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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조명
여기의 빛
백수린 白秀麟
소설가.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등이 있음.
paper_pe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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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빛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은희경 작가를 인터뷰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은 건 아직 한낮의 빛이 다 사그라지기 전인 어느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그 제안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아니, 왜 나한테?’ 인터뷰를 하기 싫어서는 아니었고, 나에게 제안하게 된 연유가 순수하게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먼발치에서 본 은희경 곁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들, 다정한 안부를 주고받는 많은 후배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가끔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별다른 친분이 없는 나보다는 은희경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인터뷰하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망설임 끝에 해보겠다고 결심했는데,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오랜 독자이자 숫기없는 팬으로서, 이런 강제적인 상황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고백 못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을 것이고 핑계 김에 그녀의 작품에 대해 실컷 이야기 나누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특별한 친분이 있든 없든, 은희경 이후 문단에 나온 후배 작가라면 누구나 저마다 ‘은희경’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은희경’ 하면 떠오르는 두가지 기억이 있다. 그중 첫번째는 1997년의 일인데, 당시 나는 한국소설을 쉽게 구해 읽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던 중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해 알게 된 두살 많은 한국인 언니가 나에게 책을 한권 빌려줬다. 하얀 바탕에 초록색 네모와 노란색 네모가 그려진 표지의 『새의 선물』(문학동네, 초판 1996)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까지 소설을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던 열여섯살의 나에게 『새의 선물』과의 만남은, 내 안에 어렴풋이 있으나 아직 실체를 갖추지 못한 감각을 언어를 통해 존재하게 만드는 일의 황홀함을 가르쳐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2014년 나는 실존 인물 은희경과 나란히 앉아 처음으로 술을 같이 마셨다. 그때 나는 이제 막 세상에 첫 책을 내놓은 햇병아리 소설가였다. 출간 직후 출판사의 뒤풀이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곳에 은희경이 와 있었다. 은희경이라니! 그날 밤 나는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그녀가 노래 부른 목소리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 노래를 부르자고 말을 꺼낸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누군가의 제안으로 그날 술자리에서는 모두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터라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알아서 도망가는 편인 나는 그날 하필 테이블 가운데 자리에 앉아 오도 가도 못하고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가뜩이나 긴장한 탓에 달달 떨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러주던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던 은희경이었다.
인터뷰 당일, 빨간 천가방을 멘 그녀가 발랄한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에 들어왔다.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 난 수린씨라고 부르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내 앞에 앉자마자 그녀가 물었다.
“저는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러면 좋지.”
그리고 그녀는 인터뷰에 필요한 사진을 먼저 찍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2019)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무심코 고개를 젖혀보니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어난 곳을 떠나온 뒤 몇십, 몇백 광년의 미지를 통과해서 이제야 내게로 도착한 빛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 선 채로 한참 동안 그 빛을 한사코 바라보았다. 바람이 젖은 눈가를 말리며 스쳐 지나갔고 그것이 나의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110~11면)
1997년과 2014년. 1997년, 아직 어렸던 내가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소설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면 2014년, 첫 책을 내고 이제 막 소설가가 된 나는 언젠가 나도 곤경에 처한 까마득한 후배를 위해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내가 이런 기억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과거를 기억하고 편집하며 살아갈 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빛의 과거』를 읽었고, 그러므로 은희경과 내가 2019년 10월의 어느날 이렇게 마주 앉게 되었다면 그것은 1997년과 2014년의 빛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의 모서리를 어루만지며 아주 긴 여행을 한 끝에 여기, 우리의 앞에 마침내 당도한 그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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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은희경이 7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은 빛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여기를 비추는 빛의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 『빛의 과거』에는 1970년대 서울 소재의 한 여대 기숙사에 사는 이십대의 학생들이 등장한다.