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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전치형‧홍성욱 『미래는 오지 않는다』, 문학과지성사 2019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학을 향하여

 

 

강연실 姜姸實

드렉셀 대학 방문조교수 yk463@drexel.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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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과학의 달이 가까워오면 열리던 ‘미래 상상 그리기 대회’를 기억한다. 흰 도화지 한장에 미래를 담아내는 고난도의 도전과제에 직면한 어린이들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우주탐사, 유전공학의 힘으로 변한 작물이나 의료기술, (지금은 현실이 된) 화상통화 같은 걸 그리곤 했다. 잘 그린 미래 상상 그림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래 모습을 그리는 데 ‘기술’이 빠져서는 안 될 소재라는 점에는 어린이들도 선생님들도 이견이 없었다.

우리에게 다소 당연한 과학기술 중심의 미래 상상은 역사적으로 보면 꽤나 최근의 현상이다. 1516년 발간된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유토피아』(Utopia)나 1626년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사후 출판된 『새로운 아틀란티스』(New Atlantis)에서 그려지는 이상세계의 핵심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관과 생활 같은 사회적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기술은 변화하는 사회상을 묘사하는 데 핵심이 되었다. 기술이 “역사와 미래에 대한 근본 인식을 건드리는 강력한 힘”(72면)이 된 것이다.

도발적인 제목의 『미래는 오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는 기술 중심의 미래상들에 주목한다. 과학기술학자인 두 저자는 ‘미래’를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예측하고 설파하고 소비하는 ‘담론’으로 바라보고 분석한다. 담론으로서 미래는 유일하지 않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세계관과 이념이 담겨 있으며, 가장 유력한 미래의 위치를 두고 여러개의 미래상들이 서로 경합한다. 미래를 담론으로 분석하는 접근방식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동원되는 수많은 방법론들과 미래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래 비평서’라고 부를 만하다.

이 책은 미래 그 자체보다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 방법, 언어, 구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가오지 않은 시간의 모습이 어떠하든, 지금 누가 미래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미래에 대한 담론이 우리 사회에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것이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적극적인 행위로 연결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IT회사인 가트너(Gartner) 그룹처럼 전문적으로 기술에 대한 예측을 내어놓는 “기대 전문가”(221면)들은 단순한 관찰자나 분석자로 남지 않는다. 기술의 시간을 이해하는 개념을 고안하고 퍼뜨림으로써 기술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즉 미래 예측은 그 자체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범람하는 미래 예측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기술결정주의적이자 기술유토피아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미래 예측 속에서 사회는 기술의 명령을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새롭고 더 나은 기술의 등장은 더 나은 사회로 자연스레 이어진다고 여겨진다. 1980년대 전자와 정보통신 중심의 하이테크 유토피아, 1990년대 인터넷 기술 중심의 사이버 유토피아를 비롯해서 ‘인공지능 유토피아’라고 부를 만한 최근의 4차산업혁명 관련 기술 중심의 미래상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저자들은 기술 중심의 미래 예측이 파편화된 미래상을 제시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경향은 ‘2030년 김○○씨의 하루’ 등과 같이 미래 모습을 묘사하는 데 널리 쓰이는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 사람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는 서술은 종종 기술이 어떻게 이 사람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바꾸어놓을까를 중심으로 짜인다. 그 속에서 집안일이라는 개인, 혹은 일개 가정의 문제는 인공지능 로봇이 해결하지만,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는 사회문제는 자취를 감춘다. 스마트 공기청정기가 개인이 겪는 대기오염 문제는 해결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전지구적인 대기오염이나 기후변화가 얼마나 더 진행될지 그 실마리는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미래를 현재의 여러 문제들과 분리되고 복잡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고립된, 탈정치화된 시공간으로 그려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 중심의 미래상은 총체적인 현실이라기보다는 머리에 장치를 두르고 감상하는 가상현실의 화면”(91면) 같다.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진짜 근본적이고 복잡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미래 예측에만 기술이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방법에서도 기술이 강조되어왔다. 8강 ‘미래 예측과 미래 담론’에 나열된 40가지가 넘는 정성적이고 정량적인 방법들은 미래학이 어떻게 예측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들여왔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들은 “미래 예측은 이론과학이나 실험과학이 될 수 없”(298면)다고 단언한다. 인간 사회는 자연과는 달라서 정확한 예측에 필요한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복잡한 컴퓨터 모델링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예측에 중요한 요소를 선정하거나 가중치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예측을 수행하는 사람의 판단이 개입한다.

여러 예측 실패 사례를 들면서 두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바는 단순히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이 믿을 만 못하다는 게 아니다. 저자들은 미래 예측이 결국 우리가 가진 세계관과 가치가 투영되는 작업임을 거듭 강조한다. 여성의 모습을 한 가사로봇을 그려 넣은 일본 로봇공학 잡지의 표지나 북한의 어느 건축가가 그린 “복고풍 미래”(234면)의 사례는, 각각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전통적 가족·젠더 관념과 북한사회가 처한 고된 상황이 미래상에도 고스란히 반영됨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래를 예측할 때 ‘어떤 가치를 품은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한 이유다.

미래를 담론으로 읽어내려는 접근방식은 오히려 미래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미래학의 접근법과 화법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생소하고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미래학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소개한 몇몇 주력 일간지는 미래 예측이 틀리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흥미를 보이면서도, 정작 이 책의 핵심주장을 포착하지 못했다. 『조선일보』는 시장에서 신기술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술을 시장의 상품으로, 미래 예측을 시장에서의 성패를 예측하는 행위로 한정시킨 것이다.(「침팬지만도 못한 미래학자의 예측, 인간 마음을 놓쳤기 때문」 2019.8.24) 한편 “미래학의 입문서로 제격”이라는 평가를 내어놓은 『중앙일보』는 “4차산업혁명·로봇·인공지능” 같은 기술들을 “미래와 관련된 키워드”로 소개하며 “2050년대쯤에는 완전 일상화해 멋진 신세계가 열릴 수도 있다”고 단언한다. 미래 예측을 “적중하면 대박을, 빗나가면 쪽박”을 가져다주는 것 정도로 묘사한 이 기사는 “우리는 항상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주시하고 현재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는 다소 황당한 결론으로 마무리된다.(「달콤한 미래학,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2019.8.31)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언론사들이 이 책을 오독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앞서 언급한 두 기사는 이 책이 비판하는 미래 담론의 기술결정주의적·기술유토피아적 시각을 그대로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 예측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저자들의 관점 또한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다. 기사가 주의 깊게 작성되지 않았다는 꽤 심각한 문제 외에도, 두 기사는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 형성자로서 언론이 미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잘 드러낸다.

‘미래’를 주제로 한 이 책은 결국 현재를 향한다. 미래 예측이 ‘미래’를 얼마나 잘 맞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그것이 ‘현재’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또 미래 예측은 어떤 기술이 등장할지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어떤 가치를 향해 변화해야 하는지를 담아내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미래 예측은 현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로부터 단절된 시공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업이 아니라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논하는 정치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투성이 현재와 불편한 미래를 포용하면서도 희망을 키우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시민들의 실천을 위한”, 그리고 “현재 삶과 노력에 의미를 더해”(304면)주는 미래 예측이라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학’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