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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알려지지 않은 청년작가의 눈물과 한중일의 문학

 

 

박상영 朴相映

소설가.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 등이 있음.

sang783@daum.net

 

* ‘2019 한중일 청년작가회의, 인천’은 인천이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한 한중일 세 나라 청년작가들의 교류행사로, ‘나에게 문학을 묻는다’라는 주제 아래 지난 11월 5일부터 7일까지 인천문화재단 주최(최원식 기획위원장)로 열렸다—편집자.

 

 

솔직히 말하자면, 올 6월에 처음 섭외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2019 한중일 청년작가회의, 인천’에 대해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저 동인천 언저리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작가들이 모이는 행사가 열린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섭외자는 문학에 관련된 에세이 한편을 쓰고 행사주간에 맞춰 인천에 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행사라고 했다. 국제작가회의에 대한 경험은 전무했지만 평소에 일본소설을 한국소설만큼이나 많이 읽어왔고, 사실 중국문학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이번 기회를 계기로 저변을 넓혀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거기다 나와 막역한 김세희 작가까지 함께한다고 하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참가 승낙 의사를 밝힌 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소설 청탁과 산문 연재와 온갖 잡무에 치여 있던 지난 추석 무렵, 공교롭게도 이 행사의 원고 마감일이 함께 닥쳐왔다. 나는 공인된 불효자답게 제사를 지내러 오라는 부모님의 간곡한 연락을 무시한 채, 부랴부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주제는 ‘나에게 문학을 묻는다’. 그러니까 왜 문학을 시작했으며, 나에게 문학은 무엇인지에 대한, 작가로 데뷔한 후 가장 많이 썼던 글을 돌림노래처럼 또 쓰게 됐다. 고백하자면, 엄청 공들여 명문을 쓰지는 못했고, 대단한 문학적 어젠다를 다루지도 않았으며 그냥 일기를 쓰듯 진솔하게, 부적절하리만치 촉촉한 글을 썼다.

행사 보름 전, 나는 한국의 참여 작가 중 가장 나이가 어리며 종로구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광화문에서 열리는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주최 측으로부터 행사의 본질과 정보를 알게 되자 비로소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한중일 간의 외교적 긴장이 다분한 이 시점에, 삼국의 작가들이 모여 문화적 교류를 하는 것이 꽤나 심각하고도 중요한 일임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다 내가 한국의 대표로 참석하는 것이 너무나도 과분하다는, 객관적인 주제파악을 하게 되었다.

전날 온 공지 메일에 정장을 입어달라는 요청이 적혀 있었다.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아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너 때문에 굳이 그런 규정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왠지 그 말이 신빙성 있는 것만 같아 열심히 옷장을 뒤져보았다. 작가가 된 후 더는 찌지 않을 것 같던 살이 15킬로그램이나 불어난 후로는, 입을 수 있는 정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셔츠 비슷한 옷과 청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1월 5일 오후 2시, 인천 하버파크 호텔에서 개막식이 시작됐을 때 나는 거대한 호텔 연회장의 위용과 또 상상 이상으로 긴 식순에 질식할 뻔했다. 개최도시인 인천에 대한 소개와 축제의 본질과 의의를 담은 개회사는 감명 깊었으나, 줄줄이 이어지는 축사와 내빈 소개는 모두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오전의 투어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온 외국작가들과는 달리, 개막식장으로 바로 온 한국작가들의 경우 식사를 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물 한잔조차 요청하기 어려운 엄숙한 분위기에 몇몇 작가들은 탈수 증세와 저혈당증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기나긴 개막식이 끝나고 예상보다 늦은 오후 7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중국 측에 이슬람교인 회족 작가가 있어 여러 종류의 식사가 준비되었는데, 내 경우는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스테이크를 두 접시 받아먹었으며, 목이 막혀(?) 레드와인을 세잔 정도 마셨다. 한중일의 작가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돌리기 시작했다. 명함에는 이름과 메일 주소, SNS 아이디 등이 적혀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작가들은 당연히 명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일본과 중국 작가들의 명함을 받아 들고 멀뚱멀뚱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국제행사 경험이 많은 전성태 소설가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민정 시인 정도가 적극적으로 명함을 돌리며 통성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뻘쭘한 채로 앉아 있는 우리—전업작가—를 향해 최원식 기획위원장이 국제행사에는 약소하나마 명함을 준비하는 게 예의라고 말씀해주셨다. 만찬이 끝나고, 첫날의 공식행사가 종료되었다. 나는 (은하철도 999를 방불케 하는) 한없이 기나긴 1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다시 서울의 내 집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땐 10시가 넘은 시간,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피곤했지만 포토샵을 켰다. 중학교 때 온갖 카페를 돌아다니며 축전을 제작하던 실력을 살려, 간이명함을 만들었다. 다행히 집에서 5분 거리에 명함을 인쇄해주는 업체가 있어 아침까지 인쇄를 요청해놓고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으나 명함 인쇄에 시간이 걸려 결국 조금 늦어버렸다. 인천의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는 컨퍼런스가 이미 시작된 뒤였다. 세 나라의 시인과 중국의 평론가가 저마다의 시론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한국 대표로 나선 김민정 시인의 경우 개인적 일화를 시적 자아로 치환하는 글쓰기와, 시를 통해서 언어를 넘어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거시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중국의 평론가 쑨 수원(孫書文)이 소개한 루 예(路也)의 시에 깊은 관심을 표하며, 강렬하고 인상적인 작품이라 평했다. 중국의 시인 정 샤오충(鄭小琼)의 경우 공장 노동자로 오랫동안 근무한 자신의 경험을 살려, 중국의 노동 현실을 담은 직설적이고 강렬한 시를 소개했다. 또한 문학이 사회 참여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더불어 이번 행사의 최연소(1991년생) 작가인 일본의 시인 후즈끼 유미(文月悠光)는 인터넷 시대에 발맞추어 시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 SNS 같은 가상공간에서 시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구축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말했다. 저마다 고민의 방식과 주제는 달랐지만 ‘더 좋은 시’와 ‘시적 자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색을 띠고 있었다.

