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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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우 蔡佶佑

1982년 울산 출생. 201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gitaru@gmail.com

 

 

 

껍질

 

 

숙모는 오토바이 사고로 의식을 잃은

사촌의 몸을 굴려 등에 난 욕창을 닦아준다.

그리고 아이의 침대 곁에 엎드려 잠든다.

풍뎅이처럼 바구미처럼

 

숙모는 물속에서 눈 뜨듯 잠에서 깨지만

눈을 떠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표면장력처럼

굳은 각질에 싸인 아이의 눈두덩을 어루만지며

여전히 젖지 않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툭툭 건드리면

다리를 웅크린 채 배를 까뒤집고

누런 진물을 짜내어 죽은 척하다가

조금 더 기다리자

물방울 같은 등딱지를 갈라 꺼낸 날개로

몸을 받쳐 되돌려 세운 후, 곧

날아가버리는 노린재처럼

무당벌레처럼

 

어서 일어나

장난치지 말고

 

네게도

날개가 있잖니

 

 

 

난파

 

 

처음 와본 도시의

비 오는 골목길, 후미진 모퉁이를

우산 없이 거닐다 길을 잃은 곳에서

비스듬히 택배 트럭이 멈춰 서 있다.

짐칸이 열려 있고, 크고 작은

상자들이 도로 위로 쏟아진 채

널브러져 비를 맞아가면서

무슨 일일까, 괜찮은 걸까

허기처럼 안쪽까지 스며드는 부력에

눅눅한 골판지마다 곰팡내가 차올라

아직 가로등 하나 켜지지 않은 동네는

서서히 물속만큼 어두워져가며

트럭의 그림자를, 트럭보다 커다랗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기사는

어디에 있나, 주민들은 무얼 하나

웅덩이에 고이는 둥근 빗방울들이

깜박거리는 익명의 수많은 시선처럼

어떤 공포와 어떤 집중,

고요한 빗소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숨죽인 숨소리를 닮았다.

나는 두리번거리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긴장감이 감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서

송장도 내용물도 확인 안 한

뒤집어진 좁은 상자 하나로

옷섶을 부표처럼 부풀린 채

허우적대며 이 골목을

서둘러 빠져나올 때

조급한 침묵이, 부글거리는

물방울로 덮인 질식을 닮아

 

나는 실종자처럼 젖어 있다.

나는 생존자처럼 절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