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여학생들’이라고 쓰려다가 고쳤는데, ‘여대’라는 표현이 나오므로 ‘여학생들’이라고 쓰는 것은 불필요한 중복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학생 집단을 그냥 ‘학생’이라고 쓰는 것에 나도 모르게 어색함을 느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017년에 이제 중년이 된 유경의 회고 속 1977년의 여대 기숙사생들. 이 소설에서 1977년의 여학생들은 두가지 버전을 통해 독자에게 제시된다. 하나는 독자가 읽고 있는 은희경의 『빛의 과거』를 통해서. 또 하나는 소설 속의 소설 형태로 제시되는 희진의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통해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녀가 앞서 한 인터뷰들을 꽤 많이 찾아 읽었는데, 그러다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은희경은 근황을 묻는 질문에 여자 기숙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잘 풀리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해왔다는 것. ‘작가의 말’에도 쓰여 있지만 그녀는 정말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쓰려고 시도했고 또 번번이 실패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기숙사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하는 인터뷰들을 시간순으로 놓고 다시 읽어보니 어쩐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 소재를 포기하지 못하게 한 것일까? 한 작가가 10년 동안이나 소설로 완성하기 위해 애쓴 소재라면 그것은 얼마나 특별한 의미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다들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는 이야기들.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것은 나의 인생에 변수가 됐고, 살아가면서 기준이라 하나, 감각이라 하나, 그런 것이 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아서 기숙사에서 살던 때의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어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이 이야기를 쓰려다가 도저히 안 써져서 『태연한 인생』(창비 2012)을 먼저 썼어요. 그런데 작가는 쓰면서 제일 많이 배우잖아요. 『태연한 인생』을 쓰면서 내가 진짜 절실한 것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 그땐 내게 기숙사 이야기가 왜 절실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기숙사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고 나한테 중요하니까 재현하려는 것에 멈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왜 써야 하는지, 그 방향성이 없으니까 안 써졌던 거지. 그러다 그때의 일을 현재의 내가 봤을 때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현재와 과거 양쪽 사이에 장력이 생기더라고요. 옛날의 것을 지금 내가 다시 본다,라는 방향이 잡히니까 저절로 가야 할 길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러면 처음에 구상했던 때는 1977년도의 이야기만 있었던 걸까?
처음엔 희진이라는 인물도 없었어요.
희진이가 아예 없었다고요?
없었어요. 아니, 정확히는 77년의 희진이만 있었고 2017년에는 없었지. 그래서 희진이는 소설가도 아니었어요. 사실은 희진의 소설 도입부가 제가 예전에 썼던 소설의 첫 부분이에요. 그렇게 시작하려다가 안 써져서 친구를 소설가로 설정하고, 친구의 시각과 유경의 시각으로 나눠 쓰면서 이야기가 풀렸어요. 사실 『문학과사회』에 연재할 때 1회가 끝날 때까지도 등장인물 중 누구를 소설가로 할지 정하지 않았어요.
이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김희진이라는 인물은 조금 특별하다. 40년이 흐른 2017년 유경과 연락을 유지하는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희진은 악역이라 할 만한 인물이 딱히 없는 이 소설에서 가장 까칠하고,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치켜세우려는, 조금은 얄미운 친구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왜 하필 여러 인물 중 김희진을 소설가로 선택했을까?
소설 쓸 때 나를 연상시키는 인물을 악역으로 해놓으면 긴장감이 생겨요. 소설 쓰면서 나는 내게서 호감을 가질 수 없는 비루함, 비겁함, 이기심 같은 걸 발견해요. 그래서 한 인물에게 나의 그런 면들을 쏟아내면 솔직했다는 시원함이 들고요. 그게 첫째 이유고, 둘째로는 소설 쓸 때 인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걸 좋아해요. 희진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 약자잖아요. 사회적 약자가 마이너한 인생을 사는 건 너무 쉽죠. 그래서 저는 그걸 꼭 뒤집어요. 이 소설에서 유경과 희진은 대립하지만, 같이 가기도 하는 거예요. 이 소설을 희진의 소설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뒤에 이거다, 싶었어요. 그러면 유경의 자기변명이 아닌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본 거죠.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문학소녀 유경과 소설가가 된 희진은 플라톤의 『향연』 속 원래 한 몸이었다가 둘로 나뉘어 서로의 짝을 찾아다니는 인간들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구분했던 『새의 선물』의 진희를 떠올리게도 한다. 유경과 희진은 서로를 완성시키는 동시에 완성을 지연시키는 존재인데, 마주 보는 거울 속 상이 무한히 반복되듯 서로가 서로에게 응시하는 주체로서 존재하는 한, 그들은 하나의 상으로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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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유경은 1977년을 회상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문장을 인용한다. “군대의 비극은 섞인다는 것이다.”(25면) 예향이라 불리는 지방도시에서 모범생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시스템에 순종하고 살면서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다름’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유경은 섞인다는 것이 비극이라는 문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문장이 왜 중요하다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딱히 주제를 함축한 것도 아니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리라”처럼 흔히 인용되는 문구에 비하면 너무 평범한 말이었다. 교양인을 자처하는 여중생이었던 나는 나보다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이 공공 기물을 훼손했다고만 생각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다지 상상력이 없던 시기였다. 주어진 대로 수긍해야 하는 미성년으로서 ‘다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며, 세상은 정답의 문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그것을 알아낸 사람이 주도한다고만 알고 있었다.(25면)
