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미국 분열 이후의 세계, 어떻게 대응할까
미국(美國), 미국(迷國), 미국(未國)
약속, 절망과 위선의 연대기
이혜정 李惠正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저서 『냉전 이후 미국 패권』 등이 있음.
heajeonglee@gmail.com
1. 아메리카합중국의 진실
2021년 1월 6일 미국 의사당에 작년 11월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트럼프(D. Trump)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난입했다. 진압 과정에서 5명이 사망했다. 대통령 당선인 바이든( J. Biden)은 ‘이건 우리가 아니다’라며 난입 사태를 규탄했다. 그럼 그 폭도들은 대체 누구인가? 외계인이란 말인가? 『뉴욕타임즈』는 그런 위선을 멈추라며 ‘우리는 항상 그랬다’라는 영상 기사를 웹사이트에 올렸다.1 영상은 폭도들이 점거한 의사당 중앙 홀에 걸린 그림들을 비추며 폭력으로 빼앗은 땅에 도둑질한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백인의 나라인 미국의 역사에 면면한 선거 폭력과 내전(남북전쟁), 인종차별을 댓가로 해온 연방의 통합을 자성했다.
의사당 중앙 홀에 걸린 그림 중 하나는 대포와 십자가를 배경으로 백마를 탄 백인이 거의 전라의 아메리칸 선주민 여인들과 전사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1541년 데쏘또의 미시시피 발견」(Discovery of the Mississippi by De Soto)이다. 이 그림은 미 의회의 요청으로 파월(W. Powell)이라는 작가가 멕시코와의 전쟁(1846~48) 이후 제작하여 1855년부터 의사당에 전시되어온 작품이다. 스페인 ‘탐험가’의 시선에서 이 작품이 재현하고 있는 인종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은 1855년이라는 제작시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
당시 선주민들과 맺은 조약들을 위반한 것은 ‘문명국’ 미국이었다.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행정부는 1830년 ‘인디언 제거법’( Indian Removal Act)에 근거하여 5개 ‘문명화’된 ‘인디언’ 부족들을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이주시켰다. 특히 체로키족은 미국식 헌법을 갖추고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연방정부와의 조약에 근거한 영토의 권리를 확인받기도 했지만, 결국은 군대에 의해 강제로 이주당했다. 1838년 그 ‘눈물의 길’( Trail of Tears)에서 많은 체로키족이 희생된 것은 그들만의 트라우마가 아니다. 또끄빌(A. Tocqueville)은 잭슨 시대 미국의 민주주의를 칭송했으나, 백인 남성 정착민 민주주의의 이면은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선주민에 대한 집단학살(genocide)이다.2
미국정부는 선주민을 몰아낸 땅과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에 백인 정착민을 ‘식민’했다. 변방의 영토(territory)가 주(state)로 승격되는 조건은 백인의 지배였다. 1848년에 다 같이 미국 영토가 되었지만, 캘리포니아는 금광 발견으로 백인이 몰려들면서 1850년에 주로 승격된 반면 선주민과 멕시코 출신 인구 비중이 높았던 뉴멕시코와 애리조나는 1912년에야 주가 되었다. 영토 획득은 연방 확장의 기회였지만 동시에 분열의 씨앗이었다. 문제는 건국될 때부터 미국 헌정질서에 각인된 노예제였다. 연방의회는 주별로 동등한 대표권을 갖는 상원과, ‘백인의 5분의 3’으로 계산되는 흑인 노예를 포함하는 인구비례제 하원으로 구성되었다. 영토의 확대에 따라 노예제의 범위를 확정하는 정치적 곡예는 더욱 위태로워졌고, 멕시코와의 전쟁은 내전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링컨(A. Lincoln)은 1861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개별 주는 연방 이탈의 권한이 없고 연방의 단합을 위해 남부 노예제에 대한 개입을 절대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내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전 이후 미국 연방의 통합은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뒤진 공화당 후보 헤이스 R. B. Hayes를 대통령으로 밀어주는 댓가로 남부에서 북군을 철수하고 민주당의 인종차별을 허용한) 선거인단의 ‘1877년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정치적 담합의 선구는 링컨이 암살당한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이었다. 1867년 존슨에 대한 연방하원의 탄핵은 남부에서 인종차별을 철폐하려는 공화당 ‘급진파’와 이를 막아서던 백인 우월주의자 존슨 간 대결의 산물이었다. 다음해 상원의 탄핵심판에서 존슨은 한표 차이로 대통령직을 지켰다.
