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얼마나 더 떨어져야 바닥에 닿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에는 참을 수 없게 하는 무엇이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박대통령은 노인연금, 4대 중증질환, 행복주택, 반값 등록금 등 숱한 공약을 줄줄이 휴지조각으로 만들어왔다. 요즘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사이에 허구적인 대립을 만들어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도 이런 거짓말은 견딜 만하다. 거짓말로 사회와 정치 모든 영역에서 약속할 능력을 침식한 것이 몹시 유감스럽긴 하다. 하지만 야권의 것을 훔쳐서 약간 고쳐 만든 ‘증세 없는 복지’라는 주술적 공약은 처음부터 실현이 의심스러웠다. 애초 의도된 거짓말일 소지가 충분하지만, 박대통령의 판단능력이 모자라서 빚어진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대통령의 거짓말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4일 박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추진하는 정부조직 개혁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목적 이외에 어떠한 정치적 사심도 담겨있지 않”으며,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이미 수많은 쏘셜미디어들과 인터넷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했다.
이것이 명백한 거짓말임은 세월호참사가 벌어진 뒤, KBS 전 보도국장 김시곤이 막말파문으로 퇴임하며 KBS 전 사장 길환영의 보도개입을 폭로함으로써 밝혀졌다. 이후 길환영은 세월호참사 유가족의 면담은 거부했지만, 유가족이 청와대 앞으로 가서 농성하자 거기 나타나 사과함으로써 자신이 청와대의 직접적 지시를 받고 있었음도 드러낸 셈이다. 이런 거짓말은 감세 철회를 안해서든 세수가 부족해서든 돈이 없어 복지를 못하겠다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거짓말이 설득력을 갖는 전형적인 경우는 거짓말하는 이가 너무 당당할 때인데, 이 경우의 박대통령이 그렇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올해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었다”는 발언 이틀 뒤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형사처벌 강화를 공표하고 나선 일이다. 이날 대검찰청은 “싸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등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미래창조과학부, 안전행정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주요 포털사 등과 함께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이런 사태의 진행은 놀라운 것이다. “도를 넘었다”는 판단을 대통령이 내리고 있는 것인데, 그런 모습엔 판단을 독점하는 폭정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검찰의 신속한 행보에서는 청와대와의 교감이나 사전조율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이다. 검찰의 명예훼손 형사처벌에 대해 박대통령이 반대한다는 의견을 낸 적이 없으니 그것은 대통령이 원하는 바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민간기업인 주요 포털사가 고객의 정보를 보호하기는커녕 정부 대책회의에 참여한 것도 민주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미 쏘셜미디어와 인터넷언론이 넘치는 세상이어서 방송을 장악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공언한 대통령이 먼저 방송을 포함해 거대 언론을 장악했고 그다음으로 쏘셜미디어와 인터넷언론을 장악할 뜻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톡’이 검찰의 감청 요구에 충실하게 응해왔다는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경악스러운 것은 검찰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시민에 대한 감청과 검열을 공공연하게 수행할 것임을 선포한 일이다. 음지에서 도청을 하고 미행하는 것과 그것을 공식적인 정부 정책으로 수행하는 데는 질적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테러의 고전적 정의에 직면하는 것이다. 테러란 전시적(展示的) 폭력을 통해 두려움을 보편화하는 지배양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적임은 군사평론가 김종대가 해외 모바일메신저 ‘텔레그램’에 가입한 뒤 트위터에 적은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저는 지난 토요일에 사이버 망명을 했습니다. 막상 가보니 신대륙입니다. 그런데 경찰, 검찰, 군인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국민을 사찰하고 심리전을 치르고 간첩을 조작하는 이들 스스로가 사찰될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두려움의 보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남북관계에서도 거짓말과 자가당착과 상투어가 빈발하고 있다. 집권 초기 개성공단을 둘러싼 북한과의 갈등국면에서는 비교적 당당한 자세로 끈기있게 협상한 것에 대중적 지지가 상당했다. 올초 통일대박론을 제기할 때는 대담한 구상과 정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빈말이었다. 10월 23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재연기함으로써 다시 한번 공약을 파기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번엔 환수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의 연기인데, 그 조건이라는 것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킬체인’(kill chain, 공격형 방위시스템)과 KAMD(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구축, 연합방위를 이끌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 진전 등 역내 안보환경이다. 엄청난 수준의 무기 투자와 높은 수준의 평화가 동아시아에 정착되기 전까지 환수는 없다는 것인데, 두 요소가 서로 상충되는 것이어서 실현될 가능성이 요원하다.
