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선 이후 촛불의 갈 길
촛불혁명, 촛불연합 그리고 민주당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저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공저서 『변혁적 중도론』 『백년의 변혁』, 편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정권교체와 촛불혁명
지난 3월 대통령선거를 통해 5년 만에 ‘보수’정부가 다시 등장했다. 6월 진행된 지방선거에서도 새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정치적 흐름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공천의 전략 실패가 겹치며 국민의힘이 대승을 거뒀다. 특히 정치적 분수령이었던 대선은 불과 0.7%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해도 촛불혁명의 큰 좌절임이 분명하다. 촛불대항쟁이 일회적 사건에 그치지 않고 세상과 나라를 크게 바꾸는 촛불혁명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연 이후,1 지난 5년 동안 진행된 촛불혁명의 진전을 위한 노력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시도 사이의 치열한 싸움에서 후자가 일단 승리했다. 그러나 이 좌절이 어느 정도의 좌절이고 어떤 요인들이 이러한 좌절을 만들어냈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촛불혁명은 이번 선거로 종언을 고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중요한 것은 촛불혁명의 현재 상황을 분별하고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응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일차적 원인은 촛불연합의 균열이다. 촛불연합은 촛불대항쟁으로 정치적 전환을 실현시키고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국사회 변화에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한, 무형의 그렇지만 강력한 정치적 흐름이었다. 다만 무형이기에 그 범위를 확정하기란 쉽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한 80%의 세력을 최대범위로 보는 논자도 있으나, 탄핵 지지가 곧 촛불대항쟁·촛불혁명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수층 내에서는 촛불대항쟁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다른 길을 찾기 위해 ‘손절’에 나선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연합의 범위를 유추하는 데는 2017년 5월 대선 득표율이 더 유용한 기준을 제공한다. 당시 득표율은 문재인 41.08%, 홍준표 24.03%, 안철수 21.41%, 유승민 6.76%, 심상정 6.17%로, 그중 문재인과 심상정에 투표한 47.25%가 촛불대항쟁의 대의를 적극 지지한 경우라 할 것이다. 유승민과 안철수가 득표한 28.17%에는 촛불대항쟁에 대한 지지와 정치적 손절로 탄핵을 선택했던 흐름이 섞여 있다. 당시 안철수 후보가 대체로 촛불대항쟁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고 호남에서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그 28%가량의 3분의 1 혹은 절반 정도를 촛불대항쟁의 지지세력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종합하건대 당시 유권자의 57~ 61% 정도가 촛불연합을 형성하고 있었다.
정치적 에너지가 고양되었던 시기를 지나 촛불연합이 점차 이완되더라도 55%에 가까운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정국 주도력을 유지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촛불혁명의 대척점에 서 있던 정당의 후보가 당선된 것은 촛불연합에 균열과 이탈이 발생했다고 보아야 하며, 이는 물론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두번의 선거 결과를 근거로 촛불혁명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거나 촛불연합이 해체되었다고 단언할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심상정, 두 후보의 득표율 합은 50.2%에 달했다. 최악의 언론환경과 촛불혁명에 대한 부정적 혹은 회의적 시각의 만연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 막판에 유권자들은 자발적으로 결집하며 촛불혁명의 에너지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2 대선 전에 윤석열 후보의 압도적 승리를 예상하던 대부분의 여론조사와도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왜 이런 큰 차이가 있었는지, 촛불혁명이 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분석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대선 결과를 촛불혁명에 대한 부정으로 해석하면 무엇보다 촛불연합의 균열이 촛불혁명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촛불혁명의 초심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서 초래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게 된다. 이 경우 가령 ‘중도’ 표를 잡지 못했다는, 변혁적 관점을 상실한 현상적 처방에 끌려갈 공산이 크다. 촛불연합의 균열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잘 인식하되,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촛불연합을 재구성하는 일이 긴요하다.3
2. 촛불연합 균열의 원인
촛불연합의 균열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변화 중 하나는 2021년에 들어서며 정권교체를 선호하는 여론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내내 정권교체론이 정권유지론보다 적게는 6%, 많게는 24%까지 우위에 있었다.4 당시 여권은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40% 안팎으로 과거 정권들보다 높다는 데 자족하며 이러한 여론의 흐름을 평가절하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과거 정권들보다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단순다수제(득표수가 1표라도 많으면 당선되는 투표제)하에 양자 대결구도로 진행되는 선거에서 반드시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 현재 미국 바이든 대통령 또한 4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소속한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신호로 간주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불리함을 극복하는 것도 대선 후보의 역할이며 역사적 선례를 고려하면 실제 극복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의 현재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왜 정권교체론이 상승했으며 촛불연합의 균열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5
