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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우리 비평담론의 사회성을 찾아서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최근 소설을 통해 본 87년체제의 감정구조
강경석 姜敬錫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모든 것의 석양 앞에서: 지금, 한국소설과 ‘현실의 귀환’」 등이 있음. netka@hanmail.net
1. 결여의 감정교착—불안과 죄의식
미학적으로 평범하지만 사회적 반향만큼은 특별했던 영화 「변호인」(2013)1)은 1987년 봄의 법정 장면에서 끝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모델로 한 가공의 인물 송우석이다. 부림사건(1981)에 뛰어들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6년 뒤 박종철(朴鍾哲) 고문치사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하다 수인(囚人)의 몸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결말은 주인공의 패배를 뜻하지 않는다. 81년의 그는 혼자였지만 87년의 그는 무려 99명의 변호인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판사의 호명에 따라 차례로 기립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라는 감각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날의 법정으로 천만 관객을 불러모으고 전율하게 만든 힘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함께’인 우리의 궁극적 승리를 뜻하는 걸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서서히 클로즈업되는 송우석의 얼굴엔 시대의 소명에 온전히 귀의한 자의 비장한 평온이 어려 있지만 관객들은 그가 모델로 삼고 있는 실존인물이 훗날 어떤 영광과 모욕 속에서 살다 갔는지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의를 입은 그의 모습에 좌절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승리의 희열에 안주할 수도 없게 된다. 이 감정의 교착상태 가운데서 정작 마주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과 대면하는 괴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가 한시바삐 떨쳐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거리는 어수선했다. 저물어 오는 거리에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광화문 쪽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오늘 낮에 광화문에서 있었던 것이다. 대한문 앞에 설치했던 시민분향소를 경찰이 해체하려 한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일종의 무서움인지도 몰랐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전직 대통령으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게 한 지금 이곳의 현실이 무서워서 사람들은 지금 저렇듯 황막한 눈빛으로 광화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리라.” 공선옥(孔善玉)의 장편 『영란』(뿔 2010)의 전반부 한 대목(45면)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이와 남편을 연달아 잃은 주인공, 불륜으로 가족과 이별한 운동권 출신 소설가 정섭, 외환위기 시절을 버텨내고도 결국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어 죽음을 맞은 호영 등 저마다의 상실감으로 번민하는 인물들이 그날의 광화문을 배경으로 만나고 헤어진다. 왜 이런 배경이 필요했던 걸까.
주인공은 말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고 싶었다. 혼자 있다는 것은 춥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추워서, 그날 그곳에 나갔다.” 여기서 말하는 “그날 그곳”이 대한문의 시민분향소였든 「변호인」이 걸린 영화관이었든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이런 무정하고도 매정한 세상”에서 추웠던 게 아닐까. “그날 그곳”에서 사람들이 “하염없는 줄을 만들고” 있었던 이유는 그곳이 정작 분향소나 영화관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18~19면 참조) “이런 무정하고도 매정한 세상”에서라면 아무도 함께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불안)과 “무정하고도 매정한 세상”이기 때문에 끝까지 함께해주지 못했고 못할 것이라는 미안함(죄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더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감정의 교착상태가 그것만으로 완전히 해소될 리 없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책망하는 동시에 속수무책의 세상을 