‘같음’의 세계에서 ‘다름’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을 어른이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소설 속의 기숙사는 소녀들이 어른으로 입문하는 장이다. 김유경이 소속된 322호의 룸메이트인 최성옥, 양애란, 오현수와 417호의 송선미, 곽주아, 김희진, 이재숙. 『빛의 과거』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우리가 타인을 함부로 밀어 넣는 전형성이라는 좁고 딱딱한 상자를 열고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70년대 여학생 하면 우리가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를 배반한다. 특히 여자끼리 여행 다니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상주해수욕장으로 떠났던 이재숙이나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기숙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점호시간 이후 헤드폰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오현수 같은 인물들.
내게는 상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너무 중요해요. 상투적인 것도 어떻게 보면 규칙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규칙 말고 인간을 보는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도 이런 게 있었어?라고 생각할 수 있게 인물들의 상투성을 깨는 데에 중점을 두었어요.
그 비좁은 기숙사의 이층침대 한구석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오현수의 클래식 기타는 나에게, 억압과 독재의 시대로만 인식되던 70년대에도 개인성을 이토록 소중히 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증거하는 사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기타로 인해 나는 이제 70년대에 이십대였던 이들을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는 더이상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신문 1면에서 주한미군의 철수와 군축 문제가 들먹여지는 사이사이 대간첩본부는 때맞춰 무장공비의 출몰을 발표했다. 거리의 레코드점마다 서울국제가요제 실황이 담긴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가 흘러나왔고 학교 앞 삼거리의 삼강분식에서는 이른 여름 메뉴로 비빔쫄면을 개시했다.(91면)
이 소설에서 기숙사생들만큼이나 생동감 있게 그려지는 것은 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다. 티나 크래커와 오란씨부터 「장미와 빤따롱」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까지. 이같은 시대상을 드러내는 지표들은 70년대를 마치 생명을 가진 또 하나의 인물처럼 살아나게 한다.
전 70년대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마이너리그』(창작과비평사 2001)라는 소설에는 남자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내 고등학교 시절이 등장해요. 고등학교 때는 데모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부모의 테두리 안에서 통제된 채 살다 서울에 와서 데모 현장도 보고, 눈앞에서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도 보니까 내가 속으며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인생이 내가 모르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른다, 내가 모르는 동력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70년대는 사회적 억압도 많고, 규제도 많았던 시대예요. 그래서 소설에도 그런 장면을 많이 넣었어요. 이 사회가 얼마나 억압적인 사회인가를 틈틈이 썼어요. 양애란이 횡단보도를 가다가 호루라기를 불면 꼼짝을 못하는 장면 등을 통해서 그 사회가 통제된 사회라는 걸 쓰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시대에도 젊은이들은 미래나 자기 자신, 자기의 정체에 대해 고민을 하잖아요. 그런 게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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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빛의 과거’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했다. ‘빛의 과거’라는 말은 ‘빛’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으면 ‘빛이 지닌 과거’라는 뜻으로, ‘과거’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으면 ‘빛으로 이루어진 과거’로 읽혔다. 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어쩌면 두가지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이제 닿지 않는 찬란한 청춘(과거)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지금의 ‘나’를 이루는 빛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기원을 추적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반면 1977년의 여대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 속 희진의 소설 제목은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이다. 무라까미 하루끼의 유명한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에서 따왔을 이 문장은 『빛의 과거』의 가제이기도 했다. 왜 하필 공주들일까? 나에게 ‘공주’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주’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못 버린 이유는 고등학교 때 읽은 새커리(W. M. Thackeray)의 『허영의 시장』이라는 소설 때문이에요. 그 소설은 여자 기숙사 이야기가 인트로처럼 있고, 기숙사를 나오면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돼요. 기숙사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기숙사 안에서는 사이좋던 사람들이 왜 기숙사를 졸업하고 변했는지가 재미있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전 욕망에 의해 사람과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지점들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허영의 시장’이나 ‘공주’는 인간의 각기 다른 욕망이 어떻게 부딪치는지를 보여주는 말 같아요. 하루끼의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에도 예쁘고 인기도 많지만 뭔가 독특한 주인공이 나오는데, 화려하게 살 것 같던 여자는 시간이 흘러 평범한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하지 않은 걸로 그려져요. 그 여자에게는 자기 나름의 우울이 있었던 거예요. 난 그런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누구나 자기가 주인공이 된 인생을 산다는 점에서 모두가 ‘공주’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고요.
