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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민정·김경미 엮음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 한울 2017
다문화주의 대 페미니즘 그리고 다문화주의로서의 페미니즘
양효실 梁孝實
미학자 hosil69@naver.com
2000년 한국정치학회에서 만나 ‘15년간 여성과 정치의 다양한 문제를 공부해온’ 집단인 여성정치연구회의의 세번째 공동연구 성과가 올여름에 발간된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이다. 국제정치 전공 여성 연구자 9명이 “전 지구화 과정에서 점점 더 심각성을 더해가는 갈등 중 하나인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의 갈등”(7면)을 선진 유럽과 미국, 그외 몇몇 선진국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기존 국가의 문제나 박해를 피해서, 혹은 경제적 이유로 선진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 즉 소수종족집단(ethnic minority group)이 일으키는 문제 중 명예살인, 여성성기 절제, 강제결혼, 베일 및 헤드스카프, 인신매매와 같이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된 폭력적인 풍습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책이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다문화주의는 개인의 권리 보장을 이야기하는 자유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로 인해 “소수자의 문화나 삶의 양태가 충분히 보호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특수한 집단의 권리 또는 집단에 부여되는 특권을 인정”(22면)해주려는, 즉 선진국 내부 소수종족집단이나 서구 밖 문화의 권리 보호라는 윤리적 정당성을 실천한다. 다문화주의는 서구화로서의 근대화가 전제한 보편주의와 그에 따라 선진국가가 이민자나 피식민자에게 활용하는 동화주의, 기존 정체성이나 문화의 포기를 요청하는 통합주의 등에 맞서는 대항담론으로서, 보편주의의 이면에 도사린 차별과 폭력을 가시화하는 저항적 태도로서 역사적 임무와 의의를 갖는다.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를 수직적 서열로 자리매김하고 평가하는 대신에 환원 불가능한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전지구적 삶의 평화적 공존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다문화주의의 ‘가치’는 그 자체로 반근대적 가치로서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는 2000년대 이후로, 특히 9·11 이후로 득세한 ‘이슬람포비아’에 맞설 수 있는 태도나 가치로서 그 위상이 미약해졌다. 선진국의 국가주의는 이슬람의 악마화나 타자화를 통해 더 강력한 동화주의를 실행 중이고, 그런 맥락에서 이민자들 내부나 이민자들의 모국을 식민화하는 데 그곳 여성들이 겪는 폭력과 고통을 앞세운다. 그리고 서구 페미니즘도 이런 신식민적 프레이밍을 지지하면서 유색인 남성으로부터 유색인 여성을 구하는 ‘전쟁’을 지지하거나 촉구한다. 서구 가부장제와 비서구 가부장제는 서열화되고, 그 와중에 전자의 폭력성은 슬쩍 사라진 채 이미 해방된 곳과 여전히 억압당하는 곳이라는 이분법이 작동한다. 이런 정치적 맥락 속 차별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주의는 차이를 전제로 비서구 여성에게 자행되는 모국과 정주국에서의 차별과 억압에 무관심하거나 침묵한다. 다문화주의는 비서구 가부장제를 ‘다른’ 문화로 떠안으면서 그곳의 차별을 짐짓 없는 것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다문화주의는 남성적 태도이거나 윤리인 것이고 여성주의는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가리키면서 작동하는 차이의 태도 혹은 윤리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가령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프랑스에서 이민자들의 문화인 여성성기 절제가 어떻게 프랑스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의미화되는지, 또 독일의 이슬람 이민자 사회에서 자행되는 강제결혼이 어떤 관점들을 통해 이해·분석되는지를 살펴본다. 보편적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자체로 야만적인 관습인 이런 여성 대상의 폭력은 선진 유럽의 우월감을 전시하기 위해 배경막으로 작동한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법을 통해 시정·교정되어야 할 국가 내 문제여야 함에도 보수적인 정치나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의해 소수자나 타자로서의 이민자들에 대한 배제나 악마화에 활용되는 것이다. 서구 페미니즘 역시 가부장제라는 보편적인 억압 담론을 지구의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특정한 종족의 문제로 전가하면서, 가령 터키나 이슬람 문화 자체에 대한 비판에 집중한다. 결국 유럽문명에 대한 우월감, 즉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이며 인종차별적인’ 서구 백인 페미니즘은 자국 내 소수종족집단의 문제를 자국의 문제가 아니라 타문화, 다른 곳의 문제로 타자화하는 데 공모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또 보편적 인권을 추구한다는 서구가 비서구의 문제에 개입할 때 사용하는 이데올로기나 가치가 사실은 국가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작동하고 적용된다고, 따라서 ‘보편’은 언제나 특정한 이해관계에 의해 재구성되고 변화 가능한 이데올로기임을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 여성 이민자의 베일 착용을 프랑스와 독일은 금지하지만 네덜란드 같은 경우는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는 서구의 시선이면서 전지구적으로 작동하는 이슬람포비아라는 증오 담론이 사실은 세계 어디에서도 한결같지 않다는 것, 당면한 문제와 연관된 각 나라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과 연관해서 이해되어야 할 사안임을 드러낸다.
책에 따르면 이슬람 문화의 야만성을 비추는 현상으로서 ‘베일 쓴 여성’이라는 이슬람 여성의 상투형은 정주국과 이슬람의 관점에서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가령 호주에서 이슬람 여성의 베일 착용은 “종교적 의미, 무슬림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미, 가족의 요구를 수렴한다는 사회적 의미, 성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는 윤리적 의미”(190면)를 지닌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저자들은 일방향적인 타자화에 동원되는 베일의 복수성, 다중성을 제시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호주 사회 내 무슬림과 비무슬림 인구 간 갈등의 핵심”(196면)으로 작동하는 베일 쓴 여성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동화주의의 알리바이로도 혹은 다문화주의적 인정의 근거로도 의미화될 수 있게 된다.
정주국에서 일어난 명예살인이 그 ‘집단 내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권력관계의 문제’로, 즉 ‘우리’의 문제로 부각되기보다 그것이 일어나는 “소수문화집단과 이를 금지하는 주류 사회 간 갈등으로 부각됨으로써 갈등의 근본적 성격이 잘 보이지 않게”(24면) 구성되게 만드는 선진국의 이슬람포비아는 내부의 문제를 외부의 문제로, 그러므로 그 문제를 전쟁을 통해 무력화해야 할 테러 진원지의 폭력으로 단순화한다. 지구화는 상호 이질적인 문화의 공존이나 혼종에 대한 다문화주의적 요청의 조건이고, 이러한 공존이나 혼종을 다시 보편적이고 서구적인 관점에서 서열화하려는 근대의 심화다. 또한 그것은 차이와 다양성을 야만과 폭력의 일환으로 전시하는 선정적인 서구 매체의 소재이다.
문화상대주의 혹은 다문화주의는 오늘날 무관심한 냉소 혹은 개인의 취향으로 전락했거나 만연한 폭력과 고통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알리바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다문화주의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흔히 인식되는 것처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혹은 거의 재현되지 않은 여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가급적 더 많이 듣고 읽고 그럼으로써 편들기를 위한 선명한 분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갈등과 긴장을 입증할 ‘문제화’의 어려움을 지지하고 번역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즉, 근대적 폭력 안에서 포스트근대적 다문화주의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지금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 여러겹의 의미화 실천들을 동시에 읽고 이해하면서 문제의 단수화를 복수화로 바꾸는 것임을 페미니즘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