원망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그날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였음을 확인함으로써 불안과 죄의식으로부터 서둘러 빠져나오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변호인」의 결말이자 이 모든 복합감정의 출처이고 심지어 “이런 무정하고도 매정한 세상”의 기원인지도 모를 저 1987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1987년은 “우리 사회의 궤적을 해명하고 현재에서 새롭게 출발하려 할 때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을 정돈하는” 유력한 “인식론적 관제고지(管制高地)”다.2) 87년체제라는 개념으로 6월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구조변동을 이론화한 김종엽(金鍾曄)은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박정희식 발전국가체제의 해체로 그 의미를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 그것은(제도적 민주화는—인용자)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체제 이후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정치적 과정에 맡겨졌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치적 과정이라는 테이블 위에 모든 카드가 올라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세력의 포진상태와 확립된 가치정향에 따라 어떤 카드가 올라올지는 미리 규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87년체제는 이런 선택범위를 좁히지 못했다. 타협적 민주화였기 때문에 사회세력의 재편이 취약했고, 권위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정치혁명이었지만 구체제의 가치와 문화적 에토스로부터의 방향전환을 이룩하는 문화혁명적 성격이 매우 빈약했기 때문이다.”3)
왜 아니겠는가. 아래로부터의 6월항쟁과 위로부터의 6·29선언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87년체제는 바로 그 타협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권위주의체제의 정치적·문화적 유산들을 말끔히 청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옹호세력에조차 활동공간을 보장해줄 수밖에 없었던 결여태(缺如態)이기 때문이다. 이 결여가 나쁜 정치주의의 온상이 되었다. 구체제 옹호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해줌으로써 거의 모든 국가적 사안을 선거라는 블랙홀이 흡수해버리도록 방조한 것이 87년체제인지도 모른다. 모든 결정은 유권자인 국민 전체의 책임으로 고루 배분되었고 87년체제의 ‘플러스’ 요인들이 새로운 체제에 대한 상상력과 긴밀한 결합을 시도할 때마다 그 ‘마이너스’ 요인들에 기반을 둔 구체제의 망령이 되살아난다. 이 민주주의의 상시적 비상상태는 나쁜 정치주의의 확산 가운데 정치 자체에 대한 환멸을 부추기고 선택에 따르는 책임과 부담을 유권자들에게 전가함으로써 오히려 책임정치의 실종을 초래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압력에 맞설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은 결집하지 못한 채 정파적 이해관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게 되었다. ‘민주화 세력’의 실력부족을 타매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 실력배양의 공간이 충분치 않았음을 새기는 것만으로는 다음이 없다. 비정한 세리(稅吏)의 눈으로 87년체제가 낳은 이 결여의 감정교착을 해부하는 일이 우선임은 물론이다.
2. 잠행(潛行)하는 공화—두 얼굴의 ‘최소주의’
사회정책에서 개혁과 진보를,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채택했던 참여정부는 잇따른 정책혼선으로 지지층 이탈을 자초했다. 때맞춰 총공세를 펼친 수구세력의 도전 앞에 참여정부는 표류하는 것처럼 보였다. 발전국가체제를 종식시켰으되 이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비전을 준비하지는 못했던 87년체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체제에 순응함으로써 그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었는데, 참여정부의 위기 또한 여기서 유래한다. 국민의정부 시절 전방위 구조조정으로 IMF관리체제를 벗어나는 동안 신자유주의적 가치는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내면화하였고, 뒤이어 들어선 참여정부는 다른 카드를 준비해놓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87년체제론의 인식은 이 두번째 민주정부의 위기국면에서 그 면모를 뚜렷이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작가 배수아(裵琇亞)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희귀한 사례라 할 만한 장편 『독학자』(열림원 2004)를 발표한다. 대통령탄핵사건(2004)이 위헌판결로 마무리된 직후였다. 6월항쟁의 세속화에 대한 주인공의 사색은 다시 읽어도 의미심장하다.
