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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케이트 브라운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푸른역사 2020
사료와 증언으로 재난의 의학적 영향을 파헤치기
최은경 崔銀暻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 qchoiek@gmail.com
최근 가습기 살균제 유통 판매에 관한 1심 재판 결과 무죄가 선고되어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에 독성이 있으나 실제 유해성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피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의 근거를 들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심대한 고통을 안겨준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는 점이 더 믿기 어렵다. 과학적 인과관계 추론이라는 소위 ‘합리적’인 과정이 몸과 신체의 경험을 배신하는 순간이다.
환경성 질환 앞에서 의생명과학은 때로는 진실을 밝혀내기에 무력하고 심지어 주어진 진실조차 누르는 권위적인 목소리가 될 때가 많다. 주로 환경물질의 장기 영향을 평가하는 만성질환에서 몸의 경험과 증언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된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하필이면 그 질환을 내가 앓게 된 이유를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원인물질 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환자의 경험을 초월한 객관적·과학적 시선에서는 환경성 질환의 원인이 다른 무수한 인과관계와 매개효과를 제외하고 남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간주한다. ‘공평무사한 과학’이라는 권위는 경험을 해석하기보다 경험을 심판하는 심판관이 되어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라고 기각한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파사건과 같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재난 앞에서도 이는 반복된다. 체르노빌 사건에 대하여 사람들은 소비에트의 경직되고 낙후된 비합리적 대응이 문제를 지속시킨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최근 완성도로 상찬을 받은 미국 HBO 드라마 「체르노빌」(2019)이 묘사하듯, 감시와 처벌을 일삼은 KGB나 전대미문의 사태를 앞두고 애국심을 강조한 인민위원회는 비과학과 은폐의 산증인이며 그 앞에서 과학자들은 무력한 진실의 수호신이 된다. 그러나 케이트 브라운(Kate Brown)의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Manual for Survival, 2019, 우동현 옮김)는 과학이 그렇게 진실을 수호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
서구의 과학자들은 소비에트의 과학을 구원하는 외부 전문가로서 체르노빌 사건의 영향 평가를 축소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를테면 IAEA, WHO 같은 국제기구들은 건강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과 일부 소비에트 과학자들의 연구결과 앞에서 히로시마 원폭 연구와 같은 ‘가장 공신력 있는 서구 연구결과’를 근거로 이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반복한다. 국제 외교관료들은 체르노빌 관련 연구의 진행을 방해하는데, 과거 핵실험 과정에서 이미 사람들을 방사선에 노출시킨 사실이 문제 될 것을 우려한다. 소아들 사이에서 갑상선암이 증가한 것은 주민들의 ‘방사선 공포증’이나 대피에 대한 불안으로 검사가 과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의미있는 피폭 선량 수치가 부족하다는 판단, 방사선 위험 추정 도표에 대한 집착, 전체 인구가 노출된 평균 선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 등은 재난 이후 개인들이 겪은 다양한 건강 문제를 과학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누락시킨다. 저자는 과학계에서 이와 같이 체르노빌에 대해 부정의한 결론이 내려진 이유가 일부는 과학계의 무지에, 일부는 핵을 둘러싼 국제 외교관료와 핵 전문가들의 동맹, 소련의 기록 은폐 등에 있다고 설명한다. 전지구적 재난에 대한 책임의 부재, 그리고 국제정치와 공모할 수밖에 없는 과학 연구가 지니는 한계가 진실의 추구를 방해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 “증거의 양을 고려할 때 체르노빌 보건문제가 미미하다는 주장을 30년 동안 고집하는 것은 놀랄 만하다.”(470면)
저자는 체르노빌 재난 이후 사고의 의학적·환경적 영향을 둘러싼 국면과 양상들을 다각적으로 정리한다. 체르노빌 사건에 관한 기존의 역사 기록물은 광부와 청소노동자 등 무명의 노동자들이 방사능 화마를 진압하기까지의 영웅적 서사에 주목했으며 소비에트의 선전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재난은 언제 일단락된 것으로 선언될 수 있는가? ‘안전한 일상’은 언제 가능한가? “국제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핵 재앙’이 단지 54명의 사망자와 6000건의 쉽게 치료 가능한 갑상선암을 초래했을 뿐이라고 선언한다. 그들은 그것이 세계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주장한다.”(470면) 그러나 과연 저선량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거의 ‘알지 못한다’는 과학적인 정설은 체르노빌 사건 이후 그 지역에서 살 수 있다는 ‘지침’이 될 수 있는가?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재난 속의 영웅이 아니라 방사능을 먹고 자라나는 산딸기나 우유, 그리고 보고서 결론과 다른 갖가지 암 발생률 등의 데이터이다. 은폐되고 누락되는 서사들 앞에서 데이터와 비인간 객체들은 사태와 무관하지 않으며 저자의 표현대로 ‘주체성’(agency)을 지닌다. 유의미한 방사선 노출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보고서에서 제외된 산딸기는 체르노빌 지방의 인구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방사성을 순환시키는 고리가 된다. 환경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류가 초래한 생태학적인 재난이 종식되거나 안전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과학적 데이터가 안전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이 책의 가치는 체르노빌 사건에 대한 분석을 역사학적 방법론을 통하여 서술한 데에 있다. 즉, 의학 연구처럼 미리 계획된 설계와 판단 기준을 통해 ‘유의미한’ 효과를 판단하는 방법을 채택하지 않는다. 체르노빌 사건처럼 환경 재난일 뿐 아니라 냉전질서와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통제, 핵을 둘러싼 과학자와 정치가들의 동맹 등이 결합된 사건의 경우 명료한 방법론을 통해 진실을 얻는 것은 어렵다. 그 대신 저자는 소련 붕괴 후 접근금지가 해제된 중앙 문서고와 국제기구 문서고를 뒤지고 기밀해제를 요구하며 민간인, 의사, 과학자 등 관련 당사자들 수십명을 인터뷰한다. 증언과 증언 사이,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의 누락되거나 어긋난 층위에서 진실의 조각들을 발견한다. 저자는 누군가에게 공표될 우려가 없는 ‘대외비’라는 도장이 찍힌 보고서에 건강 관련 문제들이 더 잘 서술되어 있음을 보고 거기서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추려내는 한편, 유행성 갑상선암의 존재 여부를 부인한 IAEA 보고서의 책임과학자가 어떻게 갑상선암 의료 기록을 누락했는지를 추적한다. 저자에게 증언했던 책임과학자가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재차 『뉴욕타임즈』와의 대화에서 그러한 인정을 부인하는 대목은 과학자의 언어에 대한 저자의 집요함을 보여준다. 또한 저자 스스로를 연구관찰자이자 화자로 드러내는 인류학적 글쓰기는 자칫 빠질 수 있는 음모론으로 진실을 흔들지 않으면서 결론에서 제외되고 누락된 경험에 주목하도록 한다.
저자는 저선량 피폭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또 때로는 의도적으로 무시된 역사를 치밀하게 복원함으로써 후꾸시마 원전 폭발사고 등 오늘날 반복되는 핵 재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재난 규모를 축소, 은폐하는 것은 소비에트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며 체르노빌의 관리를 맡은 서방 국가들에서, 2011년 일본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저자가 말하듯, 생태학적 관점에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만성적 선량에 피폭되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