소설 속에서 저마다의 욕망을 지닌 공주들은 그녀들의 다양성을 억압하기 위해 두껍게 성벽을 쌓은 기숙사에 갇힌 존재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연애도 하고 방황도 하며 자아를 찾아나간다. 그러니까 오픈하우스 날 뜻밖의 기숙사 침입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녀들이 공들여 만들어온 세계가 붕괴하고 뿔뿔이 기숙사 밖으로 쫓겨나는 계기가 한 남성(그것도 운동권 출신)의 침입으로 그려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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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냉소’를 말하는 것은 조금도 새로운 일이 아니다. 무엇에 직면하기보다는 한발 비켜서서 냉소하는 삶의 태도는 그녀의 인물들이 공유해온 지문과도 같은 거니까.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속이고 회피해온 삶의 방식을 반성하는 유경이라는 캐릭터의 등장은 나에게 인상적인 것이었다.
2017년 유경은 희진의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으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는데, 유경이 이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 여성이 엄마의 유품이라며 낡은 표지의 이 책을 들고 희진에게 사인을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 그 죽은 이는 기숙사생 중 하나인 송선미라는 것이 밝혀진다. 요컨대 2017년 유경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십대를 회고하도록 이끈 것은 송선미의 죽음이었던 셈이다.
송선미는 처음 쓸 때부터 비극적으로 죽는 것이 계획되어 있었어요. 외국에서 송선미처럼 죽은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거든요. 어떤 삶이었기에 그런 일을 겪었을까 생각했었어요. 어쨌든 이 소설이 여성들의 이야기니까 여성들이 겪게 되는 비극을 부여해야 했는데, 소설 속에 쓰지는 않았지만 송선미는 어렸을 때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설정도 있긴 했어요.
「장미와 빤따롱」을 콧노래로 즐겨 부르고, 놀라울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던 송선미. 그녀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지는 소설에 명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셸터에서 불행하게 죽은 송선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에서 작가는 송선미가 은파여관에서 겪었던 일에 대한 에피소드를 은근슬쩍 끼워넣는데, 이는 송선미의 “슬프고도 인상적인”(311면)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암시해주는 듯하다.
그곳에서 아침 일찍 잠이 깬 송선미는 아무도 없는 마당으로 세수를 하러 나가다가 마루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년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어김없이 수작을 걸어왔고 송선미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급기야는 수돗가로 다가가서 본격적으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때 이 방 저 방에서 문이 열리고 여학생들의 항의하는 사투리가 터져 나왔다.(310~11면)
송선미의 죽음을 한 인물의 개인사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읽기 시작하자 송선미(여성)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반성하는 유경 위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를 사는 소설가 은희경이 겹쳐 보였다. 유경을 작가의 자의식이 투영된 결과물로 보는 것은 비약일까?