트럼프는 의사당 난입 사건으로 인하여 존슨에게서 시작된 탄핵의 ‘흑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2019년 12월에 우끄라이나 스캔들—바이든 아들의 비리 조사를 압박하기 위해서 트럼프가 우끄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중단했다는—과 관련한 권력남용과 의회 조사 방해 혐의로 하원으로부터 탄핵당한 데 이어, 내란을 선동한 혐의로 2021년 1월 13일에 두번째로 탄핵을 당한 것이다. 트럼프는 또 존슨이 1869년 후임 그랜트(U. Grant) 대통령의 취임식에 불참한 이래 152년 만에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불참했다.
1월 19일 고별연설에서 트럼프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던 선거공약에 따라 자신이 이룬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한 성과’들을 나열하고 이러한 운동에 동참해준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한편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미국인들이 미국의 위대함에 대한 신념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2020년 대선 기간 트럼프는 미국의 기원을 1619년 최초의 노예수입으로 규정하는 ‘급진좌파’의 미국 비판에 맞서 1776년 독립선언에서부터 이어져온 미국의 위대함을 이해시키고 애국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1776 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위원회의 보고서는 그의 임기 마지막 날인 19일에 발표되었다.
바이든 취임식을 앞둔 19일 밤 미국 의사당 앞 내셔널 몰에는 아메리카합중국(USA)을 구성하는 50개 주와 6개의 영토를 상징하는 56개의 불빛 기둥이 밝혀졌다. 연방의회에서 표결권을 갖지 못한 6개 단위는 컬럼비아특별구(워싱턴 D.C.), 푸에르토리코, 사모아, 괌, 북마리아나 제도, 미국령 버진 제도이다. 이 중 괌, 필리핀과 함께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얻은 영토 푸에르토리코는 애초부터 백인 정착민 식민에 의한 주 승격을 시도하지 않은 지역으로, 대륙 본국과의 무역에 관세를 매기기도 한 특수한 ‘도서지역 영토’ 혹은 내부 식민지였다.3 여러차례의 주 편입 주민투표와 독립운동에도 주로 승격되지도 독립이 부여되지도 않은 채 여전히 미국 영토로 남아 있다. 1954년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운동가들이 미 의사당 하원회의장 방청석에서 총격을 가하여 5명의 하원의원이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4 최근 의사당 난입 사건의 선례로 영국과의 1812년 전쟁 기간 중 워싱턴이 점령당한 기억이 소환되는 것과는 달리 이 역사적 사실은 철저히 망각되고 있다.
2. 미국(迷國)의 트럼프
트럼프는 미국체제의 산물이다. 그는 2016년 대선의 일반유권자 투표에서 클린턴( H. Clinton)에게 290만표 가까이 뒤졌다. 선거인단이라는 미국적 제도가 없었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통령 트럼프는 잭슨의 민중주의적 수사로 시작해서 존슨의 정치적 분열과 탄핵으로 끝났다. 트럼프는 대외적으로 경제적 민족주의를 실행했지만, 잭슨과 달리 대내적으로 경제적 민중주의를 실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전쟁영웅 잭슨과 달리 트럼프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것을 자신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꼽았다. 잭슨과 존슨 모두 인종주의자였지만, 대통령으로서 잭슨은 연임에 성공한 반면 탄핵을 당한 존슨은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존슨의 정치적 실패는 내전 이후 노예제와 연방제, 더 넓게 보자면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인종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된 것이었다.
이 본연적 과제는 2008년 대침체로 다시 미국에 숙제로 던져졌다. 그사이 미국이 지구적 패권국가가 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19세기 미국 내전의 승패를 가른 중요한 요인은 북부연방이 남부연합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차단한 것이었는데, 20세기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특히 냉전의 종언 이후 미국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미국체제를 수출하고 수많은 내전에 개입해오고 있었다. 그 극단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함께 9·11테러 이후 군사적 일방주의를 추진한 공화당 부시(G. W. Bush) 행정부였고, 결과는 대침체와 이라크전쟁의 수렁이 증명하는 미국 패권의 위기였다.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에 대통령과 상하 양원을 다 내주는 역사적 패배를 당했다.
