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분단체제를 다시 생각할 때
분단 해소인가, 분단체제 극복인가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변혁적 중도론』(공저) 『이중과제론』(편저) 등이 있음. lee87@skhu.ac.kr
남과 북에 단독정부가 수립되며 분단이 현실화된 지 70년이 되어가지만 한반도에서는 분단 문제가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2차대전 이후 출현한 분단국가들이 방식은 다르지만 대부분 하나의 국민국가로 합쳐졌거나 중국-대만의 양안관계처럼 인적·경제적 교류가 활발히 진행 중인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한반도 정세가 이렇게 엄중한 가운데 한국사회에서는 촛불혁명이 일어났고 사회적 대전환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아져 있다. 그래서 한반도 상황과 무관하게 한국은 자기 길을 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국에 해방적 정치공간이 열렸던 때마다 분단과 전쟁, 쿠데타, 수구적 퇴행 등이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촛불혁명도 시대전환으로 이어지려면 아직 갈 길이 먼데, 그 과정은 결코 한반도 상황과 무관할 리 없다. 이는 한반도 분단이 남(대한민국)과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정치실체를 분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사회발전을 제약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내전을 거치며 남과 북 내부에 상대를 극도로 적대시하는 이념적·사회적 기초가 만들어졌고, 양측에서 기득권을 형성한 세력이 정전체제라는 비상한 상황을 활용해 이러한 이념적·사회적 기초를 계속 강화하는 가운데 이 메커니즘이 구축되었다. 한반도 분단의 바로 이러한 특징을 포착하며 ‘분단체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즉 ‘분단’은 하나의 국민국가를 주장하는 정치공동체가 분열되어 있는 표면적 상태를 지칭하는 반면, ‘분단체제’는 분열되어 있는 개별 실체들의 행위에 분단이 지속적으로 일정한 규칙성을 부여하는 체제로 작용하는 상황을 가리킨다.1 이같은 분단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이상 분단체제가 촛불혁명의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검토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1. 분단체제와 촛불혁명
박근혜 탄핵으로 실시된 조기대선의 결과 촛불혁명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새 정부가 출범함으로써 촛불혁명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감추어졌던 각종 적폐가 드러나고 이를 청산하는 작업만으로도 새 정부는 상당히 높은 지지율을 누려왔다. 그런데 2018년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 정책집행 과정에서 나타난 혼란과 여기서 비롯된 논란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70% 이상의 지지율은 어차피 조정이 불가피했다지만 지지율 하락 속도가 더 빨라짐으로써 촛불혁명을 지속시킬 수 있는 동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폐청산과 함께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시민참여의 제도적 보장이다. 촛불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려면 일상 생활현장부터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에 이르기까지 시민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정권교체만으로는 결코 우리 사회가 수구지배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전환될 수 없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된 사건은 우리 사회에 행정권력, 그것도 최상부의 인적 교체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감독과 참여가 있어야 적폐도 제대로 청산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선거법 개정, 지방분권 확대, 개헌 등에 이러한 지향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 여당도 이들 사안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더라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촛불의 지지를 계속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할 필요가 있는 또다른 중요한 문제는 그 어떤 나라보다 유구하고 위대한 시민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제도의 작동이 왜 수구세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시민주체성을 높이는 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할 수 있다.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은 수준에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제도정치나 권력기구 내의 퇴행적 행태가 이처럼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치발전과 관련한 논의들은 서구식 정치모델을 이상적 목표로 설정하고서 한국의 ‘거리의 정치’에 대해서는 정치적 미숙함의 근거쯤으로 여기거나 정당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2 사실 이러한 주장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이는 당시 한국이 이미 두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며 제도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인식에서 거리의 정치를 비효율적이고 부정적인 정치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펼쳤던 논자들도 촛불혁명에 대해서는 시위와 정치의 관계를 과거처럼 배타적으로 보지 않으며 그 정치적 진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3
그러나 여전히 한국정치에서 이런 진화적 과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명확하지 않은데 이 점이 미래를 전망하고 우리의 과제를 명확하게 하는 데 혼란을 줄 수 있다. 이 필요성은 분단체제라는 변수를 도입해야 제대로 설명된다. 수구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 거리의 정치 혹은 시민저항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진행되었던 것은 분단체제로 인해 제도공간에서 수구세력의 헤게모니가 공고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통해 집권한 박근혜정부도 ‘정상’ 궤도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었다. 