촛불연합 균열의 원인으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문제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대선 이후에도 여전히 ‘조국의 강’을 건너는 것을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처럼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문제가 촛불연합 균열의 한 요인인 점은 분명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이 자신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사과했으며, 소위 ‘조국사태’가 정점에 이른 이후 치러진 첫번째 선거인 2020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문제가 된다면 조국사태 발생부터 2020년 하반기까지 계속된 정부와 검찰 수뇌부의 갈등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조국 전 장관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기보다 검찰개혁과 관련된 문제다. 개혁 목표가 정당하다고 해서 개혁 방안까지 모두 정당한 일은 아니며, 당시의 접근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6 접근법의 차이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지만, 이는 검찰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결국 검찰개혁이라는 큰 방향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이 점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더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지금도 ‘조국의 강’ 건너기를 민주당의 핵심 문제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수구세력의 프레임에 끌려 다니는 일이며 정작 민주당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토론도 어렵게 만든다.
더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문제는 촛불혁명을 계승한다고 한 정부가 촛불혁명의 요구에 얼마나 충실했는가이다. 정부와 여당이 촛불연합 균열의 일차적 원인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촛불혁명의 요구에 부합한 점과 부합하지 못한 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식별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촛불혁명이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진행된 긍정적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장과 분배 영역에서의 성과다. 경제성장률은 2017년 이후 OECD의 평균성장률보다 계속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7 박근혜정부 때부터 그러했다는 점에서 문재인정부만의 성과로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문재인정부가 경제성장에 무능했다거나 성장률이 한국경제의 주요 문제라는 보수의 비판이 타당하지 않다는 근거는 된다. 소득불평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는 2010년대 들어 조금씩 낮아지다가 2015년 다시 높아졌으나, 2017년 이후 다시 낮아졌다.8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를 완화시키려는 정부 개입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둘째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대응이다. 초유의 상황에서 여러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한국은 ‘거리두기’와 ‘이동성 확보’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데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다. 블룸버그(Bloomberg)가 팬데믹 이후 사회적 활동, 환자 수, 백신 접종률 등을 기준으로 매달 53개국의 복원력(resilience)을 평가하고 그 순위를 발표해왔는데, 한국은 팬데믹 발생 초기, 그리고 2020년 5월 이후 최상위권에 위치했다. 일시적으로 20위권 밖으로 밀려난 기간도 있었지만 빠르게 최상위권으로 재진입했고 2022년 6월 마지막 조사에서는 1등을 기록했다. 이는 정부의 책무성과 시민들의 참여가 결합된 결과이다.9
셋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해도 2017년 하반기 일촉즉발의 위기를 관리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다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한 채 군사적 대결이 다시 고조되고, 최근에는 우끄라이나전쟁, 미중 전략경쟁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한반도 비핵화가 훨씬 어려워졌다. 이 과정은 ‘선진국’ 반열에 진입했다는 한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촛불혁명의 진전에 관건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정책적 실패와 대전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과오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심지어는 지난 5년을 완전히 부정하는 평가는 객관적이지 못하며, 촛불연합의 균열과 기득권 연합의 강화에 일조할 뿐이다. 촛불혁명의 특별한 의미는 시민적·국가적 역량의 증가에 기초해 사회대전환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가시화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인식이 공유될 때 각자가 촛불혁명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찾고 사회대전환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그동안 『창작과비평』의 지면을 통해 계속 강조해왔다.10 사회대전환이라는 지향이 촛불대항쟁 시기는 물론이고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도 다소 추상적이고 분산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에, 이를 구체화하고 각 의제의 우선순위나 결합 방식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했다. 