오바마(B. Obama) 행정부는 군사적 개입을 축소하고 다자주의를 복원하여 군사적 일방주의를 교정하는 한편 경제위기의 극복을 넘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중산층을 복원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병폐를 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오바마의 개혁은 월가와 패권 엘리트, 월가 점령 시위와 티파티의 좌우 민중주의, 그리고 2010년 중간선거 대패 이후 공화당의 발목잡기에 좌초했다. 제한적인 건강보험 개혁에는 간신히 성공했지만 중산층 복원은 실패했고, 흑인 대통령의 복지 확충에 대한 인종주의적 반발로 정치적 양극화는 오히려 악화되었으며, 시리아 내전 등 중동의 혼란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및 중국의 부상으로 군사적 패권의 축소 시도도 벽에 부딪혔다.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과 몰락은 2008년 대침체 이후 미국체제의 정치적·경제적·사회문화적 병리 현상에 따른 것이다. 부동산 재벌이자 리얼리티 쇼 진행자로 유명세를 누리던 트럼프가 정치인으로 부상한 계기는, 2011년 오바마가 미국에서 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대통령 출마 자격이 없었고 따라서 불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버서(Birther) 운동에 동참하면서부터이다. 이러한 인종적 반발은 백인 인구 감소 추세,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따른 이민 증가, 전통적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던 백인 노동자의 몰락 등과 맞물린 것이었다.
2012년 대선운동 과정에서 공화당 후보 밋 롬니(Mitt Romney)는 미국인 47퍼센트가 소득세를 내지 않고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집권여당인 민주당 후보 오바마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호된 비판에 시달렸다. 2016년 9월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설화는 더욱 극적이다. 비공개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클린턴은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둘로 나누었다. 절반은 인종차별, 성차별, 외국인과 이슬람 혐오 등으로 똘똘 뭉친 ‘한심한 패배자 집단’(the deplorable)으로, 클린턴은 트럼프가 이들 극단주의자를 주류화하고 더욱 극단으로 몰아간다고 비판했다. 나머지 절반은 극단주의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로, 이들은 정부와 기존 정당들 모두 자신의 현실적 문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들은 출구가 없는 현실에 갇혀 있다고 절망하며, 트럼프가 말하는 바를 모두 믿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클린턴은 진단했다. ‘한심한 패배자 집단’에 대한 논평이 강조되면서 클린턴은 제도권의 엘리트 적폐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절망에 대한 지적은 정확했다.5
‘정부에 의존하는’ 미국인과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단주의자’는 물론 보통 사람들의 절망은 자살과 마약, 알코올중독의 ‘절망사’로, 저학력 백인의 기대수명이 줄어든 데서 비극적으로 증명된다.6 이들의 절망은 냉전 종언 이후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금과옥조로 받들어온 양당 모두의 문제였다. 2004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주류 후보 존 케리( John Kerry)에게 맞서 하워드 딘(Howard Dean)이 돌풍을 일으켰다. 민주당 주류 중의 주류라 할 수 있는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경선에서 정치신인 오바마에게 패배했고 2016년 경선에서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공화당 주류는 부시 행정부의 실패 이후 매케인( J. McCain)과 롬니라는 점잖은 보수 후보를 내세웠지만 오바마에게 연이어 패배하고 티파티의 도전에 직면하여 표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경제적 민족주의와 일방주의의 ‘미국 우선주의’, 반이민-반난민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인종적·문화적 민족주의라 할 ‘백인 우선주의’, 그리고 제도권 전체에 도전하는 독단적·권위적 민중주의 리더십의 ‘트럼프 우선주의’를 앞세워 무기력한 공화당 주류는 물론 기존 제도권 정치 전반을 장악해나갔다. 2016년 대선운동 과정에서 클린턴이 트럼프의 개인적 자질을 문제 삼을수록 트럼프는 클린턴이 대표하는 기존 정치권의 구조적 적폐를 공격했다. 결과는 중서부의 민주당 아성을 무너뜨린 트럼프의 승리였다.7
