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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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이 金思伊

1971년 전남 해남 출생. 2002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 등이 있음. haebang2004@naver.com

 

 

 

병문안

 

 

죽음에 기저귀를 채우고 껌벅껌벅

나는 이순례입니다

내 이름은 이순례입니다

 

부시게 푸른 하늘도 스산한 오후의 비도

순간 입맞춤처럼 지나가리니

분노는 늙고 눈물은 낡아서 운다

 

촛불이 켜져도 슬픔이 마르지 않는 몸뚱이는

가난한 땅에서 쉴 틈 없이 닳고 닳아

덮어쓴 껍데기 속으로 순하게 주무신다

 

휙 던져져 바람의 먹이로 사라지는 우렁각시

지구의 뚱뚱한 나이만큼 오래된 일상

짐짝처럼 끌려갈 때도 지키지 못한 영혼들

가까스로 살아온 환향녀는 화냥년이 되었다

오래된 일상이 너무 오래되어 나는 죄가 되었다

 

더는 목구멍으로 삶을 삼킬 수 없는 시간

죽음에 이르러서 되찾은 이름

나는 여자 이순례입니다

 

 

 

아이스~께~끼

 

 

치마를 들치는 아이스께끼 놀이

짓궂은 장난으로만 생각했던 추억의 놀이

장난이 진화할수록 치마 속이 골병들었네

 

노랑 빤스 분홍 빤스 파랑 빤스 줄무늬 빤스 랄라

하양 섹스 빨강 섹스 까망 섹스 물방울 섹스 랄라라

순결한 색깔 요부 같은 깜찍한 색깔 원하는 색으로 찍어요

 

호기심으로 내 치마 속을 훔쳐보네

광장에서 내밀한 잠자리에서 집요하게 훔쳐보네

나는 타락한 사랑을 재빨리 집어삼키네

 

거래의 장소이자 바지들의 블랙홀인 치마 속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소통이라는 이유로

말랑말랑한 웃음꽃 치마 속을 요구하네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에 기록이 없어도

좌우 주류 비주류 구분 없이 치마 속을 찍어주니

덜 자란 바지들의 상부상조가 끝내주네

 

내 치마 속은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지

비린내 나는 공포는 등짝에 달라붙어 젖을 빨아들이네

 

내 치마는 비정규직으로 아무 때나 들쳐지고

찢겨지고 벗겨진 치마 속은 폐허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