촛불혁명의 계승을 주장한 정부여당은 실제로 이를 위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했지만, 촛불혁명의 의미와 그에 부합하는 역할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없었다. 그 대신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를 촛불혁명의 진전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는 촛불혁명의 요구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 문제는 2020년 총선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다. 당시 정부여당은 촛불연합을 확대하고 강화할 수 있는 개정 선거법의 의미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선택을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180석, 즉 총 의석수의 60%를 확보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으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제1당이 과잉대표되는 선거제도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촛불연합의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이를 자신들의 승리로만 해석했고, 정국을 더 독단적으로 운영했다. 정부여당의 촛불혁명에 대한 안이하고 자의적인 전유, 사실상 촛불 열매의 전유는 촛불혁명 담론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사회적으로 만연하도록 만들었고, 촛불연합을 균열시킨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동시에 이러한 상황을 방기한 시민사회의 책임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촛불혁명 진전이라는 차원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찰하고 탐구하려는 이들의 노력 역시 크게 부족했다. 그 결과 촛불혁명에 대한 정부여당의 자기중심적 해석과 그 열매의 전유가 더 용이해졌던 것이다.
3. 플랫폼 정당으로서의 민주당11
대선 결과는 촛불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치열한 쟁투의 결과이며 일시적 후퇴이다. 기득권 연합은 더이상 물러설 길이 없다는 각오로 정권교체만을 위해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모아 대선에 임한 반면, 촛불연합은 촛불혁명의 압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파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새 정부 출범 80여일 만에 30% 밑으로 하락했다. 지지율 하락에 대한 설명이 여러가지로 분분한 것 자체가 하락 원인을 분명히 지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반영한다.12
이를 설명하는 데도 촛불혁명의 관점이 필요하다. 즉 선거를 거치며 촛불혁명이 무화된 것은 아니며 촛불혁명에 담겼던 지향이 시민들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에 동의하는가 아닌가와 별개로 ‘혁명’적 변화, 즉 사회대전환에 값하는 정치권의 노력에 대한 요구가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하는 데도 이러한 열망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사회적인 어려움 및 좌절이 큰 계층과 집단에서도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그런데 윤석열정부가 이러한 미래지향적 에너지를 감당할 의지와 능력 모두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민심의 광범한 이반이 출현한 것이다. 그에 따라 어떠한 이상도 없이 기득권 수호를 위해 뭉쳤던 집단들도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이미 예상했다 한들 급속한 지지율 하락을 즐길 일만은 아니다. 윤석열 후보의 자질 미달이 드러났던 대선 기간에도 민주당은 그 실망감을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킬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선거의 주도권을 다시 빼앗긴 바 있다. 앞으로도 반사이익에 기대어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할 공산이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플랫폼 정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플랫폼 정당이라는 용어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 일각에서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추진하며 사용했다. 지난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의당 내에서도 유사한 구상이 논의된 바 있다. 다만 이러한 경우들은 일종의 선거용 정당으로서 지속적 생명력을 갖기 어려운 것이었다. 플랫폼 정당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개방적 정당을 지향하는 새로운 정당 유형을 지칭하기도 하는데13 여기서는 디지털 기술의 활용 여부보다 다양한 사회·정치 세력들에 개방된 정당이라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는 계급정당이나 엄격한 의미의 대중정당(mass party)이 발전되지 않았던 한국정치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는 아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야당은 자기 정체성과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념에 따라 활동하는 다양한 사회세력과의 관계에 열린 태도를 보였다. 민주화투쟁을 전개하는 데 있어 이들이 자신들의 주요한 정치적 지지기반이자 인적 자원을 공급할 수 있는 저수지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보수적 정당이라고 할 수 있었던 당시 야당 내에서 김대중과 같은 정치인이 성장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소위 ‘정통 야당’의 개방성은 더 증가했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지향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념적으로는 기득권 극복과 다양한 계급·계층의 이익 대변을 동시에 표방했다. 분단 문제에 대해서도 점차 반공 프레임을 극복하고 공존, 평화, 협력 등의 가치에 기초한 접근법을 택하게 되었다.
