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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언론사 대학평가의 문제점
‘순위표’가 교육의 질로 이어질 수 있는가
김봉억 金奉檍
『교수신문』 교육보도부 부장. 교육부와 국회 교육위원회를 출입했음. 공저로 『지식사회 대학을 말한다』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이 있음. bong@kyosu.net
1. 국내외 언론사의 대학평가 현황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세 신문이 모두 대학평가를 하고 있다. 이들 세 신문의 발행부수는 전국 128개 일간지 발행부수의 36%에 이른다.1) 한국사회에서 ‘조·중·동’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만큼이나 이들이 대학평가에 나섬으로써 대학에 미치는 파장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세 신문의 대학평가 현황과 평가목적, 차이점부터 살펴보자. 1994년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를 처음 시작한 이후, 동아일보가 1996~97년 2년간 ‘대학정보화평가’를 실시했다가 그만두었고, 2009년부터 조선일보가 영국의 대학평가 전문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함께 ‘아시아대학평가’를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이후 동아일보는 자사 종편 채널A, 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컨설팅(Deloitte Consulting)과 손잡고 2013년부터 ‘청년드림 대학평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대학평가에 나섰다. 중앙일보가 대학종합평가를 중심으로 국내 대학간 경쟁을 통한 대학경쟁력 강화를 추구해왔다면, 조선일보는 평가 대상을 아시아대학으로 넓히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한다. 동아일보는 앞선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순위평가에서 서열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최우수·우수·후보 그룹으로 나눠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학의 취업지원 역량’에 주목한다.
외국의 주요 언론사 대학평가는 우리나라와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미국의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1983년 대학평가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어 『타임스』(Times)가 90년대 초반부터 시행한 이래 『가디언』(Guardian) 『썬데이 타임스』(Sunday Times) 등이 영국 내 대학 순위를 매년 발표한다. 캐나다에서는 『맥클린스』(Maclean’s)가,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대학평가를 실시한다. 중국에서도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가 1999년부터 순위 발표를 시작했다. 이 중 『타임스』와 『뉴스위크』(Newsweek)는 매년 세계대학을 대상으로 평가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2)
남수경·이기석 강원대 교수는 우리나라와 외국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해 이렇게 비교 진단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대학의 종합점수와 순위를 중요한 정보로 제공하고 있는데, 전공영역에 대한 선택보다는 대학에 대한 선택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지는 풍토를 반영하고 있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의 언론기관 자국 내 대학순위평가는 대학유형별(연구중심 또는 교육중심 등) 또는 전공영역별 대학순위평가에 보다 관심이 집중되며 기관별 합산점수는 제공하지 않기도 한다.”3)
대학평가에 대한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 결과가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같은 언론사에서 평가한 결과가 해마다 달라지는 것은 물론, 다른 언론사의 결과와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평가결과의 신뢰성 및 평가 타당성 문제와 이어지는 부분이다.
2013년 평가결과를 비교해보면 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조선일보·QS 아시아대학평가와 영국 『타임스』·톰슨로이터(Thomson-Reuters) 세계대학평가의 국내대학 순위를 보면,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순으로 1~6위까지 평가결과가 동일하다. 반면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를 보면 포스텍 카이스트 성균관대 고려대 연세대 서울대 순이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는 특히 성균관대와 중앙대가 다른 두 언론사의 평가보다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의 아시아대학평가에서 성균관대는 국내 대학 중 6위를 차지했고, 중앙대는 12위를 기록했다. 반면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는 2012년 전체 5위를 기록했던 성균관대가 2013년에 전체 3위에 올라 4년제 종합대학 가운데 수위를 달렸고, 중앙대도 9위를 기록했다. 삼성과 두산이라는 재벌그룹이 경영하는 두 대학이 중앙일보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순위를 보인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를 ‘투자의 힘’이라고 분석했다.4)
언론사가 추구하는 차별성에 따라 평가지표와 가중치가 다르기 때문에 해마다 언론사별 순위가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10위권 내에서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세 언론사의 평가결과를 놓고 본다면, 중앙일보의 결과를 수긍하기는 쉽지 않다. 2013년에 성균관대가 4년제 종합대학 1위에 오른 사실을 두고 대학가에서 설왕설래했던 게 사실이다. 대학의 경쟁력이나 교육의 질이 1년 만에 그렇게 크게 달라질 수 있을까. 도대체 평가기준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계속 묻게 되는 이유다.