대통령 트럼프의 임기는 1차 탄핵—정확히는 2019년 12월 하원의 탄핵과 2020년 2월 상원의 탄핵 기각—을 기점으로 둘로 나눌 수 있다. 첫 3년 동안 트럼프는 공약대로 미국-백인-트럼프 우선주의를 시행하여 공화당을 접수하고 대통령직을 사유화하며 제도권을 제압했다. 후보자 트럼프와 달리 대통령 트럼프는 기존의 민주주의와 패권의 문법을 존중할 것이라는 기대, 제도권이 트럼프를 길들이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모두 깨졌다. 그 결정적 계기는 대외정책에서는 2018년 말 국방장관 매티스( J. Mattis)의 사임이고, 국내정치에서는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해나가면서 2020년 2월 상원의 탄핵심판에서 단 한명, 롬니만이 탄핵에 찬성할 정도로 공화당을 사유화한 것이다. 트럼프의 승리는 기존 제도권에 대한 지지자들의 절망에 근거한 것이고, 이는 민주당 지지자들과 제도권 전체의 절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절망의 결과는 극심한 적대적 양극화와 미국 민주주의의 쇠락이었다. 탄핵의 전례들은 이를 증명한다. 1970년대 공화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선거본부 침입) 사건으로 하원 법사위원회가 권력남용, 사법방해, 의회모독 혐의로 탄핵을 권고한 이후 상원에서 탄핵이 가결될 가능성을 알고는 자진사퇴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의 선거제도와 대통령제도에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적어도 의회는 충실히 탄핵절차를 진행했고 닉슨도 최종적으로는 자진사퇴로 의회의 판단을 존중했다. 1990년대 백악관 인턴과의 섹스에 대한 위증과 사법방해 혐의로 결의된 민주당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상원에서 기각되었는데, 그 절차는 양당의 합의로 진행되었고 클린턴은 이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반면 트럼프의 1차 탄핵은 그 혐의가 클린턴 사례보다 훨씬 엄중한 것이었음에도 탄핵절차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이 정파적 공방만 난무했다.
트럼프는 사과는커녕 상원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행한 2020년 2월 연두교서 연설에서 ‘위대한 미국’의 건설을 상찬했는데, 이는 11월 대선에서의 손쉬운 승리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증시의 활황과 50여년 만의 최저 실업률을 배경으로 소수인종의 실제 경제적 삶을 증진시킨 역사적 과업을 이루었다는 트럼프의 자화자찬은 과장이 아니었고, 중도와 진보가 대립하며 여러 후보가 난립한 민주당 경선은 혼란스러웠다. 공화당의 사유화를 확인한 트럼프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 후보는 급진사회주의로, 중도 후보는 적폐로 공격하면 될 일이었다.
제도권의 난감한 우려는 1월 『뉴욕타임즈』가 제도권 내의 단수 후보를 지지하던 전통을 깨고 민주당 대선후보 중 중도의 클로버샤(A. Klobuchar)와 진보의 워런(E. Warren)을 지지한 데서 잘 드러난다. 제도권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한데, 쌘더스는 너무 급진적이고 바이든은 개혁적 아이디어가 부족한데다 나이도 많기 때문에 두 여성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기존 체제의 ‘조용한 개혁’을 모색하라는 주문이었다.8 그러나 2월 말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흑인 민권운동가 출신으로 이 지역 하원의원이자 민주당 지도부(원내총무)인 클라이번( J. Clyburn)이 흑인 표를 바이든에게 몰아주고, 이후 3월 초 슈퍼 화요일 경선을 계기로 부티지지(P. Buttigieg), 클로버샤 등 중도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바이든을 후보로 옹립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조직과 자금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진보진영의 지지도 담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2월의 연두교서는 트럼프의 정치적 운명이 뒤바뀌는 전환점이었다. 3월 이후 미국 대선 과정은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서부터 국제질서까지 기존 일정·과정·시스템이 중단·단절·붕괴되는 ‘대혼란’(Great Disruption)에 빠져들었다.9 개인의 면역력을 시험하듯 코로나19는 트럼프의 리더십과 미국체제의 능력을 시험했다. 트럼프는 1월 코로나19의 위험성에 대한 보고를 받았지만 중국 여행금지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3월에서야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의회는 3월 말 긴급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보장 카드였던 경제는 추락했고, 살균제로 코로나19를 치유할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의 처참한 방역실패는 ‘트럼프야말로 미국의 기저질환’이라는 새로운 절망을 낳았다. 구조적으로 보면 연방제와 인종주의, 경제적 불평등,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집권 이래 정부가 문제라며 공공의료와 복지를 축소해온 신자유주의 등 미국체제 자체가 문제로, ‘코로나19가 드러낸 미국의 기저질환은 미국 예외주의’라는 한탄도 터져 나왔다.10 주 정부들은 ‘각자도생’으로 진단키트 등을 마련해야 했고, 4월 초부터 신속한 경제 재개를 원한 트럼프는 방역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고 봉쇄를 단행한 민주당 주지사들을 비판하며 지지자들에게 이들 지역을 ‘해방’하라고 선동했다. 무장 시위대가 휘트머(G. Whitmer) 민주당 주지사의 봉쇄 조치 연장에 항의하며 미시간주 의사당을 점거했다. 트럼프와 미국체제의 실패가 착종된 것이다.