어느 누구도 정치적 진보에 투입되는 열정에 비해 사회 자체의 진보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관심이 없었으며, 혹은 정치적 진보가 그대로 사회의 진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를 탄핵해야 하는 부담도 없고 이익을 나누어 가지기 위해 머리 터지게 싸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오늘 저녁 내 밥상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건만, 혹은 오히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아무도 진보된 정치에 어울릴 만한, 그것을 포용할 만한 혹은 그것에 포용될 만한 진보된 사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진보된 개인과 문화를 위해서, 그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진보된 정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은 모두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인 자유 이외의 모든 지적인 자유, 정치적인 의미 이외의 사상의 자유, 예술의 자유, 그리고 가장 잔인하고 억압적인 관습으로부터의 자유, 해머처럼 가차없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다수의 결정으로부터의 자유, 군중으로부터의 자유, 잔인한 본성으로부터의 자유, 무기와 육식으로부터의 자유, 폐쇄적인 성 정체성과 전통적 가족으로부터의 자유. 그런 것들을 원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125~26면)
제도적 민주화란 원칙적으로 수단 이상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역시 그 수단으로 무엇을 이룰 것인가이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절묘한 ‘최소주의’의 슬로건 아래 양심적 자유주의 세력과 재야운동권을 비롯한 노동세력·민중부문은 서로에게서 ‘낮은 단계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광범위한 계급연합을 구축했다. 그러나 7·8월 노동자대투쟁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그해 12월 대통령선거는 예의 최소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6·29선언의 ‘예방혁명’ 기획이 6월항쟁의 획기성에 제동을 걸었던 셈인데, 익히 알려진 바대로 양김 분열은 결정적이었다. 후보자들의 권력욕이나 정부의 여론조사 조작, KAL기 폭파사건 여파는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핵심은 연합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합의의 문화와 경험, 제도적 역량의 부족에 있었던 게 아닐까. 최소주의의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탄핵에서 복귀한 참여정부의 난맥상은 ‘87년식’ 최소주의의 부활을 자극했다. 이 최소주의 향수가 2004년 봄의 광장을 메운 탄핵반대 촛불시위로 가시화되었다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고독한 6월항쟁 세대의 예외적 성장서사를 골격으로 한 배수아의 『독학자』는, “구체제의 가치와 문화적 에토스로부터의 방향전환을 이룩하는 문화혁명적 성격”의 빈곤(김종엽)을 짚은 87년체제론의 성찰적 면모와 내용적으로 공명하면서, 최소주의의 불길한 복귀에 매서운 질문을 던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해머처럼 가차없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다수의 결정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워진 것일까.
반면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이나 기업·노동 부문의 일정한 자유화 조치 등 그 성과적 측면 또한 무시하기 어려운 ‘87년식’ 최소주의는 무엇보다도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험난한 전진 가운데서도 최후방어선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왔다. 「변호인」에 나오는 송우석의 인상적인 대사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가 환기하는 최후방어선의 감각은 간과해선 안될 그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분단체제 수구세력의 온존에도 불구하고 6·15공동선언(2000)을 낳은 토대이며 고비마다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촛불행렬의 요람이 되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경험적 토대가 취약한 한국에서 대규모 유혈사태나 군사쿠데타 없이 민주화를 이룰 수 있게 해준 밑바탕도 이 ‘타협’의 최소주의였다. 아무리 낮춰 평가한다 해도 이제 민주화의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87년체제의 한계에 대한 비판적 강조가 지나쳐 오히려 그 극복의 실마리조차 잃어버리곤 하는 오류를 우리는 97년체제론에서 마주치곤 한다. 97년체제론은 우리 사회 자본주의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국면에 접어들었으므로 진보진영의 핵심의제를 반신자유주의 전선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97년체제론의 입장에 설 때 87년체제론은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중요성을 희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외재적 요인에 관점을 종속시킴으로써 분단현실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내적 역동성을 시야에 담지 못하고 87년 이후를 ‘민주화의 시간’으로 과잉 평면화할 뿐 아니라 더 심각하게는 97년체제 자신의 발생 토대를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 또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4)