필자는 당시의 상황을 ‘점진쿠데타’로 규정하고 이것이 분단체제의 작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4 촛불혁명은 이 점진쿠데타를 시민이 나서서 막아내고 시대전환을 위한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즉 단순히 박근혜라는 한 인물의 일탈이 아니라 분단체제에 기대어 영구적 집권을 획책한 세력을 제압하고 수구지배적 질서를 청산하기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촛불혁명은 혁명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촛불혁명이 어디까지 진전될 수 있는가는 한국사회에 대한 분단체제의 제약을 얼마나 약화시키는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촛불혁명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현 시점에서 수구세력은 여전히 분단체제의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를 활용하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5 촛불혁명 이전에 출현했던 ‘비정상성’이 분단체제하에서는 ‘정상성’에 가까운 것이고, 이는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어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언제든지 사회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수구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 시민 주체의 새로운 정치사회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2. 분단의 해소는 가능한가?: 일국적 해결방안과 양국적 해결방안 비판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분단이 한국사회의 발전에 질곡이 되고 있다는 인식은 최근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긴장상태에 상당히 익숙해진 시민들이라도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진 현실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반드시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으로, 더 중요하게는 분단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단순하게 분단상황이 어떻게든 빨리 해소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고를 진전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반도 분단 문제에 대한 일국적 해결방안과 양국적 해결방안이 등장한다.
전통적 통일 논의는 일국적 방안을 전제로 해왔기 때문에 이 방안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남북의 대립상황을 고려하면 평화적 방식으로 일국적 해결방안이 실현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상황은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남북통일을 상상할 때 북한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되는 흡수통일이 가장 유력한 방안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다. 최근에는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이 흡수통일에 대한 기대를 부채질한 바 있다.6 그렇지만 지난 30년에 가까운 시간은 이미 ‘북한붕괴론’이 ‘론(論)’이라는 명칭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객관적 현실과 괴리된 허구적 언설체계임을 입증했다.
그럼에도 일국적 해결방안이 계속 언급되었던 이유는 그 실현 가능성이 아니라 담론의 효과에 있다. 남과 북 어느 편에서 주장하든지 일국적 해결방안은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상황이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기득권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남북이 어떤 한계선을 넘지 않은 채 대결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다. 이렇게 보면 일국적 해결방안은 대부분 분단 문제의 해결보다는 분단체제의 유지와 강화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주장이다. 현재 북한이 붕괴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핵·미사일 능력을 빠르게 강화한 것은 이들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분단체제가 지속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들은 미국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국론과는 달리, 통일은 비현실적이고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남과 북이 모두 정상적인 국가성을 갖춘 상태에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한반도 분단 문제에 대한 양국적 해결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논리는 주로 진보세력을 대변한다는 논자들이 적극적으로 제기해왔다. 이같은 접근은 통일보다는 평화공존을 우선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남북관계를 국가간관계로 재정립할 것을 제안한다. 십여년 전 최장집의 다음 주장이 대표적이다.
남북한 간의 이상적인 관계는 얼마라고 예측하기 어려운 장기간에 걸쳐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경제협력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북한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남한과 같이 자족적인 독립된 국가로서의 지위와 안정성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단일민족 → 분단 → 통일된 국가로의 복원이라는 명제는 자동적으로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1민족 2국가’의 다음 단계는 완전히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평화는 통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이다.7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경제협력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것이 남북관계 발전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이지만, “평화는 통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주장은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사회개혁을 포함한 분단체제 극복 과정 없이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조장하거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도록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한반도에서 평화는 남북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가느냐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문제이다. 최근 김상준이 제기한 ‘양국체제론’은 분단이 남과 북의 정상적 발전을 제약하는 체제로 작동하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 해결책으로 분단체제를 양국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도 상호인정과 평화공존이 통일보다 우선적인 과제로 강조된다.8 두 주장 모두 평화가 더 중요하다는 전제에서 남북을 재통합하는 과정보다는 분리를 제도화·합법화하는 방식이 분단 문제 해결에 더 현실적이라고 유사한 결론을 도출한다.9
그런데 남북이 모두 국가성을 획득하고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중요한 이론적·현실적 맹점이 있다.