유럽식 계급정당이 발전하지 못하고 이념적 성격이 모호한 정당이 민주화와 사회개혁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데는 분단체제라는 상황이 있었다. 분단체제의 제약과 분단체제하에서 형성된 수구기득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가치의 차이를 넘어서는 정치적 협력이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하다. 이러한 정치노선은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변혁적 목표를 위해 개혁주의와 급진주의가 협력하는 중도주의적 접근이며, 백낙청은 이를 선거 마케팅으로 중도를 강조하는 것과 구별해 ‘변혁적 중도주의’로 제시한 바 있다.14 민주당은 촛불혁명 국면에 부합하게 자신의 개혁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한편 변혁적 중도주의에 입각한 협력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당의 개혁성 강화와 당외 세력과의 협력은 서로의 발전을 촉진하는 선순환을 형성할 수 있다. 현재 민주당은 이 노선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고, 플랫폼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과거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주요 리더십이 선택했던 길은 이러한 방향이었고, 한국사회의 민주화나 사회운동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이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당의 발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변혁적 중도주의의 과제를 실현해가는 데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 5년 동안, 특히 2020년 총선 이후 비민주당 정치·사회 세력들은 정부와 민주당과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집권여당에 대한 실망에 더해 민주당과 진보정당을 서로의 대체재로 간주하는 관습적 사고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정치세력의 부침은 높은 동조관계를 보여주었다. 민주당의 정치적 전망이 긍정적일 때 진보정당의 지지율도 증가하고, 반대로 민주당의 정치적 전망이 불투명할 때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율도 떨어졌다. 민주당이 최악의 참패를 했던 2007년 12월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은 26.14%에 불과했는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 역시 3.01%로 2002년 대선에서의 득표율(3.89%)보다 하락했다. 민주당 득표율이 25.17%에 불과했던 2008년 총선 비례대표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2004년 총선의 13.03%에 훨씬 못 미치는 5.68%를 기록했다. 민주당 득표율 하락이 진보정당 득표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진보정당의 득표율도 같이 하락한 것이다.
2012년 총선에서는 두 당의 비례선거 득표율이 높아지고(민주통합당 36.45%, 통합진보당 10.30%) 통합진보당은 13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2016년 총선에서는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고, 정의당은 비례선거에서 7.23%를 득표해 비교적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2년 대비 정의당의 비례 득표율이 다소 하락한 것은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과 국민의당 돌풍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승리가 유력했던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6%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2020년 총선에서도 비례위성정당의 출현으로 의석수 증가로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정의당은 비례선거 9.67%를 득표했다. 반면 선거 전 여론조사상 윤석열 후보의 상당한 우위가 지속되던 올해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은 2.37%에 머물렀다.