포스트모더니즘과 어정쩡하게 제휴한 근대문학 종언론이야말로 97년체제론의 문학적 버전일 것이다. 97년체제론이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낳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묘사함으로써 암암리에 그 인공적 본질을 은폐하는 데 기여하곤 하는 것처럼, 근대문학 종언론은 당대문학의 정치적 무력감을 극복 불가능의 막다른 골목인 듯 과잉 규정함으로써 불안과 죄의식에 들린 사회심리에 편승해 자신의 무력을 기정사실화 또는 합리화한다. 반신자유주의적 표면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국 신자유주의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모든 죄과를 신자유주의가 떠안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가 절대화하는 순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철옹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 그 멜랑콜리(melancholy)한 감각의 그림자가 동시대 한국문학을 넓게 감싸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또다른 한편으로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국면의 본격적 대두가 87년체제론과 같은 한국사회의 방향감각 회복 노력에 역설적 자극이 되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그것은 1990년대 이후 급격히 확장된 한국문학의 탈사회화 경향을 늦추는 브레이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빈곤과 불안의 사회적 의미를 묻는 작품들이 김숨, 김애란(金愛爛), 김미월(金美月) 등 젊은 작가들에 의해 꾸준히 발표된 사실은 자주 언급된 바와 같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윤리나 공공선의 문제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작가들의 직접적인 현실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대 문학의 이러한 일부 경향은 작가 자신에게서는 시민적 덕성(civic virtue)을 재발견하고 창작에선 윤리나 공공선의 가능성을 탐사하는 형태로 진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공화(共和)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 높이와 넓이를 정확히 측량하고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적어도 그것은 87년체제의 성찰적 국면과 조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경숙(申京淑)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2008)는 이런 맥락에서 풍부한 암시를 주는 작품이다. 이른바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부활과 모성의 신화화 등은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핵심이 아니다. 혼령이 된 엄마는 6월항쟁의 거리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네가 내 손을 잡고 걸으며 부르는 노래를, 그 수많은 인파가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나는 알아들을 수도 따라하지도 못했다만 내가 광장이란 곳엘 나가본 건 그게 처음이었어. (중략) 엄마는 네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고나. 니 형제들 중에서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애가 너여서 뭐든 자유롭게 두자고 했을 뿐인데 그 자유로 내게 자주 딴세상을 엿보게 한 너여서 나는 네가 맘껏 자유로워지기를 바랬고나. 더 양껏 자유로워져 누구보다도 많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기를 바랬네.”(220~21면)
엄마가 6월항쟁의 거리에서 발견한 자유가 복합적이라는 사실은 지금껏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그것은 우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으로서의 자유이거나 “가난”이라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여서 사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어떤 고양과 심화의 단계를 거쳐 “누구보다도 많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자유, 즉 공화적 자유로 상승할 전망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랬고나” “바랬네”의 종결어미들이 쓸쓸히 암시하고 있듯 이 전망은 배반되었다. 시민적 덕성에 기초한 규율의 자기결정성이 공화주의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할 때 6월항쟁의 거리에 나타났던 공화주의의 혼은, 최소주의와 호응하며 세속화한 자유의 범람에 억압되어 이후 긴 잠행에 나섰던 것이다.5)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혼령은 1997년의 차가운 거리가 아니라 1987년 6월의 광장으로 돌아갔다. 왜 하필 ‘그날 그곳’이냐를 묻는 것은 우문이다. ‘그날 그곳’에는 “딴세상”이 펼쳐져 있었고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그 “딴세상”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3. 고독의 시간—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누군가의 말마따나 ‘자유’는 자유롭지 않다.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규율을 결정할 자유이지 무정부적 욕망의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적 덕성에 기초한 규율의 자기결정성을 ‘욕망의 자유’에 헌납함으로써 우리 시대는 정체 모를 상실감과 죄의식에 끊임없이 노출되곤 했다. 87년체제가 낳은 독특한 감정구조의 양상이다. 은희경(殷熙耕)의 장편 『태연한 인생』(창비 2012)은 바로 이 욕망의 자유에 갇힌 인간과 그 구원의 가능성을 탐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40대 후반의 중견소설가 김요셉이다. “패턴화”(207면)되어버린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낀 탓에 아내와는 별거 중이며 어쩐지 소설이 잘 써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에게는 무능하고 고지식할 뿐 아니라 자신의 출세욕을 순수한 정의감으로 가장하곤 하는 제자 이안이 있다. 스승에게 당한 모욕 때문에 소설쓰기를 포기한 그는 ‘위기의 작가들’이라는 이름의 단편영화를 만듦으로써 김요셉의 위선을 폭로하려 한다. 이 영화에 김요셉을 출연시키려는 이안의 음모가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꽤 흥미로운 서사의 축이지만 작품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김요셉의 망념이나 글쓰기에 대한 고민, 문단과 주변인물들의 속물성에 대한 비판 등은 끊임없이 그것을 방해한다. 왜 이런 구성이 필요했던 걸까.