그리고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깔려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플로이드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흑인은 ‘투 스트라이크’를 안고 태어나기 때문에 3배는 열심히 노력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휴스턴 도심 흑인 빈민가에서 자라나며 프로 미식축구 선수를 꿈꾸었던 플로이드는 계급과 교육, 거주지 등과 맞물린 인종주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약잡범으로 시작해 강도범으로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그는 새로운 삶을 찾아 미니애폴리스로 이주했지만 코로나19로 실직한 뒤 담뱃값을 위조지폐로 지불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생을 마감했다.11 비디오에 고스란히 담긴 그의 생애 마지막 8분 46초는 미국의 체제적 인종주의를 비극적으로 고발한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BLM)라는 시위가 미국 전역을 뒤덮었다. 분노와 절망은 비디오에 기록되지 않는 흑인들의 억울한 죽음, 기록되었어도 처벌받지 않는 백인 경찰들, 길바닥에 BLM 구호는 써놓으면서도 흑인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흑인 명망가 정치인들,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을 각오 없이 동정만 전하는 주류 백인들, 더 나아가 플로이드의 생애가 보여주듯 흑인들을 교육과 치안이 열악한 빈민가에 격리해놓고는 잡범들부터 대거 교도소에 가두고 허울 좋은 인종무관(color-blind) 원칙을 내세워 범죄와 빈곤 등에 따라 투표권과 기회를 제한하여 실질적으로 노예제를 재생산해온 인종주의와 미국체제 자체로 향했다. 남부연합군 지도자들의 동상을 파괴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되어온 경찰의 자체 개혁 약속을 믿을 수 없으니 말 그대로 경찰을 없애라는 급진적 주장까지 대두된 것은 이러한 절망의 소산이었다. 몇몇 시위는 폭력적이었고 백인 자경단의 총격도 있었다. 트럼프는 BLM ‘해방구’에 연방 병력을 투입했다.
2019년에 시작한 『뉴욕타임즈』의 노예제 국가 미국의 건국 400주년을 환기하는 ‘1619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다시 고조되었다. 코로나19와 경제위기, 인종 문제의 삼중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뉴욕타임즈』는 ‘건국의 이상적 약속들을 여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는 나라’로 미국(未國)을 정의하고, 미국체제의 복합적 불평등을 교정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건설할 것을 촉구했다. 연초의 ‘조용한 개혁’보다 강화된 ‘근본적인 체제 개혁’의 주문이었다.12
2020년 미국 대선은 트럼프에 대한 신임투표이자, 미국체제에 대한 상이한 이해를 바탕으로 트럼프와 반(反)트럼프 진영이 서로 상대를 미국체제의 실존적 위협으로 비판하는 문화전쟁으로 진화했다. 민주당의 중도와 진보는 물론 무당파와 공화당 일부 세력까지 연대하는 광범위한 반트럼프 연합이 결성되었고, 바이든 캠프는 쌘더스와 공동으로 기후변화 등을 포함하는 진보적인 정강정책을 마련했지만, 구체적인 정책 논의가 아닌 트럼프의 코로나19 방역 실패와 백인민족주의 옹호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트럼프의 재선을 막아야만 미국의 영혼, 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성과가 날아가버리고 여론조사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트럼프는 선거방해와 미국 예외주의로 맞섰다. 전자는 제도권의 부정선거 가능성과 그에 대한 불복 시사 및 흑인 유권자 등의 동원을 저지하기 위한 우편투표 업무방해를 포함했다. 후자는 ‘아름다운 미국’ 안팎의 적, 중국과 ‘급진사회주의’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트럼프는 집권 이후 시 진핑(習近平)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인권 문제에는 눈감은 채 관세부과를 통한 무역협정 타결에 치중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식 거래에 전념해오다가, 코로나19로 선거 국면이 어려워지자 ‘우한(武漢) 바이러스’를 퍼트린 중국에 그 책임을 돌리고 WHO(세계보건기구)가 중국에 동조한다며 탈퇴를 선언하면서 중국체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변신’을 배경으로 폼페이오(M. Pompeo) 국무장관 주도하에 트럼프 행정부는 기술 절취, 군사적 위협, 홍콩과 신장(新疆) 문제 등을 이유로 중국체제에 대한 ‘신냉전’을 선포했다.13
트럼프 자신은 7월 러시모어 국립공원에서의 연설과 독립기념일 연설을 계기로 BLM 시위를 법과 질서를 파괴하고 미국체제의 위대함을 부정하는 비애국적 행위로 치부하며 바이든 진영을 급진사회주의로 비판하는 문화전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공화당은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와 바이든 사회주의 비판에 전면적으로 편승했고 8월 전당대회에서는 2016년의 정강정책을 따르겠다며 아예 새로운 정강정책을 채택하지도 않았다. 9월 트럼프는 백인의 ‘특권’을 비판하고 미국을 근본적으로 부정의한 국가로 ‘매도’한다는 이유로 연방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인종 다양성 교육을 금지하고 애국심 고취를 위해 ‘아름다운 미국’을 계몽하고 수호하는 ‘1776 위원회’의 구성을 예고했다.