자본과 지식의 중개자로 전락한 대학의 모습을 비판한 책 『대학의 몰락』(동연 2011)을 쓴 서보명 시카고신학대 교수는 오늘날 대학이 시장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시장의 논리, 즉 “효율성의 논리”가 “현실이나 실체가 없는 허구의 논리일 수도 있다”라고 지적한다. “(대학에서) 문제는 효율성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효율성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용을 측정하기는 더 어렵다. 이를 위해 생겨난 게 평가산업 아닌가. 최근 교육현장에서 평가산업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다.” 미국의 ‘평가산업’을 지켜본 서교수의 시선은 이렇다. “미국대학에서는 모든 학사행정을 처리하는 데 ‘평가’를 염두에 둔다. 수업시간에 학생은 교수를 평가하고, 교수는 학생을 평가하고, 대학당국은 수업시간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됐는지 평가하고, 대학의 인허가를 관장하는 고등교육기관에서는 그 대학이 그 수업만이 아니라 학과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됐는지 평가한다. 평가에 대한 새로운 공학적 방법론도 최근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평가를 중심으로 한 대학운영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평가는 없다. 평가시스템이 등장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시스템을 완성시키면 나머지는 부속품으로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게 평가시스템이 불편한 이유다.”5)
2. 언론사 대학평가로 대학이 어떻게 달라졌나
언론사 대학평가가 대학에 미친 영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어강의 열풍이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항목에 ‘영어강의 비율’이 추가된 지난 2006년부터 대학의 영어강의는 급속도로 늘었다. 교육부도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영어강의를 강조하면서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영향력을 키웠다. 교육부 수도권대학 특성화사업, 교육역량강화사업, 학부교육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 등을 통해서다. 대학도 국제화교육을 위해 영어강의를 강조했다. 한양대의 경우 2005년 1학기 8.8%(147개 강좌)를 차지했던 영어강의 비율이 2009년에는 22.4%(436개 강좌)로 2배 이상 늘었다. 2010년 3월 기준, 고려대에서는 전체 2444개 강좌 가운데 38.3%(936개 강좌, 실험·실습과목 제외)를 차지할 정도였고, 성균관대는 2292개 강의 중 29.1%(667개)가 영어강의였다. 2009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 상위 10개 대학의 전공과목 영어강의 평균 비율은 약 30%로 나타났다.
각 대학은 영어강의가 가능한 신임교수 임용에 적극 나서게 됐고, 2008년부터 각종 인센티브제도 등을 통해 영어강의 비율을 늘려갔다. 2010년 당시 경희대 국제캠퍼스는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에게 강좌당 120만원(3학점 기준)의 인센티브를 주고 절대평가 권한도 부여했다. 고려대는 별도의 인센티브 없이 전임교수에게 초과강의료를 시간당 1만 5700원을 지급했고, 성균관대는 학점당 40만원, 충남대는 학점당 50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서울대는 강의개발비로 200만원, 강의지원수당으로 시간당 3만 5천원을 추가 지급하기도 했다. 영어강의 인센티브는 시간강사에게도 지급됐다.
