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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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李起聖

1966년 서울 출생. 1998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불쑥 내민 손』 『타일의 모든 것』 『채식주의자의 식탁』 『사라진 재의 아이』 등이 있음.

leekisung85@hanmail.net

 

 

 

고기를 원하는가

 

 

고기가 되었다. 나는 던져지고, 베어지고, 씹혀지고, 삼켜지고 그래도 남은 것이 있어 나는 고기로 있다. 이 회색의 고기는 질기고, 무참하고, 아픔을 모르고 그래서 계속 씹히고 있는 채로 있다. 고기의 몸으로 구르고 씹히니 즐겁고, 기껍고, 어쩐지 고기인 것이 더 느껴진다. 고기는 어느 뼈아픈 시절의 고기인가, 의문도 잊은 채 적막한 고기처럼 있다. 사랑에 빠진 고기처럼 고기는 고기를 원하는가.

 

 

 

이상한 우정

 

 

나는 길고 긴 이름입니다. 오래전에 구겨진 종이입니다. 나는 백년 전의 구름이며, 어슬렁거리는 감자이며, 어제의 젖은 옷입니다. 당신이 벗어 던진 구두입니다. 그것은 한짝이 뒤집힌 채 현관에 있습니다. 오늘 밤 당신이 나와 함께 간다면, 당신은 구겨진 옷을 다시는 주워 입지 못할 것이고, 내일 아침 사람들은 낡은 구두를 보며 생각에 잠길 겁니다. 아주 감상적인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의 구두는 당신이 아니고 모두 그걸 알고 있으니, 텅 빈 구두쯤이야. 그들은 서둘러 검은 비닐봉지를 찾으러 달려가겠지요. 그때에도 괜찮다면 나는 아주 조용한 얼굴로 당신의 등 뒤에 서 있겠습니다. 구겨진 종이의 모호하고 다정한 얼굴로 말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도록 아주 오래도록……