우선 국가간관계가 자동적으로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스트팔렌 조약이라고 알려진 국민국가간 체계가 평화를 보장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체제를 발전시켜온 유럽에서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결과 국가주의를 제약하는 지역통합이 중요한 이상으로 등장했으며, 실제로 냉전해체 이후 지역통합이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국민국가간 질서가 내부적으로 심각한 갈등 요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국제관계이론 중 주류라 할 수 있는 현실주의가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들은 무정부적 성격을 특징으로 하는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생존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되며, 생존을 보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도덕이나 규범이 아니라 군사력을 중심으로 하는 힘(power)과 세력균형이라고 주장한다.10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안전 딜레마’와 군비경쟁을 촉발하기 쉽다는 점에서 평화적 질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11 더욱이 동북아시아와 같이 대국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재통합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 남과 북은 계속 강대국 정치에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재 남북관계가 다른 국가간관계보다 더 적대적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당장 상호체제 인정을 바탕으로 국가간관계로 전환하기만 해도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분단체제가 다른 국가간관계에 적용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나라의 국가간관계가 그대로 분단체제에 적용되기도 어렵다. 즉 남북관계를 국가간관계로 전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남과 북 내에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갈등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정상적 국가관계의 기초는 영토경계선의 확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당장 우리 헌법의 이른바 영토조항(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을 개정해야 한다. 학술적 차원에서는 헌법에 영토규정을 둘 필요가 있는가, 둔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한가 등의 문제를 두고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영토규정이 헌법에 포함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삭제하는 것은 특정 영토에 대한 포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고,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개헌 논의에서 이 문제가 적극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우려 때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분단체제하에서 남과 북은 정신적, 제도적, 그리고 물리적 영역에서 상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인을 계속 생산해왔는데 남북관계가 국가간관계로 전환한다고 해서 그같은 위협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남북이 모두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이러한 위협 요인들을 제거하거나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지 못하면 평화공존도 어렵다. 남북은 1990년 UN(국제연합)에 동시가입해 국제적으로는 국가로서의 법적 지위를 획득했다. 그럼에도 현재와 같이 갈등관계가 확대된 이유는 남북관계를 법적으로 국가간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남북 내부에 상호적대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요인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북관계에 계속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을 간과하기 때문에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분단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이 출현한다. 마치 남북관계 발전과 남한 내의 개혁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논지를 전개한다. 예를 들면 앞의 인용문에서 남한이 “자족적인 독립된 국가”라고 전제한 것도 남북 간 상호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인식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어떤 원인에서든 외국군이 주둔하고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국가가 이 기준에 부합하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주한미군, 한미연합군사훈련, 미국의 전략무기 등이 북한에 군사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평화공존체제가 구축되기 어렵다. 국가보안법도 같은 문제다. 북도 남한에 위협이 되는 핵무기, 공격적 통일담론과 그에 기초한 법제도 등의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 즉 상호인정을 넘어서 남과 북 모두 자기 내부에서 상대를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해가는 실질적인 작업이 필요하며, 이는 남북의 분리를 제도화할 때가 아니라 남북의 재통합 과정, 혹은 후술하는 한반도식 통일과정이 함께 진행될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하다.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위론에 입각한 통일론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나 여기에서 곧바로 남북관계를 국가간관계로 규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3. 일국론과 양국론의 대립을 넘어선 남북연합: 한반도식 통일 과정