영어강의 열풍의 원인을 서울대 이준구 교수는 이렇게 파악했다. “얼마 전 사립대학 교수로 있는 제자에게 들은 얘기가 하나 있다. 언론사의 대학평가 순위에서 경쟁대학에 조금이라도 밀리게 되면 총장이 이사회에 불려가 엄청나게 야단을 맞고 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순위에 목을 거는 우리 사회의 풍토에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런 질책이 결코 달가울 리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손쉽게 대학평가 순위를 올릴 수 있는 영어강의는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교육을 멍들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6)
언론사의 평가지표가 달라지면 대학 전체가 들썩이기도 한다. 중앙일보가 2010년 평가에 ‘강의평가공개 비율’을 반영하겠다고 밝히자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강의평가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공개 자체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강의평가는 평가결과에 따른 피드백을 통해 강의의 질을 높이는 게 목적인데, 언론과 대학은 교육이 어떻게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묻지 않고 평가결과의 공개여부에만 관심을 갖는다.
이렇다보니 대학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대학총장이 언론사 대학평가에 휘둘리는 실정이다. 1년마다 발표되는 언론사 대학평가의 순위가 총장의 ‘1년 성적표’로 작용함에 따라 ‘평가지표 관리’는 총장의 주요 과제가 됐다. “아무래도 요즘 대학들이 평가에 의해 객관적으로 드러나니까. 아무리 얘기해봐도 평가가 안 좋으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더라고요. 저도 대학을 운영할 때 ‘지표와 평가’에 의해 운영할 수밖에 없어요.”(주삼식 성결대 총장)7) 2009년 조선일보·QS 아시아대학평가에서 국내 종합순위 20위권 밖에 머물렀던 한 서울 사립대 총장은 학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언론사 대학평가 결과는 대학동문에게도 민감한 이슈다. 2010년 5월 중순, 조선일보의 평가결과가 발표된 직후 한 지역거점 국립대 기획처장은 이 학교 동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학문분야별 평가순위가 일제히 상승했다는 점을 앞세웠지만 메일을 보낸 ‘진짜’ 이유는 뒤에 나온다. 국내 종합순위가 지난해보다 한단계 떨어졌다는 것이다. 기획처장은 그 이유를 설명하며 국제화와 논문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행정적·재정적 낭비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20년, 30년 발전계획을 세워서 추진해가야 하는데 평가에서 순위를 따지니까 교육에 투자해야 할 돈이 엉뚱하게 지표관리를 위해 투자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마다 평가 전담부서를 두고 있고 그 인원도 다른 부서에 비해 많은 편이다. 그만큼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과 인력을 온통 평가지표 관리에 낭비하게 되는 셈이다.”(임주택 전 전국대학평가협의회장, 광주대)8)
언론사 대학평가의 부작용이 불거지자 서울지역의 교수(협의)회부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지역 8개 대학 교수협의체 연합회(경희대·고려대·서강대·서울대·숙명여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 교수협〔평〕의회 및 교수의회)가 지난 2010년 9월, 언론사 대학평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상당한 수준으로 ‘권력화’돼 있고 평가의 순기능을 넘어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연합회 대표를 맡았던 박진배 당시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전기전자공학부)은 언론사 대학평가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의 대학평가가 대학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까? 평가를 잘 받기 위한 대책을 세워 평가를 받아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밖으로 보이기 위한 평가’가 되고 있어요. 그러니 대학들이 엉뚱한 곳에 힘을 쏟게 되는 겁니다. 정작 교육이나 연구의 질적 발전에 힘을 쏟지 못하고요.”9)
대학총장들도 언론사 대학평가를 거부하는 입장을 연이어 발표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2010년 10월 14일 ‘언론사 대학평가에 대한 대학의 입장’을 발표하고 “대학을 서열화하는 평가에 협조할 수 없으며, 순위 발표를 인정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대교협은 “언론사 평가의 문제점들이 대학의 특성화와 차별화를 저해해 대학 경쟁력 강화는 물론 대학교육의 질 개선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총장들이 집단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그후 대학평가를 공식적으로 거부한 대학은 없었다. “속으론 부글부글 끓지만 파급력이 크고 입시와도 연결돼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결과가 발표되면 학부모나 동문들의 전화가 엄청나다. 참여를 안하다가 할 수 없이 끌려가듯 참여하고 있다.”(서울 모 사립대 기획처장) 당시 대교협 회장이 속한 학교인 고려대의 한재민 기획처장도 “아직 입장정리가 되지 않았다.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10) 대교협 대학평가대책위원장을 맡아 결의문 채택을 이끌었던 이현청 당시 상명대 총장은 대학의 속사정을 이렇게 전했다. “대학이 협조하든 안하든 언론사는 (평가를) 할 것이다. 정보공시제도에 의해 여러 정량지표가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사실 (개별 대학 입장이) 통일될지 안될지는 두고 봐야 할 부분이다. 대학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반대의견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홍보에 활용하는 곳도 있을 수 있다.”11)
