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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영효 鄭永孝
1979년 경남 남해 출생.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 등이 있음. 05ji@naver.com
회유
그는 자신의 개를 기다리는 중이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늑대 때문에 목장을 지키려고 풀어놓았던 개 하지만 늑대를 따라가버린 개 그가 잘 안다고 믿었던 개이자 어쩌면 제대로 몰랐던 개
그 개는 이미 개가 아니라 개를 닮은 늑대일 수 있고 늑대가 되고 싶은 개일 수도 있어서 돌아오지 않는 개가 되어 이제 그와 마주한다
몰랐다는 것은 속았다는 것일까
속았다는 것은 지금부터 안다는 뜻일까
혼자 목장을 지키는 동안 진짜 늑대와 가짜 개를 떠올리며 그는 묻는다 사실을 만난 착각같이
먼 곳에서 개처럼 우는 늑대 소리가 들리면
늑대처럼 우는 개 소리가 들리면
그가 기다리는 개는 늑대일 수 있는 개 그러나 더이상 늑대를 닮지 않아야 하는 개 늑대에게 쫓겨났으므로 목줄을 매도 복종하는
그 개는 스스로 생각하는 개가 되어 목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진짜가 만든 가짜가 굳어질 때까지
관계자
행사가 끝나면 안전하게 출구를 만드는 일이 남는다
관객이 나오고 다 쓴 의자가 나오고 청소를 마친 사람이 나온 뒤에는 더 나올 게 없는지 확인하는 일이 남는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바깥과 안을 구분하면서 누군가 빠뜨린 물건을 찾는 일이 남으며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다 쓴 의자도 사라지면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다는 생각이 남는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일이 남아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용히 정리하는 법이 남고
시작했으므로 이어지는 순서와
쫓기니까 따라가는 순서
행사가 무엇인지 묻는 순간 관객과 의자를 줄이더라도
버리지 못한 계획 때문에 정확히 모르는 척해야 하는 때를 알게 된다
일은 남았으므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