물론 페미니즘 리부트 흐름이 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어요. 90년대에는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국에서 여성이 살면서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 있느냐고 답하곤 했어요. 소설에도 나오지만, 그때도 여자가 거울을 안 보면 “여자가 왜 거울도 안 봐?” 그런 소리를 듣고 거울을 보면 “여자라고 거울을 봐?”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런 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적인 생각을 했지만, 그때는 주어진 환경 안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나는 그걸 지키려고, 혹은 더 나은 안락한 삶을 살려고, 유리한 위치에서 삶을 풀어가려고, 그런 데만 골몰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지난 소설들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가 냉소였어요. 세상이 안 바뀌니까 나를 바꾸자, 하면서 나만 피하는 식으로 냉소하는 것밖에 못했던 거죠. 그런데 『빛의 과거』를 쓰면서 그 냉소가 일종의 회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삼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그 이후의 미투운동을 보면서, 옛날에도 있었던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구나 싶었어요. 40년 전에도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여전히 해결 안 된 것을 보고 내가 회피하고 냉소했던 것이 삶의 태도가 되어서 세상을 하나도 못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당연히 소설에도 그런 기류가 조금씩 반영된 것 같아요.
90년대에는 페미니스트들이 내 소설을 싫어했어요. 싸우지 않기 때문에. 그때 전 남녀를 구분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싸우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내 입장을 변호하는 방법을 생각한 거겠죠. 저는 투쟁하는 것보다 편견을 없애는 쪽을 택해서 90년대에 글을 쓸 때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 편견 없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번 소설을 쓸 때는 실제로 젠더 문제로 고통받는 사례를 보니까 뭔가 싸우는 걸 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소설을 쓰다보면 쓰는 동안 어떤 문제에 대해 굉장히 진보적이 되고 내가 지닌 현실적 약점을 잊곤 해요. 쓰고 나면 또 원래의 나로 돌아오기도 하지만요. 어쩌면 나는 다음 소설에서도 싸우지 않을 거고 또 냉소를 쓸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을 쓸 때에는 분노와 나의 반성이 두드러졌던 것 같아요.
우리는 여성으로서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운동이 소설을 쓰는 우리를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이야기 끝에 나는 그녀에게 페미니즘 리부트가 문학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는 어떤 정당한 ‘-이즘’이라도 소설이 그 아래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소설이 그 아래 종속되어도 좋은 이즘은 휴머니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작가가 된 이후 현재 나의 빛을 만든 최근의 과거는 세월호와 강남역 살인사건이에요. 그 이후로 작가들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의 문제를 보는 사람들이니까 당연하겠지만 방법론에서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페미니즘이 휴머니즘과 부딪친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때문에 소설이 제약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채 우리가 쓰는 방식을 좀더 다양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독자가 이 소설에 대해, 왜 여자들끼리 싸우고, 왜 남자 문제가 트리거가 되는가 하는 문제로 비판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청춘이라면 그 시기에 가장 관심있는 외부라는 것은 이성일 수 있어요. 저는 외부요인 중에서 그걸 문제로 설정한 것뿐이에요. 이분법적으로만 보면 작가가 쓸 이야기가 좁아지는 것 같아요. 작가가 인권감수성과 타인에 대한 예의를 소설 쓰는 기본 태도로 지니고 있다면, 소재나 이야기 쓰는 방식에서는 페미니즘이 소설쓰기의 제약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90년대에 제가 쓴 「빈처」(『타인에게 말걸기』, 문학동네 1996)라는 작품은 지금 눈으로 보면 어이없는 상황이 그려진 소설이에요. 밖으로 도는 남편과 독박육아를 하는 아내가 냉전을 벌이다가 남편이 화해하자며 사원가족을 위한 강연을 권하는데, 그게 남편 기 살리기에 대한 강연이었다는 내용이에요. 당시의 맥락에서는 세태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데 10년이 지나서 한 작은 도서관에서 이 소설을 낭독했어요. 너무 옛날 소설이라서 읽을까 말까 하다가 읽었는데 그때 여성 독자들이 지금도 그렇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게 10년 후에도 유효하다니 좋아해야 하는지 아닌지 난감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이 소설을 다시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성독자들이 또 공감하더라고요. 