이보다 낮은 수준에서는 더 저열한 행동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충분한 제재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북 삐라를 날리는 단체들의 행동을 방치하고 있으며, 일부 단체는 총리실 지원을 받고 있다.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은 공공연히 수사대상으로 삼으면서 북한 지도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육성하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낡아서 위험하기 때문에 군이 결정한 애기봉 등탑 철거에 대로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지금까지 모든 대북정책이나 선언이 정상적인 판단을 거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이 모두보다 더 참혹한 것은 물론 세월호참사를 두고 대통령이 보인 일관성 없는 행태 그리고 유족에게 보인 매정하고 잔인한 태도이다. 그렇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달리 더 말을 보태고 싶지조차 않다. 한껏 추켜세워서야 ‘보수’정권 집권기라 할 시간이 벌써 7년이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점점 더 공공연한 테러에 접근해가는 정권의 모습을 보면 황정은의 단편소설 「낙하하다」가 떠오른다. 소설을 빌려 말하면, 우리는 지금 칠년째 “떨어지고 있다. (…) 이대로 계속 떨어지다보면 언젠가는 바닥에든 무엇에든 충돌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7년째나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떨어지고 있는데도 여전한 박대통령의 지지도를 보면 “떨어지는 중에 아래위가 뒤집혀 본래는 위쪽인 것을 아래쪽이라 생각”해서 “올라가고” 있다고 여기는 착시현상도 극심한 것 같다.
이렇게 떨어지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황정은을 인용하면 이렇다. “느닷없이 불에 타거나 물에 쓸려가거나 무너지는 건축물에 깔리는 일 없이, 조금 더 바란다면 길고 고통스러운 병에 시달리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자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 요즘처럼 사람의 죽음이 험한 세상에서 평생을 좋은 일 하고 정갈하게 살아도 찾아올까 말까한 지복을 바라는구나 너는, 하며 웃었다.”
계속 떨어지는 것은 바닥을 만나지 못해서인데, 떨어지는 것을 끝내기 위해서는 바닥을 기다려서는 안되고 바닥을 마련해야 한다. 백낙청의 특별기고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2013년체제론 이후」는 그런 바닥을 만들려는 작업의 하나이다. 그가 지적하듯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온갖 악폐는 마땅히 이뤄야 할 전환을 이루지 못한 것, 그리고 그런 전환을 이룰 만큼의 적공이 미진했던 탓이다. 그는 이런 점을 지적하며 전환을 위한 적공의 방향을 공들여 가다듬고 있다. ‘세월호 이후’로의 근본적 전환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은 지금 이 글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주시기 바란다.
이번호에서 또하나 독자들이 주목했으면 하는 꼭지는 정혜신과 진은영의 대화 「이웃집 천사를 찾아서: 세월호 트라우마, 어떻게 극복할까」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 가족, 실종자 가족, 피해학교 교사, 지역주민과 사망자의 친구들이 겪는 고통의 같고도 다른 양상을 세세히 전해준다. 그리하여 고통의 치유는 상처 입은 마음의 행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청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특집은 ‘소설에서 현실 만나기’를 주제로 네편의 글을 모았다. 임형택은 염상섭의 『삼대』를 식민지 근대하의 좌우파 대립의 와중에 ‘씸퍼사이저’라는 입지에서 형성한 사실주의 작품으로 분석하며, 그 안에서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한층 원만하게 수행하고자 한 염상섭의 지향을 읽어낸다. 유희석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중심으로 증언과 소설의 관계를 다루면서 두 작품이 어찌하여 뛰어난 소설이자 진정한 증언이 되는지를 곡진하게 보여준다. ‘또다른 광주’를 목도하게 되는 지금의 현실 상황에서 문학의 증언 또한 다시 시작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심진경은 박솔뫼의 소설에 대한 치밀한 비평적 분석을 시도하면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세계를 극장으로 경험하고 정념을 잃은 주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주체가 알바노동으로 인해 현재라는 시간에 갇혀버린 청년세대의 경험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짚어본다. 끝으로 김동수는 문학적 리얼리즘의 기본 개념인 ‘전형’이 셸링에서 노디에와 발자끄를 거쳐 엥겔스에 이르기까지 겪은 변전, 그것을 독일 고전주의 전통에서 재구성한 루카치의 작업, 그리고 루카치와 벤야민 사이의 논쟁을 꼼꼼히 살핀다. 네편의 글 모두가 소설이 현실과 만나는 양상 그리고 소설이 현실을 담아내는 형식에 대한 탐구들이라고 하겠다.
