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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소란 朴笑蘭
1981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noisepark510@hanmail.net
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
어떤 누구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집 앞 과일트럭이 떨이 사과를 한 소쿠리 퍼주었다
어둑해진 골목을 더듬거리며 빠져나가는 트럭의 꽁무니를 오래 바라보았다
낡은 코트를 양팔로 안아 드는 세탁소를
부은 발등을 들여다보며 아파요? 근심하는 엑스레이를
나는 사랑했다 절뚝이며 걷다 무심코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너는 참 처연한 눈매를 가졌구나 생각했다 어제는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말없이 이불을 끌어다 덮는 감기마저
사랑하게 되었음을
내일이 온다면
영혼이 떠난 육신처럼 가벼워진 이불을
상할 대로 상해 맛을 체념한 반찬을 어루만지기로 한다
실연에 취한 친구는 자주 울곤 했는데
사랑은 아픈 거라고 때때로
그 아픔의 눈물이 삶의 마른 화분을 적시기도 한다고 가르쳐주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토록 아프지 않은 건지
견딜 만하다, 덤덤히 말한다는 것
견딜 만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텅 빈 곳으로의 귀가를 재촉한다는 것
이 또한 사랑이 아닐까 궁지에 몰린 사랑,
그게 아니라면
도리가 없다는 것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우연히 날아온 무엇에라도 맞아 철철 피 흘리지 않을 도리가
감
시멘트 바닥에 깨어진 감을 보았어요
어느 새벽 물기를 한껏 머금은 감나무가 기어코 떨어뜨린 감이었어요
머리를 말끔히 빗어 넘긴 나무는 언제 벌써 저만치 멀어져갔고요
감은 제 텅 빈 속을 다 드러내고 부끄러운 표정마저 잃고
뜨겁게 일렁이는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잠시 살길을 궁리하듯이
다리를 절며 다가온 부랑견 한마리 힐긋거리다 힘없이 킁킁거리다
이내 진저리 치며 달아났어요
같이 가, 애원하고 싶어 더 붉어진 감이었어요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가슴속 씨가 따끔거려 조금 슬픈 것도 같았어요
간밤 꿈에는 죽은 엄마가 찾아왔어요 반쯤 물러진 얼굴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잤어요 긴긴 잠을, 아 달다
나는 달다
원없이 잠꼬대를 피워본 감이었어요
슬픔 같은 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우연히 발견된 해골처럼 멋쩍은 웃음만 지어 보이는 감
버려지고도 단 한번 울지 않는 그런 감을
나는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