3. 평가지표 개선방향과 남는 문제
언론사 대학평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평가를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집중돼 있다. 중앙일보는 대학과 교수사회의 문제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중앙일보의 입장을 들어보자. 중앙일보는 대학평가 20년을 맞은 2013년 11월, 전국대학평가협의회와 함께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참여했던 100여개 대학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평가를 담당하는 62개 대학의 기획처장과 평가팀(실)장, 직원 119명이 응답했다. 이들은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문제점과 부작용으로 △대학 간 과열경쟁으로 대학이 외형적인 지표에 민감해짐(35.3%) △중소 규모, 지역 대학의 노력을 제대로 부각되지 못함(29.4%) △학문·학과 단위의 특성화 노력이 반영하지 못함(15.1%) △기존 대학서열을 고착화(8.4%) △양적 지표 중심(8.4%)을 들었다. 또 향후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대학 규모와 설립 취지에 맞춰 세분해 평가(40.3%) △학문·학과 단위 평가 강화, 특성화 노력 조명(26.9%) △학생 만족도 등 정성지표 개발, 평가틀 보완(17.6%) 등을 제시했다. 대학평가를 총괄하는 김남중 중앙일보 사회부장은 “설문조사와 대학총장의 개선의견을 참고해 큰 틀에서 고쳐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대학평가 20년의 성과로 “경쟁을 통한 대학 전체의 동반 상승”을 꼽는다. 중앙일보는 대학평가에 대한 무수한 반대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많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변화에 관심이 없던 대학들이 움직인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평가한다. ‘철밥통’이라고 불렸던 교수사회도 대학평가로 인해 크게 변화하게 됐다고 자평했다.12)
중앙일보는 지난해 대학평가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대학평가의 향후 개편방향을 밝혔다. 전공수업의 영어강의 비율 등 국제화 지표의 가중치 또는 상한선을 축소하거나 점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했다. 또 재정·투자에만 맞춰져 있는 교육여건 평가를 학부생의 교육만족도 등 ‘교육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 등을 개발해 수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중앙일보 대학평가팀 관계자는 전국대학평가협의회 워크숍에 참여해 “2014년 평가는 비교적 작은 폭(평가지표 정교화 등의 적합성 추구)으로 개선하고 2015년에 큰 폭의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가지표 개선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언론사 대학평가의 핵심적인 문제는 대학을 한줄로 세워 순위를 매기는 ‘순위 평가’다. 언론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응답을 내놓지 않는다. 최근 각종 대학평가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주목받고 있는 전북대의 서거석 총장은 2013년 11월 19일, 중앙일보 기고문을 통해 “모든 대학을 한줄로 세우는 ‘순위 매기기’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사 대학평가의 문제는 평가 그 자체가 아니라 ‘순위 매기기’에 있다는 것이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한눈에 들어오는 ‘순위표’를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앙일보는 대입을 앞둔 학생들이 학원가의 ‘배치표’에만 기대지 않도록 대학 선택을 위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학원가의 ‘배치표’와 언론사의 ‘순위표’가 무엇이 다른가. 입학성적만 놓고 대학을 한줄로 세워놓는 ‘배치표’와, 교수 연구논문 등 획일적인 정량지표로 대학의 일면만 부각되는 ‘순위표’가 대학의 특성이나 차별성 등 대학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언론사의 말처럼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대학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얻고 있는지 물어봤다. 김종우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회장(서울 양재고)은 언론사 대학평가가 오히려 진학지도에 혼란을 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조선·중앙·동아일보가 평가를 하는데, 평가기준이 모두 다르다. 뭔가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평가에 나서는 것은 아닌가. 언론사가 ‘갑’의 입장에서 평가를 하는 것 같다. 대학평가 순위표가 나와도 찾아서 보지는 않는다. 평가 순위표가 국민이 보통 인식하는 대학의 서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몇개 대학의 순위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결과를 크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정부도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대학을 상대로 한 너무 많은 평가가 오히려 수요자 입장에서는 혼란을 주기도 한다”라는 것이다.