논단과 현장에서 이기정은 진보교육감 시대에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굵고 간명한 주문을 한다. 거두절미하고 학생들의 행복에 복무하는 것이 진보교육감의 의무이며, 그럴 때 행복을 위한다며 행복을 가혹하게 유예하는 짓거리인 입시경쟁에서 벗어날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임형택의 최근 두 저서를 통해 임형택이 40여년간 학인으로서 걸은 길을 두루 살피고 있다. 일국사적 관점을 벗어나 동아시아적 시야를 가지고 작업해온 두 지적 동반자 사이의 자상한 대화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글이다. 원래 가을호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필자 사정으로 미뤄져 그 조명 대상이 특집 필자로 참여한 이번호에 게재됐음을 밝혀둔다. 논단의 마지막 글은 제4회 사회인문학평론상 당선작인 박가분의 「변신하는 리바이어선과 감정의 정치」이다. 총괄적 사회 규정의 부담을 마다하지 않고 ‘반응사회’라는 개념을 내걸면서, 네트워크사회의 규범인 공유가 ‘반응’이라는 수동적 감정에 기초하고 있으며, 행동을 향한 정치적 프로그램을 결여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한다.
문학평론의 황현산과 김영희의 평문도 일독에 값한다. 원로 비평가임에도 젊은 시인들의 전위적 작업에 깊은 애정을 보내온 황현산은 지금의 시가 책이라는 익숙한 집을 벗어나 영화나 SNS, 슬로건과 낙서, 낭송회 등 우리 일상 곳곳에서 여러 양상으로 떠다니며 자신의 개념을 넓히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실험 속에서 ‘시의 미래’가 열림을 말해준다. 김영희는 20세기 영문학 비평의 대가인 F. R. 리비스의 소설론을 다루면서 그가 제시한 영문학의 ‘위대한 전통’이라든지 ‘극시로서의 소설’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조명하고, 문학의 고유한 창조성에 대한 믿음과 근대문명에 대한 근원적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리비스 소설론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비평적 함의를 갖고 있는지도 요긴하게 짚어낸다. 작가조명에서는 최근 네번째 시집을 발표하며 한층 깊어진 작품세계를 선보인 시인 손택수를 평론가 김수이가 만나 그의 시가 태어나 자라온 과정을 세심하게 짚어보며 앞으로의 행로를 기대에 찬 눈으로 내다본다.
한해를 마감하는 이번호 창작란도 풍성한 차림이다. 신경림 고형렬 김기택을 비롯한 열두명의 시인이 시란을 충만하게 채워주었으며, 2회를 맞는 김미월의 장편연재와 김애란 윤선영 정세랑의 단편소설도 제각기 개성을 발한다. 소설가 조해진을 초대해 꾸민 문학초점 좌담은 올 하반기 한국문학의 문제작 여섯권에 대한 흥미로운 지상토론을 선보인다. 일년간 좌담 고정참여자로 수고한 강경석 송종원 두분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 난은 내년에 새로운 참여자들을 꾸려 이어갈 것이다. 그밖에도 화제의 도서를 각계 전문가가 솜씨있게 소개하는 촌평란도 자신있게 내놓는다.
제16회 백석문학상의 영광은 전동균 시인에게 돌아갔다. 그의 시를 아끼는 많은 이들과 함께 축하한다. 제4회 사회인문학평론상 당선자인 박가분에게도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길 바란다. 반면 제8회 창비장편소설상은 아쉽게도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더 좋은 작품을 기다린다는 말씀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참담한 심정으로 겪어낸 묵은해를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는다. 우리가 해온 일에 대한 자기성찰을 기반으로 독자와 더불어 적공과 전환의 한해를 엮어가고자 한다.
金鍾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