김요셉의 삶이 마치 의미 없는 잡담처럼 건조하게 ‘패턴화’되어버린 건 10년 전 그를 떠난 ‘류’와의 짧지만 격렬했던 사랑의 기억 때문이다. 따라서 『태연한 인생』이 분절된 삽화들의 파노라마로 구성된 이유는 류라는 가치의 공백을 파고드는 속악하고 분열적이며 무의미한 욕망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류의 서사」라는 장으로 시작해 「류의 노래」라는 장으로 끝나는 이 작품의 순금 부분이 김요셉의 삽화들이 아니라 류의 이야기 속에 내장되어 있음을 뜻한다.
류의 아버지는 의무나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패턴화’되곤 하는 운명을 거부함으로써 바람 같은 삶을 살았다. 때문에 류의 어머니는 고통스러웠고 고독했다. 이를 통해 고통과 고독의 세계를 일찍 눈치채버린 류는 자살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요셉과 매혹의 탈주를 감행하지만 그 매혹이 또다른 패턴으로 식어버리기 전에 과감히 그 자리를 떠난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265면) 아버지가 죽은 자리에 나타난 김요셉은 류에게 아버지의 대리자였을지도 모른다. 류는 아버지의 대리자를 버림으로써 “어머니의 흐름” 밖으로 나와 자신의 고독 앞에 진정으로 마주설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핵심은 고독의 자리를 회복함으로써 ‘패턴화된 자유’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개인의 개인됨’, 그 가능성에 대한 물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인 K선생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말야, 개인에게 자기 자신을 되돌려주는 거야. 쉬운 건데, 그거 아는 놈들이 왜 이렇게 없어.”(152면) 비로소 류는 고독 속에서 류 자신이 되었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265면) 수수께끼처럼 얽힌 욕망의 악다구니와 운명의 패턴들 속에서 진짜 소설은 ‘류의 서사’뿐이고 김요셉과 나머지 인물들의 이야기는 의미 없는 삽화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삽화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김요셉이라는 인물은 여러 측면에서 은희경이 십여년 전에 발표한 장편 『마이너리그』(창작과비평사 2001)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마이너리그』는 ‘만수산 4인방’으로 불리는 ‘58년 개띠’ 고교동창생들의 삶을 관찰함으로써 베이비 붐 세대의 일원들이 속물적 소시민계층으로 성장해가는 경로를 풍자와 연민의 눈으로 추적한 세태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김형준은 『태연한 인생』의 김요셉과 같은 세대이며 글 쓰는 계열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외적인 측면뿐 아니라 콤플렉스가 많고 냉소적이며 개인주의 혹은 자유주의적 성향이라는 내적인 측면까지 닮은꼴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랑의 실패에서 오는 결핍과 죄의식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실만큼 중요한 공통분모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 『태연한 인생』은 『마이너리그』의 십년 후 에필로그처럼 보일 정도다. ‘욕망의 자유’에 갇힌 수인들의 현재를 다음과 같이 전율적으로 그려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요셉과 도경은 비 내리는 S시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중이다.