이러한 득표율의 동조현상은 우연의 반복이 아니다.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해서는 수구기득권 세력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과제라는 인식이 작동한 결과이다. 수구기득권 극복과 가치 지향 투표가 서로 상충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거법이 개정된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이 실현되기 전에는 현재의 제도적 제약을 고려한 정치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선거제도가 개혁되더라도 가치 지향이 수구기득권 극복이라는 요구와 상충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그 가치에 대한 지지를 확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촛불연합의 재구성에서 민주당의 중심적 역할은 당분간 유지되어야 하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게 만드는 것이 ‘변혁적 중도주의 연합’ 내에서 협력·경쟁하는 정당들, 그리고 사회세력의 발전에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사회대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4. 민주당의 변화는 가능한가
현재 민주당은 전당대회(2022.8.28.) 일정을 치르고 있지만, 당의 체질 개선과 관련한 논의는 뒷전에 밀려 있고 플랫폼 정당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대선 막판 촛불혁명을 다시 내세우기는 했지만 대선 이후에는 또다시 정치공학적 논의에 매몰되고 있다. 게다가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정당이 가진 기득권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당내에서는 거부감도 적지 않다.15 그간 민주당의 플랫폼 역할 강화는 정치적 위기의식과 당내의 적극적 리더십이라는 두가지 요인이 결합될 때 나타났다. 2008~12년 상황이 대표적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의 참패로 민주당의 위기의식이 크게 높아졌다.16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외 세력과의 연대에 적극적 태도를 보였고 민주당, 진보정당, 시민사회 등의 조직적 연대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개혁적 성격이 강화되었고, 2010년 지방선거부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총선까지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약진할 수 있었다.17 그러나 2013년 이후에는 주요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민주당의 위기의식이 약화되었고 그에 따라 당외 세력과의 연대에도 소극적이게 되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올해 두차례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민주당의 위기를 드러내지만, 윤석열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그에 대한 위기의식을 다시 약화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는 데 있어 또다른 문제는 정당과 사회세력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커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수평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정당과 시민사회 사이에 상호의존적 관계가 있었다. 물적 자원에서는 정당이 훨씬 우위에 있었지만, 시민사회는 의제 설정 능력이 강했고 인적 자원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민주화 과정에서 제도에 대한 재정적·인적 지원이 강화됨에 따라 정당과 사회세력 간 힘의 불균형이 크게 증가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팬덤을 통해 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당이 시민사회와의 수평적 협력관계를 맺을 유인이 적어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협력이 민주당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비민주당 정치세력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민주당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당외 정치세력 및 시민사회와 수평적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공중전’에서 밀렸다. 촛불혁명을 좌절시키려는 기득권 보수언론의 공세가 무엇보다 컸지만, 공중전을 수행할 만한 민주당의 네트워크가 취약했던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민의힘이 더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도 수구언론에 대한 불만만 토로할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발언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더욱이 촛불혁명이 민주당의 플랫폼 역할을 더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촛불혁명은 사회대전환을 현실적 과제로 드러냈다. 한반도 평화, 기후위기, 성평등, 돌봄, 지역균형 등 사회의 근본적 재구성을 필요로 하는 의제들이 제기된 상황이다. 이 과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정치 기획이 필요하다. 모두가 당장 합의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각 의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물론이고 추진 방식이나 우선순위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 과정이 논쟁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논의를 통해 과제를 감당하기 위한 공동의 방향감각을 형성하고 연대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 즉 민주당이 플랫폼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차원의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 촛불혁명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자신의 정책 노선을 지속적으로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다양한 정치·사회 세력의 독자성을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사회대전환이라는 공동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소통과 연대 네트워크를 구축해가야 한다.