사실 일국적 해결방안과 양국적 해결방안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일이란 두 정치적 단위를 하나의 체제와 가치로 통합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양자 모두 한반도 분단체제에 적용되기 어려운 방안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해결방안이 남아 있는가? 한반도 분단은 다른 나라와 달리 분단체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처럼 오랫동안 분단을 지속시키면서 남북의 사회발전을 제약하고 동북아 차원에서 심각한 갈등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분단을 해소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단체제를 우회하는 해결방안은 있을 수 없다. 결국 분단체제 자체를 극복해야 하는데,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길은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남북이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하는 데 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국가간관계로 전환하는 데 있지도 않다. 즉 통일에 대한 전통적 방식(1민족 1국가론)에서 탈피해 남북의 재통합과 통일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는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진전되어온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통일을 ‘1민족 1국가’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사고하는 것은 지적 게으름의 발로다. 노태우정부 이후 우리 정부의 통일방안을 보면 경제사회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남북연합’을 통일의 과도 단계로 설정했다. 통일국가로서 민주적 총선거를 거친 1민족 1국가의 건설을 상정하고 있지만, 이에 이르는 과정에 남북이 모두 국가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협력하는 단계를 도입한 것이다. 북한은 1980년 이후 연방정부가 외교와 국방의 권한을 보유하는 고려연방제를 주장해왔으나, 1989년 문익환 목사가 방북해 발표한 ‘문익환-허담 4·2공동성명’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라는 공동성명 4항에 대해 당시 보수언론 등은 연방제 합의 부분을 강조했지만 더 중요한 내용은 통일을 실현하는 데 점진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에 북한이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김일성은 1991년 신년사에서 외교와 국방의 권한을 일정기간 지방정부에 위임하고 점차로 중앙정부에 귀속시키는 단계적 연방제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도 1991년 4월에 발표된 남북공화국연합제 통일방안에서 기존에 ‘느슨한 연방단계’라고 표현한 것을 ‘남북연합단계’라고 명명하고 그의 3단계 통일방안(1단계로 남북연합, 2단계로 남과 북의 지역자치정부로 구성된 연방제, 3단계로 중앙집권 혹은 여러개의 지역자치정부를 포함하는 세분화된 미국, 독일식 연방제로 완전통일)을 확립했다.12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와중에 1991년 8월 남북이 UN에 동시 가입함에 따라 각자 상당한 자율성을 갖는 조건에서 점진적 통합과정을 진행해갈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이 만들어졌다.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도 이 과정에서 이룩한 중요한 진전이었는데 여기서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진전을 배경으로 백낙청은 1999년에 발표한 글에서 “일정기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일회성 통일”과는 다른 의미로 “‘상당기간에 걸친 지속적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통일을 담아낼 수 있는 제도적 틀로 국가연합을 제시했다.13 여기서 새로운 점은 국가연합을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통일의 한 형태로 보자는 발상이다. 이는 통일이라는 개념을 항상 1국가 1체제 통일모델과 연관시키는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발상이다. 지금도 통일과 관련한 많은 논쟁이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 국가연합을 1단계 통일이라고 한다면 그다음에 통일이 몇단계를 거칠지, 최종적 형태가 무엇인지 등의 문제는 열어놓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를 당장의 주요 논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2000년 ‘6·15공동선언’은 제2항에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회담 과정에서 김정일은 연방제라는 표현을 계속 고집했지만, 그도 자신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과거 북한이 내세운 고려연방제와는 달리 “남측이 주장하는 연합제처럼 군사권과 외교권은 남과 북의 두 정부가 각각 보유하고 점진적으로 추진하자는 개념”으로 설명했다.14 즉 이 합의는 남과 북이 국가연합과 같은 단계를 통일의 1차적 목표로 설정하며 통일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데 합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진행된 남북의 협력에서는 이 합의 내용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못했다. 남에서는 통일을 앞세우는 것이 불필요한 이념적 논쟁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기능적 협력에 주력하는 방식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데 치중했다. 즉 남측은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강조했지만 남북연합 자체가 새로운 통일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15 이러한 접근은 당시 정부가 이른바 퍼주기 논란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 요인 중 하나이다. 