트럼프의 막말로 1차 대선후보 토론회는 엉망이 되었고, 2차 토론회는 그의 발언 기회를 제약하는 새로운 규정으로 열려야만 했다. 트럼프는 9월 말 1차 토론회에서 인종 문제 토론 중 백인 극우조직에 ‘한발 물러서 대기할 것’을 명령했다. 10월 초에는 휘트머 주지사 납치모의 혐의로 백인 극우조직원들이 체포되었다. 공화당이 트럼프에게 포획되어 정강정책 채택을 포기할 정도로 ‘사멸’하면서 정당정치 차원의 정책대결은 불가능해지고 폭력이 전면에 등장하는 수준으로 미국 민주주의는 추락해갔다.
2020년 미국 대선은 양측이 지지자들을 최대한 동원하고 결집하여 실제적으로 (여성과 흑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은 1900년의 73.7%를 제외하면) 역대 최고의 투표율(66.7%)을 기록했다. 코로나19-경제-인종의 삼중위기와 선거 막판 『뉴욕타임즈』의 트럼프 소득세 ‘절세’ 폭로, 트럼프의 코로나19 확진, 오바마가 지명한 대법관 후보에 대한 인준절차는 10개월 남은 대선을 이유로 거부했던 공화당이 대선 2개월을 앞두고 신임 대법관 인준을 신속 처리한 이중적·모순적 행태 등은 모두 미국이 ‘정상적인’ 민주국가였다면 선거의 결정적 변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념은 물론 ‘현실’까지도 공유하지 않는 극단적인 양극화를 배경으로 3월 경기부양책이 (10월 이후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 전까지는) 경제위기를 완화하고, 법과 질서, 미국 예외주의를 둘러싼 트럼프의 문화전쟁이 일정하게 작동하면서 민주당과 제도권이 기대했던 ‘본질적인 체제 개혁’을 가능케 하는 민주당의 압승은 없었다.
대선에서 바이든은 전국 일반유권자 득표로 보면 4.5%, 700만표 차이로 승리했는데, 지역적으로 보면 중서부와 남부의 경합주들에서 승부가 갈렸다. 다만 그 차이는 미시간 2.8%, 펜실베이니아 1.2%, 위스콘신 0.6%, 애리조나 0.3%, 조지아 0.2% 등으로 미세했다. 연방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했지만 수적 우위는 줄어들었고, 상원에서는 조지아주 재선거에서 승리하며 50 대 50으로 부통령을 포함해 간신히 다수당이 되었다. 주지사와 의회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기존의 우위를 더욱 확대했다. 이러한 결과가 확인해주는 것은 거주지역과 교육(density-diploma)을 핵심축으로 정파적·인종적으로 쪼개지고(Divided States of America) 혼미한 미국(迷國)이었다.14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부터 예고하고 준비해온 대로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했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매카시(K. McCarthy)가 트럼프의 대선 불복을 지지했고, 상원 원내대표 매코널(M. McConnel)은 12월 선거인단 표결 이후에야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했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은 폭도들에게 점거당했다. 트럼프가 그동안 주류화하고 선동한 극단주의자들과 보통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공화당 상하 양원 지도부는 뒤늦게 트럼프의 책임을 물었지만 트럼프를 지지하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대다수 공화당 하원의원들 역시 난입 사건 직후에도 대선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고, 13일의 하원 탄핵에서 트럼프를 ‘배신’한 의원은 열명뿐이었다. 20일 바이든 취임 이후 하원의 탄핵 결의서가 상원에 전달되었고 상원은 탄핵심판 진행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다. 이에 찬성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다섯명뿐이었다. 매코널도 반대표를 던졌다. 매카시는 플로리다로 트럼프를 찾아가 2022년 하원을 되찾아올 것을 다짐했다.
