장이 동아시아라는 지역 차원과 각 국가 차원, 민중 차원이라는 세 층위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짜임새는 이 책의 독특한 면모로서 저자들의 남다른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통일적인 구성 탓에 빠지게 된 부분도 많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 책의 의의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있지만 지면 관계상 저자들과 앞으로 같이 고민하고 싶은 점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먼저 이 책의 최대 목표로서 저자들이 내건, 문명사관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무엇이며, 그 틀에 의해 일관된 서술이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의 문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평자도 전면적으로 동의하며 그 틀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상태다. 그만큼 이 책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그 새로운 틀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그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사상사에 관한 기술이 거의 안 보이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중심으로 사실을 중시하면서 서술하는 방법을 채택했으므로 근대에 대한 회의, 비판, 저항을 나타낸 많은 사상가들은 그들의 사유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덜 주목받은 게 아닐까 생각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틀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상의 수맥을 찾아서 발굴하는 작업이 필수적인만큼, 앞으로 함께 고민하고 싶은 과제 중의 하나다.
한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회에 관한 시각이 약하다는 점이다. 사회구조의 문제나 이른바 사회사적인 시각이 약하다는 문제는 아마도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장기적 시간 속에서 사회가 변화해가는 과정을 포착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일적 구성을 취하면서도 젠더 문제를 포함한 가족사 문제, 인구 문제 등 중요한 주제에 대해 독립된 항목을 설정해 집중적으로 기술하는 것 같은 융통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과제로서 특히 중국 및 일본의 연구자들과 함께 이 책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렇게 획기적인 책이 왜 한국에서 먼저 나올 수 있었는지의 문제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한 희망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