새로운 남북관계의 구축이라는 목표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제협력은 북한 도와주기로 비치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북측은 북측대로 표면적으로는 통일담론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통일 자체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전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남북 재통합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남북관계의 전환을 자주화라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의지가 더 컸다. 다시 말하면 남북 당국은 당시 새로운 통일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실현방법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의제를 선택적으로 부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백낙청은 2006년 발표한 글에서 이미 경제협력 및 사회문화적 교류의 활성화 관련 내용을 담은 6·15공동선언의 “제4항에만 치중하여 그들(남쪽 당국이나 일부 민간운동)이 애초부터 선호해온 기능주의적 접근에 몰두하려는 경향”과 제1항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원칙을 앞세우려는 (북측의) 경향이 각축하는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라고 볼 수 있는 제2항의 실천이 소홀해지고 있다고 일침을 놓은 바 있다.16
어떻든 남과 북은 이미 단기간 내에 전통적 방식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통일을 추구한다는 데, 그리고 국가연합이 1단계 통일의 목표라는 데 합의한 상태이다. 이는 단순히 국가간관계를 정립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연합을 해야 하는 문제다. 연합이 필요한 이유는 각자의 체제가 상대에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에 대해 합의하고 그 합의를 실천해가는 과정 없이는 남북관계 안정과 남북협력의 지속적 추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분리를 제도화·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통합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남북 간 경제적 격차를 적어도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축소하고 상호신뢰를 제고하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남북협력이 재개되더라도 당분간은 인적교류가 일반적 국가간관계의 수준으로도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에 남북 민간교류 공간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체제안전에 대한 북한의 우려가 해소되고 남북 협력과 통합의 수준이 어느 정도 높아진 상황—정상회담, 총리급·각료급 회담이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경제교류와 민간교류가 활성화되며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남북이 ‘남북연합’을 선언하는 것으로 1단계 통일로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이 형성되어야 통일 과정에서 민간 혹은 시민사회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백낙청은 이것을 ‘한반도식 통일과정’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남북의 통일과 관련한 논의 및 실천의 진전을 반영해 제출된 개념이다.17 이것이 지금까지 제대로 실천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원인은 실천에 특별한 어려움이 있거나 방안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적대적 관계를 대화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세력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저항이 별문제가 아닌 것처럼 도외시한 채 남북관계를 국가간관계로 전환하면 평화공존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결국 남북관계의 전환은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일, 즉 분단체제하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남북연합을 거쳐 진행되는 한반도식 통일은 정치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의 어려움과 타협하는 식의 소극적 목표가 아니다. 우선 한반도 내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연합의 진전이 남과 북 내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촉진한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보면 국가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역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인데, 한반도식 통일은 한반도 차원에서 국민국가 중심성이 완화된 정치공동체를 창출함으로써 동아시아질서 재편에 중요한 참조항을 제공한다.18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진행되는 점진적·단계적 재통합은 냉전의 유산을 청산하고 강대국 정치의 동력을 약화시켜 동아시아에서 다자주의적 질서의 형성을 촉진하고 지구적 거버넌스를 더 평등한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4. 분단체제의 변천과 극복 가능성
남북연합이 일국적 해결방안이나 양국적 해결방안보다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안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특히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킨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크게 증가한 만큼 과연 남북연합이라는 목표가 현실성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체제가 전환이 불가피한 중대 고비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 남북연합의 과제는 더 시급하게 요구되며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계기들도 출현하고 있다.