이만기 유웨이 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 이사는 “대학평가는 누구한테만 관심이 있느냐 하면 대학 관계자, 대학 홍보실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고요. 수험생들도 관심이 없고, 수험생 엄마들도 관심이 없어요. 학부모 중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은 관심이 있는데, 그 관심이 있는 것하고 실제로 원서를 쓰는 것하고는 별개의 문제라는 거죠”라고 말했다.13)
경기도 동탄신도시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술학원을 운영 중인 학원강사 김남중씨는 언론사 대학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언론사 대학평가는) 이미 대학서열화가 된 상황에서 학생들의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언론사의 대학평가 결과가 어떤 신뢰성이나 객관성을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정당성도 파악하기 힘들다. 현장에서 보는 느낌은 ‘대학 홍보성 기사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홍보성 기사로 여기기 때문에 순위가 나와도 ‘그렇구나’ 하고 만다.”
언론사 대학평가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학진학을 위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라고 밝히지만,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대상은 대학총장과 동문, 대학 홍보팀, 대학 재학생의 학부모, 보직교수, 평가결과의 책임을 떠안은 교수들이다. 언론사의 평가 순위표는 대학의 내실보다는 대학 밖으로 보이기 위한 이미지, 홍보를 위한 자료에 불과한 것인가.
4. 무엇을 위한 대학평가인가
교육부는 지난 1월 28일, 향후 10년 동안 16만명의 학생정원을 줄여가겠다는 대학구조개혁 계획을 발표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금 한국 대학에는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반값등록금’ 정책으로 2009년부터 6년째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거나 인하되고 있다. 등록금 인상도 어려운데 학생정원이 줄어드는 현실은 전체 대학의 87%(학교수 기준)를 차지하는 사립대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학생모집에 사활을 거는 사립대는 대외 이미지와 홍보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사립대의 2012년 기준 등록금 의존율은 66.6%이다.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사립대는 열악한 대학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으로 교수연구비 유치・정부 재정지원사업 수주・동문 등 기부금 모금 확대에 더 매달리게 됐다. 대외 이미지와 인지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대학평가의 핵심 지표는 교수 연구논문 평가다. 2013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교수연구는 300점 만점에 100점을 차지한다. 특히 31개 평가지표 중 ‘계열 평균 교수당 국제논문 게재수’는 30점에 달한다. 단일 평가지표 중 가장 큰 덩어리다. 조선일보·QS 아시아대학평가에서도 교수연구 영역은 60%의 비중이다. 학계 평가가 30%, 교원당 논문수와 논문당 피인용수가 각각 15%씩으로 역시 다른 평가지표를 압도한다.
서울지역 한 대학의 사례를 보자. 교육을 잘하는 우수교수에게 주는 인센티브는 학기당 100여만원. 반면에 연구능력이 탁월한 교수에게는 그렇지 않은 교수에 비해 무려 3~4천만원의 인센티브가 나간다. 연구비 수주가 탁월한 교수는 ‘연구비 마일리지제도’를 통해 1~2천만원의 인센티브를 추가로 받는다. 교수업적은 주로 연구논문으로 평가하는데 승진과 정년보장의 관건이다. 교수들이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고 논문 쓰기에 바쁜 이유다. 이렇게 나온 논문은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데 기여하고, 대학총장은 인센티브로 격려한다.