좀 천천히 달려요. 도경이 소리쳤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러나 요셉은 아무 대꾸 없이 앞을 바라보며 가속페달을 밟을 뿐이었다. 열어놓은 창으로 바람이 미친 듯이 따라왔다. (중략) 도경은 다시 한번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갑자기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음주운전으로 잡았는데 불륜이면 웃길 것 같아요. 차의 속도와 취기 탓에 도경의 목소리는 선풍기 앞에서 지르는 소리처럼 웅웅거렸다. 그리고 경찰서 잡혀갔는데 대학교수다 그건 더 웃겨요. 교수 아니니까 걱정 마. 왜요? 강사거든. 그게 더 웃겨요. 도경의 웃음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제가 수영강사 운전강사하고도 안 잤는데 왜 소설 가르치는 강사하고 자요? 다른 것도 가르칠 수 있거든. 뭔데요? 도저히 웃음을 그칠 수 없는지 도경의 입에서는 꺽꺽 소리가 새어나왔다. 너무 웃겨요. 선생님도 웃기고 자는 것도 강사도 다 웃겨요. 웃겨서 죽겠어요. 요셉은 다시 차창을 완전히 내려놓고 차의 속도를 높였다. 바람이 맹렬하게 달려들어 도경의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블라우스를 부풀렸다. (중략) 도경과 요셉은 둘 다 숨이 넘어갈 듯이 웃고 있었다. 차는 먹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덮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달려갈 기세였다. (133~35면)
중소기업인 단체의 워크숍에 한 사람은 강사로 다른 한 사람은 회원가족으로 참가했다가 둘은 처음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곧장 술자리와 불륜행각으로 이어진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뭐 어때. 그리고 완결이 안돼야 그 아쉬움 때문에 세상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지”라고 말하는 요셉과 “다른 사람하고 자면 더 좋을까. 글쎄요, 다른 사람하고 자면 조금이야 다르겠죠. 하지만 엄청난 차이 같은 건 없어요. 김치라면하고 소고기라면 정도예요”(132면)라고 말하는 도경의 대사에는 이들이 앓고 있는 결핍과 상실감이 짙게 깔려 있다. 한배를 탄 그들의 질주 속으로 광기와 자학, 분노로 일그러진 웃음소리가 빗줄기처럼 들이치는 위의 장면은 마치 김요셉들의 불길한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들은 과연 이 차에서 내릴 수 있을까. 아니 그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도경이 요셉에게 묻는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4. 비로소 시작되는 우애의 시간—권여선의 『레가토』
권여선(權汝宣)의 『레가토』(창비 2012)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마이너리그』의 ‘만수산 4인방’이나 『태연한 인생』의 김요셉과 같은 또래라는 사실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유신말기와 광주항쟁 시기를 대학에서 보낸 이 베이비 붐 세대의 분파는 군사독재치하의 고도경제성장과 부동산 활황, 고학력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소시민·중산층을 형성했다. 은희경의 ‘58년 개띠’들이 비주류 성향인 데 비해 “카타콤”6)에서 만나게 되는 권여선의 인물들은 대개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6월항쟁 당시 이른바 넥타이부대에 참여한 이들의 출신성분이 대체로 이와 같았음을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다. ‘1987년’이 우리의 현재를 해명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사회과학의 인식론적 관제고지라면 동시대 중간계층의 성장사는 문학의 인식론적 관제고지일 수 있다. 두번의 “민주정부를 구성한 세력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자유주의 분파라고 이해”7)하는 경우 이 계층이야말로 자유주의 분파의 요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작가들이 특히 장편소설 분야에서 이들의 삶에 주목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레가토』는 유신말기 서울 어느 대학의 운동권 써클인 ‘전통연구회’ 출신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상처와 부채의식을 가차 없는 시선으로 써내려간 적나라한 보고이자,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탐사일지라고 할 수 있다. 여덟개 장으로 구성된 중심서사의 앞과 뒤에 각각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덧붙인 이 작품은 1979년 봄부터 1980년 봄까지의 1년에 걸친 과거이야기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어느 해 늦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의 현재이야기를 번갈아 배치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대칭시켜놓고 있다. 이는 현재의 자리에서 과거의 상처와 죄의식을 응시하는 작품의 내용적 측면을 구성상으로 은유한 것이기도 하다. 제목인 ‘레가토’(legato)가 앞선 음의 파동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음을 전개하는 연주기법을 뜻한다는 사실도 시사적이다. 해소되지 않은 채 억압된 과거의 상처와 죄의식이 현재의 혼돈 사이로 스며드는 레가토의 시간은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삶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처와 죄의식의 기원으로 들어가볼 차례다.