분단체제는 그 성립 이후 여러 단계의 변화를 겪어왔다. 가장 큰 변화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한국사회 내의 분단체제 기득권 구조에 균열을 만들어내며 출현한 것이다. 그 이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한국 내의 시민항쟁은 분단체제 기득권 구조를 지속적으로 흔들고 약화시켰다. 6월항쟁 직후에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이 해체된 것도 분단체제의 토대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북한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보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해야 했다. 이에 따라 공고하게 보였던 분단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분단체제의 동요기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 단계는 다음과 같은 두 소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소시기는 남과 북이 국제상황이 급변하는 가운데 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한반도 새 질서 구축을 모색하던 것에서 시작해, 주요 행위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고 특히 북한붕괴론이 확산되며 미국과 한국 정부가 북과의 대화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특별한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대화가 사실상 중단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두번째 소시기는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남한 내에 분단체제 극복을 추구하는 역량이 커지고 북한도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남한과의 협력에 관심을 가지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만들어지며 시작되었다. 2000년 6·15정상회담이 중요한 전환점이었고, 이를 계기로 동요하는 분단체제를 새로운 협력적 질서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북미관계가 다시 악화되면서 이 작업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특히 미국이 중동에서 이른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추진한 것은 북미 간 신뢰의 기초를 더 약화시켰다. 게다가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이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을 계기로 이행되지 못했고, 결국 북한은 2006년 첫번째 핵실험을 감행했다. 2007년 6자회담에서 2·13합의로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수교를 목표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르는 작업이 시작되며 새로운 돌파구가 만들어지는 듯했으나 북미 간에 핵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커지면서 이 과정마저 곧 중단되고 긴 교착기로 접어든다. 이 시기 북한은 자신의 안전보장을 위해 핵보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굳혀갔다. 2009년부터는 비핵화의 댓가가 과거처럼 북미수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기 시작했고, 이후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거쳐 핵-경제 병진노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19 미국은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는 판단에 기초해 북핵문제를 사실상 방기했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내세웠지만 전략은 없고 인내만 있었던 셈이다. 한국의 보수정부도 북한과 미국을 대화로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을 통해 국내 정치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만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예상보다 빠르게 진척시키고, 그로 인해 미국에 대한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분단체제 내에 새로운 역동성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이 고조되고 남북 정부가 각기 이러한 상황을 통치정당성을 강화하는 데 적극 활용하는 양상이 출현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냉전시기의 분단체제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다시 안정기로 돌아가기 힘들다. 현재 북한이 자신에게 제재가 가해지는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 구축을 목표로 핵과 미사일 카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영토를 핵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감으로써 미국도 한반도에서의 적당한 군사적 긴장과 대결 상황을 즐기고 있기만은 어려워졌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즉 분단체제의 불안정성이 계속 높아지고 심지어는 재앙적인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출현한 상황에서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칸트는 위험에 대한 공포에서 평화의 가능성을 찾은 바 있는데,20 적어도 논리적 차원에서는 위기의 출현이 문제해결의 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면서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는 것도 역시 파국적 상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변화이다.21 그리고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이 시작된다면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남북의 점진적 재통합 공간이 갑작스럽게 우리 앞에 열리게 된다. 분단체제의 극복으로 이어지는 세번째 소시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물론 당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어떻게 현실화할지에 있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경로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미국이 이러한 프로세스에 참여하도록 만들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국내의 컨센서스를 형성할 것인가, 모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22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분단체제론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되는 협력방식을 찾는 데 문제해결의 열쇠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미봉책에 연연해서는 안 되며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목표 설정과 남북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구체적인 실천전략 수립, 그리고 이를 실행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안보 이슈가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가능하면 이를 쟁점화하지 않는 전략을 추구했던 탓에 그동안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었고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하지 못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상황이 개선되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으나 북한이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고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자 남북관계가 여전히 부정적 방향으로 움직여갔다. 그러나 2017년 하반기부터 혼란을 정리하는 작업이 점차 진행되었고 2018년 들어서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남북의 고위급대화가 시작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럴 때일수록 단기적 성과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남북관계의 전환에 힘을 쏟고 이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얻어가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촛불혁명 완수를 천명한 새 정부의 지향이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촛불시민들도 스스로 분단체제 극복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정부가 이러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적극 견인해야 한다.