3. 바이든의 미로
바이든의 취임식은 코로나19로 40만명의 미국인이 사망하고 계엄상황처럼 군대가 주둔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전임 대통령 트럼프는 취임식에 불참했다. 의사당 난입 사태의 비극을 딛고 미국이 ‘하나’(“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가 되어 200년간 이어온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 취임식에 모였다는 바이든의 언급은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체제의 수선과 복원, 치유와 재건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수백만 미국인이 실직했고, 400년에 걸친 인종적 정의에 대한 절규를 더이상 무시할 수 없으며, 기후변화는 인류가 직면한 생존의 위기라는 절규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이루기 어려운 과제가 단합이며 지금 미국에서 단합을 외치는 것이 ‘환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미국이 절실히 단합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링컨이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포고령에 서명하면서 노예해방을 위해 영혼을 바치겠다고 한 것은 바이든의 역사적 전범으로는 부적절하다. 링컨은 미국 전역이 아니라 남부 반란주들의 노예를 해방했고 이를 실행할 권한을 북군에 부여했다. 내전은 지속되었고 링컨은 암살당했다. 1863년 노예해방령으로 시작된 미국의 재건 시대는 ‘1877년 타협’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의 역사는 건국의 원칙인 평등이라는 이상과, 인종주의·배외주의 등으로 점철된 “추악한 현실” 사이의 “영원한 투쟁”이라고 바이든은 인정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미국의 ‘위선’을 고백한 대통령 취임사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내전과 대공황, 세계대전과 9·11테러의 역사적 격변에서 비록 “투쟁과 희생, 그리고 역진”이 있었지만, 항상 “선한 미국”(our ‘ better angels’)이 승리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최선과 최악은 분리되지 않는다. 노예들을 통해 면화를 생산해 수출한 남부는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현재 중국이 신장에서 집단학살과 강제노역의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면, 그 역사적 선구는 미국이다.) 내전 이후 미국의 단합은 남부에서 민주당의 인종차별을 허용하는 정치적 담합으로 가능했고, 이는 뉴딜연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공황은 2차대전의 특수를 통해서 극복되었으며, 로즈벨트(F. Roosevelt) 본인이 ‘뉴딜박사는 이제 전쟁박사가 되었다’라는 구호를 통해서 자인한 것처럼 전쟁의 논리는 노조의 활동을 제약하고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보장하는 등 개혁의 걸림돌이었다. 냉전의 도래는 급진적 사회(주의)운동을 절멸시켰고, 대공황과 2차대전을 거치며 형성된 미국의 복지국가는 백인 남성 위주였다.15 1960년대 남부의 흑인에게 투표권과 복지가 제공되면서 시작된 백인의 반발은 닉슨과 레이건, 깅그리치(N. Gingrich), 티파티 운동과 트럼프를 거치면서 남부와 내륙에서 민주당을 ‘추방’하고 현재의 백인 민족주의 정당인 공화당을 만들어냈다.
9·11테러 이후 이라크전쟁이 증명한 미국의 오만과 실패를 반성하는 ‘아름다운 미국’은 더더욱 없었다. 미국의 전지구적 군사 개입은 지속되고 있고, 오바마가 폐쇄하고자 했던 관타나모 기지는 아직도 국제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바이든은 ‘미국 리더십의 복원’을 대외정책 기조로 내세웠으나 쌘더스와 공동으로 정강정책을 구상하면서는 대외정책을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취임사에서는 인종주의 등의 ‘추악한 현실’을 인정한 것과 대조적으로 대외정책에서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반성은 전혀 내놓지 않은 채 오바마 시절의 구호인 ‘힘의 과시가 아니라 전범을 통한 리더십’의 복원을 다짐했다.
