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촛불혁명의 초심으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고, 세계적으로는 더 가속화되는 추세다. 이제 당장의 불편함을 넘어 앞으로 우리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역량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 앞에 놓인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잘 해결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자신감을 북돋울 수 있었다. 지난 4월 총선 결과도 이에 힘을 더했다. 그런데 총선 이후 불과 4개월 남짓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변화의 동력이 뚜렷이 약화되고, 촛불혁명을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부여당이 촛불혁명을 감당하려는 자세와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촛불혁명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에는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 조짐도 나타났다. 그렇다고 비관과 체념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촛불혁명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검토해볼 때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총선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에 가까운 의석수를 확보하는 압승을 거둔 것의 정치적 의미가 결코 작지는 않지만, 이 결과가 우리 사회의 의견분포를 객관적으로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례투표의 지지율에서는 여당 및 관련 비례정당들의 득표율이 40퍼센트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압도적 의석수는 소선거구제가 여당이 과잉대표되는 방향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에 따라 정부여당은 지지층으로부터는 더 빠르고 적극적인 개혁을 요구받으면서도, 그러한 요구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에 있어서는 항상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촛불혁명의 요구에 값하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코로나19가 던진 새로운 과제들을 감당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움이 지금처럼 사회변화의 동력을 약화시킨 결과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기는 어렵다. 어떻든 압도적 의석 보유만큼 변화를 추진하는 데 유리한 정치상황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압도적 의석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국정을 운영해온 데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정부여당은 최근까지 정치적으로 극단적 양자구도를 만들고 그 속에서 많은 정치적 이득을 취해왔다. 지난 총선에서의 위성비례정당 창당도 그같은 사례다. 총선 이후 정국운영에서도 그 관성이 계속 작용했다. 자신의 권한을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그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에 쓰기보다 여전히, 그것도 잘못 겨냥한 과녁과도 같은 양자구도를 활용해서 정치적 동원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총선 민의라고 볼 수 없고 더 근본적으로는 촛불혁명의 계승과 거리가 멀다.
촛불시민의 주요한 명령인 검찰개혁은 올해 초에 관련 입법이 이루어진 데다 총선을 거치면서 국회 내 절차를 통해 실행방안을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들에게는 정부여당이 검찰 내 특정인들을 몰아내는 일에 주력한다는 인상 이상을 주지 못했다. 7월 하순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내놓은 개혁안은 검찰에 대한 권력의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해 검찰개혁의 취지에 대한 의구심만 증가시켰다. 이제 공수처 설치를 포함한 검찰개혁 본연의 의제를 추진할 동력마저 약화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급격한 가격 상승에 소심한, 그리고 임기응변식의 대책만을 남발하는 정부의 모습에 실망감은 이미 컸다. 특히 지역균형발전 의제가 소홀히 다루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그래도 국민들은 이번 정부가 부동산 문제에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기대를 완전히 접지는 않았기에 이번 총선에서도 정부여당이 심기일전할 것을 기대하며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총선 이후 대통령의 고위 참모들 내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반복되고, 그에 대한 처리에서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면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공급 확대의 길을 열어준 것도 근본적 대책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인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만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혼란의 결과가 촛불연합의 약화이고 정부와 여당 지지율의 하락이다. 지지율 하락은 분명히 촛불혁명의 미래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여러 이유로 촛불과 정부여당이 동일시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여당의 문제가 촛불혁명에 대한 폄훼로 이어지거나 우리 스스로 이러한 정조에 휩싸일 일은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사실은 현재 정부여당의 지지율 하락도 촛불혁명의 자장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퇴행적 이슈가 아니라 성평등, 주거권 보장, 소득불평등 해소 등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제에서의 미흡한 대응이 지지율 하락을 촉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제를 제대로 풀어나가기를 여전히 다수가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기후변화와 생태 문제도 더이상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다만 국민들의 눈에는 이 의제들을 누가 더 잘 감당하고 미래지향적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가 불확실해졌다. 확실한 것은 이 의제를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따라 활용하려 할 경우 여당이나 야당이나 모두 그 과제를 제대로 풀 수 없고 국민들의 지속적인 지지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 역시 촛불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서 그런 의지와 능력이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자각하고, 촛불권력이 아니라 ‘그들만의 권력’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사, 정책, 국정운영 등을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촛불혁명이 어떤 정치적 환경에서 시작되었고 왜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신뢰와 지지율을 회복하고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아울러 촛불혁명을 거친 시민들도 그간 제기된 의제들이 표류하지 않고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때로는 쓴소리를, 때로는 지지를 보내며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제 촛불혁명에 대한 충실성이 확인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과연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가를 따져보는 일은 촛불혁명 재가동의 또다른 출발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없었던 문제가 새로 제기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에서부터 사회적 전환, 그리고 경제 패러다임에 이르기까지 이미 중요하다고 생각되었지만 해법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들에 대해서 과거와는 다른 각오와 접근법을 요구함은 분명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이번호 특집 ‘코로나19가 던진 과제들’에 담았다.
황정아의 글은 팬데믹하의 한국 상황을 민주주의 심화와 연결해 논의한다. 소위 K-방역 성공에 대한 국내외 평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문제의 핵심은 통제와 자유의 대립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을 집단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통제’”를 실행할 수 있는 집단적 주체의 형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의 경험에서 그 맹아를 도출하는 가운데 ‘커먼즈’와 ‘우애’ 개념을 중심으로 이 맹아를 발아시킬 새로운 사유를 모색한다.