오후에는 세 나라의 소설가들과 중국의 평론가 구 광메이(顧廣梅)가 ‘소설가 되기, 소설가로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누었다. 한국의 윤고은 소설가는 15년 전 등단했을 때에 비해 현재는 독자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작가와 소통하고자 하며, 작품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김세희 소설가는 좋은 글을 쓴다는 것과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탁월한 글쓰기에 대한 경도와 올바른 인간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상충할 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이는 많은 작가들의 공감을 얻었다. 조선족 문단에서 활동 중인 김경화(金京花) 소설가의 경우 중국어권 문학에도, 한국의 문학에도 속하지 못한 ‘소수자문학’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했고, 이는 실제로 이번 작가회의의 주된 테마이기도 했다. 이어서 구 광메이 평론가는 중국문학을 선도하고 있는 김인순(金仁順)과 마 진롄(馬金蓮), 장 웨란(張悅然) 등 80년대생 여성작가들의 열풍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했다. 더불어 (소수민족인) 회족이자 여성으로서 소수자문학을 창작하며 향유해나가는 자신의 삶을 진정성 있게 고백했다.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타국의 작가를 만난 만큼 토론 시간에도 열띤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 일본의 작가 와따야 리사(綿矢りさ)가 중국과 한국의 작가들을 향해 창작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어 있느냐고 질문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당연히 한국작가의 경우 소재나 표현에 있어서 창작의 자유가 제한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밝혔으나, 중국에서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나 사회정의에 위배되는 내용의 경우 출판이 금지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더불어 내 소설의 팬이라고 밝힌 한 중국어 번역가는 내 작품의 특성상 중국 본토에서 출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김세희와 와따야 리사, 중국의 루 네이(路內) 작가가 참석한 낭독의 밤 행사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짧은 낭독 후 시민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기억에 남는 질문이라면 한 남성 노인이 세 작가를 향해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제 결혼을 할 예정인지 물은 것이었다. 다행히(?) 세 작가 모두 기혼이었고, 모두가 자신의 배우자가 든든한 창작의 서포터임을 밝혀 훈훈하게 행사가 끝날 수 있었다. (만약에 내가 낭독자로 참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마지막 날 오전에는 내가 발표자로 참석하는 ‘다르면서 비슷한 소설가’ 세션이 열렸다. 가장 먼저 발제한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박완서, 신경숙 등을 읽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에게 있어서 문학이 일종의 ‘희망’이며 삶의 조건임을 밝혔다. (젊은 작가답지 않게? 혹은 너무 젊은 작가답게 문학에 대한 열렬한 연서를 쓴 것 같아 낭독하며 조금 부끄러웠다.) 일본의 나까가미 노리(中上紀) 작가의 경우 자신의 부친이자 일본의 유명작가인 나까가미 켄지(中上健次)의 딸로서 겪었던 여러가지 어려움과, 그것이 자신의 문학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진솔하게 고백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부친 나까가미 켄지가 자신은 불행하게 자라왔기 때문에 문학을 해야만 했다면, 너(나까가미 노리)의 경우 양친이 모두 생존해 있고 부족함 없이 자랐으니 자유롭게 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는 이야기였다. 예술을 바라보는 이전 세대의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나까가미 노리 씨가 겪었을 억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어서 루 네이 씨의 발표가 내게는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중국에서는 작가가 이와 같은 질문—나에게 있어 문학은 무엇인가,와 같은—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 대신 자신의 작품이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받는다고 했다. 이 부분은 확실히 ‘개인’이 강조되는 일본이나 한국과 구별되는 중국만의 문학적 풍토 같았다. 더불어 일본의 평론가 야노 토시히로(矢野利裕)는 아카데믹화되면서 점점 독자들의 관심을 잃어가는 일본문학의 풍토와,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통해 이러한 경향을 극복한 한국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개인발표 뒤에 이어진 토론 시간에도 흥미로운 주제들이 오갔다. 더이상 희망을 꿈꾸지 않아 오히려 행복할 수 있는 일본 젊은이들과,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미래에 절망하는 한국 젊은이들, 민족주의로 무장해 더욱 ‘강한 중국’을 꿈꾸는 중국 젊은이들의 차이와 특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중국 젊은 층의 민족주의 양상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문학의 기능에 대한 루 네이 작가의 진지한 고민이 청중을 경청하게 했다.