전향한 빨치산을 아비로 둔 시골처녀 오정연은 전통연구회에 가담한 79학번 신입생이다. 그녀는 첫번째 ‘피쎄일’을 두려움 속에 마친 이튿날, 모두가 선망하는 선배이자 전통연구회의 리더인 박인하에게 능욕을 당한다. 권여선이 가학과 피학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뛰어나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지만 “모욕을 감내하는 자의 얼굴은 모욕을 가한 자에게 견딜 수 없이 냉혹한 거울”인 동시에 “누군가를 지독히 모욕한 자기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30면)임을 섬뜩하게 묘사한 2장의 4절(66~82면)은 발군이다. 이 사건은 작품의 전개경로를 따라 반복적으로 환기되며 한 시대의 축도로 승화한다. 서툴러서 두렵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악스러워지는 현실의 폭력성은 그러나 특정 시대의 역사적 환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근원과 관계된 무엇처럼 진술된다. 오정연의 꿈에 죽은 아비가 나타나 말한다. “누구나 제 가슴속 우리에 아우성치는 짐승 하나씩은 가둬두고 산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 짐승이 서럽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를 들으면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고 더는 이 삶을 견딜 수가 없게 된다.”(66면)
내면의 반란을 다스리지 못한 자는 오히려 그 반란의 포로가 되어 다시는 자유를 회복하지 못한다. 욕망은 보편적이고 폭력은 평범한 것이다. 오정연의 딸 유하연을 겨울 숲에 뒹굴게 한 내면의 불기운도, ‘링’이라는 이름의 까페에 모인 중년의 전통연구회 회원들이 엉망으로 취해 서로를 물어뜯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여기서 멀지 않다. 30년 전 첫번째 피쎄일이 있던 날 밤의 “풍년집”에서 벌어진 폭행난동(62~66면)이 까페 링에서의 악다구니와 대칭을 이루는 점도 놓칠 수 없다. 어쩌면 이들의 삶은 30년 세월을 건너는 동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지 모른다. 오정연이 사복경찰의 눈을 피해 숨어든 여학생휴게실에서 마치 다른 세상의 음악처럼 들려온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1975)의 가사는 이렇다. “이게 진짜 삶인가?/그저 환상인 건 아닌가?/흙더미에 파묻혀/벗어날 길이 없네……”(147면) 박인하를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홀로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어느 변두리 다방에서, 그녀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5월 광주의 어느 성당에서 이 노래는 다시 등장한다. 서사의 길목마다 나타나 점차로 비극적 고양감을 강화시키는 아름다운 의장이자 작품의 핵심으로 통하는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
사건 이후 오정연은 캠퍼스를 떠나 고향에서 아이(유하연)를 낳고 친구를 만나러 간 광주에서 5·18의 참상을 목격한다. 그녀가 광주항쟁의 격랑 가운데 실종되면서 전통연구회 사람들이 지워지지 않는 빈칸을 공유한 채 살아가게 됨은 물론이다. 그사이 누군가는 국회의원이 되고 누군가는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누군가는 사업에 실패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결혼생활에 실패한다.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 그만큼 보잘것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오정연이 광주항쟁에 휩쓸려 들어가는 과정의 작위성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다. 또 프랑스인 에르베의 손에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그녀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아델이라는 이름으로 빠리에서 살아가게 된다거나 유학 중이던 석빈(유하연의 남자친구)을 포함해 광고촬영차 빠리를 방문한 전통연구회 선배 윤상일 등과 우연히 해후하게 된다는 결말의 통속성을 지적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쉬운 비판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는 이 작품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델(오정연—인용자)은 이 얘기를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생각하지 않고 마치 전생처럼, 전설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할까요? 제가 아델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녀를 빠리까지 데려오게 되었는지, 그녀가 모든 고통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희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더 품을 가치가 있다는 진실을, 저 부서지기 쉬운 그녀의 육체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입증해왔는지에 대해서 말이지요.”(428면)
에르베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 작품의 마지막 문단이다. 그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 작품이 들려준 이야기와는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펼쳐질 것이다. 『레가토』에는 1980년 이후 30년의 시간이 비어 있다. 부재의 시간은 그해 5월의 광주에서 시작되었다.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살육과 폐허가 된 금남로, 지옥을 방불케 하는 임시병원과 그 가운데 기적처럼 일어난 시민들의 자치공동체가 익숙한 그림처럼 묘사된다. 그럼에도 이 장면들이 주는 감동의 현재성은 생생하다.