문재인정부 시기 국민들의 불만을 산 정책 실패는 여러가지이나, 그중에는 단기적 대응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가는 데 있어서는 바로 앞의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를 설득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던 부동산 문제의 경우도 당장 가격을 잡겠다는 식의 비현실적 접근보다는 주거 안정에 초점을 두는 중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것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보니 세금으로 가격을 잡겠다고 나섰던 것인데, 그 정책들의 반복적 실패가 결국 문재인정권의 정당성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개혁을 단행한 국가들이 그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 ‘눈물의 계곡’(the valley of tears)을 건너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대의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 정치가들이 개혁 초기 발생하는 비용을 피하기 위해 단기적 이익을 앞세우는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이 결국 개혁의 실패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과 정책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18 ‘눈물의 계곡’ 비유는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체제의 이행과 관련한 논의에서 많이 사용되었지만, 개혁 혹은 사회대전환을 위해서는 지금도 고려해볼 문제이다. 촛불혁명이 추구하는 사회대전환은 대규모 구조조정 같은 눈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있으면 사회 전체가 같이 부담하고 성과를 함께 누리는 방식을 말한다. 다만 기후위기, 돌봄 등 당면한 과제는 우리의 생활양식에 큰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각자가 현 체제에서 누리던 이익이나 편의를 포기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사회적 합의는 더욱 필요하며, 이는 민주당이 플랫폼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지도부는 우선 다음 세가지 일에 시급하게 착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회적 대토론에 기초해 사회대전환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강령을 개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때마다 강령 개정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전당대회는 대부분 지도부 선출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마련이고, 강령 개정은 당내 기구에서 정치적 상황 변화 등을 반영해 내용을 조정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강령의 내용이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당 활동의 지침으로 활용되기도 어려웠다. 앞으로는 강령에 더 명확한 중장기적 비전을 담아야 하고, 그 내용에 대해 사회적 차원의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반사이익이나 그때그때의 임기응변에 기대는 정당이 아니라 정책적 비전과 수권 능력을 가진 정당으로서 다음의 정치적 대회전을 맞이해야 한다. 토론 과정에서 논쟁이 발생할 것이고, 이견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은 민주당이 정치공학 중독에서 벗어나 자신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으며, 토론에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바로 민주당의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둘째, 외부와의 다층적 소통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자의적이고 선택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호존중에 기초한 협력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 우선 대전환 의제와 관련한 협의체를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중앙과 지방 단위에서 당의 활동에 대한 외부의 제안과 비판을 듣고, 그에 대한 당의 입장을 밝히고 정리해가는 공식적 협력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협의들이 반드시 통일된 입장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으며, 더 중요한 것은 주요 문제에 대한 개방적이고 책임있는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건강한 팬덤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정치 팬덤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으며 실제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없이는 정치의 역동성이 발휘되기 어렵다. 당 개혁의 방향은 이러한 참여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나 반대 대신 정책이나 정치 노선에 대한 제안 및 토론이 중심이 되는 팬덤 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정치지도자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부적절한 팬덤 행태를 부추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선거법 개정에 대한 적극적 태도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윤석열정부는 비례위성정당 문제를 낳은 현행 선거법의 개정에 부정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은 전부터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법 개정에 부정적이었고, 어렵게 통과된 선거법에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꼼수로 대응을 시작한 정당(미래통합당)의 후신이다. 그들의 협력적 태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압력을 강화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국민 다수가 비례위성정당이 반복되는 상황은 원치 않을 것이기에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민주당은 대선 선거를 앞둔 2월 24일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정치개혁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제는 원칙적이고 이상적 방안을 제시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선거법 개정을 관철시키기 위한 현실적 방안과 전략이 필요하며, 만약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 더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진지하게 진행될 때, 민주당은 단순히 정권교체가 아닌 대전환을 위한 정치적·사회적 연합 형성이라는 목표로 다음 총선과 대선을 임할 수 있으며, 지난 5년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사회대전환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 사회대전환의 주체 되기
