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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범근 李範根
1986년 경북 봉화 출생.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rikashima@nate.com
과수원 수족관
물고기에겐 통점(痛點)이 없다는 말
수위가 아슬한 수족관 속으로
달빛을 들어올린 나무 그림자가 잠긴다
나무는 살을 다 발라낸 어류여서
일그러진 무릎 속엔 촘촘한 물결의 기억이 있다
나뭇가지에 열린 물고기들
가지에서 가지로 흘러가는
열매들
낙과(落果)가 없는 수족관엔
발자국이 드물고
목발처럼 걸음을 잊은 나무들은
숨을 오래 참는다
아무도 추락하지 않고
죽은 자를 묻지 않고
그의 숨으로 떠올리는 곳
머리를 잃어버린 몸의 영법(泳法)에 대하여
몸을 잃어버린 눈동자가 글썽이고
생니 뽑힌 자리를 더듬는 혓바닥처럼
홍시가 떨어진 자리로
물살이 온다 물살은
제 뼈까지 다 울어버린 몸이어서, 살이어서
깊은 가시의 기억이 있다
물속을 흐르는 눈물
살이 깊어진다
무화과
꿈에 이가 많이 빠졌다
오래 기르던 개를 끌어안는다
묽은 눈을 끔뻑이며
잇몸으로 내 손목을 문다
손목을 먹인다
종이학처럼 귀를 세운 채
어디선가 봉숭아 잎 빻는 소리를 듣는 새벽
개의 눈동자에 묘목(苗木)이 자란다
손목이 깊은 폐에 닿는다
깨진 질그릇들이 피에 엉겨붙는다
세숫물에 틀니를 씻는 노파의 곁에서
꽃을 잃었다
거울 앞에서 크게 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