미국의 지구적 팽창이 자본의 이익과 군부의 논리에 복무하며 미국 민중의 삶과 민주주의를 파괴해왔다고 보는 진보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든이 불러들인 국무장관 블링컨(A. Blinken) 등 전통적인 패권 엘리트들은 재무장관 옐런( J. Yellen)을 위시한 ‘훌륭한’(the good) 경제팀에 비하면 ‘최악’(the ugly)은 아니지만 ‘나쁜’(the bad) 인선이다.16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해온 ‘필수국가’라는 패권의 논리는 가까이는 21세기 대테러전쟁에서부터 20세기 베트남전쟁에서의 국제법 위반과 국제체제의 불안정 초래, 멀리는 19세기 ‘눈물의 길’과 ‘인디언전쟁’에서의 집단학살을 은폐한다. 진보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든의 리더십 복원 의지는 대내외적인 변화로 인해 불가능해진 미국의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망상’이며 절대로 추진해서는 안 될 비현실적이고 파멸적인 전략이다.17
바이든이 다짐하는 미국의 재건은 가능할 것인가? 역사적 선례를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건국 이래 미국의 원죄라 할 인종주의와 선주민에 대한 집단학살로부터 시작된 제국-패권의 오만과 실패,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를 동시에 극복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기후변화까지 포함해서 바이든의 과제들은 전무후무하게 엄중한데, 그의 정치적 기반은 지극히 열악하다. 오바마는 2008년 선거에서 하원은 물론 상원의 절대다수(60석)를 확보하고도 개혁에 실패했다.
2020년 대선은 문화전쟁을 끝내지 못했고 정책적 위임도 없었다. 2021년 2월 상원은 57 대 43으로 트럼프에 대한 2차 탄핵을 기각했다. 공화당은 앞으로 상당 기간 트럼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진로를 찾아 헤맬 것이다. 한편 민주당 내 중도와 진보의 정책적 노선 차이는 분명하다. 진보는 오바마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고 압박하지만, 바이든이 진보적으로 선회할수록 초당파적 합의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당장 공화당은 바이든의 취임사와 1776 위원회 폐지, 인종 형평성 제고를 위한 행정명령 등에 대해 문화전쟁의 공세를 펼치면서 단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역사적 소명은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적으로 이견을 제시할 권리”로서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다. 의사당 난입이 증명하는 국내 테러리즘의 위협과 백인 민족주의 음모론을 지지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의원으로서 의회에 진입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조차 결코 쉽지 않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과 분열되고 혼미한 미국(迷國), 그리고 건국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미국(未國)이 서로 부딪히며 연출하는 약속과 절망, 위선의 미로는 바이든 시기에 더욱 깊고 아득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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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p Pretending ‘This Is Not Who We Are’,” The New York Times 2021.1.8.↩
- Michael Mann, The Dark Side of Democracy: Explaining Ethnic Cleans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83~98면.↩
- Bartholomew H. Sparrow, The Insular Cases and the Emergence of American Empire,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6.↩
- https://history.house.gov/Exhibitions-and-Publications/1954-Shooting/Essays/Timeline/.↩
- Domenico Montanaro, “Hillary Clinton’s ‘Basket of Deplorables,’ In Full Context of This Ugly Campaign,” NPR 2016.9.10.↩
- Anne Case and Angus Deaton, Deaths of Despair and the Future of Capit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0.↩
- 졸고 「트럼프 당선, 단순히 한미동맹의 문제가 아니다」, 창비주간논평 2016.12.21.↩
- The Editorial Board, “Amy Klobuchar and Elizabeth Warren: The Democrats’ Best Choices for President,” The New York Times 2020.1.19.↩
- 졸고 「코로나19가 불러온 ‘대혼란’의 시대」, 프레시안 2020.6.22.↩
- Dan Zak, “American Exceptionalism Was Our Preexisting Condition,” The Washington Post 2020.7.23.↩
- Toluse Olorunnipa and Griff Witte, “Born with Two Strikes: How Systemic Racism Shaped Floyd’s Life and Hobbled His Ambition,” The Washington Post 2020.10.8.↩
- The Editorial Board, “America Needs Some Repairs. Here’s Where to Start,” The New York Times 2020.7.2.↩
- 졸고 「백악관, 미·중 냉전의 포문을 열다?」, 창비주간논평 2020.8.12.↩
- 졸고 「바이든과 미국 민주주의가 맞이할 ‘혹독한 겨울’」, 창비주간논평 2020.11.18.↩
- Ira Katznelson, When Affirmative Action Was White: An Untold History of Racial Inequality in Twentieth-Century America, W. W. Norton & Company 2006.↩
- Robert L. Borosage, “Biden’s Picks: The Good, the Bad, the Ugly,” Nation No. 311 (2020.12.28), 4~5면.↩
- Stephen Wertheim, “Delusions of Dominance: Biden Can’t Restore American Primacy- and Shouldn’t Try,” Foreign Affairs 20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