이러한 정치 기획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클 수밖에 없다. 의회 내 다수당으로서 민주당이 누리는 기득권이 여전히 적지 않은 상황에서 그 기득권을 대폭 줄이거나 버려야 하는 개혁 방안에 쉽게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의 정치적 의사결정이 반드시 개인적 선택의 집합만은 아니다.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커다란 변화를 감수하는 집합적 결정을 하기도 한다. 선출직을 거치지 않은 청년 정치인을 당 대표로 선출하거나 자신과 대립적 위치에 있었던 후보를 영입해 대선을 치른 국민의힘도 이러한 사례다. 아래로부터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수용하며 발전한, 그리고 이를 통해 몇번의 집권도 성공한 민주당의 경우는 역사의 중요한 전환기에 이러한 결정을 해온 예가 더욱 많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의 변화를 요구하고 압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당에 대해 거리를 두고 진행되는 비판이 아니라, 민주당이 한국사회의 대전환을 위한 주요 주체의 하나라는 점을 전제로 하는 개입이 되어야 한다. 즉 지속적으로 민주당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분별하고 그중 긍정적 측면이 강화되도록 하는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민주당도 중요한 전환기에 처해 있다. 4·19혁명, 1970년대 반(反)유신 민주화운동, 6·10민주화운동,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 등 여러 정치적 계기는 모두 민주당의 이념적 확장과 세력 확대를 촉진했다. 지금도 이에 준하는 전환기이고 당 바깥의 촛불세력이 민주당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가령 전당대회 등을 계기로 당원으로 가입해 촛불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정치인을 지원하는 활동, 당 바깥에서 당이 만든 다양한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는 활동 등이 가능하다. 조직적으로 당에 가입해 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스스로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더 적극적인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개입의 구체적 수준과 방식은 각자가 어떤 현장에 있는가, 어떤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감각에 기초한 정치연합의 모색과 발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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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낙청 「촛불혁명과 개혁세상의 주인노릇을 위해」,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 11~12면 참조. 이 글에서는 촛불대항쟁과 촛불혁명을 구분해 사용한다. ‘촛불대항쟁’은 2016년 10월부터 2017년 5월 대선까지 정치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던 국면을 지칭하며, ‘촛불혁명’은 촛불대항쟁으로 시작되었고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로도 사회대전환을 추구하는 사회적 실천이 지속되고 있는 국면을 지칭한다.↩
- 정한울은 ‘탄핵정치연합의 형성과 해체’라는 틀로 최근 선거 결과를 해석했다.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 증가로 탄핵정치연합이 해체되고, 보수로 유입된 ‘뉴보수’의 확대에 따른 결과가 이번 대선 결과라는 주장이다. 정한울의 글은 여론조사 자료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 기초해 지난 5년 동안의 유권자 성향 변화를 잘 보여주며, 2020년 총선 이전에 이미 탄핵정치연합에 균열 조짐이 나타난 바 있다는 지적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정한울 「5년 만의 정권 교체와 탄핵정치연합의 해체 요인 분석」, 『동향과전망』 2022년 여름호 참조). 다만 ‘탄핵정치연합’이라는 개념이 한국정치 지형을 구분하는 유용한 개념인지는 의문이다. 필자가 본문에서 설명했듯 탄핵에 찬성한 사람들 안에 이미 매우 다른 정치적 성향이 섞여 있었던데다 당시 촛불대항쟁에서 표출되었던 요구가 탄핵으로만 수렴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체’라는 규정 또한 가변성이 많은 여론조사에만 의존해 균열의 정도를 과대평가하고, 현재 드러난 유권자들의 성향 변화를 고정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 강경석 「촛불연합의 재구성을 위하여」, 『창작과비평』 2022년 여름호 5~6면 참조.↩
-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475호(2021년 12월 1주): 대선 후보 지지도, 후보별 지지 이유, 내년 대선 결과 기대」 참조.↩
- 대선 결과를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소위 ‘졌잘싸’(이재명 후보가 졌지만 불리한 조건에서 잘 싸웠다)와 ‘잘했졌’(문재인정부는 잘했는데 졌다) 같은 계파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평가가 대립하기도 했다.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논의이다. 「민주당 초·재선, 대선 평가 첫 토론회…“‘졌잘싸’와 ‘잘했졌’ 유령 떠돌아”」, 경향신문 2022.6.8 참조.↩