1980년 5월 당시 에르베의 통역 겸 가이드였던 최는 이 점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에겐 이름이 없다. 그는 작품 안에서 인하, 정연, 진태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다. 왜 그에겐 이름이 없을까. 그에겐 ‘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에르베와 함께 오정연을 구출한 뒤 그는 말한다. “에르베, 고만하랑께. (…) 아이 윌 고 백 광주. 나넌 말이제, 위대한 광주 시민이랑께. 그레이트 광주 씨티즌. 유 노? 언더스탠?” 그러므로 이 작품에 지워진 30년은 “위대한 광주 시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했던 고투의 세월이다. 무엇이 그를 “위대한 광주 시민”으로 만들어주는가. 다시 최가 답한다. “오케, 에르베. 테이크 케어 오브 허. 이 처니는 나으 누이여. 쉬즈 마이 씨스터. 유 노? 나으 딸이여. 쉬즈 마이 도터. 오케, 플리즈. 아나, 굿바이. 씨 유 어겐. 굿바이.”(355~56면) 사투리와 외국어가 뒤섞인 그 빛나는 우애(fraternité)의 언어가 그를 ‘위대한 광주시민’으로 만들어준 게 아닐까.
광주항쟁에서 시작해 6월항쟁으로 일단락된 민주화의 여정은 바로 이 보잘것없는 동시에 위대한 우애의 감정 안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위대한 광주 시민” 최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오정연은 아델이라는 낯선 이름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레가토』의 마지막 장면은 강변파티다. 전통연구회의 옛 동지들은 비로소 그들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이야기들은 보잘것없는 것일 테다. 그 보잘것없음의 연대 안에서 새롭게 피어날 우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더 품을 가치가 있”는 희망의 다른 이름 아닐까.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8) 우리 시대의 불안과 죄의식을 통과하는 길이 여기에 있고, 자유와 공화의 교착상태를 풀 열쇠가 또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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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문영 「그를 전설의 서사로 추어올리지 마라」, 『씨네21』 942호 90면 참조.
2) 김종엽 「87년체제의 궤적과 진보논쟁」, 『창작과비평』 2007년 여름호 359면.
3) 같은 글 361~62면.
4) 여기에 대해서는 김종엽의 「87년체제론에 부쳐」와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유철규의 「80년대 후반 이후 경제구조 변화의 의미」를 참조할 것. 이 글들은 모두 창비담론총서 2권으로 출간된 『87년체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인식과 새 전망』(창비 2009)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유철규의 글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도입문제를 87년체제와의 관련 속에 해명함으로써 97년체제론의 신자유주의 인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5) ‘골방의 모더니즘’으로 요약되곤 하는 90년대 문학의 탈사회화 경향이 이 흐름을 대변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87년체제의 복합성에 대한 앞에서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잠행하는 공화주의’는 ‘세속화한 자유’의 헤게모니 가운데서도 꾸준히 성장해왔고 6·15공동선언이나 촛불시위의 얼굴을 한 채 그 존재감을 여실히 하기도 했다.
6)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묘지를 뜻하는 단어로 『레가토』에 등장하는 지하 연합써클룸의 별칭이다. 과거의 상처와 기억을 고고학적 발굴 대상처럼 더듬어 들어가는 작품의 구조적 특징을 함축하고 있다.
7) 김종엽 「87년체제론에 부쳐」, 앞의 책 20면.
8) 권여선 「사랑을 믿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문학동네 2010, 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