대학 밖에선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데, 정작 대학 안의 인문학자들은 논문 쓰기에 바빴다. 이런 현실은 대학정보공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제 일반대학 인문사회계열 전임교수의 저·역서 실적과 국내외 연구논문수를 비교해보니, 저·역서 실적은 해마다 줄어드는 반면, 전임교원 1인당 국내외 논문수는 늘고 있다. 2008년 저·역서는 4432.4건14)에서 2011년 3492.2건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전임교원 1인당 국내 논문은 0.73건에서 0.81건으로 늘었다. 특히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은14) 2010년에 전임교수 1인당 0.04건이었는데, 이는 전년보다 33.3%가 늘어난 수치다(당시 국내 논문은 2.5%가 증가했다). 이 통계는 ‘논문주의’에 매몰된 인문학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연구재단 출범 이후, 논문을 중심으로 한 정량평가 방식이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분야로 확산된 결과다.15) 김혜숙 전 한국철학회 회장(이화여대)은 이런 현실에 대해 “인문학자들조차도 살아남으려면 논문을 쓰고 학술서를 써야 했다. 대중의 요구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학문적 요구와 대중의 요구가 괴리돼 있다. 서로 빈곤한 처지에 놓였다”라고 진단한다.16)
대학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영국 『타임스』의 ‘설립 50년 이내 세계대학 평가’에서 2012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한 포스텍 김용민 총장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김총장은 지난 4월 16일 제374회 과학기술정책포럼에 참석해 “많은 대학이 지나칠 정도로 ‘연구’활동에만 치중해 대학의 사명인 ‘교육’을 희생해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학에 대한 국민의 지지,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런 위기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며 “연구중심대학으로 연구를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래도 대학 역할의 기본은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김총장은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고, 사회가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이야말로 대학교수들이 대학(고등교육)의 미션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17)
오는 7월 20일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서울대 총장 후보들도 학부교육과 기초교양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지난 4월 16일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첫 공개 소견발표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 후보는 “세계대학 랭킹은 상승했지만 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자격증 쌓기에 열중하고, 교수들은 긴 호흡의 연구보다는 승진과 단기평가에 유리한 연구에만 매진하는 ‘불편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학부 기초교양교육을 강화하고 교수평가도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개선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후보는 학부교육을 강화하고 교수 승진과 채용에 교육요소를 반영하는 등 ‘교육총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대는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면서 교육에 소홀한 측면이 크다”라며 “기초교육과 교양교육을 전담하는 학부대학을 신설하고 총장 직속 기초교육진흥위원회를 발족시켜 그동안 연구에 비해 소홀했던 교육의 가치를 재건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난 이명박정부에서 교육역량강화사업, 학부교육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교육 부문에도 정부투자가 시작됐다. ‘교육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화두다. 이명박정부의 대통령자문기구였던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대학교육위원회는 교육혁신을 위한 상설기구로 ‘대학교육강화위원회’ 설치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바 있다. 대학교육위원회는 학부교육 내실화를 위해서는 언론사 대학평가를 비롯한 대학평가 개선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인식했고, 이와 관련한 정책연구도 했다. 당시 대학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민경찬 연세대 교수(수학과)는 “(대학)평가 문제는 교육의 질이 핵심이다. 대학총장의 관심은 언론사 평가나 정부 재정지원사업 평가에 쏠려 있지만, 이들 평가의 지표를 보면 교육의 질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민교수는 “이젠 질적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시대”라며 “언론사 평가뿐 아니라 다른 대학평가도 종합평가를 하게 되면 한 틀 안에 집어넣게 돼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역별 특성화가 필요한데, 평가 역시 영역별로 갈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한다.18)