백영경은 이제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재평가 없이는 코로나19 이후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불가능함을 페미니스트 탈성장론을 통해 역설한다.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는 돌봄의 민주화가 핵심적이지만, 현재의 생산체제하에서 돌봄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돌봄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돌봄의 다양한 측면을 수행하고 있는 세력들의 연대를 통해 돌봄의 민주화를 대전환의 중요한 의제로서 구체화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하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학교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즉 학교가 입시를 위한 무한경쟁의 장인 것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 사회를 결정적으로 지탱하는 영역 중 한곳임에도 그만한 중요성이 부여되지 못했던 학교 생태계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확장, 특히 학생들의 목소리를 잘 새기는 것이 관건임을 일깨운다. 농민과 농업 문제를 천착하는 정은정의 글은 학교급식과 친환경농업, 농촌의 심각한 인력부족과 이주노동자 수용 문제, 기술적 변화와 농민의 관계 등 여러 이슈를 코로나 상황과 연관해 논의한다. 특히 “코로나19 이전에도 없었던 농민과 환경을 위한 농업정책이 코로나19 이후에 갑자기 수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완벽한 착각”이라는 지적은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는 일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화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논란 끝에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계기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한 기본소득을 주제로 삼았다. 이일영의 사회로 김현우, 양재진, 윤홍식이 참여해 재난지원금의 의미, 기본소득의 효과 및 기존 복지체제와의 관계, 자본주의 변화 속에서의 의미, 청년기본소득 등 여러 면모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한다. 기본소득의 주요 쟁점이 무엇이며 이에 대해 어떤 입장들이 충돌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그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해볼 좋은 계기이다.
논단은 다양한 주제로 풍성하다. 이정철은 하노이회담 노딜부터 최근까지의 한반도 정세를 찬찬히 복기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볼턴 회고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들을 활용해 지난 과정에서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한기욱은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드러난 ‘체제적 인종주의’의 의미를 미국문학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더글러스 자서전’과 『미국의 아들』에 대한 실감나는 논의를 통해 노예제를 포함한 인종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와 맞물려 있는 지점들을 예리하게 짚고, 현재의 BLM 항의운동을 새로운 양식의 인종주의에 대한 뜻깊은 대응으로 평가하되,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는 큰 시야의 논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남기정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일관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해왔는지를 살핀다. 그 속에서 양자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한일관계에서 ‘1965년 체제’를 극복하는 것, 구체적으로 한일 간에 이미 진행된 바 있는 역사인식 진전과 평화 확대의 역사를 계승·재개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박여선은 최근 출간된 백낙청의 저서들을 통해 저자가 평생 펼쳐온 사유의 모험을 평한다. 로런스를 ‘개벽사상가’로 규정하는 것이 백낙청의 이론과 실천에서 어떤 의미인지, 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여러 각도로 짚는다. 한편 통찰력 있는 발언으로 꾸준히 사회참여를 이어온 남재희 선생의 기고문은 우리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을 ‘우애’ 개념으로 풀어가는바, 간결함 안에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현장란에는 익숙한 주제 속에서도 늘 새롭고 날카로운 문제를 끌어올리는 리베카 솔닛의 글을 실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이를 더 악화시키고 또 차별적 희생을 강요했는지를 지적한다.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페미니즘은 물론이고 보편적 인권과 절대적 평등으로 응답해야 함이 특유의 예리한 문체로 이야기된다.
창작란에서는 먼저 여러 세대와 다양한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12인 시인의 신작을 담았다. 각자의 개성이 오롯한 시편들이 새 계절의 도래를 알리는 듯하다. 소설은 공선옥 임현 최민경 김유나의 단편을 소개한다. 나날이 각박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현실 앞에 무력한 듯 보이면서도 끝내 만만치 않은 생명력을 암시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담겼다.
장구한 작업 끝에 역작 『철도원 삼대』를 내놓은 황석영 작가를 김형수가 작가조명을 통해 만났다. 황석영 소설세계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지닌 필자의 종횡무진한 해석이 경륜과 새로움의 감각을 겸비한 황석영의 발언과 어우러져 우리 문학사는 물론이고 현대사 속에서 해당 작품이 갖는 커다란 의의를 실감케 한다. 김영희의 문학평론은 백무산의 시를 중심에 두고 “‘자본의 시간에 포획된’ 현실”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살피고, 또한 다른 미래를 말하려 애쓴 흔적이 작품에 어떤 ‘관측’과 ‘생명의 감수성’을 남겨놓았는지 추적한다. 더불어 몇몇 젊은 시인의 시들에서 새로운 노동시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문학초점에서는 평론가 오연경 전기화, 시인 안현미가 여섯권의 소설집과 시집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계절에 주목할 신작이 각자의 시각에서 흥미롭게 논의된다.
정지창의 산문은 얼마 전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고(故)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다. 고인과 교분이 두터웠던 필자가 고인의 삶을 차분하면서도 생생하게 소개하는데, 『녹색평론』 발행을 비롯한 여러 헌신적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된 고인의 일생과 글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알 수 있는 귀한 이야기다. 촌평은 창비가 세계와 만나는 또다른 창이다. 근현대사와 남북관계, 인권, 과학 등 다양한 주제의 서평 열편을 실었다.
제38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주민현 시집과 김유담 소설집이 선정되었다. 창비신인문학상을 통해서는 유혜빈(시), 김유나(소설)를 만나게 되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기대를 함께 전한다. 만해문학상 최종심 대상작 소개도 이어진다.
독자들께서 가을호를 받아 들 즈음에는 그 어느 때보다 길었던 장마도 끝나 있을 것이다. 이미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이상기후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번 가을 날씨가 독자들께 위로가 되고 새로운 힘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그리고 그런 위로와 힘을 하늘에 바라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음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노력해갈 것도 다짐해본다.
이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