정세의 변화를 살펴보면 2018년은 분단체제 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황은 대결구도가 강화되던 시기의 시대감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던 지난 십여년간 한국 내에서 반북의식이 높아지고 남북의 협력관계가 가져다줄 수 있는 긍정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전환이 본격화되면 그것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매우 크며, 그러한 전망이 열릴 경우 시민들의 인식도 크게 바뀔 것이다. 분단체제의 중대한 전환점이 도래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당장의 어려움에 굴복해 현실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한반도의 대전환을 상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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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낙청은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창작과비평』 1992년 가을호)에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처음 체계적으로 설명한 바 있으며 분단체제론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계속 발전시켜왔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에 대한 개괄적 설명은 졸고 「반(半)국적 인식을 넘어서: 분단체제론의 형성과 발전」,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 창비 2016 참고.↩
- 이러한 불균형적 병존이 한국사회에서는 유달리 많이 나타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과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낮은 삶에 대한 만족도 사이의 간극도 그러한 예이다. 이런 현상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가의 사회모델을 목표로 하는 단선론적 발전관에 기초해 비정상성 혹은 특정 영역에 한정된 낙후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적절하지 않고 실천적 해결방안을 찾기도 어렵다. 이러한 불균형적 병존 자체가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분단체제라는 변수를 제외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분단체제론의 입장에서 분단체제의 이같은 효과에 대한 더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 박상훈 「촛불과 정치변화: 무엇이 바뀌었으며,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최장집 외 『양손잡이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17, 261~62면. 이에 대해 김종엽은 광우병 반대 시기의 촛불시위와 촛불혁명 시기의 촛불시위를 단절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종엽 「촛불혁명에 대한 몇개의 단상」 ,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창비 2017, 433~34면.↩
- 졸고 「수구의 ‘롤백 전략’과 시민사회의 ‘대전환’ 기획」, 『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 88~91면.↩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폄하하는 비판을 계속하며 국가적 행사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온 전통을 부정하고 무리하게 이를 정쟁에 활용했던 것도 분단체제를 활용한 정치적 동원전략의 하나이다.↩
-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말했고 이후 통일준비위원회를 설치하고 주요국 회의에서도 통일대박론을 설파하는 등 통일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시기 흡수통일적 발상에 대해서는 김연철 『70년의 대화』, 창비 2018, 285~88면을 참고.↩
- 최장집 「‘해방 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 민주주의자의 퍼스펙티브에서」, 참여사회연구소 주최 해방 6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2005.10.21,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 김상준 「한반도 ‘양국체제’ 전환을 생각해보자」,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현안과정책』 제190호(2017.8.28).↩
- 이 두 주장과는 결을 달리하지만 시민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제기된 ‘평화국가론’과 관련된 논의에서도 남북관계의 재구축과 관계없이 한국만 평화국가로 이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유재건 「남한의 ‘평화국가’ 만들기는 실현가능한 의제인가」, 『창비주간논평』 2006.8.22.↩
- 현실주의는 왈츠(Kenneth Waltz)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는 현실주의 중에서도 국제사회의 무정부적 성격이 왈츠가 이해한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고, 그에 따라 방어에 필요한 적정 수준의 힘을 확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적 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미어샤이머의 현실주의는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로 분류된다. 존 J. 미어셰이머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이춘근 옮김, 나남 2004, 32~36면.↩
- 이 개념은 저비스에 의해 발전되었다. Robert Jervis, “Cooperation Under the Security Dilemma,” World Politics Vol. 30 No.2, 1978.1.↩
- 김학재 「김대중의 통일·평화사상」, 『통일과평화』 9집 2호(2017) 74~75면.↩
- 백낙청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새 발상」,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76~79면.↩
- 임동원 『피스메이커』 개정증보판, 창비 2015, 84면.↩
-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과의 회담 과정에서 “저희가 주장하는 ‘남북연합’이란 통일의 형태가 아니라, 통일 이전 단계에서 남과 북의 두 정부가 통일을 지향하며 서로 협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말합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같은 책 83면.↩
- 백낙청 「한반도의 시민참여형 통일과 전지구적 한민족 네트워크」,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창비 2009, 105~106면.↩
- 한반도식 통일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은 백낙청 「북의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의 ‘제3당사자’로서의 남쪽 민간사회의 역할」,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창비 2009, 123~26면과 백낙청 「2013년체제와 포용정책」, 『2013년체제 만들기』 창비 2012, 168~75면을 참고.↩
-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백영서 「동아시아론과 근대적응·근대극복의 이중과제」, 졸편 『이중과제론』, 창비 2009를 참고.↩
- 이 과정에 대해서는 이정철 「미국의 재균형화 정책과 북한의 수정주의」, 『유라시아연구』 제10권 제4호(2013.12)를 참고.↩
- 임마누엘 칸트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이한구 옮김, 서광사 1992, 35~36면.↩
- 대표적으로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이 반복해서 북과의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해오고 있다. 그밖에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가 2017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이후 기고한 글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했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Nicholas Kristof, “ Inside North Korea, and Feeling the Drums of War,” The New York Times 2017.10.5.↩
-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이번호 특집의 김동엽 글(「북핵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