이런 현실이 너무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제 그런 소설은 안 쓸 거예요. 이미 한번 썼으니까. 그런 방식으로는 안 쓸 거예요. 그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6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소녀의 얼굴 위에 할퀸 자국 같은 주름을 남기고, 봄날의 투명했던 약속들을 증발시켜버리면서? 만일 시간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어떤 힘이라면 우리가 결국 도달하는 그곳은 어디일까? 4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유경과 희진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니 문득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25년이라는 세월 동안 소설을 쓴 작가만이 지닌 고충이나 기쁨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25년이 됐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어요. 그냥 어제 다음에 오는 오늘이고, 작품은 계속 쓰는 거니까. 어제는 그걸 썼고, 오늘은 이걸 쓰고요. 이것밖에 안 남았고, 내 뒤에 이만큼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안 해봤어요. 저는 중견이나 원로라고 불리면 깜짝 놀라요. 25년을 썼다고 더 잘 쓰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지금 생각한 문제들, 동시대에 부조리한 걸 보고 기록하는 사람이에요. 중견이 쓰는 거, 신인이 쓰는 거, 원로가 쓰는 게 정해져 있지는 않잖아요.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던 중 ‘아직도 쓸 이야기가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어요. 나는 뭘 써야 하고, 또 뭘 쓰면 안 되고, 혹은 뭔가를 써야 하는 역할이 있나 그런 생각. 사실 나는 여성 작가라는 말도 그렇지만 그보다 90년대 작가라는 레터르가 힘들었어요. 나는 그저 동시대 작가이고, 항상 새로운 것을 쓰기 위해 존재를 업데이트하는데 자꾸 나를 90년대 작가로 해석해버리니까. 누구든 레터르를 붙이면 안 돼요. 여성이라는 레터르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한 사람의 작가예요. 화가 나면 쓰고 싶고, 마음이 움직이면 쓰고 싶은 그런 작가.
그러면 별다를 게 없는데 25년차라고 자꾸 의미 부여하려는 것이 오히려 더 고충인 걸까?
고충까지는 아니에요. 작가는 소설만 잘 쓰면 되는 거잖아요. 여성 작가든, 90년대 작가든, 원로 작가든 소설 쓰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생활인으로서는 내게 왜 저런 딱지를 붙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소설가로서의 나는 그런 거에 영향받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설가는 권능이 있는 거야!
소설가의 권능! 나는 그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그러는 사이 은희경은 이렇게 덧붙였다.
쇠약해진 건 사실이지만, 밤새울 수 있어. 신들린 듯이 할 때는 가능해요. 소설이 뭘까? 창작이기 때문에 가능한 걸까? 소설엔 어떤 힘이 있어요.
7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녹취 파일을 다시 듣다가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녀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상투성에 갇히기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중 내가 질문의 답을 정리하기 위해 그녀에게 “그러면 그건 이렇다는 말이죠?” 하고 되물으면 그녀는 어김없이 “꼭 그런 것은 아니야”라고 답하며 내가 문을 닫지 못하도록 문틈에 한 발을 살짝 끼워 넣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여서, 25년차 작가라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그 끝에 지금은 “소설을 잘 끝마쳤으니 이렇게 말하지만 소설이 안 풀릴 때 인터뷰를 다시 하면 뭐라고 말할지 나도 몰라”라고 말하는 그녀여서, 자신의 삶의 태도였던 냉소를 회피였다고 반성하는 동시에 그러면서도 언제라도 다시 냉소로 돌아갈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어서 나는 좋았다. 그녀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성장’이라거나 ‘발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고 그 대신 “존재의 업데이트”라는 표현을 썼는데, 나는 그 말 역시 좋았다. 그녀가 다음 소설에서 다시 냉소를 말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퇴행이 아니라 또다른 방식으로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업데이트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제 은희경이 하나의 ‘빛’이라는 걸 안다. 손에 쥐려 해도 잡히지 않는 빛. 과거로부터 와 지금 여기에서 반짝이는 빛. 그녀가 나보다 한발 앞선 곳에서 경쾌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두컴컴한 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길을 잃고 헤매게 될 때 바라볼 방향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덜 외로워진다. 모르긴 몰라도, 은희경은 오늘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명의 소설가이기 위해 어디선가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얼음조각처럼 매끄럽고 투명한 불빛. 눈이 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