- 필자는 2020년 4월 총선 이후 정부여당이 “자신의 권한을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그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에 쓰기보다 여전히, 그것도 잘못 겨냥한 과녁과도 같은 양자구도를 활용해서 정치적 동원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총선 민의라고 볼 수 없고 더 근본적으로는 촛불혁명의 계승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고, 검찰개혁이나 부동산 문제를 그러한 사례로 든 바 있다. 이남주 「촛불혁명의 초심으로」, 『창작과비평』 2020년 가을호 3~4면 참조.↩
- OECD 통계 「Gross domestic product(GDP)」 및 통계청 e-나라지표 「국내총생산 및 경제성장률(GDP)」 비교 참조.↩
- 통계청 e-나라지표 「지니계수」 참조.↩
- 블룸버그는 더이상의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2022년 6월 보고를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최종 업데이트의 설명에서 한국 등 국가의 우수한 실적에는 백신 접종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술력 외에도 사회적 신뢰와 연대감(societal trust and cohesion)이 무형의 그렇지만 강력한 변수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The Covid Resilience Ranking: The Best and Worst Places to Be as World Enters Next Covid Phase,” Bloomberg, 2022.6.29 참조). 황정아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 팬데믹 대응에 성공한 이유를 권위주의 혹은 국가주의에서 찾는 관습적 혹은 상투적 견해를 비판하고, 한국의 사례는 촛불혁명 등의 민주주의 경험이 방역에 필요한 유대와 책임을 낳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황정아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와 ‘한국모델’」, 『창작과비평』 2020년 가을호 25~29면 참조).↩
-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다. 백낙청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이남주 「3·1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진리사건’」, 『창작과비평』 2019년 봄호; 박정은·이남주·이정철·황규관 대화 「촛불혁명의 현재와 촛불정부 2기의 과제」, 『창작과비평』 2021년 가을호.↩
- 여기서 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약칭이자, 더불어민주당과 법통을 같이하는 그 이전 정당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 7월 29일 대통령 지지율이 30% 이하로 떨어졌다는 한국갤럽 발표가 있은 다음 날 조선일보는 사설(「대선 승리 넉 달 만에 정권 위기 자초, 국정은 어찌되나」)에서 “희한한 일이다. 국정 실패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한탄했다. 언론은 ‘지인 챙기기’ ‘독단적 정치’ 등을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하지만, 인과요인은 명확하지 않다. 국정전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경우에도 어떤 방향으로의 전환인지를 제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촛불혁명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을 염두에 두는 것일 텐데,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전환이 될지는 의문이다.↩
- Paolo Gerbaudo, “The Platform Party: The Transformation of Political Organisation in the Era of Big Data,” Digital Objects, Digital Subjects: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s on Capitalism, Labour and Politics in the Age of Big Data, David Chandler and Christian Fuchs eds., University of Westminster Press 2019, 188~89면 참조.↩
- 변혁적 중도주의에 관해서는 백낙청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 참조.↩
- 단순히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당정치 발전이라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플랫폼 정당으로서의 역할 강화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대중정당 모델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경우인데, 한국의 정당이 이러한 모델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박지영과 윤종식은 정보화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상황에 대응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을 통해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고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한국형 플랫폼 정당 모델을 제시했다. 박지영·윤종빈 「정보화 시대 대의민주주의 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형 정당모델의 모색」, 『미래정치연구』 제9권 제1호(2019), 132~134면 참조.↩
- 한편, 당시 민주세력 일각에서는 이명박정부의 성격을 ‘신보수주의’로 규정하고, 보수도 변하고 있으니 민주세력도 더이상 ‘독재 대 민주’ 대립구도에 연연하지 말고 진보정치의 주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수구적 성격을 드러낸다 해도 ‘정상적 보수’와 그에 대비되는 ‘진보’(독자적 진보정당)의 대립구도로 정치지형이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은 한국의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후 다시 확인되었다.↩
- 연합정치 담론이 이러한 연대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연합정치는 주로 의원내각제와 비례대표제가 결합된 정치제도하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우리의 경우 선거제도의 제약으로 선거 전 연합, 즉 연합공천이 연대의 주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 자체로는 제도화되기 어렵고, 각 당의 피선거권을 제약하는 등의 단점도 있다.↩
- Jeffrey D. Sachs, “Crossing the Valley of Tears in East European Reform,” Challenge, Vol. 34, No. 5(Sep/Oct 1991), 31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