더불어 소수자를 재현하며, 다수에게 소수를 설득해내는 문학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이어졌는데, 나까가미 노리 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혼혈인 아이를 낳아 기르는 등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미암아 더욱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소설을 쓸 때도 소수자의 재현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또한 소수자를 향한 인터넷 악플 같은 세태를 지적하며 배제되고 있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받아쓰는 게 문학의 기능이라고 문학관을 밝혔다. 나 역시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해 퀴어소설집을 내고 난 후 겪었던 여러 일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루 네이 씨의 경우 ‘작가로 태어나는 것은 불행을 자처하는 일일 수 있다’며 수도원에는 날마다 커다랗게 욕을 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침묵과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수도사가 있는데, 작가가 그와 비슷한 운명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었고, 이상하게 그게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뒤이어 세 나라의 작가들 모두가 영상/이미지 서사장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각 나라에 서로의 문학이 얼마나 소개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는데, 일단 일본문학의 경우 예상대로 중국과 한국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중국문학의 경우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많이 번역돼 있다고 했다. 반면에 한국문학의 경우 중국과 일본 모두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나는 모국어를 향유하는 인구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는데 일본의 경우 1억명, 중국의 경우 14억명이 넘는 인구가 있어 작가들이 자국의 시장만으로도 생존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한 와따야 리사 역시 이미 자국에서 밀리언셀러를 몇권이나 배출한 걸출한 작가였다. 더 놀라운 점은 중국 본토에서 와따야 리사의 고정독자가 자국인 일본 못지않게 많다는 루 네이 씨의 발언이었다. 중국 인기작가의 경우는 밀리언셀러를 훌쩍 뛰어넘는 판매고를 올린다고 했다. 나는 한국문학의 시장규모를 말하기가 쑥스러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전세계적으로 독서인구가 줄어들어 문학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 루 네이 씨는 좋은 문학에는 많은 독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나는 역시나 중국작가다운 촌철살인의 명문이군, 생각하며 받아적다가, 곧 중국작가들은 초판을 몇만부씩 찍는다는 그의 말이 생각나버렸고, 한달만 한국의 작가로 살아보고도 그 말이 나오는지 두고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굳이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번 행사는 내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주었다.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내가 속해 있고 몹시도 사랑하는) 한국문학이 단지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달까. 중국과 일본 작가들 대부분이 한국문학을 잘 알지 못하며, 단지 영화와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주로 한국문화를 접해왔다고 입을 모았다. 젊은 작가의 문학작품 중 『82년생 김지영』 정도가 제대로 소개되었으며, 회의 중에 언급된 작가는 한강과 공지영, 김영하, 신경숙 등 극소수의 (유명) 중견작가뿐이었다. 이들보다도 봉준호나 박찬욱, 홍상수나 김기덕의 이름이 훨씬 더 자주 언급되었음을 밝힌다. ‘청년작가회의’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한국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문학작품은 중국과 일본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 내 작품을 읽어볼 수 있느냐는 중국과 일본 작가의 질문에 나는 영문 웹진에 올라온 내 작품의 링크를 보내주거나, 내년이 지나면 일본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을 뿐이었다.(참여작가 중 와따야 리사의 전작은 한국의 거의 모든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더불어 (아무리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독서인구가 탄탄한 일본과 중국의 작가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우리는 행사가 끝난 후 서로의 SNS를 공유했다. 귀국길에 후즈끼 유미 시인이 남긴 트위터가 인상적이었다. “‘진심으로 쓰고 싶은 것’을 위해 펜을 잡을 수 있도록 우리는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는 작가로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일 것이다. ‘2019 한중일 청년작가회의, 인천’을 통해 몇번이나 현실의 벽을 뛰어넘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일본 이외에도 문학이 읽힐 시장은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도 그녀와 똑같은 마음이었기에 힘차게(?)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행사가 치러진 사흘간 문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언어와 장르를 초월해 서로가 하나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나와 다른 이질성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말미암아 한중일 세 나라가 문학을 통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소통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