대학과 교수들이 교육으로 눈을 돌리기 위해서는 논문 중심의 획일적인 양적평가부터 개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논문평가를 ‘동료평가’ 등 질적평가로 전환하고, 평가기간도 1년 단기평가에서 3~5년 장기평가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다. 아울러 연구·교육중심 교수업적평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교수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고등교육 종합발전방안’을 발표하며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기존 정량지표 위주의 평가방식을 대학의 교수·학습과정 지원과 관리노력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교육과정·학사관리 충실성 등 교육의 질과 직결되는 지표를 개발해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민간에서 실시하는 대학생 핵심역량 진단평가, 대학생 성취도를 평가하는 고등교육 학습성과 평가사업, 학문분야별 평가·인증제도 활성화를 예로 들었다. 중앙일보 역시 교육의 질을 반영하기 위해 ‘학부생 교육만족도’ 도입 등 평가지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사 대학평가의 ‘순위 매기기’가 단지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논란에 그치지 않고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면, 대학 경쟁력 강화와 교육의 질 제고라는 당초의 목적과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대학과 교수사회는 대학의 질적 변화와 교육의 질 제고가 절실한 지금, 언론사가 획일적인 평가지표로 대학 ‘순위 매기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론사의 순위 매기기는 정량적인 연구능력 평가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교육의 질을 정량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순위표’가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대학의 질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이제 언론사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그것이 그들이 대학을 평가하겠다고 나선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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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ABC협회가 2013년 11월 13일 공개한 2012년 국내 128개 일간지의 발행부수는 1137만부다. 조선일보가 하루 평균 발행부수 176만 9천부로 가장 많았고, 중앙일보 129만 2천부, 동아일보 106만 1천부 순이다.
2)권형진 「언론사 대학평가를 평가한다 上: 평가기준 따라 바뀌는 대학순위」, 『교수신문』 2009.6.29.
3) 남수경·이기석 「언론기관 자국 내 대학순위평가의 현황과 쟁점 분석」, 『비교교육연구』 제22권 제5호, 2012.12, 117면.
4) 「투자의 힘… 성균관・중앙대 ‘교육혁신’ 모델로」, 중앙일보 2011.9.26.
5) 최익현 「서보명 인터뷰: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것은 ‘교양과정’… 벼랑끝을 사유하는 노력 필요”」, 『교수신문』 2013.9.23.
6) 이준구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교육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교수의 개인 웹사이트(http://jkl123.com) ‘시론’ 2011년 4월 게시물(2013.7.2 재게시).
7) 졸고 「“신뢰 없는 대학행정은 나아갈 수 없어요”: 개교 50주년 맞은 성결대 주삼식 총장」, 『교수신문』 2012.11.12.
8) 권형진 「대학평가의 그늘: 교육에 집중할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교수신문』 2010.11.22.
9) 졸고 「서울 8개 대학 교수협의체 연합회, 언론사 대학평가 강력 비판」, 『교수신문』 2010.9.13.
10) 권형진 「“메이저 대학 먼저 깃발 든다면”…대교협 추진중인 평가인증제가 관건」 『교수신문』 2010.10.25.
11) 권형진 「언론사 대학평가를 평가한다 ①: 총장들이 평가 거부한 이유는?」, 『교수신문』 2010.11.22.
12) 강홍준(중앙일보 기자) 「언론사의 대학평가를 평가한다」, 『교육개발』 2007년 가을호 83면.
13) KBS ‘미디어 인사이드’ 「우후죽순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2013.6.16.
14) 단독저술 실적은 1건이며, 공동저술의 경우는 1/n건. n은 저술에 참여한 인원수로, 연구자 수가 10명 이상일 때는 10으로 처리한다(대학알리미 저·역서 수 산정 기준).
15) 졸고 「사회와 괴리된 인문학계, ‘논문주의’ 벗어나자」, 『교수신문』 2012.11.19.
16) 졸고 「“정량평가에서 ‘정성평가’로 무게중심 옮겨야”: 한국철학회, ‘논문주의 벗어나자’ 공론화」, 『교수신문』 2012.11.19.
17) 이강봉 「“칸막이 없애고 실패 용인해야”: 김용민 포스텍 총장의 21세기 대학교육론」, 『사이언스타임즈』 2014.4.17.
18) 권형진 「“교육 질 높일 수 있는 평가체제로 전환 필요”」, 『교수신문』 2010.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